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철의 검사수첩 (17)

“검사님, 돈 좀 받을 수 있게 해주세요”

이상호 전문기자
입력 : 2020.08.05 05:05 |   수정 : 2020.08.05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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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는 사기 사건이 정말 많다. 그렇게 사기 사건이 많은 가장 큰 이유는 개인 간에 금전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계획적인 사기꾼을 제외하고는 돈을 빌리면서 안 갚겠다고 마음먹고 빌리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상황이 좋지 못해 돈을 변제하지 못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피해자는 이런 경우에도 “돈을 갚겠다고 해서 빌려줬는데 안 갚으면 거짓말한 것 아니냐”라고 생각하고 민사적인 조치에 우선해서 사기 사건으로 고소하곤 한다.
 
■개인 간 금전거래 많은 탓에 사기 사건 고소도 ‘봇물’

“돈을 갚겠다”고 하고 돈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결과적으로 갚지 않는다고 해서 바로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이번 달 말에 곗돈 받을 것이 있으니 그 돈으로 빌린 돈을 갚겠다”든가 “이 돈으로 어디에 투자를 하면 연말에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그때 갚겠다” 이런 내용이 있고 그것이 거짓말이어야 사기죄가 성립한다. 단순히 “돈을 갚겠다”라고 하면 그것만으로는 사기죄 성립에 필요한 기망(欺罔) 행위, 즉 사람을 속이는 행위가 되지 않는다. 물론 도저히 돈을 갚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돈을 갚겠다고 한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사기죄로 처벌될 수는 있다.
 
빌린 돈의 사용처를 속인다든지, 자기의 재력(변제능력)을 속이거나, 그 외에도 빌려준 사람이 믿고 돈을 빌려준 기초 사실이 거짓말이었을 때 사기죄가 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돈을 갚겠다고 한 말 자체가 거짓말이니 사기로 고소하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무혐의 처분이 많이 나온다.
 
서울 북부지검에 근무할 당시에 있었던 일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새로 알게 된 지인한테 토지 분양사기를 당한 사건이 있었다. 지인은 토지의 가치에 대해서 허위 사실을 기반으로 과대평가를 해서 이야기를 했다. 매입 후 일 년 안에 세배까지 수익이 가능하다, 주변이 곧 개발 될 거다, 이런 식으로 해서 토지를 구매하게 했는데 실상은 맹지였을 뿐만 아니라 가치도 없었고 개발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었다. 이 아주머니는 ‘피 같은 돈’, 5000만 원의 피해를 보았다.
 
■돈 빌리고 안 갚는다고 해서 모두 사기는 아니다

나중에 속은 것을 알고 고소를 했는데, 아주머니는 나를 찾아와 “그 돈은 남편 퇴직금이다. 그 돈이 회수가 안 되면 우리 부부의 노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반드시 돈을 돌려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했다. 도와드리고 싶어서 기초 조사를 철저히 한 후에 피의자를 불러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피의자는 특별한 사기전과가 없는 사람이었다. 피의자는 “나도 제삼자한테 속은 거다. 그 사람한테 그렇게 들어서 아주머니한테 똑같이 말하고 토지 거래에 필요한 돈을 투자받은 것이다. 아주머니가 투자한 5,000만 원 중 내가 받은 건 천만 원에 불과하다. 지금은 나도 돈이 없어서 변제할 능력이 없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중요한 내용을 확인도 안 하고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한 것은 틀림없어서 나는 피고소인에게 사기죄가 성립된다고 판단했다. 기소했고, 결국 유죄가 나왔다. 아주머니는 사기당한 5,000만 원 중 2,000만 원 정도를 돌려받은 것으로 기억한다.

여기에서 돈의 의미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과연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 오천만 원이란 돈은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질까? 제일 비교하기가 쉬운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해보는 것이다. “너 오천만 원 잃을래, 전치 몇 주의 상해를 입을래?”
 
전치 1주 정도는 가볍게 긁히는 상처 정도다. 이 정도면 “오천만 원을 잃느니 전치 1주 상해를 받겠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전치 5주, 10주, 20주로 가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 달라질 수가 있다.
 
정말 돈이 많은 사람은 “전치 4주 이상의 상해를 받느니 돈 오천만 원을 포기하겠다” 이런 사람도 있겠지만, 돈이 더 중요한 사람은 “나는 전치 20주 상해보다 오천만 원이 중요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돈의 가치는 당사자가 가진 돈에 대한 개념, 현재의 재력 등에 따라 똑같은 오천만 원도 10의 무게를 갖기도 하고 100의 무게를 가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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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볼 수 있는 사설 채권추심업체의 광고[사진제공=SBS]
 
■채권·채무 분쟁, 민사적 요소가 많은 사건에 대한 검사의 고민

검사는 잘못한 사람, 즉 사기로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사람을 형사처벌 하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가 고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피고소인을 처벌해 달라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돈을 돌려받고 싶기 때문이다.
 
돈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원칙적으로 민사(民事) 소송을 통해서 해야 한다. 문제는 민사재판에서 승소해도 채무자에게 강제집행 할 수 있는 재산이 있어야 돈을 돌려받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가해자, 즉 채무자 중에는 진짜로 돈이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재산이 있지만 본인 명의로 된 재산을 안 가진 경우가 많다. 모두 배우자나 아는 사람 명의로 해놓고, 자신은 1원 한 장 없는 사람으로 행세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돈이 많은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런 경우 민사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피해자는 돈을 돌려받을 길이 없다. 그래서 형사소송, 즉 검찰이나 경찰에 형사적 처벌을 의뢰하는 것이다. 가해자는 형사처벌 받을 것 같으면 그제야 숨겨 놓았거나 차명으로 보유한 재산으로 피해자에게 변상해서 합의하려고 나오기 때문에 고소 고발을 하는 것이다.

오천만 원이든 1억이든 피해를 봤는데, 돈은 한 푼도 못 돌려받고 가해자가 형사처벌 받을 수도 있다. 그나마 징역을 살면 피해자로서는 감정적인 해소라도 된다. 그런데 가해자가 구속도 안 되고 자기는 1억 원의 피해를 보았는데 벌금 1천만 원만 받는다거나 실형이 아니고 집행유예 판결을 받는 경우 피해자는 큰 허탈감을 느끼게 된다

많은 사람이 집행유예 받으면 무죄를 선고받은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면 피해자는 “내가 없는 형편에 변호사까지 선임해서 고소했는데 돈 한 푼 못 받았다. 헛돈 들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반면에 자기가 1억 원의 피해를 봤는데, 그 중 오천만 원이라도 돌려받으면 너무너무 감사해한다. 곧바로 합의해주고 처벌불원서도 내주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그 돈의 가치가 피해자에게는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이런 재산 관련 범죄에 대해서는 검사들마다 생각이 매우 다르다. 어떤 검사는 가급적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돈을 변상하게끔 해주는 것이 검사의 의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고, 어떤 검사는 검사의 직무는 죄를 지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이지 돈을 돌려주는 것은 민사소송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원칙적으로 검사는 형사처벌을 하는 기관인 것이 맞다. 하지만 문제는 검사가 도와주지 않으면 피해자는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는 경우가 오히려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나 같은 경우는 가급적 형사적으로 처벌하는 것에 국한하지 않고 재산 피해를 본 사람들한테는 가해자가 돈을 반환할 수 있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가해자 위주의 형사소송 개정 우려... 더 많은 일반 국민,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그런데 그 형사처벌이라는 것이 가해자가 구속도 안 되고 집행유예로 풀려나면 누가 돈을 돌려주겠는가. 2000년대 초반에는 대검 양형기준에 피해 금액이 3,000만 원이면 구속한다고 되어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너무 많이 높아져 버렸다. 피해액이 1억 원이라 하더라도 구속영장이 나올지 안 나올지 불투명하다.

구속기준을 다시 옛날처럼 3,000만 원으로 낮추는 게 맞는지, 불구속수사 원칙이니까 1억, 2억, 3억 원으로 높이는 것이 맞는지 판단이 쉽지 않다. 구속은 한 사람의 신병을 구금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반면 자신이 피해자가 됐을 때를 생각해 보면 다르게 생각이 될 수도 있다.
 
최근 형사소송이 변화되는 추세를 보면 대부분 피의자 또는 가해자 입장에서만 형사소송 절차를 개정해 나가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대한민국 국민 중에서 가해자가 될 사림이 더 많겠는가, 피해자가 될 사람이 많겠는가? 당연히 피해자가 훨씬 더 많다.
 
왜냐면 가해자는 보통 상습적으로 여러 명을 상대로 범행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단계라든가 유사수신 범죄 같은 경우는 피해자가 천 명, 만 명에 이르는 것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가해자보다 피해자가 열 배, 백배 많을 수밖에 없다.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는 있지만, 가해자 중 자기 이름으로 예금 가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부동산을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해자 중 상당수는 자기 배우자나 지인들 명의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인 것이 현실이다.
 
민사적으로 뒷받침이 안 된 상황에서 이렇게 가해자의 인권만 중시하면 피해자가 되는 국민에게는 정말 허탈한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흔히 발생할 수 있다. 민사소송에 이겼지만, 돈도 못 돌려받고, 형사적으로는 벌금이나 집행유예에 그치고, 가해자는 돈 돌려줄 생각도 안 하고...
 
그래서 필자는 균형감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인 사건,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사건들만 대서특필 되지만 그런 사건은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형사사건의 0.001%도 안 된다. 대부분은 서민들 간에 돈 빌려주고 돈 못 받은 사건, 구타 사건, 교통사고, 이런 것들이 형사사건의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모든 제도가 가해자의 인권만을 강화하는 형태로 변경된다면 과연 피해자는 어떤 식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를 할 때는 관대하다. 불구속 수사 원칙, 처벌 수위 경감,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한 번쯤은 자신이 피해자가 됐을 때도 생각해 보면서 가해자의 인권 강화를 도모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형사소송의 운용은 민사소송과 분리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지만, 현실적으로 민사소송이 제대로 기능을 할 수 없는 게 현실임을 인정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시에 생각하는 균형감각을 기반으로 제도도 만들어지고 운용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sanglee365@news2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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