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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군인 인생 2막] (2) 변상문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사장(상) 국악인을 ‘군통령’ 만드는 안보교육 전문가

김한경 방산/사이버전문기자 | 2019-04-14 07:11 등록 (04-15 07:43 수정) 693 views
▲ 1사단에서 국악공연 후 국방TV와 인터뷰 중인 변상문 이사장.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뉴스투데이는 군에서 장기간 복무 후 전역한 직업 군인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인생 2막’을 새롭게 펼쳐나가는 성공 사례를 소개함으로써 전역 예정 장병들의 미래 설계는 물론 다른 직종에서 퇴직한 분들의 인생 후반부 준비에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전역군인 인생 2막’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기무부대장 출신 변 이사장, 안보 강의에 국악공연 곁들인 독창적 정신교육 창안

뉴스투데이와 인터뷰서 “국악과 전통문화 알려 민족정기와 얼 살리겠다” 밝혀

[뉴스투데이=김한경 전문기자] 국방국악문화진흥회 변상문 이사장은 ‘발상의 전환’이라는 수식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인물이다. 그만큼 파격적인 ‘인생 2막’을 실현했다. 기무부대장 출신이면서 ‘국악의 세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그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국방과 국악의 접목을 시도했다.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2013년 12월 9일 비영리 사단법인으로 국방부 설립 허가를 받은 교육·연구·문화공연 전문 단체이다. 법인 설립 후, 매년 국방부 사업계획에 따라 장병 정신교육을 진행하고 있으며, 금년에도 국방부 및 육·해·공군의 다양한 부대에서 상당히 많은 횟수의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교육은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군인의 안보의식과 군인정신 고취를 위한 강의 컨텐츠를 만든 후, 이 구성에 맞는 국악과 판소리 등 전통가요를 적절히 곁들여 강의와 공연이 접목되는 독특한 형태로 실시된다. 즉 안보강사와 20대 공연자가 함께 만드는 매우 독창적인 교육 방식이어서 장병들의 호응도 좋다고 한다.

▲ 변상문 이사장과 국방국악문화진흥회 안보강사들.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기자가 국방국악문화진흥회를 방문한 지난 4월 초순 변상문 이사장은 금년도 강의 컨텐츠에 대한 강사들의 연구강의를 받고 있었다. 강사들은 시나리오대로 연기하는 배우처럼 강의 컨텐츠에서 요구하는 역할을 충분히 소화하고, 강의에 참여하는 공연자와 호흡도 맞춰야 했다. 변 이사장은 본인이 직접 시연하면서 강사의 강의 진행기술을 지도했다.


12가지 교육·공연 프로그램 개발하고 ‘군락’ 등 자체 예술단 공연 진행

또한 국방국악문화진흥회에서는 자체 개발한 12가지 교육·공연 프로그램을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을 통해 소개하고 있다. 각급 부대에서 이 내용을 보고 부대 특성에 맞는 프로그램을 신청하면 교육을 지원하기도 한다. 안성맞춤형 눈높이 교육이다.

이외에, 자체 예술단인 ‘군락(軍樂)’은 매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주최하는 문화사업에 참여하여 대대급 이하 부대를 대상으로 전통국악 공연을 지원하고 있다. 그리고 역시 자체 예술단인 ‘두빛들이’와 ‘세빛들이’에서는 군 장병과 일반인 대상으로 전통국악과 대중가요를 융합한 공연도 진행한다.

▲ 예술단 ‘군락(軍樂)’의 공연에서 진도북춤을 추는 ‘군통령’ 구명서 명무. [사진제공=국방국악문화진흥회]

이와 같이 장병 정신교육의 대부분을 담당하며 단기간에 성장한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변상문 이사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3사관학교를 졸업(19기)하고 소위로 임관해 기무부대에서 대부분의 군 생활을 했다. 2000년 당시 35사단 기무부대장으로 재직하며 우연히 판소리를 접한 후 문화적 충격을 받아 본격적으로 우리 소리와 악기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 시작했다.


국악과 판소리에 빠져 행복한 자신 느껴...‘장금도’ 명무 만나며 결심 굳혀

국악의 매력에 푹 빠진 그는 2012년 32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대령으로 전역할 때 육군회관에서 국악공연으로 전역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동국대 대학원에서 국악이론을 전공하며 전문지식도 넓혔지만 그 정도로는 자신 안에 내재된 국악과 판소리에 대한 열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결국 국악과 판소리에 미쳐 10여년 이상 전국 팔도를 돌며 우리나라의 예인들을 만나고 그 문화 속에 빠져 지냈다. 그들과 어울려 국악의 향연에 빠질 때마다 행복한 자신을 느끼면서 국악과 함께하는 인생을 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는 “한국문화재재단이 진행한 프로그램 ‘꽃 마중 길에 만난 마지막 해어화’를 통해 일제 강점기 기생조합인 권번 출신 ‘장금도’ 명무(名舞)를 만난 것이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장금도는 기생이라서 군산시 개복동에 깊이 숨어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민살풀이춤(살풀이 장단에 맞춰 수건 없이 맨손으로 추는 춤) 명무가 돼 국립국악원 무대에 올랐다. 그 날 기생인 어미를 부끄럽게 여겨 의절했던 아들이 꽃다발을 들고 어미 장금도를 축하해 줬다. 50년 만에 이뤄진 엄마와 아들의 화해였다.

▲ 지난 2007년 10월 제10회 서울세계무용축제에서 호남 민살풀이춤을 선보이는 조갑녀(84), 장금도(79, 오른쪽) 등 두 사람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춤 인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그랬던 아들은 2년 후 월남전 참전 고엽제 후유증으로 이 세상을 떠났다. 어미는 그 아들의 맺힌 한을 풀어주기 위해 국립국악원 예악당 무대에서 민살풀이춤을 췄다. 변 이사장은 “장금도 명무의 삶 자체가 대한민국의 근대사이고 현대사”라면서 “그 분의 삶을 보며 전통문화와 국악 역사에 몰입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일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 개척

국방국악문화진흥회는 이와 같이 자기 내면의 소리에 충실히 응답했던 한 사람이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든 결정체로서, 뜻을 같이 하는 지인 몇몇이 그의 결단에 힘을 보태어 탄생했다. 그는 자신이 잘 알고 좋아하는 일을 위해 아무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즉 이전에 없던 새로운 직업을 창조한 것이다.

변 이사장은 “매년 20만 명의 민간인이 군인이 되고 같은 규모의 군인이 민간인이 된다”면서 “장병들에게 국악과 전통문화를 알려 민족의 정기와 얼을 되살려 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전역 이후 돈을 버는 경제의 길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가치의 길에서 고민했다”며 “후자를 선택했으니 온 정성을 다해 제2의 인생을 살아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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