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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둥이 기업 100년을 향해]① 대한민국의 ‘희망 로드’ 한진그룹

오세은 기자 | 2019-08-12 07:01 등록 (08-12 07:01 수정) 1,602 views
▲ 한진그룹은 1945년에 고 조중훈 창업회장(왼쪽 첫번째)이 한진상사를 설립해 태동했다. 사진은 조중훈 회장이 1956년 11월에 주한 미8군과 군수물자 수송계약을 체결하고 미군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사진제공=한진그룹]


1945년은 대한민국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일제 식민지에서 벗어난 해이기도 하지만, 오늘날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첫걸음을 뗀 해이기도 하다. 해방과 함께 맞은 자유속에서 도전정신과 기업보국(企業報國)의 마음으로 많은 기업들이 출범했다. 그 기업들이 70년 넘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명멸해갔지만, 여전히 100년을 향해 힘찬 행보를 보이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않다. 뉴스투데이는 74주년 8·15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눈부신 성장을 해온 해방둥이기업들을 조명한다. [편집자주]


해방둥이 대표 기업 ‘한진그룹’

항공기 8대에서 168대로…매출 3500배 증가


[뉴스투데이=오세은 기자] 한진그룹의 모태는 ‘한진상사’다. 한진그룹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1945년 한일 해방 후 인천 항구에서 트럭 한 대로 시작했다. 재건사업으로 물동량이 많아지던 그때 그의 나이 25살이었다.

▲ 1945년 5월 태동한 한진그룹 모태 한진상사.[사진제공=한진그룹]

한진상사는 1957년 미군과 7만 달러짜리 수송계약을 체결한 이래 미군 운송권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1960년에는 한해 계약고만 220만 달러, 가용차량이 500대에 이르는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향후 한진상사는 박정희 대통령 요청으로 1969년 ‘대한항공공사’를 인수해 창업 2세인 조양호 회장 때 오늘날과 같은 세계적인 항공사로 도약했다. 하지만 지금의 대한항공 모습과 달리 과거 조중훈 회장이 인수할 당시만 해도 대한항공공사는 제대로 된 비행기조차 마련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만성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 회장은 인수 후 초대형 항공기인 점보기 도입 및 항공 노선 확대로 항공 운송 사업을 개척해 나갔다. ‘수송으로 국가에 보은한다(수송보국)’는 조 회장의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 1973년 5월 대한항공 보잉747 1번기의 태평양 여객노선 취항식에서 당시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오른쪽 세번째)이 테이프 커팅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한진그룹]

그의 도전은 항공 운송에서 그치지 않았다. 조 회장은 1977년 해운 회사인 ‘한진해운’을 설립했다. 세계 물류의 흐름이 해상 운송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그는 당시 컨테이너 물류 시스템을 구축했고, 이는 우리나라 해운·물류업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컨테이너 전용 선사로 거듭난 한진해운은 이후 공격적인 노선 개발과 다양한 물류망 구축을 통해 세계 일류 해운물류사가 됐다.

올해로 창립 74주년을 맞이한 한진그룹의 또 하나의 장수 비결은 인재 양성이다.

조중훈 회장은 평소 ‘사람의 일평생 계획 중에서 가장 뜻있는 사업이 인재를 키우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래서인지 1968년 인하학원(현 인하대학교)를 인수했다. 1978년 정석학원을 설립하고 이듬해 한국항공대학교를 인수했다. 그리고 1988년에는 국내 최초로 사내 산업대학인 한진산업대학(현 정석대학)을 만들었다.



▲ 2000년 9월 대한항공이 세계 주요 항공사와 함께 '스카이팀'을 출범했다. 조양호 회장(왼쪽 세번째)이 항공동맹 최고경영자(CEO)들과 손을 맞잡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한진그룹]

조양호 전 회장, ‘대한항공’ 세계 일류 반열에 올린 선구자

경영철학은 오케스트라 지휘자 ‘시스템 경영론’

조중훈 명예회장이 기업 규모에 집중했다면, 조양호 전 회장은 세계 일류기업의 장수를 고민했다. 조 전 회장은 책임경영제를 실시해 사외이사제를 비롯한 투명경영 확대와 원가구조개선을 위한 본부 단위의 관리회계 등을 도입했다. 이는 삼성·현대차와 같은 전 세계인이 선호하는 글로벌 한국기업들 반열에 대한항공 브랜드 유지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실적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1969년 대한항공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8대로 늘어났고, 일본 3개 도시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4개국 126개 도시로 확대됐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특히 작년 기준으로 대한항공 매출은 12조6512억 원을 기록하면서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조양호 회장의 역할이 컸다.

일찍이 조중훈 창업회장을 잇는 경영 후계자로 발탁된 조 전 회장은 1980년 대한항공 상무에 올라 본격적인 경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9년 뒤인 89년 한진정보통신 사장, 92년 대한항공 사장, 96년 한진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그 이후부터 아버지를 대신해 사실상 그룹을 이끌어왔다. 그리고 2002년 조중훈 회장 별세 이듬해인 2003년 한진그룹 회장이 됐다.

조 전 회장의 경영철학은 좋은 시스템을 만들어서 조직이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한편, 각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시스템 경영론’이다. 또 항공수송업이 안전과 서비스를 최우선 목표로 하는 만큼 현장과 고객의 목소리를 중시했다. 특히 안전은 규정이나 지시보다 현장에서 제대로 실천되는지가 핵심이기 때문에 현장경영을 지향했다.

고객의 불만 등 문제를 그때그때 해결하지 않고 근본적인 개선방안을 강구하는 한편, 나쁜 영향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깨진 유리창의 법칙’을 강조했다. 최근 ‘땅콩 회항’, ‘물컵 갑질’ 등 여러 불미스러운 일로 사회적 지탄을 받은 가족들과 달리, 조양호 전 회장 자신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려고 노력했다.


▲ 지난 2013년 4월 대한항공이 국영 체코항공 지분인수를 계약체결했다. 현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왼쪽 두 번째)과 조양호 전 회장(왼쪽 네 번째)이 계약 체결 후 건배하고 있다.[사진제공=한진그룹]

조원태 회장 취임 100일…‘소통행보’ 눈길

조 회장의 리더십, 100년 기업 역할 주목


지난 5월 공정거래위원회 직권 지정으로 한진그룹 회장직에 오른 조원태 회장이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았다. 지금까지 조 회장을 지켜 본 대한항공 및 재계 분위기는 ‘우려반 기대반’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그룹 안팎이 녹록지 않은 상황임에도 그의 ‘소통능력’ 행보에 대한 결과가 하나둘 나와 긍정적 평가가 늘고 있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이 운항·객실승무원들의 업무 편의 향상을 위해 인천국제공항 터미널2 인근에 ‘인천 운영 센터’ 설립을 결정했다. 운항·객실승무원 브리핑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이동 거리 단축에 따른 편의 향상을 위해서다.

조 회장은 지난 6월 서울에서 열린 제75회 IATA에서 대한항공 승무원들의 인력 부족 목소리에 “중요한 일들이 마무리됐기 때문에 점차 직원들과 소통을 넓혀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같은 날 그는 “선대에서 물려준 수송보국이라는 경영철학을 받들어서 사업을 이어나가겠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그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일들은 산적하기만 하다. 먼저 한진일가 삼남매 경영권 분쟁 논란을 비롯해 대한항공의 경영권을 위협하고 있는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펀드) 등에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더불어 ‘땅콩 회항’으로 그룹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그룹 경영일선 복귀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높은 만큼, 향후 조 회장의 결단이 주목받고 있다.

전쟁과 경제 위기를 모두 겪은 한진그룹은 한국 근현대사와 함께 해온 몇 안 되는 해방둥이 기업이다.

2045년, 창립 100주년을 맞는 한진그룹의 미래는 조원태 회장 리더십에 달렸다. 그룹의 100년을 이어나갈 길목에 선 조원태 회장의 리더십이 어떻게 발휘될 지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창업 할아버지 회장과 아버지의 수송보국 경영이념을 그가 완성할 그림이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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