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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의 JOB채](17) 롯데 신동빈의 ‘트럼프 공략’ 5가지 포인트

이태희 편집인 | 2019-05-15 06:56 등록 (05-15 08:38 수정) 1,529 views
▲ 신동빈(오른쪽에서 두 번째)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면담하고 있다. 이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이 신 회장을 면담 한 뒤 트위터 계정에 감사의 글과 함께 올린 것이다. [사진 제공=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태희/편집인]

신동빈 롯데회장의 초대형 대미 투자는 기업경영 차원의 결정을 뛰어넘는 정치경제적 함의를 담고 있다. 본인이 의도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관전자 입장에서 볼 때 결과론적으로 그렇다.

줄잡아 관전 포인트는 5가지이다.

①한국기업 중 최대 규모 대미 투자, 트럼프의 ‘미국 장사 면허증’ 획득

우선 역대 한국기업의 대미투자액 중 최대 규모라는 기록을 보유하게 됐다. 롯데케미칼이 설립하기로 한 미국 루이지애나 공장의 총사업비는 31억달러(약 3조 6000억원)에 달한다. '석유화학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을 연간 100만톤 규모로 생산할 수 있는 초대형 설비를 갖추게 된다. 롯데의 지분은 88%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흔히 ‘정치가’라기 보다는 ‘장사꾼’이라는 평을 받는다. 그런데 특이점이 있다. ‘편 가르기’가 유독 선명한 장사꾼이다. 우군과 적군을 명확하게 구별해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한다.

지난 2016년 대선 당시에도 공화당내 중진들이 비판적 지적을 하면 싸움닭처럼 반격을 가했다. 같은 당 소속이라도 걸림돌이 된다면 적군 대접을 하는 것이다. 공화당내에서 막판까지 ‘트럼프 비토론’이 나왔을 정도이다.

반면에 이득이 되면 ‘친구’라고 부른다. 자신과 비핵화 협상을 벌여왔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한 호칭이 단적인 예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실험을 거듭해 미국의 안보에 위협을 가하던 2017년 연말까지는 김정은을 ‘미치광이’, ‘꼬마 로켓맨’ 등으로 비하했다.

하지만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그 호칭은 ‘내 친구’로 격상된다. 심지어는 트위터에서 김정은 위원장을 ‘사랑’한다는 표현까지 동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설정해놓은 친구의 기준은 단 한가지다. ‘이득’이다. 기업이나 경영자에 대해서도 “미국에서 장사해서 돈을 벌려면 미국에 공장을 세워라”는 게 트럼프의 메시지이다. 자신의 정치적 지지기반인 저소득층 백인들에게 월급을 주는 기업에게 문을 열고, 돈만 벌어가는 기업과 국가에게는 ‘관세 철퇴’를 가하는 게 트럼프 방식이다.

최근 미중 무역협상이 불발위기로 치닫는 게 단적인 사례이다. 트럼프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국인을 상대로 물건을 팔면서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국가의 ‘수괴’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반면에 신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친구’로서 미국에서 돈을 벌 ‘자격증’을 획득한 셈이다.

②트럼프, 국내 재벌총수와 첫 독대서 일자리 창출 ‘가이드라인’ 제시

신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독대한 첫 번째 재계 총수라는 훈장도 받았다. 신 회장은 지난 13일(현지시간) 오후 4시 15분쯤 워싱턴 백악관에 도착해 오후 4시 56분쯤 백악관에서 나왔다. 백악관 체류시간이 41분 정도 된다.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 시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20여분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각에서는 “지난 4월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을 갖기 위해 방미했을 때 트럼프 대통령과 독대한 시간보다 많을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시각은 신 회장으로서는 부담스럽지만, '장사꾼'이 롯데그룹이나 신 회장에게 매긴 ‘가격’을 가늠케 해주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면담직 후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사진과 함께 올린 글에서 ‘찬사’도 쏟아냈다. 그는 “롯데 신 회장을 백악관에서 맞이하게 돼 매우 기쁘다”면서 “루이지애나에 31억달러를 투자한 것은 한국기업 최대 규모의 대미 투자이며 미국인을 위한 일자리 수 천 개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 미국공장의 현지인력 채용규모를 정확하게 산출하기는 어렵다. 첨단 IT기술로 자동화되기 마련인 화학공장의 일자리 창출 규모가 일반적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트럼프는 신 회장을 치켜세우면서 ‘수천 개’라는 일자리 창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③ 신 회장 만나면서 안보 보좌관 배석시킨 트럼프, 문 대통령에겐 ‘호재성’


신 회장의 대미 투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북핵외교 ‘지원 사격’의 효과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년 여간 북미정상회담을 2차례나 가지면서 문 대통령과 ‘해법’을 두고 미묘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왔다. 누가 봐도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先특)비핵화-후(後)보상’이라는 트럼프의 일괄타결 방식보다 김정은의 ‘단계적 해법’을 지지하는 입장이다. 트럼프가 빈정상할 법도 하다.

특히 김정은이 최근 ‘군사적 도발’의 제스처를 강화함에 따라 트럼프 진영은 문 대통령의 전략을 소득 없는 대북유화정책으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약간 서먹해진 한미관계에서 신 회장의 출현은 ‘호재성’이다. 이런 해석의 신빙성은 트럼프가 제공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9일(현지시간) 루이지애나주에서 신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롯데케미칼 석유화학공장 준공식 행사장에 보낸 축전을 통해 “이 투자는 미국의 승리이자 한국의 승리이고, 우리 양국 동맹의 굳건함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평가했다.

신 회장의 이번 대미투자를 단순한 ‘경영행위’를 넘어서서 한미동맹을 재확인해주는 ‘정치외교적 행보’로 승격시킨 것이다. 트럼프의 이런 해석은 문 대통령으로서도 반길 일이다.

13일 면담에서 미국측 안보라인 핵심인사가 배석한 사실도 흥미롭다. 한국 측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면담을 주선한 것으로 알려진 조윤제 주미대사가 신 회장과 동석했다.

미측 인사로는 매슈 포틴저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이 배석했다. 포틴저 보좌관은 지난 4월 문 대통령이 트럼프와 북핵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워싱턴 정상회담을 갖기에 앞서 마이크 펜스 미부통령을 만났을 때 배석했던 인사이다.

경제 관련이 아닌 안보관련 참모가 등장했다는 점은 트럼프가 신 회장과의 면담이 문 대통령을 겨냥한 외교적 제스처의 일환이라는 해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④ 롯데 미국공장의 높은 생산성, 흙수저 청년의 ‘부조리’ 심화시킬 듯

롯데가 역대 급 대미투자를 단행한 것은 역설적으로 분노한 흙수저 청년층의 ‘희망사항’을 실현한 사건이다.

예컨대 현대차 노조는 9300만원의 평균연봉을 받으면서도 임단협 때마다 파업을 거르지 않는 이익단체로 유명하다. 하지만 현대차 국내공장의 생산성은 열악하다. 자동차 1대 제작하는 데 투입되는 시간인 HPV(Hours Per Vehicle)가 지난 2014년 기준으로 국내공장 26.8시간, 중국공장 17.7시간, 미국 공장(알라바마) 14.7시간이다. 미국 공장의 생산성이 한국의 2배에 육박하는 수치이다.

이런 풍경은 대부분 청년층에게 대기업 취직이 먼 나라 이야기가 되면서 대기업 노조에 대한 반감을 확대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상당수 한국 청년층은 “대기업이 차라리 한국을 떠나라”는 극단적 주장을 펴왔다. 연봉 3000만원을 넘지 못하는 흙수저 청년층의 좌절은 그만큼 심각하다. 한국사회의 양극화가 낳은 ‘부조리’라고 볼 수 있다.

롯데케미칼의 미국공장은 이점에서 딜레마를 안고 있다. 앞으로 높은 생산성을 과시해 고수익을 올리는 게 경영 목표가 되겠지만, 그 목표가 달성된다면 ‘부조리’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롯데케미칼의 성공은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 욕망에 좌절한 흙수저의 분노를 정당화해주는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⑤대법원 판결 앞둔 신 회장의 거취, 트럼프의 대선가도에 변수

집행유예로 풀려난 신 회장이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과 대규모 대미투자도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 롯데그룹의 스타일상 해외투자에 대한 전권은 신 회장이 쥐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신 회장의 ‘부재’는 해외 투자 중단을 의미한다.

롯데케미칼의 루지애나 공장도 마찬가지 구도라고 볼 수 있다. 신 회장이 잘못되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신 회장이 대법원 최종심에서 유죄판결을 받는다면 곤혹스러운 대목이다.

트럼프의 최대 정치적 목표는 내년 대선승리이다. 루지애나주는 트럼프의 텃밭으로 분류된다.

트럼프는 지난 2016년 대선 당시 루이지애나주에서 58.1%의 득표율을 기록해 38.4%에 그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여유 있게 제치고 루이지애나주 선거인단을 독차지했다. 신 회장의 대규모 투자 덕분에 트럼프는 내년 대선에서 한 곳의 텃밭에서 ‘굳히기 전략’이 가능해졌다고 판단했을 것으로 보인다.

만약에 롯데의 대미투자 계획이 차질을 빚는다면 트럼프로서는 ‘대선 악재’에 해당된다. 유권자들 입장에서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커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루이지애나는 미국의 50개 주중에서 가장 빈곤층이 많은 곳으로 꼽힌다.

10만원의 효용은 부자보다 빈자에게 훨씬 크다. 소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신 회장의 거액 투자가 가장 큰 박수를 받을 만한 지역이 바로 루이지애나주이다.

빈곤층 백인을 핵심지지 기반으로 삼아 국내정치에서 큰 소리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신 회장의 통 큰 투자가 갖는 상징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의 대법관들이 트럼프의 이런 계산법에 영향을 받을 리는 없지만, 신 회장으로서는 자신의 거취가 트럼프의 대선가도에 변수가 되는 행운을 움켜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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