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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의 심호흡] 스카이(SKY)캐슬 살아도 삼성전자와 현대차 못가는 ‘인구론’을 부숴라

이태희 편집인 | 2019-01-23 06:17 등록 (01-23 02:29 수정) 1,979 vi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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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의 인기연속극 ‘SKY캐슬’은 ‘잘 알려진 진실’을 자극적으로 폭로

[뉴스투데이=이태희/편집인] 요즘 잘나가는 방송사 JTBC의 인기연속극 ‘SKY캐슬’은 역설적 현상을 고발한다. 한국의 ‘학벌사회’가 심하게 왜곡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사실 우리 사회는 수 십 년 동안 대학 서열을 해체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다. 각 대학의 합격 커트라인을 비공개하고 수능이나 내신 대신에 ‘잠재력’과 ‘창의성’을 중시한다는 학생부종합전형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이로 인해 오히려 세칭 ‘금수저’ 계층이 명문대학 인기학과를 독점하게 됐다.

드라마는 그 ‘잘 알려진 진실’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풀어낸다. 극단적이고 자극적이다.

수십 억 원을 들여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서울대 의대를 보낸 부모는 자식에게 ‘원수’로 격하되고, 극도의 충격에 빠진 엄마는 엽총을 입에 물고 자살하는 충격적 장면에서 드라마는 출발한다.

그 자살은 교훈을 남기지 못한다. ‘서울대 의대’의 가치에 도취된 등장인물들은 온갖 패륜을 감수하면서도 자식을 서울대 의대에 보내는 데 인생을 건다. 살인자를 은폐하는 범죄행위까지 저지른다.

드라마 작가가 던지려고 한 메시지는 명확해 보인다. 수능중심 대입전형의 폐해를 극복하고 공교육을 되살리기 위한 학생부종합전형이 실제로는 부모의 금력에 의해 합격과 불합격이 좌우되는 ‘금수저 전형’임을 폭로하기 위한 것 같다.


SKY캐슬로 상징되는 최상류층은 SKY대학 인문계에 관심 없어, 서울대 의대만이 가치


그러나 작가가 의도하지 않은 듯한 메시지가 더 강력하다. SKY캐슬로 상징되는 한국의 최상류층은 더 이상 SKY(서울대, 연대, 고대)의 인문계열에 관심이 없다는 점이다. 심지어 경영학과도 거론되지 않는다. 캐슬에 거주하는 부모들에게 오로지 서울대 의대만이 유일한 목적지이다.

작가는 아마도 ‘인구론(인문계 대학 졸업생의 구할은 논다)’에 통달한 인물인 것 같다. 서울대 경영대를 나와도 삼성전자나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에 입사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한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유명 대학 로스쿨을 보내도 미래를 보장받기 어렵다. 서울대 의대만이 안정적인 ‘계층 상속’의 통로라는 이야기이다.


기업체 관계자, “SKY캐슬 살아도 인문계 나오면 삼성전자 취업 어려워”

기업체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열 손가락에 드는 수도권 명문대의 인문계를 졸업한다고 해도 인기 대기업에 취업할 확률은 1%도 안 된다. 모 대기업의 관계자는 “SKY경영학과를 나와도 삼성전자나 현대차의 서류전형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면서 “기업현장에서 필요한 인력은 대부분 이공계 인력이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SKY캐슬에 사는 아이도 SKY 인문계를 졸업했다면 삼성전자에 입사하기 어렵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해 “향후 3년 간 4만명을 채용할 것”이라고 밝혔고, 삼성그룹은 올해 1만여명을 신규채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문과 출신 취준생들은 가슴을 두근거릴 필요가 없다. 대부분 이공계 인력인 탓이다.

이 냉혹한 현실을 부숴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대학학제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 인문계와 이공계로 대별되고, 인문계는 다시 ‘문사철-어문학-사회과학-상경’으로 세분화되는 학제는 수십 년 전의 유물이다.


부모 세대인 베이비부머는 인문계 졸업해도 결혼과 출산의 기쁨을 향유

청년층은 명문대 인문계 나와도 불투명한 미래 속에 방치돼

청년들의 부모인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세대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의 학제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치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세상은 정신 못 차릴 정도로 급변하는 데 대학, 아니 대학교수들만 풍류를 읊조리는 형국이다.

인문계 출신 베이비부머는 대학에서 ‘교양’을 배웠다. 그래도 졸업하면 취직할 기업은 넘쳐났다. 문사철을 전공해도 세상의 문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일단 기업에 입사해서 배우면서 일했다. 고등학교만 마쳐도 눈높이만 약간 낮추면 미래를 개척할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청년들이 직면한 현실은 냉혹하다. 중소기업에 취업하면 ‘알바생’보다 소득이 많지 않다. 결혼해서 자식을 키우고 집을 살 엄두를 낼 수 없다. 대기업 취업의 문은 좁디좁다. 스타트업이나 벤처에 입사해서 도전적 삶을 살아보려 해도 인문계 졸업자는 아는 게 없다.

더욱이 기업은 ‘가르쳐서 쓸 교양인’이 아니라 ‘곧바로 투입할 인재’를 원한다. 소위 인서울 대학의 인문계에 입학하려면 ‘신동’소리 한 두 번을 들어야 하지만, 졸업하고 나면 ‘패배자’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인문계 대학학제, 소수 교수의 기득권 위해 수많은 청년의 삶을 희생시켜

인간 삶의 혁신 방향에 맞춰 대학도 ‘파괴’와 ‘창조’에 내몰려야

그 책임은 전적으로 기성세대에게 있다. 시대정신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대학제도를 바꿔야 한다. IT와 바이오가 4차산업혁명 시대의 먹거리라면 인문계 학생들도 그 지식을 배우고 응용해볼 기회를 부여받아야 한다. 지식은 미래를 개척하게 해주는 도구이다. 최소한 인문계 대학 졸업자가 그 도구를 손에 쥐지 못하는 상황을 종식시켜야 한다.

교수란 무엇인가. 모든 것을 아는 자가 아니다. 학습능력이 뛰어난 지식인 집단이다. 그들의 전공이 무엇이든지 간에 새로움에 도전해야 한다. 새로운 지식을 공부해 학생들에게 전수할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도태돼야 한다. 교수 면허를 딴 한 줌의 지식인을 위해서 그 무수한 청춘의 인생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굳이 ‘양적 공리주의’를 들먹이지 않아도 나태한 교수를 희생시키는 게 정의롭다.

궤변이 아니다. 인서울 대학중 숭실대, 서울과기대 등과 같이 중위권에 속하는 대학들에서는 수년전부터 그런 노력이 시작되고 있다. 공과대학, 경영학과, 사회과학과 교수들이 협력해서 새로운 융합학과를 개설하거나, 이공계 학과에 문과 출신 학생을 선발하기도 한다.

의지만 있다면 시대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적응자’인 대학학제를 ‘파괴’하고 새로운 제도를 ‘창조’하는 것은 당장 선택 가능한 옵션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혁신되고 있는데, 삶의 지혜를 탐구하는 대학이 기득권의 달콤함에 빠져 있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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