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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박성진 “해외활동 뿌듯…‘난공불락’ 같은 모델 꿈꿔요”

윤한슬 기자 | 2013-08-13 08:21 등록 (02-07 17:54 수정) 8,469 views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2013 F/W 세계 4대 컬렉션에서 동양인 남자 모델 중 최다 쇼 기록을 세운 그. 유명 모델랭킹 사이트인 ‘모델스닷컴’에서 주목해야 할 남자 신인 모델 ‘HOT LIST’에 이름을 올려 눈길을 끌었던 그는 바로 모델 박성진.

국내에서는 다소 활동이 뜸했으나 지난해 뉴욕컬렉션을 시작으로 해외무대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니는 그가 지난달 귀국해 국내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짧은 체류기간으로 인해 벌써 출국을 앞두고 있는 박성진을 만나 데뷔 시절 이야기부터 해외 활동 스토리까지 그간 못다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미술학도에서 모델까지…

▲ 모델 박성진 [사진=양문숙 기자]

-성진씨는 어떤 어린시절을 보내셨나요?

“저는 공부 대신 미술 쪽으로 재능이 있던 학생이었어요. 그런데 여건상 미술 학원을 그만둬야하는 상황이 왔어요. 제가 당시 대학교 교수님이 하던 미술학원에 다녔었는데, 교수님께서 돈을 내지 않아도 되니 계속 다니라고 말씀을 하셔서 무료로 수강하기도 했어요.”

-미술은 어떻게 그만두신건가요?

“미술을 줄곧 해오다 여러 이유에서 미술을 점차 소홀히 하게 됐어요. 그래서 결국엔 그만두게 됐죠.”

-성격은 어떠세요?

“어렸을 적, 사춘기를 보내면서 성격이 약간 어두워진 것 같아요. 친구들과 있으면 밝지만 집에 혼자 있을 때는 우울해하기도 했어요.”

-요즘은 어떠세요?

“해외에 나가면서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 원래는 촬영할 때도 웃는 표정을 짓기도 힘들었어요. 지금은 많이 긍정적으로 변한 것 같아요.”

-모델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요?

“저희 사촌 형이 모 브랜드에서 일을 했었는데 형의 지인과 함께 서울서 우연히 식사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그 분이 현재 에스팀 차장님이세요. 차장님께서 일을 같이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게 제안을 하셨고, 그 때 갑작스레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일을 시작했죠. 2010년 경에 데뷔를 했는데, 그 이후로 계속해서 모델을 해오고 있어요.”

-이 분야에 관심이 없었다면 거절했을 수도 있을텐데요.

“그 당시 저는 하이패션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스트릿 웨어만 선호하고요. 그런데 사촌 형의 친한 지인이 제안을 하셨던 터라 거절을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아카데미를 거치지 않고 바로 활동을 시작한 셈이네요. 어렵진 않았나요?

“저는 모델 일이 힘들거나 어렵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물론 화보 촬영을 할 때 긴장을 한 것은 있었지만요.”

-첫 무대, 기억나시나요?

“S/S 컬렉션이었는데, 정욱준 선생님의 무대였던 걸로 기억을 해요. 그 때 당시 제 헤어스타일 때문에 문제가 있었어요. 제가 정욱준 선생님의 의도와는 다르게 머리를 잘못 잘라서 제 무대가 캔슬될 뻔 했거든요. 이후 막상 무대에 나가서는 그저 앞만 보고 걸었던 것 같아요. 긴장도 했었고, 처음이었던 탓에 조금은 어색했겠지만 다행히 실수는 없었어요.”

-무대를 마치고 난 뒤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이게 뭐하는 건가 싶었어요(웃음). 제 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때 당시에는 제가 모델 일에 애착이 없었어요. 대단한 일인지도 몰랐고요.”

-국내서 어떤 활약을 펼치셨나요?

“처음 데뷔를 하고, 첫 잡지를 찍었는데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덕분에 모든 남성 잡지와 함께 촬영을 진행했고요. 쇼는 나름대로 많이 서긴 했는데, 제가 이미지가 맨쉬하고, 강하다보니까 ‘자뎅드슈에뜨’ 같은 브랜드 쇼에는 못 서봤어요.”


■ 갑작스런 해외 진출, 그리고 성공

▲ 모델 박성진 [사진=양문숙 기자]

-갑작스레 해외로 건너가셨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집안 환경에도 문제가 있었고, 제가 활동은 오랫동안 하지 않았지만 약간의 괴리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중들은 저를 성공한 모델로 생각하셨는데 제 삶의 질은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어찌보면 한국에서 일하기 싫어서 도피처로 해외를 택한 것일 수도 있는데, 해외에서 성공할 거란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영어도 나름대로 잘 했었고요. 결과적으로는 제 예상이 맞았지만요.”

-언제 처음 해외에 가신건가요?

“작년 6월달에 처음 갔어요.”

-해외 진출을 꿈꾸는 모델들이 많은데, 꿈꾼다고 다 성공하기는 힘들잖아요.

“그 자세, 마음가짐의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꿈꾸고 정작 해외에 나와도 동양인 모델들은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해요. 밥을 다 같이 먹을 때도 맨 마지막에 받아서 혼자 먹는다던가, 어디론가 이동할 때 줄을 설 때도 맨 마지막에 서 있는다던가 그래요. 자신의 끼를 못 보여주는데 잘 풀릴 리가 없죠.”

“그리고 몇몇 모델들은 무작정 해외에 가서 얼굴 보여주고 승부수를 띄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저 같은 경우, 비율이 좋은 것도 아니고, 몸매가 뛰어난 것도 아니에요. 대신 저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캐치해내서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자신이 있거든요. 똑똑해야할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잘 했었던 것이 해외에서 성공한 비결 중 하나이겠네요.

“그것도 한 몫 했죠. 디렉션이 왔을 때 그것을 듣고 캐치를 해내야 하는데 영어를 못하면 안 들리잖아요. 그런데 사실 저도 첫 3개월은 힘들었어요. 특히 현지인들 앞에서는 영어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데 3개월이 지난 후 말문이 트였어요.”

-해외 첫 데뷔는 어떤 활동이었나요?

“‘Vogue of Japan’ 잡지를 통해서 해외에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어요. 사람들이 모두 잘 대해주시고, 저를 존중해주시고 가치있는 사람으로 대해주셔서 정말 좋았어요.”

-해외에 진출하자마자 일이 잘 풀렸던 것은 아닐 것 같아요.

“첫 3개월은 비자를 준비하느라 일을 못 했고요, 비자를 취득하자마자 일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들어온 편이었어요.”

-그 비결이 있다면요?

“저는 신체조건이 좋지 않아 제 자신을 꾸미려고 많은 노력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관계자분들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사실 저는 미국에 가기 전부터 ‘청청패션’이라던가 멜빵에 부츠, 모자를 썼는데, ‘빵모자’를 쓰더라도 남자는 왼쪽이 쳐져야된다던가 심지어 청바지의 실밥정리까지 하나하나 규칙이 있는데, 이런 거에 완벽히 부합하는 옷만 입고 다녔어요. 단점이 보이지 않게요. 그러다 보니 쇼가 끝나면 스트릿 포터분들이 많이 관심가져주셨어요.”

-다른 동양인 모델과 차별화된 장점이 있다면요?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바를 잘 캐치해내는 것 같아요. 또한 예의바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하고요.”


■ 해외 무대를 누비다

▲ 모델 박성진 [사진=양문숙 기자]

-2014 S/S 맨즈컬렉션에서 굉장한 활약을 하고 오셨어요. 특히 기억에 남는 쇼가 있나요?

“저는 에르메스 쇼가 기억에 남아요. 일단 분위기 자체가 차원이 달랐어요. 다른 쇼들은 너무 화려한 사람들이 많고, 관객들이 핸드폰을 많이 보고 다소 어수선한 분위기거든요. 노래나 의상 콘셉트가 저랑 잘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데 에르메스는 점잖은 분들이 많이 오셨어요. 파리의 한 대학에서 쇼를 했었는데 캠퍼스도 다 보이고 굉장히 고급스럽게 쇼를 했었어요. 에르메스는 세 손가락안에 드는 럭셔리 브랜드이잖아요, 제가 거기에 섰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굉장하죠.”

-에르메스 쇼에 서게된 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요?

“그 당시에 너무 바빠서 크게 기뻐할 틈도 없었어요. 제가 14개의 쇼에 섰거든요. 파리, 밀라노에서요. 백인 모델들도 두 도시 합쳐서 5개 정도만 해도 굉장히 성공한 걸로 생각을 하는데 14개 정도면 정말 많은 거예요. 동양인 중에서는 제가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도 두 시즌 연속 최다기록을 보유하고 있어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세요.”

-일반적으로 동양 모델은 그렇게 많은 무대에 서기 어려운데, 성진씨는 굉장한 기록을 갖고 계시네요.

“그렇죠. 운이 좋았어요. 중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시장이 커지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양인 모델을 기용할 수밖에 없어요. 흑인도 마찬가지고요. 그런데 한 무대에 극소수의 동양인 모델을 기용하다보니 동양인 모델끼리도 경쟁이 치열하죠.”

-캘빈클라인 캠페인에 참여하셨네요.

“캘빈클라인 진과 캘빈클라인 캠페인에 모두 참여했어요. 캘빈클라인은 미국 패션의 얼굴이나 다름없고, 톱모델로 가는 등용문이라는 말이 돌 정도인데, 이미 두 개의 캠페인에 참여를 했고, 두 개를 더 하게 되요. 총 4개를 하는 셈인데, 정말 천운이죠. 여태 4개를 한 동양인 모델이 한명도 없었거든요.

-어떤 매력덕분일까요?

“저는 대게 ‘쿨한 아시아인 외모의 전형’이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꾸며주는 데로 이미지가 변하고, 악동같은 이미지를 외국인들이 좋아해서 잘 풀리고 있는 것 같아요.”

-해외에서 겪은 일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이번 시즌에 제가 한 친구와 함께 주말 밤에 샹젤리제 거리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어요. 그 친구가 당시 모 브랜드의 검은색 시계를 차고 있었는데 이 시계는 검은색이 희귀해요. 그런데 갑자기 프랑스인 두 명이 다가오더니 제 친구에게 친한 척을 하다 그 시계를 훔쳐 달아나는 거예요. 그래서 시계를 훔쳐간 사람을 15분 동안 전력질주해서 쫓아간 끝에 범인을 잡고 시계를 돌려줬던 기억이 나요. 좋은 일했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각 도시마다 특색이 다를 것 같아요.

“프랑스 사람들은 영어를 하지만 저를 도와주려고 안하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영어를 잘 못하지만 저를 도와주려고 해요. 이탈리아 클라이언트들은 친근하고요, 프랑스 인들은 다소 스트릭트하죠. 뉴욕사람들은 항상 친절하고요.”

-이수혁씨와 인터뷰를 하던 중 성진씨 얘기가 나오기도 했어요. 해외에서 활동하다보면 우리나라 모델들을 만나기도 하나요?

“혁수(수혁) 형과는 파리에서 지화섭이라는 친구랑 자주 만났었어요. 술도 마시고요. 자주 붙어있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많이 나눴어요. 혁수 형이 욕심이 많은 저를 보며 ‘어렸을 적 내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해주기도 했고요,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외국에서 우리나라 모델들 만나면 반가우시겠어요.

“그럼요, 반갑죠. 우리나라에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기분이고요. 한편으로는 처음 해외에 온 친구들은 걱정도 되고요.”

-동양인 모델 중에서는 성진씨가 ‘톱’인가요?

“그렇게 봐주시면 감사하죠. 제 스스로 말하기는 부끄럽지만 현재로써는 제가 일을 제일 많이 하고 있으니 부정은 하지 않을게요(웃음).”


■ 금.의.환.향.

▲ 모델 박성진 [사진=양문숙 기자]

-금의환향을 하고 귀국하셨는데, 뿌듯하시겠어요.

“뿌듯하죠. 아무도 제가 좋은 결과를 나을 거라고 예상을 하지 못했거든요. 이 사실이 제게 동기부여가 됐고, 더 열심히 할 수 있게 됐어요.”

-성진씨의 입국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내 모델들이 긴장 모드에 돌입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만큼 성진씨의 파급력이 크다는 뜻이겠어요.

“모델들, 패션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사실 대중들에게 저는 인지도가 별로 없어요. 패션에 관심있는 분들만 저를 아시고요. 그 분들이 긴장해주시면 저야 감사하고 좋죠. 그만큼 제가 많이 성장했다는 뜻이니까요. 그런데 정작 저는 잘 못 느끼겠어요.”

-오랜만에 한국에 오셨는데, 체류기간이 짧아서 아쉬우시죠?

“정말 너무 아쉬워요. 부산에 더 있고 싶었어요. 친구들도, 가족들과도 어울리고 싶었는데 시간적 여유가 많지 않았어요.”

-데이트도 하셔야 되잖아요.

“데이트는 틈나는데로 하고 있어요(웃음). 그 분도 바쁘고, 저도 바쁘기 때문에 서로 시간 맞을 때마다 봐요.”

-한국 활동에 비교적 소홀하셨는데, 아쉬움은 없나요?

“아쉬움 있죠. 당연히. 제가 해외 활동을 많이 했어도 대중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거든요. 만일 한국 활동과 병행하면 제가 해외에서 한 일들을 어필할 수 있는데 병행을 하다보면 메인 마켓의 일을 하나 놓치게 되니까 하나 포기해야하는데, 아쉽죠.”

-병행할 생각은 없으신 건가요?

“네. 일단 해외에 갔으니까 끝을 봐야죠. 물론 중간 중간 한국에 와서 잠깐씩이나마 활동하겠지만요.”

-다시 해외에 나가면 어떤 활동이 예정돼있나요?

“뉴욕패션위크 캐스팅 기간이 곧 시작돼요. 그래서 캐스팅 다니며 패션위크를 준비하고, 패션쇼를 하게 되겠죠.”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어떤 자질이 필요할까요?

“저도 아직 성공을 한 것이 아니고, 성공으로 가는 중이긴 한데 제가 가장 못했던 것이 ‘인간관계’였어요. 이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술도 적게 마셨으면 좋겠고요.”

-해외 진출을 준비하는 모델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국내에서 자신만만한 태도가 해외에서까지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외국에서 의기소침해하지 않고, 언어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고, 건강관리를 잘 했으면 좋겠어요.”

-언어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에요. 저 같은 경우에는 CNN을 본다던가, 팝송을 많이 들었어요. 그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앞으로 어떤 활동 하고 싶으세요?

“저는 하던데로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시계, 술 브랜드 화보 찍고 싶어요. 남자모델들의 ‘끝판왕’과도 같은 브랜드가 향수, 시계, 술이거든요. 향수는 찍었으니 시계, 술만 남았네요.”

-언제까지나 모델로 남을 순 없잖아요.

“저는 다른 길로 가려고요. 몇 가지 생각 중인 일이 있어요. 패션과 전혀 관계없는 일을 하게 될 수도 있고요.”

-어떤 모델로 기억에 남고 싶으세요?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는 꿈이 사람들 기억에 남는 모델이거든요. 굳이 말하자면 ‘난공불락’. 절대 이길 수 없었던 모델, 메인 마켓에서 가장 성공적이었던, 한국을 가장 많이 알렸던 모델로 기억됐으면 좋겠어요. 모델계 레전드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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