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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구] 현대차 정의선 수석부회장 ③철학:시장에 대한 응전으로서의 인문경영과 실용주의

이원갑 기자 | 2019-12-02 07:37 등록 (12-02 08:44 수정) 803 views
▲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 [일러스트=민정진ⓒ뉴스투데이]

'실용주의'에서 '인문경영'으로 무게 중심 이동 중

글로벌 시장의 변화가 던진 '도전'에 대한 '응전'의 과정

[뉴스투데이=이원갑 기자] 현대기아차 그룹 정의선(49)수석부회장의 경영철학은 '실용주의'에서 '인문경영'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철학은 글로벌 시장의 변화가 던진 '도전'에 대한 '응전'의 과정에서 도출된 결론인 것으로 평가된다.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9년 현대차 구매실장으로 입사한 정 부회장은 출발점 자체가 일반인과 달랐지만, 안주하는 대신에 치열한 고민을 거듭했던 흔적이 보인다.

정 수석부회장의 행보와 발언등을 종합해 보면, 성장한계에 직면한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생존하고 발전하기 위해서 던진 화두가 일련의 '실용주의' 노선인 것으로 분석된다. 또 4차산업혁명시대의 급속한 기술변화로 인해 즉 인공지능(AI) 및 자율주행차 등을 둘러싼 IT공룡기업들의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인문경영'이라는 기준점을 발견했다고 볼 수 있다. 빠른 기술 변화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고, 인간의 삶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술변화만이 현대차그룹이 주도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일체의 격식과 권위적 관행 버리는 '효율성' 추구

캐주얼 복장에 넥쏘 시운전, 시무식 때 연단 아래 좌석에 앉아


“비효율적인 업무는 과감하게 제거하여 보다 가치 있는 업무에 임직원의 시간과 역량을 집중하는 스마트한 업무 방식을 일상화 해 주길 바란다”

정의선 부회장은 지난 1월 2일 시무식에서 조직 혁신 방침을 밝히며 이같이 당부했다. 유연한 기업 문화와 빠른 의사 결정, 소통과 도전 등이 강조됐다. '실용주의'라는 단어로 압축될 수 있다.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패자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의 권위적 관행과 격식을 떨쳐내고 순수한 '효율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발상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또 매년 시무식마다 무대를 가득 메웠던 사장단 좌석도 모두 없애고 발표용 단상만 남겼다. 자신도 직원들과 함께 연단 아래의 좌석에 앉았다. 아버지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차별화되는 부분이면서 격식을 탈피하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그의 철학을 반영한다.

이듬달 15일에는 정 수석부회장이 캐주얼 차림에 캔버스화를 신고 직접 수소차 ‘넥쏘’를 주행하는 영상도 내보냈다. 이날 제주에서 열린 사내 세미나 송출용으로 제작됐던 이 영상은 현대차 사내방송을 통해 공개됐다. 영상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가벼운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이미 지난 2017년 6월 신차 발표회에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직접 소개를 맡은 사례도 있다. 당시 현대차가 쌍용자동차 ‘티볼리’의 대항마로 내놓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SUV) ‘코나’ 발표 현장에서 정 수석부회장은 직접 차량을 몰고 간담회 현장에 등장했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5월 22일 서울 여의도 콘래드호텔에서 열린 칼라일그룹 초청 대담에서 발언하는 모습. [사진=현대차 홈페이지 갈무리]

실용주의 철학은 신사업 '개혁드라이브'로 연결돼

이 같은 파격 행보는 신사업 추진을 위한 ‘개혁 드라이브’와 같은 맥락을 탄다. 탈격식과 조직문화 개조의 목적은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수소차, 자율주행차 등 종전과 결이 다른 사업을 굴릴 추진력을 얻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018년 12월 대규모 부회장단 인사에서는 그룹 경영진 전반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정몽구 회장의 측근들은 계열사로 자리를 옮기고 그룹의 중심에는 신사업 추진에 필요한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해 왔다.

정 수석부회장이 추진 중인 미래 먹거리는 일단 친환경차와 자율주행차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9월 23일에는 미국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기업 '앱티브'와 합작법인(JV) 설립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 수소전기차 분야에서는 6월 25일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기업 '아람코'와 기술 개발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기도 했다.

한발 더 나아가 미래 모빌리티 기술과 전략 분야에는 오는 2025년까지 총 41조원 규모의 투자를 집행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 정 수석부회장은 지난 10월 15일 경기도 화성 현대기아차 기술연구소에서 “현대차그룹은 자동차 제조사에서 고객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서비스 회사’로 탈바꿈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 기업’으로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시장 불황은 현대차를 ‘혁신 절벽’으로 떠밀어

실용주의는 시장상황에 대한 강력한 대응철학

SUV 흥행으로 시간 벌어 신사업 공략 준비 발판

실용주의는 시장 상황 악화에 대한 강력한 대응철학이라고 볼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국내 신용평가사들로부터 지난 2013년 이후 ‘AAA’ 신용등급을 유지하고 자산 기준으로 국내 2위에 올라 있는 초우량기업이다. 그러나 세계 자동차 시장의 성장 동력이 꺾이는 상황 앞에서 혁신을 재촉받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해외 주요 시장인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자동차 판매 증가율은 계속해서 꺾이는 추세다. 지난해 세계 전체 자동차 판매량은 역성장했고 특히 중국이 28년 만에 처음으로 판매량이 줄었다. 포드와 GM 등 미국의 주요 자동차 제조사도 지난해부터 구조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 [자료=유진투자증권]

중국을 포함한 각국의 자동차 배출가스 규제 강화도 위기이자 기회로 꼽힌다. 재래식 차량의 수요 하락을 가속화하는 동시에 저공해차와 친환경차 수요를 견인하는 요소다. 현대차가 수소전기차 등의 친환경차 사업을 뒤늦게 본격화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팰리세이드’, ‘코나’ 등의 SUV 제품군이 국내외에서 흥행하며 시간을 벌어 주고 있다. SUV 시장이 전체 자동차 시장 흐름에 역주행하며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코나는 티볼리와의 소형 시장 양분에 성공했고 팰리세이드는 등장과 동시에 대형 시장을 장악했다.

현대자동차의 3분기 매출은 26조 9664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0.4% 늘었고 영업이익도 1조 2377억원으로 31% 증가했다. 상반기 누적 실적 역시 매출액과 영업이익에서 전년 대비 각각 8.07%(3조 8051억원), 26.38%(4305억원)의 성장률을 나타냈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이 7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MIF) 2019'에서 인간 중심 개발 철학을 강조하고 있는 모습 [사진제공=현대자동차]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 선언하고, '인간중심' 을 화두로 제시

기술경쟁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행복'보다 '재앙'을 초래할 위험 높아

현대차 그룹이 ‘자동차 제조사’에서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해야 한다고 공언해온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최근 그 변신의 방향으로 ‘인간중심’이라는 명제를 제시했다. 기존의 실용주의에 새로운 철학이 보태진 셈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 7일(현지시각)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모빌리티 이노베이터스 포럼(MIF) 2019'에서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혁신적 모빌리티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면서 “도시와 모빌리티는 인간을 위해 개발되고 발전돼 온 것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넓은 인문학적 관점에서 인간 중심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모빌리티를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그는 “도시와 모빌리티, 인간을 위한 통찰력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스마트시티 자문단'을 구성하고 인류에 기여하는 혁신적인 도전을 펼치겠다”면서 “스마트시티 자문단은 포용적이고 자아실현적이며 역동적 도시구현이라는 핵심 가치를 도출했다”고 강조했다. 현대차 그룹에 따르면, 자문단은 심리, 도시 및 건축, 디자인 및 공학, 교통 및 환경, 정치 등 각 분야 글로벌 최고 전문가들로 이미 구성돼 있다. 내년 초 연구결과 공개를 목표로 활동중이다. 스마트 자문단은 인간중심의 모빌리티 사업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 부회장은 인간을 위한 모빌리티 산업을 추진하기 위해 스마트 시티를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자신의 경험을 보태 설명했다. 그는 고대를 졸업한 뒤인 지난 1995~1997년 샌프란시스코대 MBA(경영대학원) 유학을 했다. 정 부회장은 “제가 대학원을 다녔던 95년 이후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큰 변화는 모빌리티가 소유에서 공유로 바뀌기 시작하는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했다는 것”이라면서도 “전기차, 마이크로 스쿠터 등 혁신적인 이동수단 역시 땅 위를 다니는 또 다른 모빌리티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정된 도로상황을 극복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인간을 위한 모빌리티 산업이 발전하려면 스마트시티라는 포괄적인 개발계획이 전제돼야 한다는 인식인 것이다.

물론 정 부회장의 ‘인문경영’ 철학이 시장경쟁력을 갖고 있는지가 관심사이다. 효율성을 추구하는 실용주의는 시장의 강자를 만들어내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인간을 중심으로 삼는 기업이 레드오션의 승자가 되는 길인지에 대한 반론이 제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빠른 기술변화 경쟁구도에서 속도전에만 매달리는 기업은 '행복'보다 '재앙'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상식에 비추어 볼 때, '인간 중심'이라는 화두는 현명한 선택인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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