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과 언론 사이 ⑦] ‘화염에 휩싸인 K-9 자주포’ 사진 한 장의 의미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2.05.13 17:30 ㅣ 수정 : 2022.05.19 16:25

‘연평도 포격전’ 당시 해병 정훈장교가 훈련 사진 찍으려다 결정적 장면 촬영
공개 여부 이견 있었으나 국방장관 결심 후 언론에 제공돼 전 세계 알려져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윤원식 박사는 육사 42기로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당시 국방부 대변인실 공보과장 겸 부대변인을 지내면서 군과 언론의 다양한 갈등 현장을 경험해왔다. 상극이라고도 볼 수 있는 두 직업의 중간지대에서 관찰한 흥미로운 현대사를 관련 사례와 함께 풀어본다. <편집자 주>

 

 

image
윤원식 북극성안보연구소 미디어전략센터장

[뉴스투데이=윤원식 북극성안보연구소 미디어전략센터장] ‘연평도 포격전’(‘연평도 포격도발 사건’으로 명명되다가 지난해 11월 해병대사 건의로 개칭)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경 연평도에 있는 해병대 연평부대가 공해상으로 K-9 자주포 사격훈련을 하던 중 북한이 해안포 기지에서 기습적으로 방사포 170여발을 연평부대와 연평도 민간시설에 발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는 80여발의 대응사격을 하였고, 남북한 간의 포격전은 오후 3시 41분까지 1시간 7분 동안 각각 두 차례씩 있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병 2명이 전사하고, 16명이 부상당했으며, 연평도 주민 2명 사망, 4명 부상, 연평도 주민 가옥 118채가 파손되는 피해를 입었다. 

 

6.25전쟁 이후 초유의 포격전에 군은 사건 발생 당일인 11월 23일 오후 4시에 ‘진도개 1’을 발령하여 경계 태세를 1급으로 강화했다. 인천시도 11월 23일 오후 5시 20분에 옹진군 연평면 일대에 ‘통합방위 을종사태’를 선포했으며, 옹진군은 사태 발생 후 6일이 경과한 11월 29일 12시에야 연평도 전역을 ‘통제구역’으로 설정했다.  

 

통제구역은 통합방위법에 근거하여 통합방위사태가 선포되거나 경계태세 1급이 선포된 경우 해당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이 설정하는 것으로 작전과 관련이 없는 주민이나 기자 등의 출입금지나 퇴거를 명할 수 있는 조치이다. 당시 연평부대장 건의에 따라 연평도 전역에 선포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연평도 포격전과 관련된 언론보도의 하이라이트는 ‘화염에 휩싸인 k-9 자주포 사진’이다. 당시의 급박하고 중대한 도발 현장을 증명해주는 이 사진은 언론에 제공돼 보도됨으로써 전 세계에 북한군의 도발 현장을 생생하게 알렸다. 이 사진은 당시 연평부대 정훈장교가 촬영한 것이었다. 

 

그는 사전에 계획된 K-9 사격훈련의 ‘홍보용 사진’을 찍기 위해 자주포 진지로 이동하던 중 갑자기 북쪽에서 포탄이 날아와 포상에 떨어져 불이 붙고 자주포가 화염에 휩싸이는 장면을 바로 눈앞에서 생생히 목격하게 됐다. 그 순간 정훈장교는 언덕배기에 몸을 낮추고 엎드린 채 거의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image
당시 연평부대 정훈장교가 엎드린 채 거의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러 찍은 장면. [사진=국방부]

 

그는 이 사진이 전 세계로 퍼져 나가는 역사적 한 장면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자기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고, 훈련 홍보용 사진 촬영을 하러 갔다가 북한 도발 현장의 ‘생생한 목격자’가 된 셈이다. 어쨌든 그때 이 사진 한 장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중한 가치를 지닌 역사의 한 장면이 됐다. 

 

이렇게 극적으로 촬영한 사진은 북한의 도발 증거가 되는 것임에도 공개 과정은 긴박했다. 결과적으로는 국방부장관의 결심을 받아 공개됐지만, 사전 토의 과정에서는 찬반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사태가 발생한 다음 날 오후 2시경 해병대사령부 공보실장이 중요한 보고사항이 있다면서 몇 장의 사진을 들고 왔다. 사진을 보는 순간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즉각 공개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 윗선에 보고하고 즉시 주요 직위자 긴급회의를 열어 논의했다. 

 

그런데 예상외로 언론 공개 여부에 대한 찬성과 반대 의견이 분분해 시간이 지체되었다. 각각의 이유와 논리는 다 일리가 있었지만 공개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했던 필자로서는 만일 공개가 안 되거나 공개가 되더라도 시기가 늦어져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이 직감적으로 들었다. 

 

이에 필자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므로 장관님께 바로 결심을 받자’고 건의했다. 마침내 핵심 관계자 3명이 바로 장관에게 달려가 사진 촬영 및 입수 과정과 토의결과에 대해 보고했다. 장관은 두 번을 반복해서 넘겨보고는 ‘지금 즉시 공개하라’고 지시함으로써 이른바 ‘화염에 휩싸인 k-9 자주포’ 사진이 전 세계 언론에 보도될 수 있었다. 

 

이 K-9 자주포 사진 촬영과 공개는 결과만 놓고 보면 아주 단순하고 지극히 당연한 공보사안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이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당시 국내외 모든 언론의 관심과 초점은 국방부로 쏠리게 되었고, 내외신 기자들을 연평도 현장으로 달려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국방부 출입기자들은 가치 있는 사진을 보도자료로 적시에 제공해 준데 대해 높이 평가해 주었고, 기사 작성에 대한 고민을 한방에 없애주었다며 상당히 고마워했다. 오랜만에 갈등 없는 군과 언론 사이가 되었다. 이처럼 사진 한 장이 주는 의미와 상징은 매우 컸다.

 

 


윤원식 프로필 ▶ 연세대 대학원(신문방송학과)과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외교안보학과)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0년 국방부 대변인실 공보과장으로 근무하며 군과 언론 간 최초의 보도준칙인 ‘국가안보 위기 시 군 취재보도 기준’을 제정했다. 국방부와 합참을 비롯한 정책부서와 전·후방 각급 부대에서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커뮤니케이션 참모로 33년 복무 후 육군 대령으로 전역했으며, 현재 북극성안보연구소 미디어전략센터장을 맡고 있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