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환종의 공군 이야기(39)] 2차 포대장③대한민국 남성들과 비슷한 장군의 '악몽'

최환종 칼럼니스트 입력 : 2021.02.19 20:30 ㅣ 수정 : 2021.02.20 01:12

'오합지졸' 각오하며 시작했던 '야외 전개훈련', 훈련진지 선정부터 난관에 봉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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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환종 예비역 공군 준장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군 복무를 마친 대한민국 남성들이 꾸는 악몽 중에 ‘군대에 다시 가는 꿈’이 최악의  악몽이라고 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꿈속에서 ‘강원도 부대’와 ‘00 포대’에서 다시 근무하는 꿈이 그런 경우이다. 특히 00포대는 필자가 장군이 되어서도 가끔 꿈에 나타났는데, 늘 포대장 임무를 다시 수행하는 꿈이었다. 그만큼 2차 포대장 임무는 뇌리에 깊이 남아 있던 것이리라.......

 

먼저 발등에 떨어진 불은 야외 전개훈련(포대를 벗어나 특정 지역을 점령하여 방공임무를 실시하는 일종의 야외 기동훈련)이었다. 당시 00포대는 ‘험준한 지역에 위치’하였기 때문에 육군 시절부터 안전상의 이유로 정식 야외 전개훈련은 거의 실시하지 않았고, 상당기간 동안 포대 내에서 약식으로만 훈련을 실시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사령관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00포대는 실로 오랜만에 야외 전개훈련을 시행하게 된 것이었다. (후에 필자가 듣기로는 ‘00포대’의 지형이 너무 험준하기 때문에 여단장도 우리 포대의 야외 전개훈련을 적극 반대했다고 한다.)

 

결국은 00포대의 야외 전개훈련과 사격대회 참가가 확정되었는데, 이때 필자의 오기가 작동했다. 아무리 부대원들이 오합지졸이지만 이들도 군인이다. ‘어차피 주어진 임무다. 부딪쳐 보자. 그리고 안되면 되게 하자’라는 생각이 들면서 훈련 준비를 시작했다.

 

우선 야외 전개훈련은 상당기간 동안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진지 선정부터 난관에 부딪쳤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훈련진지를 선정하고 난 후, 필자는 부대 내에서 부분적으로(팀 단위로) 훈련을 해 보았다. 예상대로 훈련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심지어는 위장망조차 제대로 설치하지 못하는 ‘육공’ 간부도 있었다. (당시 00포대에 포대급 야외 전개훈련 경험자는 필자를 포함하여 간부 0명 뿐이었다. 포대원의 절대 다수가 야외 전개훈련 경험이 없었다.)

 

고민 끝에 필자는 팀별 숙달 훈련을 시키고, 팀별 훈련이 숙달되면 한단계 높은 단위의 숙달 훈련을 실시한 후, 최종적으로 포대 단위의 훈련을 하고 야외 전개훈련에 임하고자 사전 훈련을 계획했다. 육군 보병 중대를 예를 들자면 ‘분대 단위훈련 완성 > 소대 단위 훈련 완성 > 중대 단위 훈련 실시’ 순의 개념으로 포대의 훈련 수준을 끌어 올리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여건상 포대 단위 종합 훈련은 못하고 소대 단위 훈련 정도까지만 실시하고 야외 전개훈련에 임해야 했다.

 

훈련 전에 실시했던 또 하나의 어려운 점은 작전도로의 정비였다. 당시 작전도로는 비포장도로였고, 경사가 심한 곳이 많았으며, 도로 폭은 2.5톤 트럭이 겨우 교행할 정도의 폭이었다 (위치에 따라서는 차량 교행이 불가한 지점이 있어서 차량 한 대가 지나갈 때까지 마주 오는 차량이 기다렸다가 지나가야 하는 그런 지점도 있었다).

 

필자가 초급장교 때 경험했던 강원도 부대의 작전도로도 험하다고 느꼈었는데, 이곳의 작전도로에 비하면 강원도 부대의 작전도로는 잘 정비된 ‘고속도로’였다. 제한된 시간 내에 도로 정비까지 마쳐야 했으니 훈련 준비는 고통의 연속이었다. (그때는 도로 정비용 중장비 지원도 없었다. 오로지 포대의 인력으로만 도로정비를 해야 했다.......)

 

정말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단기간에 부대원의 훈련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야외 전개훈련 준비를 했다.

 

드디어 야외 전개훈련이 시작되는 날이 밝았다. 훈련 기간은 약 일주일! 야전 교범에 명시되어 있는 그대로 실시하는 전술훈련이다. 전개훈련의 주 내용은 포대의 전 병력과 장비(각종 레이다. 유도탄 등)를 절반씩 나누어서 축차적으로 훈련진지로 이동하여, 훈련진지 점령 및 전 장비 설치 후 주어진 시간 내에 임무에 돌입하여야 하고, 이후 소정의 훈련을 실시한 후에 다시 포대로 복귀하는 과정이다.

 

말은 쉽지만 이동 준비부터 훈련진지 점령, 임무 수행, 포대 복귀 등 시작부터 끝까지 어느 부분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훈련이다. 훈련이 안된 포대원들이기에 방심할 경우 자칫 인명피해까지 발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 것은 이동시간이 주간이 아닌 ‘야간’이라는 것이다. 필자가 듣기에 산악 지형에서 야간 이동(행군) 훈련은 육군 방공포병 시절에도 없었다.

 

보통 포대급 훈련에 대대장이 참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이 전개훈련은 00포대로서는 매우 특이한 경우였기에 대대장 및 대대 참모들이 훈련 시작 전부터 포대에 와서 (필요시에는 조언을 하며) 훈련 준비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동은 일몰 이후 야간에 실시하였고, 이동 간에 차량의 전조등은 소등하고 보조등 만으로 이동하여야 했다. 보조등 불빛 만으로 이동한다는 것은 그냥 맨눈으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 모두들 올빼미가 되어서 이동을 시작했다. 그때는 포대에 야간 투시경 보유량이 적어서 야간 이동시에 활용하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포대에서 훈련 진지까지의 거리는 얼마 되지 않았다. 정상적인 상태라면 주간에 차량으로 1.5 ~ 2 시간 정도의 거리이지만 포대에서부터 훈련 진지까지 이르는 작전도로는 상태가 열악했기에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전 부대원이 야간에 포대 전 장비를 가지고 처음 이동하는 훈련이기에 행군속도는 느릴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따라 월광 또한 매우 약한 시기라서 산악 도로에서의 야간 행군은 살얼음판을 걷는 느낌이었다.

 

참고로 당시 포대의 행군 규모는 2.5톤, 5톤 등 대형 차량만 00대였는데, 대부분의 차량에 레이다, 유도탄 등을 견인해서(차량에 적재가 아니고) 야간에 행군하여야 하니 차량 행군에 따른 고통과 위험은 대단히 큰 것이었다.

 

악전고투 속에 포대 병력 및 장비는 예정 시간보다 3~4시간이 넘어서야 훈련 진지에 도달했고(새벽 2시가 넘어서 훈련 진지에 도착한 것으로 기억한다), 포대원들은 절차에 따라서 진지 점령 및 작전장비 설치를 시작했다. 단기간의 집중적인 훈련이 성과를 나타내고 있었다. 다행히도 제한시간 내에 임무에 돌입할 수 있었고, 필자는 2차 포대장 부임 후 처음으로 약간의 성취감을 맛보고 있었다.

 

훈련진지에서의 작전이 개시되고 진지가 정돈된 후에 필자는 선임 중대장에게 훈련진지 지휘를 넘기고 포대로 이동했다. 포대에 잔류하고 있는 병력과 장비를 인솔하고 그날 야간에 다시 훈련진지로 이동하기 위해서!

 

포대에 도착하니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필자는 포대장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난 후, 일과 시작과 더불어서 이날 야간에 이동할 포대 병력 및 장비를 점검했다. (훈련 기간중 필자는 하루 수면 시간이 2시간 정도였다. 그만큼 신경쓰고 확인할 것이 많았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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