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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95) 나의 마카오 여행기② ‘골목길’

윤혜영 선임기자 | 2018-08-17 14:05 등록 1,629 views
▲ 마카오 타이파 빌리지 [사진=윤혜영]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주거인들의 삶과 개성이 묻어나는 ‘골목길’
 
이방인들에겐 소소한 구경거리이자 즐거움
 
아침 일찍 눈을 뜬 아이들과 남편은 라운지로 조식을 먹으러 향하고 나홀로 타이파 빌리지로 외출을 감행했다. 날씨가 많이 무더울거라 미리 걱정을 했었지만 소나기가 자주 내려서 그다지 덥지 않았다. 길은 찾기 쉬웠다. 갤럭시 호텔의 푸드코트쪽으로 내려가서 East square이정표를 보고 계속 걸었더니 카지노가 나왔고 그 옆의 큰 문을 밀고 나가니 길 건너편에 타이파 빌리지의 정문이 보였다.
 
출근시간대라 사람들이 많이 오갔고, 차들이 쌩쌩 달리고 있었다. 횡단보도에는 따로 신호등이 없어 쭈뼛거리며 도로로 나섰는데 멀리서 달려오던 차들이 사람을 발견하고는 서행을 하여 일제히 정지선에 멈추었다. 순간 살짝 충격이 올 정도로 신선한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사람이 차를 피해다니는게 정석이다. 횡단보도에서도 우회전을 하는 차들이 사람을 보고도 아랑곳없이 주행을 하기 때문에 알아서 피해가야 한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인 마카오 시민들의 의식수준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다고 생각된다. 참고로 마카오의 GNP는 세계4위에 이른다.
 
타이파 빌리지로 들어서 실핏줄처럼 곳곳으로 뻗어나간 골목의 어느 한 곳을 택해 걸어본다. 나는 골목이 좋다. 골목길은 주거인들의 삶과 개성이 묻어나기에 소설만큼 재미있는 스토리텔링이 된다. 어느집 마당에 심어놓은 꽃과 나무들은 주인의 취향을 드러냄과 동시에 구경꾼들에게도 즐거움을 나누어준다.
 
상점들과 주거환경이 뒤섞인 골목길은 이방인에게 소소한 구경거리를 던져주었다. 골목의 구석에는 드문드문 작은 향로가 놓여있었다. 하루의 무사(無事)를 기원하는 작은 소망들이 푸르스름한 연기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 마카오 타이파 빌리지 [사진=윤혜영]

 
무심히 걷다보니 땀이 제법 흘러 옷이 젖어들었다. 바람이 전혀 감지되지 않는 드라이함이다. 그러나 즐겁다. 오래전 좋아하던 이에게 전화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당시에는 공중전화가 사랑의 메신져였었다.
 
사각의 유리로 된 내부는 완전 밀폐되어 한여름에는  한증막 그 자체였지만 더운줄도 모른체 수다를 떨던 기억이 난다. 통화를 끝내고 나면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오히려 상쾌했던 기억. 무슨 할 말이 그리도 많았는지.
 
낯선 도시에서 문득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고 싶어졌다. 나의 상태를 전하고 너는 잘 지내냐고 괜찮냐고 묻고 싶어졌다.
 
기억의 갈피를 뒤지다 이내 풀이 죽는다. 허물없이 마음을 전할 이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다시 걷다보니 작은 사원이 나타났다. 매캐한 향내에 이끌려 들어간 내부에는 칼을 든 장군이 지키고 있었다. 부탁할것이 떠오르지 않아 손을 모으고 머리만 조아린다.
 
문득 시계를 보니 두시간 가까이 돌아다닌 것이었다. 목도 마르고 배가 고파졌다. 간단히 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정문 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가베(咖啡)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 타이파 빌리지 - 청주조기가베가게 [사진=윤혜영]

 
내부는 식사를 하거나 음료를 마시는 손님들로 북적였다. 구석자리에 가만히 앉아 숨을 고르고 타인들이 뭘 먹고 있는지 살짝 훔쳐보았다. 눈썰미 있는 종업원이 사진메뉴판을 가져다주었고, 남들이 먹고 있는것과 비슷한 사진을 보며 주문하였다.
 
낯선 세계에서 낯선 음식을 먹는것은 꽤 흥미진진한 모험이다. 다국적 호텔의 스텐다드한 요리들만 먹어서는 결코 그 나라의 문화를 알 수 없다. 현지식당에서 어울려 먹는 음식들이 여행의 진가를 발휘한다고 생각한다.
 
이윽고 주문한 요리가 나왔다. 토마토 국물에 마카로니와 고기를 넣고 푹 끓인 스튜, 그리고 버터 바른 식빵이다. 스튜는 칼칼하고 감칠맛이 있었다. 식빵은 너무도 부드럽고 고소하여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끔씩 생각이 났다. 다음에 마카오를 간다면 다시 찾아서 식빵을 꼭 먹을 것이다.
 
마카오의 미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포르투칼 식민지 400년을 거치면서 융합된 문화가 낳은 매케니즈(Macanese)요리는 중국과 포르투칼의 장점만을 취한 퓨전요리들을 탄생시켰다.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 짐을 꾸려 포시즌스 호텔로 이동했다. 타 국가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한 마카오 포시즌스 호텔은 세심한 고객맞춤 서비스로 특급호텔의 품격을 제대로 보여주었다.
 
 


▲ 마카오 포시즌스 호텔 [사진=윤혜영]

 
수시로 불편한 것은 없는지 살폈고 정중한 서비스로 매우 만족한 호텔스테이를 누릴수 있게 해주었다. 앞서 묵었던 메리어트의 직원들은 물어뜯긴 소 마냥 퉁퉁 불어있던 표정들이 말을 걸기도 무서웠는데 이곳 직원들은 어찌나 친절하던지 마치 '우리가 대동단결해서 널 감동시켜 버릴거야'라고 마음 먹고 덤비는듯 하였다.
 
수영장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큰 아이를 데리고 다시 타이파 빌지로 나섰다. 이제 여섯살이 되어 세상 모든것이 궁금하고 호기심이 무한대인 첫째 아이에게 되도록 현지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다.
 
저녁이 되자 주민들은 선선한 바람을 쫓아 광장이나 골목의 너른 곳으로 나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복 차림의 할아버지가 부채를 부치고, 젊은 엄마는 유모차를 태워 아기를 어른다. 아이들은 소리치며 뛰어다니고 관광객들은 무심한 얼굴로 바삐 오간다.
 
 


▲ 세기까페의 쭈빠빠오 [사진=윤혜영]

 
삶이란 어느곳이나 다르지 않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주어진 시간을 살고 있었다. 아이에게 쭈빠빠오를 한 개 사먹이고 아이크림을 하나씩 사서 우리도 그들처럼 벤치에 앉았다. 이런 시간에는 대화가 오히려 거추장스럽다. 그냥 이 느낌을, 이 공기를 즐기면 그만이다.
 
"내가 네게 줄 수 있는건 단 하나 시간이라는 선물이야, 너는 아직 내 선물의 가치를 몰라. 내가 준 그 선물로 니 인생이라는 것을 완성해야 하는거야."
 
미카엘 엔데의 모모가 생각나던 그날 저녁. 나는 딸에게 말해주었다. "린이야. 꿈이란 것은 그것을 쫓는 과정의 가치를 말하는 거란다. 네 삶을 즐기며 있는 그대로의 네 자신을 사랑하렴"
 
(3편에서 계속)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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