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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윤혜영의 문화산책](104) 도시락, 그리고 기억

윤혜영 선임기자 | 2019-07-04 14:45 등록 (07-04 14:54 수정) 472 views
▲ [사진=윤헤영]

어린시절 경험이 평생을 좌우.. 행복이나 불행은 기억 어딘가에 살아있어

아이들이 행복해야 행복한 어른이 되어 따뜻한 사회를 만들지 않을까

[뉴스투데이=윤혜영 선임기자] 딸아이 유치원에서 공문이 왔어요. 급식소 파업으로 인해 점심급식을 이틀간 중단하오니 가정에서 도시락을 준비해오라는 내용이었어요. 좀 귀찮긴 했지만 이때가 아니면 또 언제 만들어주나 싶어 도시락을 준비했어요.

워낙 손재주는 잼병인데다 눈썰미가 없어서 닭이랑 병정 캐릭터 만드는데만 30분을 허비했네요.

딸아이는 "오~ 엄마 잘만든다.
좀비도 만들줄 아네. 신난다"
'장난감 병정인데. . . .'

어젯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읽는데 중간에 이런 문장이 나와요. "부모들은 늘 자신이 갖지못한 것들을 자녀들에게 주려고 하는것 같다. 빨간 세발 자전거, 오디오세트, 바닷가에서 휴가보내기 같은것들을" 그걸 읽고 흠칫했어요. 제가 그렇거든요. 어린시절 갖지 못했거나 욕망했던 것들을 딸들에게 해주거나 은근히 강요하고 있었어요.

욕망의 확장. 혹은 대리만족 같은 것이었죠. 저는 어린시절 부모님이 일찌감치 헤어지시고 냉혹한 조모 밑에서 자랐어요. 그때는 소풍날이 정말 싫었거든요. 아기자기한 친구들의 도시락이 부러웠었고, 특히 운동회날이면 커다란 음식가방들을 이고지고 총출동한 가족들.

그들에게 둘러싸여 치킨이나 김밥을 먹으며 행복한 무아지경에 빠진 아이들의 얼굴을 훔쳐보는게 싫어서 수돗가로 운동장 구석으로 눈에 띄지 않게 조심하며 숨어다니곤 했어요.

제게 행복의 이미지는 이백원짜리 초콜릿이예요. 같은반 친구였던 진욱이가 소풍 때 간식으로 싸오던 얇고 네모난 초콜릿. 그 아이는 작은 사각형을 하나씩 뜯어 입에 넣을 때마다 나를 보며 우쭐한 미소를 짓곤 했어요.

어느날 할머니의 쌈짓돈에서 천원을 훔쳐 초콜릿 다섯개를 샀어요. 진욱이의 행동을 떠올리며 초콜릿을 네모나게 뜯어 입에 넣었지요. 그러나 바라보며 욕망할 때 만큼의 달콤함은 아니더군요. 아무도 봐주지 않는 행복은 김 빠진 사이다 같았어요.

아이 친구 중에 놀이터에 늘 혼자서 늦게까지 남아있는 아이가 있어요. 다른 동네에 살지만 우리 아파트에 친구들이 많이 살아서 저녁에는 거의 와있어요.

저녁 먹었니? 인사치레로 물었더니 늘 아니요. 괜찮아요. 하길래 의아해 하다가 어느날 엄마 어디가셨냐고 물으니 "아빠는 돈 벌러 가셨고 엄마는 하늘나라에 있어요." 대답을 듣고 집에 오면서 조용히 울었답니다.

엄마가 보고싶은 아이의 눈물보다 간절한 것은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예요. 오늘 아침 도시락을 싸면서 그 아이 생각이 나길래 "00이랑 같이 사이좋게 나눠먹어. 너는 집에 와서 또 해줄께." 라고 이야기 했네요.

그 아이 도시락도 싸고 싶었지만 과한 오지랖은 분노나 모멸, 슬픔같은 역효과를 불러오기도 하니까요. 생각이 멀리까지 흘러갔네요. 요즘 드는 생각은 유년시절의 경험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거예요. 순간의 행복이나 불행은 소멸되지 않고 기억 어딘가에 늘 살아있는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아이들이 행복한 어른이 되어 선한 영향력을 널리 행사하면 사회가 지금보다는 조금 더 따스한 곳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계명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남 통영 출생. 계간 ‘문학나무(발행인 황충상 소설가)’겨울호를 통해 신인문학상 중 수필 부문 수상자로 등단. 주요 저서로 ‘우리는 거제도로 갔다’. ‘화가들이 만난 앙코르와트’ 외 항공사와 증권사, 신문사 및 문화예술지 등 다수에 문화칼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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