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이메일 전송
공유하기

[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2) 여자의 일생 -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남기 - 3부

윤혜영 선임기자 | 2018-05-25 09:23 등록 1,399 views
▲ 畵 : 박경혜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한국 페미니스트를 바라보는 시각 ‘양성평등 vs 여성우월주의’

초등학생 때 나는 키가 크고 발육이 좋은 편이었다. 당시 담임은 오십대의 남성이었는데 아이들에게 책읽기를 시키고는 내 뒤로 다가와 어깨를 주물러 주는척 하다가 가슴을 움켜쥐고 비비곤 했다. 그 일은 가끔씩 학기내내 반복되었다.

당하고 나면 수치스럽고 불쾌한 감정이 하루를 지배했지만, 그때는 부모와 스승은 동급이라고 세뇌시키던 시절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스승의 탈을 쓴 범죄자이고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었다. 그러나 어렸던 나는 엄청난 두려움에 감히 입밖으로 꺼내 이슈화시키지 못했다.

살아오면서 성폭력은 늘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것은 어린시절부터 성인이 된 시점까지도 꾸준하고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학창시절의 만원버스, 동네꽃집의 할아버지, 학원의 선생님, 지나치던 행인, 친척오빠, 직장내 상사. 모두가 근접한 곳에 있고 친절한 이웃의 얼굴을 하고 있다. 전자발찌를 착용한 흉악범만 멀리해야 할게 아니다. 성범죄는 불특정인보다 주변인들에게서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성추행은 어디서나 어느때나 만연하였지만  가해자들은 직장이나 학교, 친인척 등등 가까운 사이에서 일어났기에 피해사실을 호소하기가 더 어려웠다. 괜한 분란을 일으켜 일상을 뒤집어놓고 싶지 않았다.

웃는 얼굴로 성적인 농담을 던지던 상사들, 회식 때 블루스를 추며 더듬던 유부남 상사들, 술기운을 가장하여 터치를 하던 학교선배들.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옷차림이 문란하거나 색기가 있거나 평소에 음전치 못하여 그런 일을 당했다는 이른바 '행실'에 대한 2차 공격이 더 놀랍고 억울했다고 말한다.

남성들은 정치공작이나 꽃뱀설로 가해자를 두둔하며 사건을 무마시키려 한다. 여성들은 이제 연대를 이루어 불꽃페미액션으로 반격한다. 남성과 여성이 나뉘어져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me too열풍 이후 '홍대 몰카 사건'으로 싸움은 더욱 촉발되었다. 남성 누드모델을 몰래 촬영해 유포한 이 사건은 여성이 '가해자'이다.

이제껏 여성상대 몰카나 리벤지 포르노, 소라넷 등에 관대하고 미온적인 수사를 해왔던 경찰은 긴급체포와 구속수사, 포토라인 세우기로 남성이 여성에게 어떻게 '백래시'를 가하는지 여실히 보여주었고 여성들은 분노했다. (경찰청 성폭력 대책과에 따르면 2018년 붙잡힌 몰카 피의자 총 1288명 중 남성은 1231명이었으며 이 가운데 34명이 구속됐다. 여성이 구속된 사례는 홍대 몰카 사건의 '안모' 씨가 유일하다)

여성, 시민단체 모임인 ‘미투 운동과 함께하는 시민행동’은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2주기를 맞은 지난 17일 사건 발생 장소 인근인 신논현역 앞에서 '성차별·성폭력 끝장집회'를 개최했다.

'몰카 편파 수사'를 의제로 들었고 경찰은 당시 시위대를 약 500여명으로 예상했으나 참가자는 1만명이 넘어섰다. 시위자들은 빨간색 옷을 입고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외치며 수사의 부당함을 호소하였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성도 국민이다. 성별 관계없는 국가의 보호를 요청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3일 만에 참여인원 35만명이 넘어섰다.


한국에서 꺼내기 부담스러워 지는 단어 ‘페미니즘’

최근 종영된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누나'는 작금의 시대상황을 잘 반영했다. 회사 상사들의 상습적인 성추행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던 여주인공이 어느날 용기를 내어 반기를 들자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은 커녕 피해 당사자만 좌천되고 목소리는 근절되었다. 이것이 미투운동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즘 운동은 꾸준히 확산되는 분위기이다. 물론 만만치 않다. 처음에 미투를 응원했던 '위드유'는 남성들의 반기로 인해 옹호론에서 회의론으로 변질되는 분위기이다. 페미니즘의 본질은 양성평등인데 이 단어의 의미가 여성의 권리만 주장하는 '꼴페미, 메갈' 로 둔갑하여 여성혐오와 비아냥을 낳고 있다.

여성의 권리신장에 대한 남성의 집단적 반발인 '백래시(Backlash)현상도 만만치 않다. 기업에서는 펜스룰을 지지하고 여성을 고용하지 않아 사회적으로 배척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미투운동(나도 당했다)을 단순히 여성우월주의로 왜곡하여 바라보면 곤란하다. 이는 남성들의 일상적인 성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권리회복 운동이다. 정부가 나서서 여성혐오 범죄에 엄단을 내리고 적극적인 지지를 펼쳐주어야 반복되는 여성혐오 확산과 남성중심주의 사회에서 서서히 벗어날 수 있다.

여성은 남성보다 미개하지 않으며 성적인 쾌락의 도구가 아니다. 남성들은 본인이 여성에게서 태어나 길러졌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딸들이 살아갈 이상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위해서는 건강하고 건전한 성윤리가 심어져야 하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배척당하는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모든 행복한 사회의 뿌리는 행동하는 한사람의 인격, 올바른 가치관과 이를 지켜주고 응원하는 하나의 가정에서 출발한다.


네 믿음은 네 생각이 된다. 네 생각은 네 말이 된다.

네 말은 네 행동이 된다. 네 행동은 네 습관이 된다.

네 습관은 네 가치가 된다. 네 가치는 네 운명이 된다


- 간디-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Copyright ⓒ 뉴스투데이.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주요기업 채용정보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