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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공군 이야기](5) 1학년 사관생도의 '사치', 슬프도록 찬란한 개나리 울타리

최환종 칼럼니스트 | 2019-07-16 14:36 등록 (07-18 15:53 수정) 3,167 views
▲ 1학년 어느 봄날 주말, 면회실 앞에서 동기생들과 함께 [사진=최환종]

긴장의 연속인 1학년 생도생활, 생도대 주변의 개나리는 봤어도 보이지 않는 존재

[뉴스투데이=최환종 칼럼니스트] 그야말로 정신없이 생도생활에 집중하던 중 어느덧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되었다. 그러나 1학년 생도들은 정신적으로 그런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사치’와 관련된 작은 에피소드가 있다. 생도대 건물 주변에는 개나리가 마치 울타리를 연상시킬 정도로 많이 심어져 있어서 봄이 되면 생도대 주변은 온통 노란색 개나리 천지가 된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개나리를 못보다가 2학년 진급 후 봄이 되어서야 생도대 주변에 개나리가 피어 있는 것을 인식할 수 있었다. 개나리가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것도 아니고. 선배 생도들도 1학년 때는 개나리를 못 보았다고 한다. 그만큼 1학년 생도는 늘 바쁘고 긴장하며 생활했다는 얘기다.


초급 장교 시절 근무지는 폭설과 혹한의 기억만 남아

수년 후 방문해서 ' 아름다운 단풍' 발견

이런 경험은 필자가 임관 후 강원도에서 근무할 때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필자가 근무했던 지역은 겨울이 9월 말에 시작해서 다음해 5월 경까지 지속되었다. 필자가 생각하는 겨울의 기준은 첫눈이 내릴 때부터 마지막 눈이 내릴 때 까지다.

기본 업무 수행 이외에도 폭설, 폭우, 강추위 등과 같은 자연과의 싸움이 많았던 환경에서 살다보니 '또 다른 풍경'은 눈에는 보여도 기억에는 각인돼있지 않았던 것 같다. 잊혀져 있었던 그 풍경은 '단풍'이다.

꽤 시간이 흐른 후 그 지역을 가을에 방문했는데, 단풍이 곱게 물든 것을 보았다. 그 순간 ‘여기에도 단풍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생도 1학년때 경험했던 ‘개나리’를 떠올리게 했다. 이 많은 단풍을 몇 년 사이에 누가 심어놓은 것도 아니고. 생도 1학년 시절이나 초급장교 시절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해 6월 뜻깊은 첫 외출서 부모님과 식사하고 담소, 그 아련한 '사치'

가슴 설레었던 첫 실탄사격의 추억!

6월 어느 일요일! 드디어 첫 외출을 나가게 되었다. 첫 외출은 보통 2학년 또는 3학년 생도와 같이 나가게 되는데, 그 상급 생도는 중대 내에서 맺어진 의형제 개념의 선배 생도이다.

필자는 2학년 생도와 같이 첫 외출을 나갔다. 명동에서 커피 한잔 하고, 아버님께 선물로 드릴 전기면도기를 구입한 후에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간 집이 너무 좋았다. 군 생활을 경험한 대한민국 남자들이라면 그 기분을 이해할 것이다.

집에서 점심 식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저녁 시간에 생도대로 복귀했다. 귀영시간은 대략 오후 5시 정도로 기억한다. 어쩌면 더 빨랐을 수도 있다. 일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의 짧은 첫 외출이었지만 힘든 1학년 생도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이후 1학년 생도의 외출은 월 1~2회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고향이 지방인 동기생들은 서울이 고향인 동기생들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내거나 서울 시내 구경을 했다.

1학년 1학기때 기억에 남는 훈련 중 하나는 ‘실탄사격’이었다. 서부 영화나 전쟁영화에서 사격하는 장면을 하도 많이 봐서, 그 느낌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늘 했다. 실탄사격을 앞두고는 마음이 설레었다. 이론교육과 M16 소총 분해조립 등 기본 교육은 이미 가입교 교육 기간중에 숙달하였고, 실탄사격을 앞두고 필자는 마치 소풍가는 학생같이 약간 들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첫 사격! 실탄 발사시의 소음과 어깨에 전해지는 묵직한 진동은 내가 드디어 사격하고 있음을, 내가 군인임을 실감하게 했다. 영점 조정부터 시작해서 기록사격까지 마쳤다. 기록사격은 100% 명중. 뿌듯한 느낌이었다.

필자는 실탄 사격을 좋아했고, 나름 사격 실력은 좋다고 생각한다. 아쉬운 것은 공군 복무 기간중 공군 사격대회에 단 한번도 참가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7월 하계훈련의 백미는 '생존 수영'

시간은 흘러 7월이 되었고, 여름휴가 전에 실시하는 하계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의 주 내용은 사관학교 수영장에서의 수영 훈련과, 공군 교육사령부에서 실시한 하계 기본군사훈련이었다.

수영훈련은 각자의 수영 실력에 따라 A, B, C, D 반으로 구분되었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A반, 그저 물에 떠서 수영 흉내만 낼 줄 아는 C반, A반과 C반의 중간인 B 반, 그리고 우리가 돌(石)반이라고 놀렸던 D반. 이렇게 4개의 그룹으로 구분하여 각 반의 실력에 맞게 수영훈련이 실시되었다.

필자는 C반! 언젠가는 수영을 잘 하리라 마음먹었고, 이런 생각은 꽤 시간이 흐른 후에 실현되었다. 즉, 25년 후 우연한 기회에 부대 인근 수영장에서 수영강습을 받았고, 부단한 노력 끝에 수영장에서 1.5km를 자유형으로 쉬지 않고 수영할 수 있는 실력이 되었다.

수영 훈련은 자유형, 평영, 배영 등의 '영법'보다는 주로 생존 수영에 중점을 두었는데, 물 위에 오래 떠있기, 전투복 바지를 이용하여 응급 튜브 만들기 등이었다.

훈련의 마지막 평가는 5미터 높이의 다이빙대에서 뛰어내린 후, 수영장을 가로질러 수영해서 나오는 것이었다. 인간에게 심리적 부담 이나 공포심을 가장 많이 주는 높이는 10 미터라고 하는데, 5미터 다이빙대도 심리적 부담감은 적지 않았다.

다이빙대 밑에서 동기생들이 뛰어내리는 모습을 보면 5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시간은 눈 깜박할 사이였지만, 필자가 실제로 뛰어내릴 때 느낌은 몇 시간이 걸리는 느낌이었다. 그만큼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1학년 1학기 마치고 첫 3주간의 하계휴가 주어져

수영훈련을 무난히 마치고는 하계군사훈련을 위하여 교육사령부로 향했다. 공군 교육사령부는 당시에는 대전에 있었다. 찌는듯한 무더위 속에서 모두들 젊음의 열정과 패기로 더위를 이기며 하계군사훈련을 이수했다.

그리고 생도대로 돌아와서는 며칠 후에 3주간의 하계휴가를 나가게 되었다. 사관학교에서의 첫 휴가! 고교시절의 방학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가장 힘든 1학년 1학기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휴가를 나가는 느낌은 고진감래(苦盡甘來)라고나 할까! 힘든 과정 이후의 휴식! 뿌듯한 마음으로 3주간의 휴가를 즐기러 집으로 향했다. (다음에 계속)


예비역 공군 준장, 순천대학교 초빙교수(현재), 공군사관학교(전자공학), 한양대 대학원(전자공학)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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