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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김무영 “해외 진출? ‘운’의 영향이 크죠 ”

윤한슬 기자 | 2013-08-20 09:15 등록 (02-07 17:54 수정) 3,706 views
▲ 모델 김무영 [사진=양문숙 기자]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저는 데뷔 8년차인데요, 기존 모델들과는 여태까지의 과정이 좀 달라요. 저는 처음부터 일을 많이한 케이스가 아니거든요. 데뷔 초때는 너무 어렸을뿐더러, 제가 모델이라는 인식조차 뚜렷하지 않았어요. 그러다 대학교 졸업작품쇼로 다시금 열정을 느껴 마음을 다잡게 됐죠.”

모델 김무영의 이야기다. 그는 ‘2011 제20회 슈퍼모델 선발대회 남자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뒤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2014 S/S 밀라노 컬렉션’에까지 등장해 해외에서 승승장구 하고 있다.

그는 국내에서보다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은 케이스로, 다른 모델들과는 조금 남다른 히스토리를 가졌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가 속해있는 모델 에이전시, 디씨엠(DCM)을 찾았다.


■ 호주 유학생, 모델의 길을 걷다

▲ 모델 김무영 [사진=양문숙 기자]

-모델의 꿈을 꾼 계기가 있나요?

“제가 고등학교 때 호주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그런데 그 곳에서 한국에서 오신 모델을 한 분 만났었는데, 제게 에이전시가 어디냐고 물으시더라고요. 제가 당시 모델이 아니었는데도요. 그래서 아니라고 했더니 제게 모델을 한번 해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이 후 그곳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문득 그 일이 떠올랐어요. 그 분이 하신 말씀을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모델 일을 시작하게 됐죠.”

-데뷔를 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연 군대에 입대하셨어요.

“대학교 졸업작품쇼로 마음을 다잡고 국내에서 여러 일을 하기 시작했지만 외로움을 느꼈었어요. 제 친구들이 군대로 떠나갔을 뿐더러 지금 (박)형섭이나 (박)성진이 같은 친구들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기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군 입대밖에 없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군대에 급히 지원을 해 21살에 군대를 가게 됐어요.”

-한 블로그에서 군대 동기가 무영씨와 관련된 글을 게재해 화제가 됐어요. 군대에서부터 영어공부를 하셨다면서요.

“군대에서 여러 매체를 통해 한혜진 선배처럼 많은 선배님들이 해외 활동 하는 모습을 접하며 자극을 받게 됐어요. 그때부터 뉴욕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키웠고, 저는 군대에서 행군 갔다 온 이후에도 짬을 내 영어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어요.”

-그 글을 보셨나요?

“네. 사실 저도 깜짝 놀랐어요. 연락은 안하지만 저를 이렇게 기억해주니 뿌듯하더라고요.”

-이 후 뉴욕에 가셨나요?

“네. 사실 부모님께서는 저의 뉴욕행을 반대하셨기에 전혀 도움을 안 주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전역을 한 뒤 어렸을 때부터 세뱃돈 모은 것과 군대에서 모은 돈 600만원을 가지고 뉴욕에 가기로 결심했어요. 제가 모델을 시작하던 시절 받은 책에 모델 에이전시가 정리돼 있었어요. 90년대에 정리된 것이긴 한데 그책 한 권과 포트폴리오 십 여장을 들고 2009년 10월에 뉴욕으로 무작정 떠났죠.”

-뉴욕에서 어떤 성과가 있었나요?

“사실 저는 타인들에게 저의 뉴욕행을 말하진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무언가 있을거라고 확신했어요. 원래는 그곳에서 계속 머물 생각이었지만 두달 반만에 들어왔어요. 뉴욕이라는 도시가 쉽지 않더라고요. 제 일과를 제가 만들지 않는 이상 일과가 없었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브라이언파크 옆에 있는 국립도서관에서 영어공부를 하고, 오후에는 파크로 나와 사색을 하는 게 저의 주 일과였죠.”

-일을 전혀 못 한 건가요?

“그런 셈이죠. 사실 노력은 많이 했었어요. 그곳에 최대 에이전시가 있는데, 제가 그곳의 주소를 알고 있어서 당당하게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 건물에 출입하려면 네임리스트에 이름이 있어야 되는데 저는 당연히 없었죠. 그래서 경비에 출입을 제지당했어요. 제가 한번만 들어가서 저를 어필하고 싶다고 아무리 사정해도 안되더라고요.”

“이 후 그 앞 스트릿을 계속 어슬렁 걸어다녔어요. 일주일에 4번이상이요. 그러더니 어느날 경비가 나와 ‘왜 여기에 자꾸 오냐, 네임 리스트에 없는데, 다시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끝끝내 그 에이전시와는 인연이 닿지 못했어요.”

-뉴욕에 다녀온 이후 달라진 바가 있나요?

“그 이후 한국에 돌아왔는데 어느새 보니 제 시야가 정말 달라져 있더라고요. 뉴욕에서 아무 일도 없었지만요. 다른 모델 친구들은 모델을 돈으로, 직업으로 생각했고 저는 모델이 저의 의식주를 해결해주지 않는 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신 제가 시작한 일이니 도전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고,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했죠.”

-이 후 슈퍼모델 대회에 나가신 건가요?

“사실 슈퍼모델 대회에 지원하기 전, 많은 정보를 수집해 홍콩 마켓에 이미 도전장을 내밀었어요. 그런데 그 때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최초로 남자 지원자를 모집한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홍콩에만 안주할 수 없으니 여기에도 자료를 넣었는데, 홍콩보다 이 대회에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그래서 이 대회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죠.”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대회 1차 때는 정말 긴장했는데 2차 때는 자신감이 있었어요. 정말 열심히 준비했거든요. 트레이닝도 열심히 하고, 식이요법도 철저하게 했어요.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시기가 바로 이때인 것 같아요. 예전에 다니던 학교에 찾아가서 교수님께 조언을 구하기도 했고요. 열심히 했더니 결국 제 목표였던 본선에올랐어요. 그 이후부터는 정말 즐겼던 것 같아요.”

-최우수상을 받으셨는데, 예상을 하셨나요?

“최종심사 때 보니 지원자들이 다들 너무 멋있어졌더라고요. 대회를 거듭할 수록 다들 성장을 한거죠. 그래서 사실 저는 ‘아 나는 아니구나’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했어요. 그리고 나서 부산에서 최종 Top 8을 선발했는데, 수상자들이 호명될 수록 제가 상을 받을 거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슈퍼모델 대회 이후 국내 활동이 많아 지셨을 것 같아요.

“사실 이 대회 이후 한 번의 시련이 찾아왔어요. 저는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 남자 최우수상이란 타이틀을 가졌어요.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 했던 일의 반 정도밖에 못 했어요. 대상이 남자이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저는 묻히는 거예요. 기대가 컸던 만큼 정말 시련을 많이 받았어요. 이 일이 잘되면 홍콩도 안 가고 내가 원했던 방송 일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모 화장품 브랜드와 1년을 계약해 활동을 했지만 이 외의 활동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많이 아쉬웠죠.”


■ 홍콩, 싱가포르 그리고 밀라노까지

▲ 모델 김무영 [사진=양문숙 기자]

-이 후 돌연 홍콩으로 향하셨어요.

“마침 그 시기에 홍콩에서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당시 그 회사에 다니엘 헤니씨가 있었는데, SBS와 협의 끝에 원만하게 조율이 되서 홍콩에 가게 됐죠.”

-홍콩에서는 어땠나요?

“다행히 홍콩에서 일이 정말 잘 풀렸어요. 홍콩을 기점으로 중화권에서 여러 컬렉션 무대에 섰고요. 이 때가 본격적인 해외 활동 시작이었어요. 그러면서 해외 활동의 야망이 커졌고, 다른 모델들과도 많이 친해져서 정보도 많이 받았어요. 한국에서 에이전시의 도움 없이 제 혼자 힘으로 다 했는데도 재밌더라고요.”

-대신 한국 활동은 더더욱 못하게 됐어요.

“네. 해외에서 일하다보니 한국 시장과 점점 더 멀어진 것 같아요. 귀국하면 아는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컬렉션에 간혹 서기는 했는데,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주로 휴식을 취했죠.”

-아시아에서 각광을 받은 이후 밀라노로 진출했어요.

“누구나 막연하게 밀라노에 간다고 꿈을 꾸는 것 처럼 저도 언젠가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가려고 했던 한 시즌 전에 김원중 씨를 비롯해 한국 모델들이 밀라노에서 엄청난 각광을 받았어요. 그 시기를 놓쳐서 정말 아쉬웠죠.”

“저는 그 다음 시즌에 유럽에서 저의 모델 활동을 도와줄 ‘마더 에이전시’를 찾았어요. 당시 에이전시가 없는 상태였거든요. 유럽 마더 에이전시의 도움을 받아 밀라노에 에이전시를 잡게 됐어요. 이후 한국에 들어와서 기본적인 모델 트레이닝 등을 거쳐 밀라노에 가게 됐죠.”

-먼저 승승장구한 다른 모델들을 보니 어떠셨어요?

“저랑 같은 나이인 원중씨를 비롯해 ‘87라인’ 친구들이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박성진씨가 뉴욕에 있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그런데 그 분들을 밀라노에서 만났어요. 원중씨는 ‘존 리치몬드’ 캐스팅에서 만났었고, 성진씨랑은 ‘비비안웨스트우드’ 캐스팅에서 만났어요.“”

“캐스팅 동선이 비슷하다보니 서로 마주칠 일이 많아 얘기도 많이 나누고 뉴욕에 대한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성진씨는 동생이지만 외국에서는 저보다 먼저 잘 된 선배에요. 제가 뛰어넘고 싶은 상태죠. 저도 뉴욕진출을 준비 중이고요. 그 친구들을 보면 대견하면서도 정말 멋있어요.”

-아시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할 때 뉴욕에 다시 가볼 생각은 없었나요?

“아니요. 제가 미리 동선을 정해놨었거든요. 홍콩, 중화권, 싱가포르 순으로요. 홍콩이 가장 근접한 나라이고, 마켓도 커요. 그 다음이 싱가포르이고요. 그래서 싱가포르 이후 유럽, 특히 밀라노, 바르셀로나, 독일, 그 다음 뉴욕이라는 동선을 정해놨었죠.”

“그런데 제가 파리에서 뉴욕에 가야 이곳에서 비교적 일을 쉽게할 수 있다는 말을 들었어요. 제가 혼자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뒤틀려버린 거예요. 뉴욕을 먼저 가야 유럽에서 좋아하고, 일하기 쉬운거죠. 대표적인 예가 박성진씨에요.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 일을 끝내고 난 뒤 유럽 각 국가에 다 에이전시가 잡혔어요. 제가 체류하면서 활동하는 ‘인타운’은 밀라노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활동해야죠. 그리고 뉴욕은 제가 ‘스톤 아일랜드’라는 브랜드의 캠페인을 찍었는데 그 캠페인이 오픈되면 뉴욕은 인타운이 쉽게 될 거라 믿어요. 이제 각광을 받을 차례죠.”

-그런데 막상 밀라노에서는 한 개의 무대에만 섰네요.

“네. 저는 이번에 ‘존 리치몬드’ 쇼 하나밖에 못 섰어요. 사실 다른 쇼도 설 수 있었는데, 존 리치먼드 쇼와 쇼 시간이 비슷해서 포기할 수밖에 없었죠. 핑계로 들릴 수는 있겠지만 이유가 있어요. 현지에서 캐스팅 기간이 6일 가량 되는데, 6일 중에 이틀을 스톤 아일랜드 캠페인 촬영에만 매진했어요. 그래서 정말 아쉽죠. 제가 목표로 했던 쇼는 ‘디스퀘어드’ 쇼였는데 그 캐스팅에 조차 못 가서 미련이 정말 많이 남아요.

-캠페인을 포기하지 그랬어요.

“제가 아무리 쇼에 서고 싶어도 캠페인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에요. 캠페인은 모델을 더 알리기가 쉬워요. 쇼는 모델이 20명에서 25명 가량 서는데 캠페인은 아시아 모델 1명 정도밖에 없거든요.”

-패션쇼 당 동양인은 한 두 명 정도밖에 무대에 못 선다고 들었어요.

“사실 요즘 한국인 모델들의 비중이 중국인 모델을 이겼어요. ‘꼬르넬리아니’라는 쇼에는 한국인이 세 명이 들어갔어요. 원중씨, 성진씨, 태환이. 그렇게 세명이나 서더라고요. 이제는 한국 모델의 시대가 온 것 같아요. 앞선 모델들이 잘해놨기에 이런 시대가 왔겠죠.”

-존 리치몬드 쇼를 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나요?

“한국에서 박종철 선생님 쇼로 데뷔를 했는데, 천국을 걷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밀라노에서 쇼를 했을 때 첫 데뷔쇼 때 느낀 기분을 다시 느꼈어요. 정말 꿈같았어요. 부담감도 엄청 컸고요.”

-쇼가 끝나갈 무렵,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저희 쇼에 톱 모델이 3명이 있었어요. 그런데 피날레 때 그 친구들과 제가 동일한 라인업인거에요. ‘얘네들과 내가 한 무대에 같이 서있는구나’라는 걸 느꼈죠. 너무 행복하고 기뻤어요.”

-쇼가 끝난 후 무엇을 하셨나요?

“런웨이를 다 돌고 들어왔는데 백스테이지가 파티장으로 변했어요. 기쁜 마음으로 샴페인 한잔을 마시고 호텔에 들어갔는데, 8년 동안 모델을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한 번에  풀리는 기분이었어요. 몽롱하고 먼 산을 봐도 너무 평온하더라고요. 정말 마음이 편해졌어요. ‘아, 내가 원하던 걸 정말 끝마쳤구나. 내가 밀라노 패션위크를 오늘 해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좋았어요. 그 어떤 쇼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어요.”


■ 못다한 이야기

▲ 모델 김무영 [사진=양문숙 기자]

-어떻게하면 캐스팅에서 성공할 수 있을까요?

“밀라노에 입성한 뒤 부터는 ‘운’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컬렉션의 콘셉트에 맞아야하는 거죠. 1500명~2000명 정도 캐스팅을 보는데 클라이언트가 한 눈 파는 사이에 오디션을 보는 모델은 운이 없는 거예요.”

“저도 입장을 바꿔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클라이언트고 모델을 보는 입장이라고요. 모델들은 길면 3시간정도 기다리는데 막상 캐스팅장에서는 10초안에 결정이 나요. 괜찮은 모델을 필터링하겠지만 필터링 된 모델도 50명이 넘어요. 천명이 훌쩍넘는 모델 중 50명을 뽑기도 힘들 거예요. 어찌보면 놓치는 사람도 있겠죠.”

-순서도 중요할 까요?

“저는 순서의 영향도 있다고 봐요. 만약에 제 앞에 클라이언트의 마음에 들지 않는 동양인 모델이 있어요. 그럼 저도 그들과 똑같이 취급을 받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모델들을 보면 어느 정도 간격을 두고 들어가는 경우가 있어요. 다 경험에서 우러나는 거죠.”

-존 리치몬드 캐스팅은 어땠나요?

“그 때는 오픈 캐스팅이라 한국인 모델이 다왔었어요. 제 앞에 노마가 있었고, 제 뒤에 김한수, 김원중, 유혁재 이렇게 3명이 있었어요. 그만큼 오픈 캐스팅에는 모델이 정말 많이 오는데, 한 조로 5명씩 들어가서 한 명씩 바로 워킹을 보여줘요. 걷다가 마음에 안 들면 클라이언트들이 ‘넥스트’를 외치죠. 그런데 저는 워킹을 했는데 ‘넥스트’를 듣지 않고 한번 더 걷고 사진도 찍었어요. 그 때 감이 왔죠. 이런 과정이라면 60%는 피팅까지 할 수 있다고 보면 되요.”

-어떤 면을 잘 봐주셨을 까요?

“사실 저는 존 리치몬드라는 브랜드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었어요. 나중에 쇼 영상을 보고 인터넷에 검색도 해봤는데, 제가 원했던 아르마니나 디스퀘어드, 캘빈클라인과 비슷한 라인이더라고요. 제가 그간 일하면서 이런 라인의 쇼는 다 해봤어요. 딱딱하고 중후하고, 댄디한 쇼도 해보고 ‘영’ 한 것도 했지만 제 이미지는 딱 존 리치몬드에 맞아요. 캐주얼틱한 댄디랄까요? 모델들 체형이나 생김새를 보니 제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듣기로는 끼를 얼마나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들었어요.

“제 생각은 좀 달라요. 끼보다는 눈빛이에요. 자신감이요. 짧은 시간내에 캐스팅이 끝나기 때문에 끼를 보여줄 틈이 없어요. 그리고 끼가 있어도 콘셉트에 맞지 않는 모델은 캐스팅되기 힘들기 때문에 콘셉트에 맞는 브랜드를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죠.”

-해외에서 생활하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저는 ‘패킹’이 힘들었어요. 밀라노에서 적응하기 힘들었던 찰나에 마침 로마에 일이 생겼어요. 그래서 밀라노에서 한 달 좀 넘게 있다 로마로 넘어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마지막 날까지 스케줄이 있어서 촬영장에 캐리어를 끌고 촬영하러 갔어요. 정말 힘들었죠. 그리고 다시 밤기차를 타러 기차역까지 가서 야간기차를 타고…. 로마에 아침에 도착했는데 어디로 어떻게 가야하는 지도 참 막막하더라고요.”

-해외에서 1년 반 동안 생활한 만큼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제가 로마에 2주정도 체류를 한 뒤 파리로 넘어갔어요. 당시 파리에서 한인민박에 묵었었는데, 거기에 어르신 두 분이 오셨어요. 그런데 어느날 그 분들과 술 한잔을 하게 됐는데, 어르신 중 한 분이 문득 제게 파리 노숙자들의 입장이 돼본 적 있냐며, 1유로라도 벌 수 있겠냐고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그러면서 함께 동냥을 하자고 하시는 거예요.”

“저는 밀라노에서 쇼를 마치고 온 모델이었는데, 파리 한복판에서 동냥을 했죠. 물론 어르신들은 제가 모델인 줄 모르셨지만요. 저는 1센트라도 받겠다는 심정으로 정말 노력했어요. 30분 가량 맨 바닦에 무릎꿇고 있었는데, 결국 단 한 푼도 못 벌었어요. 그 어르신도 마찬가지였고요.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이고, 한국에서는 절대 못하는 일이라 더욱 기억에 남아요.”

-러브스토리는 없나요?

“계속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다보니 길게 이어지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저는 23살 이후로 연애를 안했어요. 연애를 할 틈이 없었던 것 같아요. 뉴욕에 다녀온 뒤로는 슈퍼모델 선발대회 기간이었고, 그리고 잠시 있다가 해외로 갔거든요. 한국에 잠시 왔다가도 금방 해외로 다시 나가고요. 이러다보니 시간이 금방 갔어요. 일 때문에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적응도 됐고요. 물론 가끔 외롭기도 하고, 데이트도 해보고 싶은데, 저와 잘 통하는 사람을 못 만나봤어요.”

-이상형은요?

“일단 저와 잘 통해야되고요, 저보다 뛰어난 면이 있는 사람이어야 해요. 제가 모르는 분야에서 저를 가르쳐줄 수 있는 그런 분이요. 운동이 됐던, 뭐가 됐던간에요. 그래서 여자친구가 없었나봐요(웃음). 열심히 일하다보면 나타나겠죠?”

-당분간 한국에서 활동을 하니 나타날 가능성이 있겠네요.

“저는 20대 목표를 정해놨어요. 파리에서 빵먹기, 하와이 서핑하기, 뉴욕에서 쇼핑하기, 밀라노에서 모델하기, 스페인에서 클럽가기, 런던에서 축구보기 그리고 한국에서 여자친구 만들기에요. 현재 뉴욕, 파리, 밀라노에서 이뤘으니 4개 도시에서만 더 이루면 돼요. 아직 30대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실 여자친구 만드는 것이 꽤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 모델 김무영 [사진=윤한슬 기자]

-4대 컬렉션 중 2개 컬렉션이 목표이시네요.

“4개 컬렉션을 다 하면 멋있죠. 그런데 파리에서는 저와 어울리는 쇼가 별로 없어요. 루이비통, 지방시 정도? 그래서 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파리에서 뉴욕에서 일을 하고 오면 파리에서 일을 하기 수월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제 마더 에이전시도 뉴욕부터 염두에 두고 있고요.”

“사실 그간 저는 다음 스텝을 짜놓는 편인데, 밀라노 다녀오고 나서 그 열정이 풀려버린 듯한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지금 한 템포 쉬고 다시 나가려고요. 사실 밀라노를 가는 것 외에는 정해진 바가 확실히 없어요. 홍콩에서도 저를 부르고 있고, 싱가포르에서도 마찬가지일텐데, 이 곳에 가게 되면 또다시 제가 했던 일이 반복되는 거 잖아요. 그렇다보면 제가 제 일에 안주할 가능성이 생기는거죠. 안전한 길이니까요. 그래서 일단은 저한테 맞고 저한테 유리한 밀라노, 뉴욕부터 가려고요.”

-당분간 예정돼있는 활동이 있다면요?

“이번 시즌은 국내활동을 위주로 하게될 것 같아요. 명품 브랜드들과 이미 작업을 한 것도 있고, 예정돼있는 바도 있어요.”

-해외에 나가셔야 하는데, 보완점이 있다면요?

“보완해야한다기 보다 이제는 노하우를 알았으니 그거에 맞게 준비해서 나가야죠. 캐스팅을 저에 맞는 브랜드를 골라서 가는 거요. 그리고 오픈 캐스팅은 회사에서 제게 알려주지 않아도 누구나 갈 수 있다는 것, 정보만 알면 그 캐스팅에 갈 수 있어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F/W 시즌에 맞게 좀 더 슬림한 몸매를 만들어야죠.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줄 수도 있고요.”

-직전 시즌에서는 캠페인 때문에 많은 캐스팅을 놓쳤으니 이번에는 각오가 남다르겠어요.

“그렇죠. 그 때 정말 아쉬웠어요. 저는 홍콩에서 조르지오 아르마니씨를 만나서 악수도 했었어요. 제가 밀라노를 가겠다고 얘기도 했고요. 그런데 막상 밀라노에 가니 아르마니 캐스팅에 못 갔죠. 얼마나 안타깝겠어요. 돌아오는 시즌에 반드시 가야죠. 디스퀘어드의 아시아 최초 모델도 욕심이 나고요.”

-가능성은요?

“함부로 얘기 안할래요. 하지만 자신은 있어요. 밀라노 에이전시에서 제 신체 사이즈를 측정할 때 저를 ‘Mr. 아르마니’라고 불렀어요. 그래서 당시 더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아르마니에서는 신인을 기용할 때 모티브로 삼는 브랜드가 스톤 아일랜드라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더욱 내심 자신이 있어요.”

-그 이후 계획은요?

“저는 모델로서 더 올라가는 것 보다는 박수칠 때 떠나고 싶어요. 내년에는 방송 일도 염두에 두고 준비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모델로서는 돌아오는 시즌을 거의 마지막으로 생각하려고요.”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텐데요.

“제가 생각한 것은 여기까지지만 생각보다 일이 잘 풀려서 뉴욕에 가게 된다면 좀 더 연장이 될 수 있겠죠. 사실 제 최종 꿈은 모델스닷컴 50위안에 들어가는 거얘요. 계속 제 꿈을 향해 나아갈 수도 있지만 대학원 준비도 해야 되거든요.”

-대학원은 왜요?

“제가 한국에 와서 모델 관련 강의를 두 번 했었어요. 저는 원래 교육자를 하고자 하는 생각이 있어서 석사학위를 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느낀 바가 많기 때문에 모델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바가 많고, 여태 강의를 하면서 그런 것들을 알려주기도 했어요. 저는 제가 그들에게 팁을 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럼 최종꿈은 무엇인가요?

“방송은 하고 싶지만 저는 연기가 목표는 아니에요. 저의 롤모델은 이선진 교수님이에요. 모델로서 프라이드를 가지고 방송도 하시고, 학생도 가르치는 분이요. 제가 방송에 나오게 되면 이선진 교수님이나 장윤주씨처럼 모델로서 자부심을 갖고 활동을 하고 싶어요. 아직 제가 해야할 일이 많아요. 다만 모델로서의 베이직 커리어는 구축이 돼있으니 석사학위 취득에 매진을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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