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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석록의 고산후로] 기업하기 힘든 나라

차석록 편집국장 | 2019-03-27 16:54 등록 (03-27 17:32 수정) 84,797 views


[뉴스투데이=차석록 편집국장] 적지않은 시간을 취재현장에 있다 보니 기억남는 일 또한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20여년전 한라그룹이 영국 웨일즈에 건설중장비 공장을 준공했을때다. 거기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을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은 런던에서 전용기사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약 4시간을 넘게 달려서 웨일즈 현장을 찾았다. 축사를 해주기 위해서다. 경호원도 없었고 요란한 환영식도 없었다. 차에서 내리는 여왕을 공장 직원들과 마을 주민들이 박수를 쳐주는 정도였다. 여왕은 먼나라 한국의 기업이 투자를 해주고 일자리를 늘려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당시 영국은 외국기업들이 투자를 하면 토지를 거의 공짜로 주거나 법인세를 몇년간 면제해주는 등 파격적인 혜택을 주었다. 한라그룹이 준공한 중장비공장은 투자규모가 약 300억원 정도로 초대형투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300명의 고용을 창출해주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외국기업을 위해 영국 여왕은 달려왔다.

최근 국내 기업들을 보면 너무 다른 현실에 그때가 생각난다. 삼성전자가 30조원 투자에 나선 평택 고덕단지내 반도체공장. 반도체공장에 전력을 공급하는 송전선로건설이 5년이나 표류했다. 외견상 환경 문제였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반도체공장 유치전에 뛰어들었다가 실패한 인근 지자체가 환경을 앞세워 몽니를 부린 것이다.

결국 수십차례 협상 끝에 정부나 한전이 해줘야 할 송전선로를 지하화하는 1천억원이 넘는 비용을 삼성전자가 떠안으면서 마무리됐다. 공장 건설 일정을 미룰 수 없는 삼성전자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삼성전자가 몽니를 당한 경우가 이번일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7년에도 6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공장을 조기착공하려했다가 지자체의 교통환경영향평가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애를 끓은 바 있다. 교통유발의 가장 큰 원인이 인근 대규모 아파트단지였지만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이 모두 감당해야만 했다. 지자체가 요구한 교통시설 지하화를 위한 비용 700억원을 삼성전자는 부담해야만 했다.

대기업만의 일이 아니다. 예전에 모 중견기업 대표는 공장을 짓고 핵심 설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이 2년동안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더이상 미뤘다가는 투자금을 날리고 회사도 망할 판이였다. 그는 공무원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로 호소해 겨우 허가를 받아 위기를 넘겼다.

얼마전 아마존 제2본사 유치를 위해 북미지역 238개 도시가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하면서 유치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일자리가 늘고 도시 이미지가 좋아진다. 관광이나 사업차 찾는 외부인이 증가하면서 지역경제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삼성전자는 공장을 짓겠다고 하는데도 국내에서 푸대접을 받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 말대로 업고 다녀도 모자랄 판인데.

국내 모 게임업체는 최근 해외 게임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그 지역 시장이 감사인사를 하기위해 한국 본사를 찾았다. 게임업체 대표는 한국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새로운 경험에 어리둥절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21일 국회 대정부질문(경제분야)에서 “우리나라가 현재 기업하기 어려운 여건이 맞냐”는 야당 의원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기업은 각종 규제에 숨막혀한다. 특히 대기업은 이런 저런 이유로 옴짝달싹하기 힘들다. 정치는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려 한다. 국민연금이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SK(주) 사내이사 선임을 반대했다.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는 것이 이유다.

검찰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 힘있는 기관들은 틈만나면 기업을 때린다. 만나는 기업인들은 한결같이 " 대한민국은 정말 기업하기 힘든나라입니다" 라고 말한다. 대한민국이 세계10위권 경제국이라는 사실이 정말 기적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이 경기침체 우려로 지난 20일 금리를 동결했다. 미 연준은 미국 GDP(국내 총생산) 성장률을 작년말 전망치 2.3%에서 2.1%로 낮췄다. 내년 성장률도 0.1% 포인트 내렸다. 금리동결은 긴축정책 중단이고 기업 지원 신호탄이다. 중국 정부도 최근 폐막한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통해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를 작년의 '6.5%가량'에서 '6.0∼6.5%'로 낮췄다. 한편으론 2조1500억 위안 규모의 인프라 투자와 2조 위안 규모의 감세를 제시했다. 식어가는 경제 성장 엔진을 살리겠다는 의지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 등 주요 경제국들은 경제활력을 위해 기업 지원에 나섰다. 우리 경제는 주요 성장동력였던 조선과 철강, 해운이 이미 무너졌다. 양축인 자동차도 기울어졌고 전자산업도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1분기 어닝쇼크를 고백했다. 다른 대기업들도 줄줄히 부진한 실적이 예고되고 있다. 누가 봐도 위기다.

절체절명의 경제위기속 해법은 기업의 기살리기다. 규제를 풀고 혁신성장하도록 과감한 지원을 해주면 된다. 꽁꽁 얼어붙은 기업 투자심리를 봄날씨처럼 녹여줘야 한다. 기업하기 힘든 나라라는 것을 알면서도 왜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지 않는지 궁금하다. 20여년이 흘렀지만 영국 여왕이 떠오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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