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인터뷰 '안녕하세요' (14)] 부산에 불고 있는 고급 티(茶) 열풍…'진향당' 홍두표 대표: "차는 문화입니다"
[뉴스투데이=김연수 전문기자]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커피를 손에 들고 도심을 걷는 모습이 일상이 된지는 오래다. 커피는 현대인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루틴이 되었고, 국내 1인 당 연간 커피 소비량은 2023년 기준 약 405잔에 달한다. 이는 프랑스에 이어 세계 2위 수준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건강을 중시하고 취향 있는 소비를 지향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커피 대신 '차(茶)'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단순한 음료 소비를 넘어, 고급 차에 대한 지식과 시음법 등을 공유하는 커뮤니티 중심의 문화 현상으로 발전 중이다. 마치 와인이 처음에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던 시기와 유사하게, 차를 매개로 한 고급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부산이 그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전문적인 차(茶) 공간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만남과 소통의 장이 속속 늘어나고 있다. 부산에서 오랫동안 티 하우스를 운영하며 차 전문가로 활동중인 '진향당' 홍두표 대표를 만나,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어본다. 다음은 홍두표 대표와의 일문일답. Q. 최근 부산에서 차(茶) 문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에는 오래전부터 부산이 외부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이는 도시였다는 점을 배제할 수 없는 것 같다. 예술, 음악, 음식에 이어 '느림의 문화'도 빠르게 퍼졌다. 찻방은 단지 차를 파는 곳이 아니라, '쉼'을 디자인하는 공간이다. 눈 감성이나 자기관리 문화도 차 문화 확산에 한몫하는 것 같다. 커피가 각성의 언어라면, 차는 휴식의 언어다. 그 언어를 부산이 먼저 받아들였다고 본다. 특히 차는 단지 마시는 음료가 아니라, 시간을 머무르게 하는 매개체이다. 부산은 바다와 자연의 분위기 속에서 조용한 여유를 누릴 수 있는 도시이고, 그 분위기와 찻방 문화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이제 단순한 소비보다 의미 있는 시간을 원하고 있다" Q. 커피와 차,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커피는 빠르게 소비되는 반면, 차는 천천히 음미하며 사람과 공간에 집중하게 한다. 찻방에서는 한 잔의 차를 중심으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사람들 간의 관계도 더 깊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게 가장 큰 차이라고 생각한다" Q. 커피와 차 모두 카페인이 있음에도, 차는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고들 한다. 차가 주는 정서적 효과는 어디에서 온다고 보나. "차는 커피보다 깊은 시간을 만든다고 본다. 차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마시는 '방식'이다. 차를 우려내는 시간, 향을 맡고 잔을 들어 올리는 동작, 따뜻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는 순간까지 모든 행위가 하나의 리듬을 만든다. 보이차처럼 발효도가 높은 차는 카페인이 거의 없고, 체온을 천천히 데우며 몸을 이완시킨다. 자연스럽게 숨이 길어지고, 마음도 함께 가라앉는다. 정서적 안정은 성분보다 방식에서 온다. 건강해지고 싶다면, 차를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차는 건강 측면에서도 이로움이 있다고 보는가. "녹차에는 강력한 항산화제인 카테킨과 플라보노이드가 풍부해 노화 예방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우롱차나 보이차는 지방 분해를 도와주며, 소화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데 효과적이다. 대부분의 차는 위를 자극하지 않아 공복에도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커피가 즉각적인 각성과 집중에 유리하다면, 차는 장기적인 체질 개선과 균형에 유리하다. 몸의 리듬을 회복하고 싶다면, 차가 좋은 동반자가 된다" Q. 다도에는 예법이 있고, 다구나 보이차는 고가로 거래되기도 한다. 차를 마시는 데 있어 예법과 도구는 왜 중요한가. "예법이나 다구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라 마음의 형태다. 손의 위치나 물을 따르는 순서 같은 절차는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는 무언의 표현이다. 물론 형식이 본질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 일상 차 문화에서는 간결하고 가벼운 예법만 남기는 게 맞다. 좋은 차와 비싼 차, 그리고 다구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오래된 보이차는 시간의 발효가 풍미로 나타나고, 어떤 다구는 예술적 가치가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가 어떤 마음으로 사용하는가이다. 매일 손에 익은 잔과 좋아하는 향, 편안한 공간에서 마시는 차가 진정 좋은 차다. 예법은 마음을 다듬는 도구이고, 다구는 경험의 밀도를 높이는 매개체다. 결국 차 문화는 값비싼 물건이나 복잡한 절차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태도와 마음으로 깊어진다" Q. 개인적으로 차와 함께 해온 시간이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는가. "경험상 차를 마시며 사람이 달라졌다. 그리고 차를 마시는 습성은 제 사업에도 은근히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실례로 예전에는 손님이 오면 커피를 내놓곤 했다. 어느 날부터 차로 바꿨는데, 대화의 결이 달라졌다. 차를 마시면 말이 느려지고, 마음이 풀린다. 쉽게 자리를 뜨지 않고, 더 깊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일의 속도도 변했다. 조급함보다 유연함이 생겼다. 차는 혼자 있을 때도 좋지만, 사람 사이에서도 조용히 분위기를 바꾼다. 술 없이도 친밀해질 수 있다는 걸 차가 알려줬다" Q. 차 문화가 젊은 세대에게도 확산되며 대중화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젊은 세대에게는 가벼운 차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는 '정답'보다 '경험'을 원한다. 복잡한 다구나 형식은 오히려 장벽이 된다. 좋아하는 디자인의 찻잔, 간단한 티백, 조용한 음악.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신만의 다도를 만들 수 있다. 차는 무겁지 않아야 오래간다. 차가 어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 차 전문가들의 역할인 것 같다. 접근은 가볍게, 경험은 깊게. 그게 요즘 차 문화의 방향이다" Q. 앞으로 차를 전문적으로 마시는 공간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까. "찻방은 단순히 차를 마시는 공간에서 더 나아가, 예술과 건강, 명상, 취향 있는 소비가 융합된 복합 문화 플랫폼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차는 그 자체로도 깊은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기는 경험은 훨씬 넓고 유연하다. 앞으로는 차를 중심으로 소규모 강연, 전시, 명상 프로그램, 향기 체험 등 다양한 콘텐츠가 결합된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발전할 여지가 많다. 특히 MZ세대는 감성적 경험과 취향 중심의 커뮤니티를 중시하기 때문에 이런 공간은 세대 간 소통을 이끌어내는 매개체로도 작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김연수 프로필 ▶ 연세대학교 아동가족학 학사/ 前 문화일보 의학전문기자 /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외식산업 고위자과정 강사/ 저서로 ‘4주간의 음식치료 고혈압’ ‘4주간의 음식치료 당뇨병’ ‘내 아이를 위한 음식테라피’ 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