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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강승현 “40대까지 모델로…아이콘이 되고 싶어요”

윤한슬 기자 | 2013-05-14 08:37 등록 (02-07 17:56 수정) 5,362 views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모델계 대표 베이비페이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그녀. 바로 강승현이다. 가요계에 월드스타 싸이가 있다면 모델계에는 강승현이 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바쁜 나날을 소화하는 그녀는 우리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먼저 능력을 인정받은 케이스이다.

다른 모델들과는 출발점이 조금 달랐던 그. 그는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오르게 됐을까? 강승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모델, 그 이전의 강승현

▲ 모델 강승현 [사진=강지연 기자]

-강승현씨의 어린시절은 어땠나요?

“저는 어렸을 때 모델을 구체적으로 꿈꾸진 않았는데 어렸을 때부터 패션에 관심이 많았어요. 중학교 때 친구들과 동대문에 옷을 사러 간다던가 그랬죠. 사실 저는 그 당시 어머니의 영향으로 패션잡지를 구독을 했었요. 그래서 잡지에서 봤던 스키니진을 동대문에 갔었는데 그 당시에 동대문에 그런 옷이 없었어요. 아무도 스키니진을 몰랐던 거에요.”

“결국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외국에서 배송되는 스키니진을 구해서 입었는데 친구들이 민망해했어요. 쫄바지 입고 나왔냐고. 그때는 그런 문화가 아니었으니까요. 이런식으로 저는 막연하게나마 패션이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데 점점 키가 크면서 주변에서 ‘모델을 해봐라’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죠.”

-키가 언제부터 크셨나요?

“키는 꾸준히 컸어요. 항상 제가 반에서 제일 컸어요. 그런데 중학생 되면서 이제 키가 정말 많이 컸죠. 지금 키는 고등학교 2학년 때 키고요. 유전의 영향으로 큰 것 같아요. 부모님도 크시고, 오빠도 크거든요.”

-키 작은 사람도 불만이 있지만 키 큰 사람도 그만의 비애가 있다고 들었어요.

“어렸을 때 제가 키가 제일 커서 그런지 학교에 다닐 때 늘 튀었던 것 같아요. 다른 친구들이 한번 떠들면 선생님이 지적만 하는데 제가 떠들면 아예 혼나는 식이었어요. 또, 키가 커서 선생님들이 저를 빨리 외우셨죠. 어디 몰래 나가다가도 제가 키가 제일 크니까 제가 제일 먼저 걸리기도 했고요. 사실 제 친구들이 다 키가 크지 않아서 저는 늘 구부정하게 다녔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도 구부정한 것 같아요.”

-농구선수를 꿈꿔본 적은 없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농구부 선생님들이 저를 보러온 적은 있었어요. 제가 입학한 직후에요. 그런데 체육시간에 저의 모습을 보시고서 바로 가셨어요. 제가 초등학생 때는 육상대표를 하기도 했었는데 구기종목은 아예 잘 못하거든요.”

-모델을 선택한 계기가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잡지를 보며 자연스럽게 패션을 접했었어요. 남들은 저한테 모델을 하라고 말했지만 저는 제 스스로 ‘나 모델할거야’라는 말을 못했어요. 쑥스러웠거든요. 소극적인 성격은 아니었는데 좀 창피했어요. 대학교 진학할 때쯤에 엄마가 동덕여대 김동수 교수님이 쓰신 ‘모델학’이라는 책을 사주셨는데, 그때 그 책을 보면서 길을 잡은 것 같아요. 엄마의 영향이 컸죠.”


■ 모델학과 학생, 뉴욕을 휩쓸다

▲ 모델 강승현이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사진=강지연 기자]

-어떤 과정을 거쳐 모델이 되셨나요?

“처음 대학교 모델학과에 들어갔었어요. 그때가 제가 겪은 시련 중 하나인 것 같은데,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해도 생각만큼 원하는 일이 안됐어요. 모델학과 가면 다 모델이 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저희는 시험을 잘 봐서 1등을 하면 그 아이가 쇼에 서고 그런게 아니에요. 저희는 열심히 한다고 해서 잘되는 직업이 아니거든요. 그 시대의 트렌드에 잘 맞아야 되고, 예쁘다는 기준이 없는 직업이고, 또한 누가 잘 되고 누가 잘 안되고, 누가 선택을 받고 안 받고를 모르는 직업이에요.”

“그런데 그 당시에는 저한테 아무런 운이 없었던 것 같아요. 제 친구들은 일을 하는데 저는 일을 못 했었으니까요. 그래서 모델을 그만 두고 평소 하고 싶었던 패션공부를 하고 싶어 유학도 계획했었요. 그러다 포드슈퍼모델대회(이하 포드대회)에서 1등을 하면서 이 자리에까지 오게 됐죠.”

-그 대회는 어떻게 나가게 되신건가요?

“3학년 때쯤 유학 갈 계획을 세웠고, 유학을 가기 전, 2학년 때 인턴십을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여름방학 때 잡지사 인턴모집에 원서를 냈었어요. 사실 그 당시에는 이력서 잘 쓰면 될 줄 알고. 재미있게 잘 썼었어요. 그런데 그날, 제 대학교 동기와 여름방학 계획에 대해 얘기를 나누다가 그 친구가 포드대회에 지원을 한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당시 이 대회는 미국에서는 오래된 대회지만 한국에서는 처음 열리는 대회였어요. 그래서 저도 당연히 이 대회에 대한 정보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그 친구한테 ‘너 이거 왜나가’라고 그럴정도였어요. 그런데, 그 친구가 ‘너도 지원해봐’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프로필 사진도 있었기 때문에, 대회를 나가고 싶어서 지원한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그냥’ 지원을 했어요. 그것도 지원 마지막날에요. 그 다음 주에 인턴십과 대회 모두 발표가 났는데, 잡지사에서는 연락이 안왔고, 포드대회에서만 합격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예정에 없던 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셨어요.

“사실 잡지사에서 합격통보를 받았다면 포드 대회에 안 나갔을 거에요. 대회에 관심이 없었고, 그 대회가 제겐 너무 생소했거든요. 그런데 사실 그 대회는 굉장히 큰 대회에요. 50개국에서 각 나라의 대표를 뽑은 뒤 그 대표들이 미국에서 파이널 대회를 치루는 세계대회거든요. 저는 2007년 여름 방학동안 한국에서 대회를 치루고 1등을 한 뒤, 2008년에 미국에서 파이널 대회를 치러서 1등을 하게 됐어요.”

-1등을 예상하셨었나요?

“저는 미국에서 상을 타서 일 하게 될 거란걸 아예 생각도 못했어요.  영어 공부를 하긴 했는데 준비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이 당시에는 정말 모든 운이 제게 와있는 것 같았어요.”

-어떤 이유에서 1등을 했을까요?

“제가 적응을 잘할 것 같았대요. 제가 정말 영어를 못했었는데, 그 대회에 나온 모델들이랑 다 친해졌어요. 저는 그 당시 일주일간 합숙하면서 1등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감히 못했어요. 단지 나중에 그 친구들과 펜팔을 하고 싶었어요. 다양한 국가 애들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욕심이 없었던 덕분에 더 내추럴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부담없이 하고싶은 것을 다 했으니까요.”

“사실 그 일주일간의 시간은 정말 ‘저의 날’이었어요. 이렇게 까지 일이 잘풀릴까 싶을정도로 모든 일이 다 잘됐거든요. 합숙하면서 하루는 포토수업을 하고, 하루는 워킹을 배우고, 하루는 텔레비전에 나가기도 해요. 이 다양한 분야 중에서 모든 날마다 제가 주목을 받았어요. 포토수업때는 다른 모델들이 옷을 한 벌입을때 저는 세 벌을 입었어요. 그 당시에 저는 일등할거라고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제가 잘 못 해서 옷을 세벌 입힌 줄 알았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게 아니라 포트폴리오북에 스타일링을 많이 해주려고 옷을 세벌 입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 순간을 생각해보면 제 자신이 조금이나마 노력해왔던 것이 빛을 발한 것 같아요. 그동안 워킹연습도 다른 모델들보다 미리 연습했으니까 빛을 발했던거고, 그 대회에 나간다고 5kg도 감량했거든요. 제 키가 178cm가 되고난 후로 그 몸무게였던 적은 그 당시밖에 없어요. 저는 운이 좋았다고 얘기를 하지만 노력은 물론 했죠. 긴 시간동안 모델이 되고싶어서 노력했었으니까 그 부분들이 감사하게도 빛을 보았죠.”


■ 월드스타, 강승현

▲ 강승현은 어느새 세계적인 모델로 발돋움했다. [사진=강지연 기자]

-1등을 한 뒤 많은 것이 달라졌겠어요.

“그럼요.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일단 한국에도 못간 채 뉴욕에서 살게 됐으니까요. 엄마가 보고 싶긴 했지만 외롭진 않았어요. 제가 너무 하고 싶었던 일이고,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일을 하는 거잖아요. 특히 한국에서는 제대로 된 쇼도 못 서본 학생이었던 제가 세계 4대 컬렉션이 열리는 도시에서 1등을 차지한거고요.”

-그럼 그 이후로 계속 뉴욕에 있던 건가요?

“1등을 하고 나서 몇 개월 뒤에 비자문제로 한국에 약 3~4일간 왔었어요. 그리고 다시 바로 뉴욕으로 갔지만요. 지금에야 한국에 오면 한달씩 있을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한국에 오면 일주일정도만 머물 수 있었어요. 에이전시에서도 한국에 오래 있는 건 꺼려했고요. 그곳은 오래쉬면 존재감이 없어져요. 한번은 제가 일을 하다 너무 힘들어서 한국에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너 같다와. 그런데 그간 너가 하던 일 다른 동양 애들이 다 할거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그게 어찌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죠. 저한테 판단하게 하는거죠.”

-그럼 지금 미국에서 활동을 해야 하는데 못해서 불안하지는 않나요?

“아뇨. 지금은 불안하지도 않아요. 그 당시에는 제가 신인이니까 치열하게 일해야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제 이미지도 생겼고, 미국에서 저라는 사람을 알기 때문에 일을 하기 훨씬 수월해요.”

-미국 내에서 강승현의 입지는 어느정도인가요?

“입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동양모델 중에서 밝고 건강하고 이미지를 갖고 있는 모델로 알려져있는 것 같아요. 그게 왜 중요하냐면 미국에서는 동양 모델이기 때문에 쇼를 서는 경우가 있어요. 쇼에서 동양 모델이 2명은 들어가야 하거든요. 동양모델이 이미지를 갖는 것이 정말 어려워요. 근데 저는 동양 모델로서만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제 이미지가 있는 거잖아요.”

-요즘 국내, 해외 오가며 열심히 활동을 하고 계세요. 어떤 활동 하시나요?

“요즘 한국에서는 겟잇스타일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고요, 라파레트라는 브랜드와 제 브랜드로 콜라보레이션을 진행 중이에요. 그런데 모델이 자기 브랜드를 갖고 콜라보레이션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는 모델이기 때문에 무대에 서는 것이 제일 좋지만 조금 더 특별해지기 위해 그냥 모델이 아닌 사람들과 제가 좋아하는 걸 공유할 수 있는 아이콘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제가 하고 있는 것들이 제가 가장 원하던 것 인 것 같아요. 그러면서도 미국에서 들어온 화보 촬영 차 런던에 가기도 하고요.”

-체력적으로 힘들진 않나요?

“저는 처음 미국에서 일할 때 하루에 비행기를 5번씩 탔어요. 아침에 도착해서 촬영하고, 다시 출발하고 도착해서 다시 화보 찍고.. 미국에서는 이런스케줄이 가능하거든요. 데뷔하자마자는 정말 바빴으니까요. 토요일 일요일에도 일했어요. 사실 일 중독이 있는 건 아닌데 그렇게 일하던 습관이 있어서 일이 없으면 허전해요.”


■ 스타일부터 피부까지…그녀의 비밀은?

▲ 모델계 대표 피부미인, 강승현 [사진=강지연 기자]

-베이비페이스로 유명하세요. 유전이신가요?

“유전일 수 있겠네요. 부모님 두분 다 피부좋으시고, 특히 아버지도 피부 좋으 신걸로 유명하셨으니까요. 오빠도 피부가 좋고요.”

-피부 관리 비결이 궁금해요.

“저는 자그마한 습관들 덕분에 피부가 좋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물을 수시로 굉장히 많이 마셔요. 하루에 클렌징도 세 번하고요. 술을 먹고 집에 들어가도 자기 전에 무조건 세수를 하고 자요. 세안 후에 마무리로 꼭 찬물로 헹궈주고요. 그리고 얼굴에 손을 절대 안대고요. 아예 습관화 돼있는 것들이에요.”

-피부가 좋아지려면 강승현씨처럼 하면 될까요?

“제가 보증할 수는 없죠. 그런데 저는 피부과에서 레이저 시술도 한번 안해봤어요, 저는 그저 자기 전에 보습크림을 듬뿍 발라요. 미스트도 항상 가지고 다니며 수시로 뿌리고요. 항상 얼굴을 촉촉하게 해야돼요.”

-원래 뾰루지가 잘 안 나는 얼굴인가요?

“아뇨. 저도 뾰루지 나요. 여드름 한창날 때는 꽤 많이 났었어요. 그런데, 제 얼굴이 지성인 편이라 피부가 반짝거려서 사람들이 좋다고 생각하세요. 그런데 알고보면 기름종이로 눌러줘야하는 것들이죠(웃음).”

-평소 화장은 하세요?

“아뇨. 저는 화장 잘 안해요. 대신 선크림은 무조건 발라요. 선크림을 안 바르고 나온 날이 없어요. 피부 관리차원에서요. 기미 같은것도 한번 생기면 계속 생기거든요.”

-피부도 좋으신데 얼굴도 동안이세요.

“그쵸. 제 생각에도 동안인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이마가 넓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이마를 묶은것가 풀은 것도 차이가 많이 나거든요. 머리를 묶으면 더 어려져요(웃음).”

-얼핏보면 고등학생까지도 볼 수 있겠어요.

“사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사진들이 정말 오래된 사진들이 많아요. 진짜 3~4년 된 사진들을 보시고 사람들이 제가 정말 그렇게 생겼을거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늙고 있죠. 저도 너무 신경쓰여요. 어떻게 앞으로 더 어려보일 수 있을지 하고요(웃음).”

-몸매관리를 하시나요?

“몸매관리 안하는 건 아니지만, 저의 기본적인 성향이 살이 찔래야 찔 수가 없어요. 입이 정말 짧거든요. 너무 배고파서 밥을 먹으러 가도 많이 먹지를 못해요. 배가 너무 빨리 불러서요. 그 대신 배가 자주 고파요. 그래서 하루에 저는 보통 3~4끼를 먹어요. 그리고 걸어다니는 거 좋아하고, 헬스도 다녀요.”

-모델 일을 하기위한 노력들인거죠?

“그렇죠. 사람들이 모델들 너무 말랐다고 하시잖아요, 근데 저희는 무조건 말라야하는 직업이에요. 만약 제가 뚱뚱하면 쇼에도 못 서요. 저희가 쇼에 서고 잡지 촬영 때 입는 옷은 샘플이라고 해서 사이즈가 굉장히 작은데, 그 옷이 안 맞으면 일을 할 수가 없잖아요. 일을 하기 위해서는 관리를 해야 돼요. 그러기 때문에 저는 모델이 살찌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플러스 모델들은 상관없지만요.”

-그래도 과하게 마르지 않아도 적당히 날씬하면 좋잖아요.

“과하게 마른 친구들이 있는데, 그 친구들은 다이어트가 아니라 진짜 먹어도 살이 안찌는 친구들인거에요. 말도 안되게 마른 애들은 뼈가 원래부터 얇고, 먹어도 안찌는 체질인건데 사람들은 ‘모델하려고 살 빼는 거다’라고 생각을 하시죠. 제 주변 모델들은 밥을 안 먹는 친구들이 하나도 없어요. 다 건강하게 살 뺄줄 알아요. 그리고 사실 살이 잘 찌는 타입도 별로 없고요. 사람들이 오해를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몸매가 좋아서 모든 옷을 잘 소화하겠지만 특히 강승현씨에게 잘어 울리는 옷 스타일이 있나요?

“잘 모르겠어요. 저는 다양한 스타일을 좋아하거든요. 다양한 옷을 입고 저만의 방식으로 풀어내는 걸 좋아해요. 실제로 제 옷장 옷을 봐도 다이나믹해요. 정장도 많고, 원피스도 많고, 러블리한 옷도 있고요.”

-간절기에 알맞은 스타일링을 추천한다면요?

“요즘은 밤낮 기온차가 크니까 예쁜 색깔의 베이직한 가디건을 추천해요. 그런데 블랙 그레이 컬러가 아니라 밝은 컬러의 가디건이요. 손에 들어도 이쁘잖아요.”


■ 현재, 그리고 미래

▲ 모델 강승현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강지연 기자]

-겟잇스타일을 진행중인데, 계기가 있나요?

“사실 그 전에 뉴욕에서 다른 방송을 진행한 적 있었어요. 저는 뉴욕편 MC였고, 한국편 MC는 민효린씨가 했었는데 그걸 인연으로 CJ측과 온스타일측과 다른 프로그램을 하기로 했었어요. 그런데 그 일이 틀어지면서 제가 프로그램을 하나 제안을 했는데 그것이 받아들여져서 이 프로그램이 만들어진거에요. 어떤 옷을 입어야 하고, 어떤 스타일이 어울리는지는 입어야만 알 수 있고, 학문적인 것이 아니라 이해를 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이것을 친숙하게 전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해냈어요.”

-이 방송이 반응이 좋아서 연장방송은 물론 정규편성도 기대하고 있어요. 소감이 어떤가요?

“소감이요? 좋죠. 사실 제가 잘해서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정말 좋아요. 옷에 대해 얘기하게 되면 어떤 분들은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결국은 사치스럽다고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프로그램은 패션에 대해 굉장히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어요. 영화 스토리를 통해서요.”

“사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옷을 잘 입어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옷을 더 잘 입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것은 아니지만, ‘옷을 이렇게도 입을 수 있구나’하는 새로운 방향을 알려주고 싶었던 것 뿐이에요. 그런데 그 프로그램이 연장까지 하게됐으니, 정말 저는 복 받은 것 같고. 굉장히 행복해요.”

-지금 디자이너로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모델을 그만두게 되면 디자이너를 계획하시는 건가요?

“사람들이 모델은 수명이 무조건 짧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제가 평생 이 몸매를 가지고 쇼를 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모델로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춰지고 싶어요. 나중에 방송이 잘 되서 방송을 더 많이 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저한테는 무대에 서고 잡지 찍는 일이 좋거든요.”

“나중에 무대에 못 서는 나이가 되더라도 제가 아이콘적이 사람이 돼서 40대가 돼서 무대에 섰으면 좋겠어요. 사실 외국엔 그런 경우가 있거든요. 그 나이만의 캐릭터로서 무대에 서는 것이 가능한데 우리나라는 아직은 힘들죠. 그래서 제가 아이콘적인 사람이 돼야 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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