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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2) 일본 최대의 온천도시 벳푸를 가다 -1

윤혜영 선임기자 | 2019-02-27 09:00 등록 (02-27 09:00 수정) 818 views
[사진=윤혜영]

후쿠오카 터미널에서 2시간, 온천마을 '벳부'에 가다

원천수 2300개, 온천욕탕만 100개..세계적인 온천관광지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후쿠오카 국제선 터미널에서 출발한 고속버스가 벳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까지는 2시간 10분. 달리는 버스의 양옆으로 숲들이 빠르게 밀려났다. 삼나무, 편백과 같은 쭉쭉 뻗은 수종들이 하늘을 향해 솟구친 일본의 숲은 둥글게 옆으로 퍼지며 주변을 감싸안는 한국의 숲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버스는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굽이를 돌고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다가 이윽고 멀찌감치 도시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짙푸른 먹색의 바다를 끼고 펼쳐진 도시에는 곳곳에 온천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인 유케무리(湯けむり)가 자욱하여 비현실적인 아우라를 자아냈다.

동시에 차 안에서 똥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다급히 17개월인 둘째의 기저귀를 살펴보았지만 아니었다. 그건 유황(sulfur)의 냄새였다. 벳푸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광광지이며, 일본내 원천수와 용출량이 1위이다. 원천의 수가 2,300개, 공중 온천욕탕만 100여개에 달한다.

료칸이나 호텔에서도 24시간 온천을 즐길 수 있으며 거리 곳곳에 온천이 흘러 길을 걷다가도 언제든 손을 담그거나 족욕을 할 수 있다.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테마화시킨 관광지가 아니라 온천이라는 천연자원을 특화시켰기에 전통성이 있고 자연친화적이다.


▲ [사진=윤혜영]

벳푸 교통의 중심지이자 랜드마크인 벳푸역에 도착했다. 역 중앙에 럭비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아부라야 쿠마하치'의 동상이 보인다. 하회탈과 같은 얼굴이 익살스럽고 해학적이다.

실존인물로 벳푸를 국제적인 온천도시로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하였다고 한다. 만약 근엄한 흉상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면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했을 것이다. 뭔가 이탈적이고 틀을 깨고, 상식을 전복시키고, 권위를 파괴시키는 시도들은 신선하다.

동상 앞에는 ​손을 담글 수 있는 온천 '테유'가 있었다. 많은 이들이 동상을 보고는 즐거워하며 포즈를 따라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유머란 바로 이런 것이다. 역 내부에는 관광객을 위한 인포메이션 센터가 있는데, 영어에 능통한 아주머니들이 길을 묻는 여행객들을 응대하면서 벳푸 주요 관광지들의 쿠폰도 할인해서 판매하고 있었다.

역 뒤쪽의 주차장으로 걸어나가니 숙소인 '스기노이 호텔'의 셔틀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꼬불꼬불한 길을 돌아서 높은곳으로 올라간다.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호텔이 위치하고 있었다. 일단은 짐을 풀고 다다미 방에 누워 좀 쉰 다음에 여유롭게 노천온천을 즐겨보자는 내 머릿속 계획은 도착과 동시에 박살이 나버렸다.

1층 로비에는 짐을 떠안은 투숙객들이 빼곡히 몰려앉아 진을 치고 있었고 동굴처럼 어두컴컴한 호텔 내부는 놀라서 웅성거리는 소리와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의 한숨소리로 터져나가고 있었다.

대체 이게 무슨 사태인지?

리셉션의 직원이 정전으로 인해 호텔 전체가 멈춰버렸다며 빠른 복구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일단은 기다려주라고 설명하였다. 계획에 없던 변수에 당혹감이 일었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며 아우성을 쳤고 주변의 편의점을 찾아가서 샌드위치와 음료수를 먹였다.

정전사태는 쉽사리 해결되지 않았다. 지루한 기다림 중에 직원들이 객실로 들어가 기다리라고 안내를 했다. 열쇠를 받아드니 무려 12층. 애 둘을 이끌고 계단을 타고 배정된 객실로 이동했다. 중간중간 쉬고 싶었지만 무거운 내 짐을 들고 뒤따라오는 가녀린 여직원을 보니 눈치가 보여 부지런히 발을 놀려 방에 도착했다.

그리곤 또 암흑 속에 무한정 기다림. 5시가 넘어갔고 10분 뒤였나? 형광등에 환한 불이 들어오더니 호텔 전체가 빛으로 되살아났다. 유카타로 갈아입고 지하 1층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식당을 몇 개나 이어붙인듯 엄청난 규모의 홀에 각국의 산해진미들이 넘쳐났다.

바닷가에 접한 도시여서 그런지 생선회도 몇 종류가 있었고 아이스크림이나 초코분수와 같이 아이들의 눈높이를 고려한 메뉴들도 다양하였다. 또한 정전사태를 사과하며 모든 주류가 무료로 제공된다고 하니 샴페인과 사케를 주문하여 만족스런 식사를 하였다.


▲ [사진=윤혜영]

손님들은 가족단위의 단체객들과 몇몇 휠체어를 탄 사람들, 노인들이 비중있게 눈에 띄었다. 식당의 한쪽에는 엄청난 수의 휠체어들이 대기중이었는데 일반 병원의 휠체어 수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고보니 셔틀버스에도 장애인 보조기구 탑승 마크가 부착되어 있었다.

한국이었으면 그것들을 눈에 띄지 않게 구석에 숨겨두었거나, 휠체어를 탄 이들이 다른 손님의 눈치를 보았을 것이다.

벳푸시는 일본에서도 장애인에게 친화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대기업과 민간기업이 장애인 고용을 독려하고 급여차별도 두지 않으며 공평하게 일하는 기회를 주어 자립을 도운다. 요점은 '차별이 아닌 공생'이다.

호텔에는 문턱이 없었고 비탈길이 많았다. 휠체어를 탄 사람에게 직원 한명이 대동하여 밀착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몇 년 전 한복을 입은 손님이 위화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해 이슈화 되었던 한국의 모 호텔이 떠올랐다. 상반되는 접객 응대 수준에 쓴웃음이 났다.


▲ [사진=윤혜영]

이후 노천온천을 하고 돌아오니 2시간 정전에 대한 사과의 의미로 하루 숙박비를 전액 환불해주겠다고 안내를 해주었다. 이토록 호쾌한 보상이라니! 정전이 되어 다소 불편함은 있었지만 여행하다 일어날수 있는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잊어버렸는데 충분한 보상을 해주니 호텔에 대한 이미지가 상승했고, 여행의 시작부터 기분이 좋아졌다. 대인배 스기노이였다.

나이가 들어가니 소박한 행복이 주는 의미를 어느정도 알 것 같다. 젊은 시절에는 대도시의 현란함이 좋았다. 공격적이고 역동적인 화려함은 아드레날린을 솟구치게 했고, 분위기에 도취되어 술에 취해 왁자지껄하게 흘려보낸 의미없는 시간들이었다.

도시 콘크리트 숲 아닌 작고 나즈막한 마을은 시시콜콜한 일상의 '특별함'

사십이 넘어가고 어느 정도 인생의 패배와 소소한 성취들과 시간이 주는 어쩔수 없는 수긍들을 차례로 지나치게 되면서 비로소 작디작은 나의 일상이 소중해졌다. 획일화되고 몰개성적인 도시의 콘크리트 숲보다는 작고 나즈막한 마을들과 계절의 무르익음을 간직한 자연들과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그네들의 시시콜콜한 일상들이 더 특별하고 의미있어졌다.

​나이들어가는 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지만 장점도 없지는 않다. 내것이 아닌것에는 빠른 체념을,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시작되는 평범한 하루에 감사를, 특출나지는 않아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에게 고마움을, 그저 고요히 지나가는 모든것들이 기적이고 행복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나 언제나 흐르고 있지만 고여있는 것 같은 시간들, 반복되는 뻔한 일상들이 지리멸렬로 다가올때 우리는 훌쩍 떠나야 한다. 각자의 인생에 더욱 감사하기 위하여! 살아있는 축복을 더더욱 만끽하기 위하여!

- 2편에 계속>>>








윤혜영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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