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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의 심호흡]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조사에 냉소적인 여론, 그 3가지 이유

이태희 편집인 | 2019-03-21 17:38 등록 (03-21 22:30 수정) 1,146 views

삼성가 장녀 이부진 사장의 프로포폴 상습투약 의혹, 20일 저녁 7시 36분 첫 보도

경찰은 21일 오후 2시부터 H병원 현장조사, ‘초음속 대응’에 여론은 싸늘

[뉴스투데이=이태희/편집인]

삼성가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마약류인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을 상습투약했다는 의혹으로 곤경에 처했다. 경찰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조사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이상스럽게도 여론의 반응은 냉소적이다. 쏟아지는 관련 기사의 댓글에서 이부진 사장을 비난하는 내용은 찾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의 재벌 때리기 혹은 승리의 버닝썬 게이트 물타기 등으로 단언하는 시각이 많다. 물론 이런 주장은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무책임한 풍설을 확산시킬 것이다. ‘댓글 민주주의’의 폐해로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이 재벌에 시퍼런 날을 세우지 않는 현상은 생경하다. 그 이유는 뭘까.

①‘갑질’과 거리 먼 이부진 사장의 ‘소소한 선행’에 영향?

우선 이부진 사장이 평소 이미지 관리에 성공한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실수나 작은 죄를 범했다면, 관용하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 사장은 국민적 분노의 대상인 재벌가의 ‘갑질’과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로 인식돼왔다. 마이크로소프트(MS)창업자인 빌게이츠 부부처럼 거액의 기부를 실천하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선행을 베풀어왔다.

지난 2014년 고령의 모범택시 기사가 실수로 신라호텔 정문을 들이받아 무려 4억원을 변상해야 하는 궁지에 몰렸을 때, “호텔이 부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기사의 병원비까지 지원했다고 한다. 아픈 딸의 병원비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제주도의 한 음식점 주인부부를 도와주기도 했다.

재벌이 ‘푼돈’을 들이고 생색을 냈다는 삐딱한 시선도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이 사장의 ‘소확행’은 ‘선함’쪽이라는 인상을 줬던 사건들이다.

② 사안의 경미함, 뉴스타파 보도가 사실이라면 상습투약인가?

상습투약하려면 자택도 가능, 왜 H병원에서 신분 노출 했나

더 중요한 이유는 사건 자체의 ‘경미함’에 있다. 문제의 의혹은 진보성향의 고발전문 매체인 ‘뉴스타파’의 특종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뉴스타파는 지난 20일 저녁 7시 36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프로포폴 상습 투약 의혹...H성형외과 前 직원 폭로’ 제하의 기사에서 “ 서울 강남구 청담동 H성형외과에서 2016년 1월부터 같은 해 10월까지 간호조무사로 일했던 김민지(가명)씨가 자신이 근무할 당시, 이부진 사장이 한달에 최소 두 차례 H성형외과를 방문해 VIP실에서 장시간 프로포폴을 투약받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프로포폴은 마약류이지만 수면마취제로 사용되는 게 허용돼 있다. 단 오남용이 사회적 문제로 도마위에 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의사가 판단해 적당량을 사용하는 것은 논란이 대상이 아니다.

뉴스타파의 보도내용을 보면 이 사장이 과다투여했다는 정황증거가 분명치 않다. 제보 내용을 100% 사실이라고 믿는다 해도 ‘한 달에 최소 2차례’가 오남용 혹은 과다 투약이라고 봐야 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동안 프로포폴 과다투여로 사망하거나 법적 처벌을 받은 사례들은 1주일에 한 두 차례 이상의 투약 횟수를 보였다.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사태’의 주역인 최순실씨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꼴로 김영재 의원에서 프로포폴을 맞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 씨가 이 건으로 큰 처벌을 받지는 않았다. 도덕적 비난을 격화시키는 촉매제가 됐을 뿐이다.

뉴스타파는 이 사장이 H성형외과를 방문할 때마다 ‘특별 대우’를 받았다는 사실을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는 유치찬란한 대목이다. 이익추구가 목적인 강남의 성형외과가 재벌 오너에게 평범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더욱이 핵심 의혹에 대한 해명이 의혹보다 합리성을 갖고 있다. 이 사장은 21일 호텔신라를 통해 발표한 별도의 입장 자료를 통해 “2016년 왼쪽 다리에 입은 저온 화상 봉합수술 후 생긴 흉터 치료와 눈꺼풀 처짐 수술, 소위 안검하수 수술을 위한 치료 목적으로 (자세히 기억나지 않으나 수차례 정도) 해당 병원을 다닌 적은 있지만 보도에서처럼 불법 투약을 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적시를 통해 해명하고 있다.

이 사장 정도의 재력가가 프로포폴 중독자라면 H병원에서 공급받아 자택에서 투약하면 된다. 굳이 간호조무사 등에게 신원이 노출된 상태에서 과다투약 행위를 자처한다면, 대단히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전제조건이 성립돼야 한다. 이로 인해 합리적 의심이 이 사장의 해명보다 보도의 진의를 겨냥하게 되는 것이다.

③ 피해자 없는 '사생활'에 대한 경찰의 이례적인 신속성이 냉소를 부채질

뉴스타파 보도가 나온 지 반 나절 만에 광수대-강남서 합동 현장조사

결정적으로 경찰의 ‘이례적인 신속성’이 냉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경찰은 승리의 ‘버닝썬 게이트’로 한 몸에 오명을 덮어쓰고 있다. 조직의 위기이다. 경찰 편이었던 검경수사권 조정에 대한 여론도 검찰 쪽으로 돌아서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수사하라”고 지시했을 정도이다.

그러나 현실은 민 청장의 비통한 지시와 겉도는 형국이다. 경찰은 버닝썬의 조직적 마약 유통 의혹의 핵심 인물인 이문호 버닝썬 대표의 구속영장을 받아내지 못했다. 지난 19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신종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 대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기각 사유는 한 마디로 영장청구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서 철저한 수사를 당부했지만 경찰의 버닝썬 수사는 초장부터 난관에 봉착해버린 실정이다. 이문호 대표등에 대한 의혹이 불거졌을 때 신속하게 수사에 착수하지 못했던 경찰 책임론이 비등해지고 있다.

그런데 경찰은 이부진 사장 의혹에 대해서는 득달같이 달려들고 있다. 뉴스타파의 첫 보도가 나온 지 반 나절만인 21일 오전 경찰은 “22일 H병원에 대한 마약류 관리 실태 점검을 하겠다”고 밝혔다. 이것만 해도 예상을 뛰어넘는 재빠른 동작이었다.

경찰의 신속성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서 너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일정을 앞당겼다. 21일 오후 2시부터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와 강남경찰서는 보건소 관계자와 함께 H병원에서 현장조사를 벌였다.

누가 봐도 경찰은 수사력을 버닝썬 게이트에 집중해야 될 처지이다. 하지만 광수대와 강남서는 범죄 피해자가 결코 발생할 수 없는 '사생활의 영역'에 대해 순식간에 합동조사를 결정하고 실행에 옮겼다.

이 초음속 대응이 오히려 여론의 합리적 의심과 냉소를 부채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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