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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박춘무 디자이너 “옷을 통해 고객과 소통 원해요”

윤한슬 기자 | 2013-05-27 08:24 등록 (02-07 17:55 수정) 4,673 views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저는 원래 어렸을 때 화가를 꿈꿨었어요. 특히 초등학교 4학년 때요. 계속 미술반에 있었는데, 주변에서 다들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하더라고요.”

DEMOO의 박춘무 디자이너는 김서룡 디자이너처럼 그림에 소질이 있던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랬던 그가 어느덧 패션 디자이너계 거장 반열에 올랐고, 해외 무대를 사로잡는 성공한 디자이너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 파리, 이탈리아는 물론, 아시아, 북유럽까지 사로잡으며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브랜드의 디자이너, 박춘무 디자이너를 만나기 위해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사무실을 찾았다. 더 큰 규모로 이사가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던 사무실에서 그는 모든 걸 털어놓았다.


■ 아버지의 사업실패, 전화위복이 되다

▲ 데무 사무실에서 박춘무 디자이너를 만났다. [사진=강지연 기자]

-어렸을 때부터 ‘패션’을 자주 접하셨나요?

“원래 아버님이 아동복 사업을 하셨어요. 가게를 갖고 공장을 운영하면서 생산을 하셨어요.저는 항상 이 모습을 보고 자라서 친근했어요. 그런데 사실 그 당시에는 패션이라는 말도 없었을 시기에요. 제 생각에 ‘패션’이라는 말이 나온지 한 30여년 된 것 같아요. 당시에는 그저 제품이었어요.”

-디자이너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제가 고등학교 때 아동복 사업이 실패했어요. 그 이후로 다른 사업도 시도하셨는데 계속 힘든 시기를 보냈어요. 그래서 화가의 꿈은 잠시 접어두고 제가 20대 때 어머니와 함께 옷 장사를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옷을 파는 데에 일가견이 있으셔서 남대문 시장에서 옷을 떼어다가 명동에서 파는 소매업을 했어요.”

“계속 일을 하다보니 잘한다는 말도 듣고, 돈도 꽤 많이 벌었어요. 결혼 전까지 가게가 명동에 3개였으니까요. 그런데 돈을 아무리 벌어도 성취욕을 못 느꼈어요. 한마디로 지겹고, 질린거에요. 자만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요. 제가 하고 싶은 옷을 하고자 하는 욕구 때문에 길을 돌리기로 마음을 먹고 87년도에 국제복장학원연구원으로 들어가 패션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리고 졸업을 하면서 패션쇼를 한번 하고, 88년도에 데무를 오픈하게 됐죠.”

-잘 될거라고 예상하셨나요?

“처음엔 잘 안됐어요. 하얏트에서 패션쇼를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 당시 ‘멋’이라는 잡지가 있었는데 한 기자분이 악평을 쓰셨어요. 제 옷은 옷도 아니라는 거예요. 사실 당시에는 컬러풀하고 이쁜 옷이 유행이었는데 제가 처음 쇼를 했을 때 무색무취에 스타일도 없고 화이트, 블랙 컬러만 쓰고, 스타일도 이쁘지 않았으니 기자가 보기에는 옷도 아닌거죠. 그래서 그 이후로 잡지도 무섭고 인터뷰도 무서워졌어요. 너무 악평을 실어놔서요.”

“그런데 옷이 생각보다 잘 팔렸어요. 일반 소비자에게는 신선했었나봐요. 우영미씨도 제가 오픈할 때 와서 보셨다는데 신선했었대요. 다른 사람이 볼때는 ‘저걸 왜 예쁘다고해?’ 할 것 같은데, 제 옷은 그만큼 다른 옷하고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걸 좋아하는 분이 소수여서 좀 힘들었지만 분명 좋아하는 분도 계셨어요.”

-당시 디자이너 브랜드 소비자층은 부유층이었나요?

“길거리에 보면 많은 사람들이 입었으니 그렇지만은 않았겠죠. 사실 저는 아주 하이레벨이 제 옷 입기를 원하지 않아요. 특별한 사람을 위해서 ‘맞춤옷’ 제작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요. 처음 오픈했을 때도 맞춤스타일을 싫어했어요. 기성복은 아니지만 개성입게 하는 스타일이 좋지, 특정인에 맞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어요.”


■ 박춘무 디자이너 그리고 데무

▲ 데무의 박춘무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데무는 무슨 의미 인가요?

“처음 200여개의 이름 중에서 브랜드 명을 고민했었어요. 그러다 데무로 정했는데 from과 제 이름의 ‘무’를 따서 ‘박춘무로부터’의 뜻을 담았어요. 사실 데무가 Demoo라는 프랑스어여서 드무로 읽어요. 그런데 데무로도 읽을 수도 있어서 데무로 변형을 한거에요.”

-초반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95년도에 ‘뉴웨이브인서울’ 패션쇼에 참가하면서 쇼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러다 중간에 2년 정도 쉬었어요. 해외 컬렉션은 물론 전시회까지 전부 ‘올스톱’이었어요. 지금의 세컨브랜드, 디데무(D'DEMOO)는 잘되지만 당시 제가 무플러스(moo )라는 세컨브랜드를 내면서 회사가 휘청였거든요. 위기의식을 느껴서 쇼도 안하고 마음잡고 일만 하겠다해서 2년 정도, 그러니 총 네시즌 간 쇼를 안했는데 또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시작했죠.”

-초반을 제외하고는 여성복을 위주로 하세요. 여성복의 어떤 매력 때문인가요?

“저는 매력을 따질 세가 없었어요. 이 일이 곧 생활이었거든요. 그런데 점점 고객들과 제가 스타일이 닮아가는 걸 느껴요. 매니아층이 있다는 건데, 그럴 때 굉장한 보람을 느껴요.”

-입는 즐거움도 있으세요?

“그건 별로 없어요. 제가 이 길을 30년 넘게 걸어왔는데, 그간 상품으로 나가는 옷을 갖고와서 입지는 않았어요. 물론 세일을 할 때는 가끔 갖고 와서 입기도 해요. 그런데, 사실 저는 가죽 자켓 하나 입은 적도 없어요. 그간 수 만개를 만들었는데도요.”

-입고 싶으셨던 적 없으세요?

“제가 핏 때문에 한번씩 옷을 입어보는데 어느날 ‘어 이쁘다. 하나 입어도 괜찮겠다’라고 말했더니 팀장이 저한테 옷을 선물했더라고요. 아쉽게도 저는 다른 사람한테 그 옷을 선물하긴 했지만요. 아직도 미안해요. 그리고, 예전에 하얀 밍크 조끼를 받은 적은 있긴 한데 보통 옷을 잘 받지 않아요. 사실 그렇게 입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드는 편은 아니고요. 누군가에게 옷을 보여주는 것을 좋아하는 거죠.”

-선생님 옷장을 열어보면 어떤가요?

“색상은 거의 다 검은 옷이에요. 그런데 제가 디자이너라고 해서 다 제 브랜드 옷인 것은 아니에요. 출장을 가서 필요하다면 옷, 신발 등을 사기도 하거든요. 우리나라에서 쇼핑을 자주 하는 편도 아니고요. 그런데 비싼 건 잘 안사는 편이에요. 소위 말하는 명품 브랜드는 거의 없어요. 정말 해당 옷이 입고 싶고, 정말 퀄리티가 좋을 때 사는 거지 특정 브랜드라고 해서 사지 않거든요.”

-패션쇼를 할 때 어떠세요?

“패션쇼를 하다보면 모델 피날레를 하고 제가 나가는데, 그때까지 가슴 두근거림, 긴장됨을 느껴요. 사실 그 시간 때문에 쇼를 계속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요새는 많이 긴장감이 떨어졌지만, 아직도 긴장감이 있기는 하죠.”

-디자이너로 살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95년도에 전쟁기념관에서 쇼를 했었는데, 그 쇼가 기억에 가장 많이 남아요. 그때 패션쇼가 텀이 별로 없이 연달아있었어요. 모델도 반 정도는 공유했고요. 그런데 제 앞에 박윤정  디자이너가 제 앞차례였는데, 그 때 모델들이 박윤정씨 무대를 위해 핑크 계열 아이 메이크업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블루 계열 메이크업이 필요해서 메이크업을 다 지우고 블루 계열 아이 메이크업을 할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모델들이 지우고 하겠다는 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한쪽은 지우고 한쪽은 못 지워서 한 눈은 핑크색, 한 눈은 블루인 사람도 있었고요, 지우다 말아서 멍처럼 보라색이 되기도 했었어요.(웃음)”

-데무는 주로 블루나 무채색 계열을 선호하나봐요.

“제가 다른 컬러를 만들어도 고객들이 항상 검은색을 찾으세요. 데무에는 당연히 블랙이 있겠거니 생각하시나봐요. 그래서 옷이 주로 블랙이 돼버리는 거고요. 사실 저도 컬러에 대해 많이 고민해요. 그런데 손님들이 블루 의상을 입어보시고 “블루 예쁘다! 그런데 블랙 주세요”라고 하기도 해요. 블랙이 전체 컬러 중에 70%정도 팔리지 않을까 싶어요.”

-데무가 추구하는 바가 있나요?

“옷을 통해서 고객과 소통을 하길 원해요. 고객들이 만족하게, 질리지 않게, 오랫동안 소장하는 옷을 만들어서 함께 나이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옷은 필수품이고, 저도 옷 외에는 다른 분야를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옷으로 승부를 해야 돼요.”


■ 우리나라 패션계, 그리고 해외 진출

▲ 박춘무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우리나라 패션계의 위상은 어느정도인가요?

“우리나라의 경우, 옷에 대한 개념이 잘 잡혀있고, 재주도 좋고, 감각도 좋아요. 외국브랜드도 다 들어와 있어서 해외에 나가서 볼 필요가 없기도 하고요. 굉장히 패션 사업을 하기 좋은 나라에요. 역사가 짧을 뿐이죠. 국내에서 인기 아이템은 밖에서도 인기 있을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통해요.”

-해외 경력이 굉장히 화려하세요.

“다 안 적었는데도 그래요.(웃음) 전시회도 정말 많이 보러가고, 많이 참여도 했어요. 무플러스 때문에 다 접기도 했었지만요. 3~4년 전 정도부터 뉴욕컬렉션에 참여하는 등 해외에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사실 뉴욕에서 부티끄도 했었는데 9.11사건 때 접었어요. 그런데 제 생각에 데무 정도의 규모가 수출을 하기 좋은 것 같아요. 작은 곳들은 생산기반과 전시기반이 없어서 하기 힘들어요. 반면, 너무 기반이 크면 수출하는 양이 커야 하고요.”

-가장 데무에 대한 반응이 좋은 곳은 어디인가요?

“홍콩이요. 그곳은 100% 수입을 하거든요. 글로벌 한 곳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앞으로 홍콩에서 중국 쪽으로 뻗어나갈 것 같아요. 일본보다도 홍콩이 많이 팔리고, 북유럽, 벨기에, 독일 등지에서도 많이 팔아요. 프랑스보다 이탈리아에서 반응이 좀 더 좋고요.”

-박춘무 디자이너께서는 해외에서 활발히 활동 하시지만, 해외 진출이 꼭 필요한걸까요?

“지도를 보면 대한민국이 반도의 굉장히 작은 나라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의류 수입이 굉장히 많은데 그만큼 우리도 많이 나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재주가 많은 나라이잖아요. 하나도 꿀릴 것이 없어요. 나갈 수 있다면 나갈 수 있는 것이 좋죠. 경쟁력만 있다면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디자이너를 위해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성향마다 다르고,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다르지만 저와 비슷한 케이스의 경우, 국내 기반을 탄탄히 해놓고 나가는 것이 편해요. 국내 기반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여기서 힘을 얻어야돼요. 내실이 튼튼해야죠. 그리고 허황된 꿈을 꾸면 절대 안돼요. 바이어들은 소비자가 아니라 중간 도매업자거든요. 바이어의 선택을 당하려면 디자인도 중요하고, 가격도 중요해요. 그러려면 생산기반이 갖춰져야하고 국내에서도 자리를 잡은 상태여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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