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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1) 끝날때까지 끝난것이 아니다

윤혜영 선임기자 | 2018-12-21 18:07 등록 (12-21 18:08 수정) 727 views
 

“만나서 한번만 물어보고 싶어. 그때 왜 그랬었냐고.”

추억하기엔 반갑지 않은 흘러간 과거들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아침에 일어나 핸드폰을 확인하니 새벽에 동생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그 여자, 꼭 찾고 싶어. 만나서 한번만 물어보고 싶어. 그때 왜 그랬었냐고.”

간밤에 또 술을 마신듯 했다. 그 애는 술이 취하면 오래전 기억을 되살려 그 여자 이야기를 꺼내고는 했다. 꼭 한번 만나서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 여자에게 지원희.

이미 여러번 들어 낯설지 않은 그 이름. 꼬깃꼬깃 뭉쳐서 기억 너머에 쳐 박아둔 옛날이 떠오른다. 추억하기엔 반갑지 않은 흘러간 과거들이.

때는 1980년대 후반이었다. 바다를 끼고 있는 남쪽 도시에서 살아오다가, 어느 날 짐 보따리 몇 개와 함께 동생과 나는 대구의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다. 방학 때 몇 달만 있을 거라고 엄마는 미안해하며 말했다. 그 몇 달이 몇 년이 되는 동안 그 동네는 지우고 싶은 내 과거의 일부가 되었다. 옛 지명 월배. 대구 시 진천동의 어느 골목길에서의 나날들.

섬유공장이 특화된 도시였다. 곳곳에 방직공장이 있었고, 그 주변을 에워싸며 급조된 슬레이트집들이 난무했다. 돈을 벌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하류인생들이 흘러들어왔다. 먹이사슬의 최하층을 이루는 단순노무자들이 개미굴들을 하나씩 차지하고 밥을 벌어먹었다.

방직공장 근처에는 독한 화학냄새가 안개처럼 부유했다. 골목과 집들과 사람들의 의복까지 온통 잿빛이었다. 들꽃 한 송이 피어나지 않는 척박한 골목길에서 잿빛의 아이들이 쌍욕을 하며 뛰어놀았다.

아이들은 낯선 이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거칠고 공격적이었다.

부모 없이 노인네 손에 맡겨진 두 아이들은 놀림감으로 좋은 먹이였다. 할머니는 골목에서 '욕쟁이 할매'라고 불려졌다. 젊은 날 첩에게 남편을 빼앗기고 날품팔이로 생계를 유지하며 험하게 살아온 그녀에게서 살가운 할머니 역할을 기대하긴 무리였다.

“짐승이면 삶아서 먹을 수라도 있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개 같은 년들. 내가 말년에 무슨 죄가 많아 저년들까지 떠맡았나. 더러운 년의 팔자” 욕은 시도 때도 없이 매질과 함께 빗발쳤고 수치심과 분노는 시간이 흐르며 딱지위에 딱지가 앉아 어떤 거친 욕설에도 귀가 무뎌져갔다.


동생을 놀리고 끈질기게 괴롭혔던 동생의 담임선생님


동생은 여덟 살이었다. 이가 들끓어 짧게 친 머리칼에 얼굴에는 늘 시퍼런 콧물이 번져있었고, 씻지 않은 손등은 때가 앉아 터지고 갈라졌다. 그러나 눈만은 물로 씻은듯이 항상 반들반들하였다. 그 눈으로 늘 눈치를 살폈고, 밤에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면서 잠들었다.

학교에선 반 아이들의 놀림감이자 장난감이었다. 더럽다고 냄새난다고 공처럼 차고 샌드백처럼 두들겼다. 그 놀림을 주도했던 이가 동생의 담임선생님이었다. 지원희. 이십대 후반의 여선생. 세련된 옷차림을 하고 날렵한 스틸레토 힐을 신고, 턱을 높이 치켜들고 복도를 활보하던 여자.

그 여자는 동생을 끈질기게 괴롭혔다. 수업시간 중에 어려운 질문을 해서 대답을 못하면 아이들에게 바보라고 외치라고 주도했으며, 지휘봉으로 배를 찌르며 교실 뒤편까지 밀고 갔다. 매일 손톱검사를 하며 대나무 자로 손등을 세차게 내리쳤다. 수업시간에는 뒤에 나가서 손을 들고 서있게 했으며, 너 같은 애는 왜 사느냐고 이해가 안 간다고 인격모독을 일삼았다. 공개적인 망신과 따돌림.

교사가 공개적으로 주도 하니 아이들은 신이 나서 더 괴롭혔다. 학년이 바뀌면 같은 반 아이들이 또 한 반이 되면서 괴롭힘은 졸업을 할 때까지 이어졌다. 안과 밖으로 만신창이였던 시절이었다.

동생은 그 시절 학교 문턱을 넘는 것이 지옥으로 걸어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나는 동생의 괴로움을 절반은 알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말려주지도 해결해주지도 못했었다. 그때는 나 역시 눈을 뜨고 있는 시간들이 힘겨웠었다. 한겨울에 수돗가에 앉아 찬물로 빨래를 하다가 손등이 찢어졌다. 피가 흐르는 것을 걱정하기보다 빨래를 마쳐야 하는데 어떡하지, 남아있는 산더미 같은 빨래 걱정을 했던 나는 열두살이었다.

우연히 알게 된 러시아 시인 푸슈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말라'를 주술문처럼 외우고 다녔다.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시간이 빨리 가기만을 빌었던 나날이었다.

어떤 기억은 인생 전체를 지배한다. 모두 잊었다고 말했지만 삶의 언저리마다 기억들은 무시로 튀어나왔다. 기억의 돌멩이들은 술을 마시게 하거나, 자식에게 화풀이를 하게 하거나, 배우자와의 다툼을 유발하는 등 여전히 인생을 지배하고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과거에 발목을 잡혀 있었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했다. 그 선생은 너의 이름조차, 너의 존재조차 까맣게 잊은 채 잘 먹고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네가 그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아직도 몸살을 앓으면 그 여자는 너에게 2차 가해를 가하는 거고, 넌 결국 그 여자에게 굴복한 거라고. 모두 털고 잊어버리고 잘 살아남아 네 새끼 어여쁘게 잘 키우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동생을 위로하며 내 자신도 위로해 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려, 관심으로 자라는 아이들


가끔 생각해본다. 그때 우리가 절망에 빠져 캄캄한 어둠 속을 헤메일 때, 누군가 다가와 손 잡아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어 주었더라면  우리를 숨 막히게 했던 불안한 현실들이 조금이라도 누그러졌을까.

학교 선생님이나 주양육자나 모두가 가해자이며 방관자들이었다. 벌거벗은 채 야수들에게 제 살을 조금씩 뜯어주며 하루살이처럼 살아냈던 시절이었다.

아이들은 스펀지 같은 존재이다. 부모와 주변인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아이는 내면과 외면이 단단한 어른으로 흔들림 없이 성장하여 자신이 설계한 인생을 곧잘 살아낸다.

방치와 학대 속에 자란 아이는 불안과 우울을 머금고 자라며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불행을 되물림 한다.

인생은 녹록치 않다. 삶의 굽이굽이 마다 행운과 불행이 요동친다. 우리들은 그 파도를 잘 이겨내야 한다. 항해의 고단함을 이기는 것들은 물질의 풍요가 아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려, 관심이다. 변곡점을 잘 만나면 뒤집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 그러니 버텨라.

지금 삶이 괴롭고 힘든 사람들에게 뉴욕 양키스 포수 요기 베라(Yogi Berra)의 입을 빌어 말해주고 싶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또 다른 시작이 이어진다. 모두들 파이팅!

 

윤혜영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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