[김희철의 전쟁사(76)] 서부전선을 지켜낸 해병대의 '장단·사천강 전투' (상)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1.13 18:56 ㅣ 수정 : 2021.01.14 15:29

1952년 3월부터 이듬해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 495일간 지속된 임진강 서북쪽 장단반도 지역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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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해병대사령부는 2014년 11월13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에서 6·25 남침전쟁 당시 중공군에 맞서 서부전선을 지켜낸 '장단·사천강지구 전투 62주년 전승 기념행사'와 '전승 기념비 제막식'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이영주 해병대사령관을 비롯해 이상로 해병대전우회 중앙회 총재, 이재홍 파주시장, 황진하 국회 국방위원장 등 주요 인사와 시민 500여 명이 참석했다.

 

1952년 3월 17일부터 이듬해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때까지의 495일간, 임진강 서북쪽 장단반도 지역에서 치루어진 ‘장단·사천강지구 전투’에서 우리 해병대는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4차례에 걸친 중공군의 공세에 맞서 싸워 서부전선의 수도권 방어에 성공했다.

 

당시 해병대는 5천여 명에 불과한 병력으로 중공군 4개 사단 4만2천여 명과 치열한 전투를 하여 지역을 사수했으나 아군은 776명이 전사하고 3천214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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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4년 11월13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에서 열린 해병대 ‘장단·사천강 지구 전투’ 전승기념행사에서 이영주ㆍ공정식 전 해병대사령관 등 참석 내빈들이 기념비를 제막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해병대사령부]

 

서부 전선의 유일한 한국군 부대이자 도솔산전투의 신화인 무적해병 1연대의 쾌거

  

1952년 3월17일부터의 해병대 ‘장단·사천강 전투’는 6·25남침전쟁 후반기에 서부 전선의 유일한 한국군 부대인 우리 해병 1연대가 미 해병 1사단의 작전통제를 받으며 치열하게 싸워 장단반도를 확보함과 동시에 수도 서울을 압박하기 위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을 격퇴시킨 쾌거이다.

 

1년 전인 1951년 6월, 중동부 전선에서 천연적인 지세를 최대한으로 이용하여 견고한 난공불락의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도솔산 일대의 북한 인민군은 약 4200명의 병력으로 무수히 많은 지뢰를 매설하고 수류탄과 자동화기를 퍼부으며 완강히 저항하여 우리 국군은 한 걸음도 전진할 수 없었다.

 

그러나 도솔산 전투의 진짜영웅인 ‘수류탄 돌격 소대장’ 이근식 등이 분전한 국군 해병 1연대는 치열한 육박전과 인민군이 예상치 못한 강력한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하여 24개 고지를 하나하나 점령하면서 진격하였다. 하나의 고지를 점령하면 적의 공격을 받아 다시 빼앗기고, 또 빼앗는 가운데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던 24개 목표 고지를 6월 19일 완전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 전투의 승리로 피의 능선과 단장의 능선 전투의 발판이 되었고, 이승만 대통령으로부터 ‘무적해병(無敵海兵)’ 이라는 휘호와 함께 부대표창도 받았다. ([김희철의 전쟁사(31)] ‘무적해병 신화를 만든 도솔산전투의 진짜영웅들’ 참조)

 

한편 도솔산전투 이듬해인 1952년, 국군 해병 1연대가 사수했던 장단·사천강지구 전투 당시의 전선은 유엔군은 총 5개 군단으로 미1군단이 서부를, 미 9군단과 한국군 2군단이 중부를, 미10군단이 중동부를, 한국군 1군단이 동부 지역을 담당했다. 이에 맞서 중공군 7개 군단이 서부에서 중동부까지 북한군 2개 군단이 중동부 일부 및 동부지역에서 대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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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중공군 정면에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사천강이 있고, 그 동측을 연해 전초진지인 우일선 대대의 67m, 36m, 33m, 31m고지와 그 밑에 좌일선 대대의 87m고지, 중앙에는 각 대대의 거점, 그리고 동쪽에서 서남방향으로 흐르는 임진강이 있는 해병 1연대의 배치도와 우측그림은 서부전선에서 중공군 4개 군단과 대치하고 있는 미1군단의 상황도 [사진=해병대/육사 한국전쟁사부도] 

 

전쟁이란 서로 치고 박고해야 되는데 두들겨 맞고만 있으라고?

 

중공군들은 우리 해병을 임진강 넘어로 퇴각시키고 광활한 평야인 장단반도를 확보함과 동시에 수도 서울을 압박하기 위해 집요한 공격을 계속했다. 그러나 우리의 무적해병 1연대는 임전무퇴의 정신과 필히 사수하겠다는 전투의지로 효과적인 방어를 통해 적들을 격퇴했다. 

 

이때 우일선 대대인 3대대의 상황은 상기 배치도의 맨 위쪽에 위치한 전초진지 67m고지 공격에 실패한 중공군이 공격 방향을 36m, 33m, 31m고지로 전환해 공격하는 등의 치열한 전초진지 전투가 계속됐다.

 

특히 이 전초진지들은 대대의 주진지로부터 2km 이상 전방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중공군들은 그들이 원하는 시간과 방향으로 공격할 수 있어 전면방어가 가능하도록 진지와 교통호를 구축했으며 철조망을 4~5중으로 설치하고 주요 접근로에는 지뢰까지 매설하여 대비했다.

 

좌일선 대대인 2대대는 최초에는 전초진지인 87m고지에 병력을 배치하지 않았다. 왜냐면 주진지로부터 4 km나 이격되어 전초진지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없고 주변은 평야지대라 모든 활동이 적에게 노출되어 적의 포병사격에 취약했기 때문이었다. 대신에 주간의 수색정찰로 이 공간을 통제를 대신했다.

 

이는 우리 해병보다 중공군에게 더 근접되어 있는 전초진지인 87m고지앞에 흐르는 사천강을 포함해 피아간 주진지의 대치 거리가 5km 이상 되기 때문이었고, 따라서 87m고지에 병력이 배치되기 전까지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방어진지를 보강하고 있었다.

 

당시 수시로 미 해병대 전차 20대와 한국 해병대 전차 5대 그리고 ‘수류탄 돌격 소대장’으로 불리며 도솔산 전투의 영웅이었던 이근식 중위가 지휘하는 5중대가 한미 보전협동작전으로 87m고지까지의 수색정찰을 했다. 

 

8월 초에는 수색작전을 마치고 복귀중 대대의 주진지 도로 앞에서 미 해병대의 선두 전차가 고장으로 정차하여 수리후 재출발할 시점에 적의 포탄이 떨어져 전차위에 탑승하고 있던 해병들이 전사했다. 그는 중대장 재직중 유일한 피해라며 안타까워 했다.

 

이때 가장 아쉽게 생각했던 점은 우리 해병이 미 해병 1사단의 작전통제를 받고 있어서 작전명령에 의해 공격은 못하고 방어만 했다는 것이다. 이근식 중위는 “싸움이란 서로 치고 박고해야 재미있고 신도 나는데 두들겨 맞고만 있으라니면 그게 어디 싸움인가?”라며 “이때의 우리 해병들이 이런꼴이니 지칠 수밖에 없었다”고 한탄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87m고지 쟁탈전이 시작되어 그 치열함이 처절했고 몇주간의 전투 끝에 결국 중공군의 수중에 들어갔다. (중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