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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장광효 디자이너 “성공? 개성이 필요하죠”

윤한슬 기자 | 2013-06-11 08:41 등록 (02-07 17:55 수정) 4,324 views
▲ 카루소의 장광효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제가 어린시절을 보낸 1950년대는 전쟁을 치른지 얼마 되지 않아 나라가 정말 못 살았었어요. 끼니를 굶는 사람들도 많은 시대였고요.”

“사실 요즘에는 피아노, 태권도, 미술 등 다양한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당시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저는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잘 쓰고, 달리기도 아주 잘 했어요. 천재라고는 생각을 안 하는데 다른 친구들과는 확연히 달랐죠.”

어려서부터 예능 계통에 두각을 보였던 장광효 디자이너는 자타공인 국내 최초의 남성복 디자이너이자 정상의 자리에 서있다.

“당시 친구들에 비하면 가방끈이 긴 편이었어요. 주위 친구들이 ‘너 대학교수나 판사나 의사하는 줄 알았는데 디자인 하는구나’라고 말할 정도로요. 그래서 제가 디자이너라는 직업에 대해 의문을 갖기도 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 직업에 대해 더 소중하게 생각하고, 자부심을 갖게 됐어요. 그리고 남들보다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되다 보니까 이 일을 30년 동안 하게 되더라고요. 대충 했더라면 10년 정도 하다 말고 백수로 남았거나 다른 길로 전환을 했겠죠. 그럼 이 분야의 1인자가 될 수 없을테고요.”


남성복계 1인자가 되다
▲ 장광효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음악, 미술 등 모든 분야에 재능이 있었는데 디자인이라는 분야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자연스럽게 미대를 가게 됐는데, 미대에서 순수회화를 하려고 보니 이미 대가가 너무 많고 제가 그 분야를 하기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기가 힘들겠더라고요. 그런데 보니까 비교적 디자인 분야가 새로운 방향으로 가기에 용이해보였어요. 사실 그 당시 앙드레김 선생님이 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 때여서 그 분의 영향을 받기도 했죠. 그래서 디자이너가 되기로 했는데 여성복이 아닌 남성복을 멋지게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왜 하필 남성복이었나요?

“저는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사람인데, 그 당시 여성복 분야에서는 이미 톱디자이너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남성복을 택했죠. 이 덕에 제가 남성복 1인자가 될 수 있었던 거고요. 사실 저는 우리나라 최초로 남성복 컬렉션을 했고, 남성복 컬렉션 창설 멤버이기도 해요.  제가 길을 개척한 이후로 후배들이 꽃을 피운거죠.”

-이상봉 디자이너께서 그 당시 남성복 디자이너는 장광효 디자이너 빼고 양복점 아저씨밖에 없었다는 말도 하셨어요.

“사실 양복점은 디자인이라기보다 장인에 가까워요. 양복점에서는 거의 비슷한 패턴으로 옷을 만드는 반면 디자인은 무궁무진해요. 여성복을 남성화 시킬 수도 있고, 요즘처럼 치마를 입힐 수도 있어요. 그런데 사실, 이런 스타일의 옷들은 제가 30년 전에 이미 다 했던 거에요. 그 시대에 획기적인 옷들은 제가 다 한 셈이죠. 이것이 점차 발전해 현재 우리나라 남성들이 세계적으로도 봤을 때 굉장히 멋스러운 편에 속하는 거고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나요?

“저는 남들이 깔아놓은 길에 숟가락 하나 얻는 것을 지루해했어요. 재미없잖아요. 그 당시 저는 젊고, 가능성 있고, 운 좋게 남들보다 조금 더 공부도 많이 했으니 새로운 것을 해야한다는 도전정신이 있었던 거죠.”

-선생님도 초반에 시행착오를 겪으셨나요?

“저는 시대가 ‘옷 장사’를 하기에 좋은 시대였고, 제가 독주를 하다 보니까 시행착오가 묻혀갔어요. 돈을 많이 벌었거든요. 사실 그 때는 경쟁력이 좋아서 옷을 만들기가 바쁘게 팔려나갔어요. 그러다보니 약간의 실수가 있었어도 티가 별로 안났죠. 하지만 만약 지금 그런 상황이 오면 문 닫아야죠.”

-돈을 많이 벌다보면 자만심이 생길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럴 수도 있죠. 너무 어린 나이에 매스컴을 많이 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받거나, 돈을 많이 벌면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저도 그런 면이 없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래도 빨리 제자리를 찾지 않았나 싶어요.”

-당시 고객들은 상류층이었나요?

“그렇죠. 거의 상류층이었죠. 강남 한 고등학교 고등학생들이 졸업식에 사복을 입고 갔었는데, 카루소 양복을 80~90%가 입고 가기도 했어요. 그래서 돈을 굉장히 많이 벌었는데 요즘 신인 디자이너들은 돈 벌기가 굉장히 힘들죠. 요즘 사람들이 멋을 안 부린 듯 부리고, 저렴한 옷들도 굉장히 많아졌으니까요. 브랜드도 정말 많고요.”

-우리나라 남자연예인이라면 선생님 옷을 다 입었을 정도라는 말을 접했어요.

“정말 많이 입었고, 그만큼 좋아해줬어요. 지금도 협찬 많이 해주고요.”

-잘 어울렸던 연예인이 있었나요?

“소지섭도 좋았고요, 현빈도 제가 캐스팅했던 아이인데 배우로 잘 성장을 했고 강지환, 이진욱 등 톱 배우들은 저희 모델 출신이라 저희 옷을 많이 입었었어요.”


성공을 위한 제언
▲ 장광효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어렸을 때부터 못하는 것 없이 다 잘하셨나봐요.

“초등학생 때는 다 잘했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봤을 때 제일 잘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교육이 획일화돼있어서 미술, 음악, 수학, 영어 등 모든 것을 기본적으로 다 배우게 되잖아요. 또한 요즘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모든 걸 다 잘하길 바라고, 다양한 스펙을 쌓게끔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까지 필요 없어요. 제가 영어 단어를 많이 외우고 수학을 잘하고 그림을 잘 그려서 지금 먹고사는 것이 아니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무언가를 잘하는 것도 좋지만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라는 것도 중요해요.”

-여러 가지를 배우다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찾게 될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런 경우도 꽤 있어요. 그런데 그것 이전에 이미 잘하는 것이 있어요. 물론 미진아도 있고, 특별히 몇 가지를 잘하는 아이들도 있지만요. 그런데 사실 세상에는 잘하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못하는 사람도 필요할 때가 있어요. 대한민국 국민 전체가 다 잘하고 1등이면 숨 막혀서 어떻게 살아요. 못살죠. 다양한 직업이 있듯이 다양한 사람이 필요한 법이에요. 세상에 귀천이 없잖아요.”

“또한 세상은 1류가 아니어도 충분히 살 가치가 있어요. 2류가 1류가 될 수도 있고, 1류가 2류가 될 수도 있거든요. 너무 욕심을 부리면 그 욕심이 화가 돼요. 욕심도 적당히 부려야 되고, ‘성장통’도 적당히 잘 활용을 해야 되고요.”

-그래도 누구나 성공을 꿈꾸잖아요. 어떻게 하면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성공하는 삶을 살기위해서는 매력이 있어야 돼요. 상황 판단도 잘 해야 되고요. 그래야 어느 분야에서 있던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어려서부터 공부도 잘하고 책도 많이 읽고 교육도 잘 받고 국사나 국민 윤리, 문화 등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해요. 요즘 초중고교생들이 삼일절이 뭔지 개천절이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아요. 말도 안되죠. 중요한 걸 모르면 어떻게 해요. 그 사람이 다른 걸 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여된 것이 많다는 뜻이에요. 리더나 선각자, 그 분야의 1인자가 되려면 두루두루 잘 알아야할 필요가 있죠.”

“그리고 성공하기 위해서는 획일화돼있으면 안돼요. 막상 젊은 대학생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부다 획일화된 생각을 갖고 있어요. 하지만 성공하려면 남다른 개성이 필요해요.”

-지금의 교육 환경에서는 개성을 갖기란 어렵지 않을까요?

“쉽지는 않지만 방법을 알고 개성을 가져야하는 이유를 안다면 개선할 수 있고, 쫓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남들과 다른 길로 가려고 하면 주변 시선이 곱지만은 않아요.

“그것이 사회가 유니폼처럼 획일화돼있어서 그래요. 요즘 세대에서는 새롭고, 남이 안하는 독특한 무언가가 있어야 경쟁력이 있어요. 획일화돼있는 그 속에서 성공하기는 힘들어요. 새로운 길을 가는 방법을 알면 쉽죠. 하지만 그 때까지는 많은 사람들의 조언이 필요하고, 많이 보고 배워야하겠죠.”

-선생님이 성공하기 위해서 중점을 둔 또 다른 부분이 있나요?

“대인관계를 맺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대인관계로 이뤄지는 일이 너무 많아서요. 다 네트워크로 이뤄지잖아요. 옛날에는 독불장군처럼 천재가 나와서 혼자 잘하면 되지만 지금 세계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혼자 잘해서 잘된 것이 아니에요. 인적 네트워크를 잘 쌓아 그 안에서 신뢰를 얻었던 덕분이죠.”

-어떻게 하면 인적 네크워크를 잘 형성할 수 있을까요?

“매력이 있어야죠. 매력이 없으면 아무리 밥을 산다고 해도 가기 싫어요. 이성이건, 동성이건, 상대방 말이 재밌고, 섹시하고, 매력을 느낄 수가 있어야 돼요. 뭔가 끌림이 필요하죠. 또한 상대방에게 받기 전에 먼저 베풀고, 밥도 사주고, 선물도 주고, 멋있는 곳도 데리고 가는 등 상대방을 즐겁게 해주면 그 사람이 끌리게 돼있어요. 그럼 그 사람이 “그 친구 참 괜찮더라, 멋있더라”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저는 그래서 좋은 인맥이 많았어요. 관리를 잘했거든요. 그런데 매일 안 만나요. 싫증나니까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이런식으로 봐요. 그리고 전화도 매일 안 해요. 일주일에 한번, 한 달에 한번 주기적으로 해줘요. 그런데 몇 번 연락 보냈는데 무심하고 관심이 없는 친구들은 ‘아웃’이에요. 아는 사람이 무조건 많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에요. 정말 좋은 사람이 얼마나 있냐는게 중요한 거죠.”

-이렇게 관리했던 인맥이 가장 빛을 발했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특히 패션쇼 할 때요. 그 분들이 거의 다 오거든요. 한 2000명 오시는데 와서 보고 박수쳐줘요. 뿌듯하죠. 반대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연주회나 공연을 하면 제가 가서 박수 쳐주고요.”

-다른 디자이너들과의 인맥은요?

“저는 컬렉션을 하는 모든 후배들한테 똑같이 메시지를 보내요. ‘힘들지만 우리 열심히하자. 우리 패션계를 위해서 힘내!’라고 보내요. 그럼 답장이 다 오죠. 여기서 누가 제일 먼저 보내느냐에 따라서 순서가 정해지는데, 맨 마지막에 오는 사람이 가장 관심이 없는 사람이에요. 근데 그런 애한테는 제가 또 제일 먼저 문자를 보내요.”

-자주 상위권을 차지하는 분이 계시다면요?

“(비욘드 클로젯) 고태용(디자이너)도 저한테 많은 관심을 보여요. 그래서 제가 많은 기회를 주는 편이에요. 누가 추천해줄 사람을 물으면 고태용을 추천해주기도 하고요. 이뻐하는 사람은 많이 있는데 자기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제가 배려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자기 처세’ 방법인 것이고요. 처세 방법이 저한테 와 닿으면 좋잖아요. 물론 고태용한테 단점도 지적해요. 그래서 저를 굉장히 많이 따르는 편이에요.”

-후배가 선배한테 먼저 연락하는 것이 순리처럼 느껴져요.

“저는 이렇게 했지만 지금 후배들은 저처럼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그래서 제가 먼저 보고 배우고, 느끼라고 이렇게 하는 거예요. ‘너 후배가 돼서 선배한테 먼저 왜 안해?’라고 하면 안돼요. 먼저 모범을 보여야죠. 명절 때, 크리스마스 때 등 먼저 연락을 해요. 느끼는 사람은 느낄 거예요. 물론 못 느끼는 사람은 ‘장광효 선생님이 왜 보냈을까?’ 이렇게 생각하겠죠.”

-이상봉 디자이너가 선배이신데, 이상봉 디자이너께도 연락을 자주 드리시나요?

“이상봉 선생님한테는 연락 잘 안 해요. 자주 보니까요(웃음). 일주일에 한 번씩 보니까 연락 하는게 오히려 이상하죠(웃음). 이상봉 선생님이 패션디자이너연합회 회장이고 제가 이사인데 협회일로 일주일에 한 번씩 회의를 하거든요.”


톱모델 보다 신인을 선호하는 톱디자이너
▲ 장광효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컬렉션 무대에 세우고 싶은 분이 있으세요?

“많이 있어요. 배우들도 많고요. 근데 거의 다 모델을 조금이라도 했던 사람들이에요. 모델들이 대부분 키가 185cm 내외이니까 비주얼이 좋잖아요. 최근 텔레비전에서 이종석을 봤는데, 이종석도 처음 제가 무대에 세운 케이스에요. 고등학교 때 친구 따라 쇼 무대 뒤편에 와있던 것을 제가 캐스팅했었어요. 좋은 애들이 다 모델 출신이에요. 감독들도 그런 애들을 선호하고요.”

-모델이 배우 등용문으로 인식되는 것 아닌가요?

“다 그래요. 모델 수명이 짧거든요. 한 5년 정도 밖에 안되요. 30살 넘어서까지 모델 하는 사람 거의 없어요. 그리고 생각의 차이인데, 모델들은 신체 조건이 훌륭해요. 카메라와 관중 의식도 참 잘하고요. 그런데 배우들은 처음에 그게 힘들어요. 그래서 모델들이 CF 찍기도 좋고, 배우 하기에도 좋은 거예요. 트레이닝이 따로 필요 없잖아요. 일반인들을 제대로 된 배우로 만들려면 꽤 오랜 시간이 걸려요. 쉽지가 않죠. 하지만 모델은 스스로 헤어, 메이크업 등도 다 할 줄 알잖아요. 이래서 차승원 같이 모델 출신 톱배우들이 탄생을 한 거고요.”

-모델계의 손실아닌가요?

“모델계의 손실은 아니에요. 저 같은 경우 모델들이 26살 정도 되면 서서히 안쓰기 시작해요. 새로운 모델들을 써야 하잖아요.”

-요즘 가장 친분이 두터운 모델이 있으신가요?

“많이 있어요. 제가 많이들 이뻐하거든요. 김재영, 장기용, 박형섭 등등 많죠. 박형섭과 장기용은 제가 캐스팅한 케이스에요. 워킹도 저희가 가르쳤고요. 김영광도 제가 데뷔시킨 케이스고요. 유지태도 길거리에서 제가 캐스팅했죠.”

-선생님이 캐스팅한 사람이 정말 많네요

“대한민국 모델 출신 배우는 제가 거의 다 캐스팅 했다고 보면 돼요. 차승원, 강동원, 유지태, 현빈, 이진욱, 강지환, 이종석, 김영광, 성준 등 제가 다 캐스팅 했어요. 제가 키워 놓으면 다른 디자이너들이 데려다 쓰는 거고요.”

-아쉬우면서도 뿌듯하시겠어요

“‘그래 가서 해라’ 이렇게 말하죠. 다른 사람한테 가면 안 되고 내 무대에만 서라고 하면 안되는 거잖아요.”

-선생님이 캐스팅한 분들이 연예계를 주름잡고 계세요. 잘 키웠다는 생각 드시겠어요.

“아유, 제가 키웠겠어요. 뚜껑을 열어준 거뿐이죠. 그래서 저는 쇼 할 때 톱모델 많이 안써요. 톱모델 한 3명, 중간 한 30%, 나머지 신인 30% 이렇게 써요. 다른 디자이너들은 신인 많이 안 써요. 못하거나 인지도가 없다고요. 그런데 저는 그 신인들이 톱모델로 거듭나는 것을 즐기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런 역할을 해줘야죠. 저는 제가 쓰던 모델 딴 곳에서 많이 쓰면 저는 그 다음부터 안 써요. 식상하잖아요.”

-그럼 선생님 쇼에 뮤즈는 따로 없는 건가요?

“3~4년 쓰다가 다른 친구로 바꾸고 그러는데 지금 현재 뮤즈는 김재영, 장기용, 박형섭 등인 것 같아요. 이 친구들이 ‘원로급’이고 톱모델이고, 나머지가 4~5명 정도가 중간급, 그리고 나머지 4~5명 정도는 신인으로 구성하죠. 지금 오프닝은 주로 김재영이 하고 있고요. 이 친구도 2~3년 지나면 정말 좋은 배우가 될 거에요.”

-김원중씨는요?

“원중이, 순간 잊고 있었네요. 원중이도 우리가 데뷔시킨거나 다름없어요. 거의 저만 1년간 썼거든요. 주근깨가 있는 게 제가 봤을 때 굉장히 ‘유러피언적’이었어요. 그 이후로 주근깨와 매력이 어필이 돼서 다른 디자이너들도 메인으로 많이 쓰더라고요.”

-유명 톱모델들이 무대에 많이 서는 이유가 있을 텐데, 선생님은 톱모델들은 선호하지 않는 이유가 있으세요?

“원중이나 (이)수혁이나 (윤)진욱이 같은 경우는 이미지들이 주로 고정돼있어요. 이미지 외에 다른 것들을 관객들이 응용을 못하는 것 같아요. 옷이 생각이 안 나고 모델만 생각나버리는 거예요. 그 이미지가 굳어져버리면 디자이너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힘들어져요. 하지만 컬렉션은 이미지에 맞는 모델을 써야 해요. 신인 모델일수록 그게 쉬워지고요. 제가 이미지를 만들어주면 되잖아요. 대중들이, 기자들이 모르는 새로운 아이에게 옷을 입히면 특이하고 신선해보이거든요.”

-선생님 무대는 신인들의 등용문일 것 같아요.

“100%는 아니더라도 항상 5명 정도는 신인을 쓰니까요. 항상 오디션을 봐서 자기만의 개성이 있는 새로운 신인모델을 써요. 저는 제가 원하는 개성을 항상 중점으로 둬요. 그리고 얼굴도 밸런스가 많아야 되고, 옷도 잘 소화해야 하고요. 이런 애들이 나중에 톱모델들이 되는 거에요. 물론 1~2명은 어필을 못하고 사라지는 시행착오가 있긴 했지만 거의 다 톱모델이 됐죠.”


디자이너 이외의 삶
▲ 장광효 디자이너 [사진=강지연 기자]

-‘안녕 프란체스카’ 드라마에 출연하셔서 그런지 좀 더 친숙하게 느껴지세요.
“사실 저도 시니컬하고 조금은 강한 이미지인데, 드라마에 나와서 그런지 대중들이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출연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어쩌다보니 출연을 하게 됐는데, 사실 안 할 수도 있었어요. 주위에서 반대를 많이 했거든요. 망가진다고. 디자이너들이 이렇게 나오는 경우도 없고, 위험하기도 하고요. 저처럼 정상에 있는 디자이너가 괜히 드라마 찍어서 그간 쌓아온 이미지나 명성이 망가지지 않을까 고민을 했는데, PD와 작가가 믿으라고 하더라고요. 좋게 이끌어가겠다고요.”

“그런데 바보스럽고, 순수하고 덜 떨어진 역을 맡은 사람한테 눈길이 더 갔나 봐요. 대중들이 유명한 사람이 망가지니까 보상 심리를 받으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웃집 아저씨처럼 생각을 하고.. 그래서 좋은 평을 받았죠. 두려움 반 우려 반이었는데 반응이 정말 폭발적이었어요. 잘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는 7개월 간 디자이너라기보다 배우였어요.(웃음)”

-연기도 굉장히 자연스러웠던 기억이 나요.

“연기를 하지 말고 하던데로 하라고 했어요. 대사도 교과서 읽듯이 하고. 사실 시나리오를 받으면 제가 연기 연습을 좀 하려고 했어요. 연기자가 꿈은 아니었지만 재미있잖아요. 그런데 대본을 당일날 촬영 1시간 전에 줬어요. 외우지 말라는 뜻이었죠.”

-드라마에 안 나오신지 시간이 꽤 지났어요.

“그 이후로 독립영화부터 시작해서 꽤 많은 작품 제의를 받았는데 다 거절했어요. 겁이 나더라고요. 물론 그 이후에 카메오로 두 번 정도 출연한 적은 있지만요. 그런데 이젠 제의도 오지 않아요. 작년까지만 해도 ‘스타킹’에 게스트로도 나가고, 음식 프로그램 등 나가긴 했었지만요.”

-드라마에 또 출연하고 싶으신 생각은 없으세요?

“글쎄요. 기회가 되면 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까지 계획은 없어요. 아주 가끔 제의가 들어오긴 하는데 나갈 생각이 없어요. 이제 바보스러운 역할은 싫고, 정말 연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디자이너라던가, 도화서에 그림을 그린다던가, 김태희처럼 사극에서 의상을 디자인 한다던가... 제가 잘하는 분야로 제의가 오면 한번 생각을 해 볼 순 있겠죠. 하지만 누가 절 불러주겠어요.”

-더이상 이루고 싶은 것이 없으신건가요?

“카루소라는 브랜드를 글로벌하게 키우는 것을 지금도 추진 중에 있어요. 중국 시장 오픈도 준비 중에 있고요. 마지막이다 생각하고 마무리를 잘 하고 싶어요. 은퇴 후의 삶도 생각을 해봐야 하고요.”

-은퇴 후 가장 하고 싶으신 거는요?

“수목원을 운영해보고 싶어요. 제 성향이 자연을 좋아하거든요. 그리고 의상 박물관을 만들어보고 싶기도 하고요. 아마 실현하게 될 것 같아요.”

-은퇴하시고 나면 카루소를 이끌어갈 후계자가 있어야 할 텐데, 후계자의 조건이 있다면요?

“물론 어려운 질문이긴 한데, 똘똘하고, 제가 원하는 데로 잘 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학벌은 크게 중요하지 않고요. 그리고 카루소를 이끌어갈 능력이 있는 사람이어야겠죠. 적임자가 나타나면 언제든지 물러날 생각이 있어요.”

-의류 시장이 점점 커져가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디자이너 브랜드가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쉬운 일은 아니에요. 옛날에 비해서는요. 사람들의 취향이 애매해요. 그래서 옛날보다 어렵겠지만 누군가는 성공하게 돼있어요. 지금 우리 후배들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데 아무리 힘들어도 그 중에도 이겨낸 사람은 끝까지 가보면 성공할 거예요. 그러니 희망을 갖고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지금 제 눈에는 누가 성공할지 보여요. 제가 이뻐하는 디자이너들은 다 성공할 거라 믿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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