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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정욱준 디자이너 “샤넬·루이비통 같은 브랜드 만들고 싶어요”

윤한슬 기자 | 2013-08-27 07:56 등록 (02-07 17:53 수정) 4,406 views
(뉴스투데이=윤한슬 기자) 2011년 파리로 진출해 현재는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최고의 남성복 디자이너’.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으로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디자이너. 그는 바로 준지(JUUN.J)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정욱준 디자이너다.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칭하는 정 디자이너는 지난 2011년, 제일모직에 상무로 영입된 이후 글로벌 디자이너로 거듭나기 위해 제일모직과 함께 글로벌 시장에서 점차 입지를 넓혀가고 있다.

실제로 정욱준 디자이너는 그의 13번째 파리 컬렉션이었던 2014 S/S 컬렉션에서 굉장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컬렉션을 성료하고 국내로 돌아와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정욱준 디자이너를 서울 청담동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 미대에서 에스모드 서울로…

▲ 정욱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스스로를 완벽주의자라고 칭하셨네요.

“뭐든지 완벽하지 않으면 그냥 못 넘어가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뭔가 완성을 해야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야하는 성향이랄까요.”

-완벽을 추구하다보면 한 가지 일에 소홀해질 수도 있지 않나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프로젝트가 3개가 있다면 2개가 중요하고 1개가 덜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를 비교적 소홀하게 하는 일은 없어요. 저는 우선 순위를 정하지 않고 다 완벽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정욱준 디자이너는 어떤 어린시절을 보내셨나요?

“어렸을 때는 옷하고 같이 자랐어요. 부모님이 아동복 의류사업을 하셨거든요. 디자인도 하시고 제작도 하고 판매도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 작업실에 가면 항상 원단이나 옷, 재봉틀 등이 있었으니 어찌보면 옷을 정말 자연스럽게 접한거죠. 물론 그렇다고 해서 당시에는 디자이너가 돼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부모님께 옷과 관련해 배우신 것도 있었나요?

“제가 중학교 1학년 때까지 의류 사업을 하셨으니 그 때는 제가 무언가를 배우기엔 너무 어렸죠. 부모님께서 제게 가르쳐주신 건 딱히 없지만 옷을 자주 접했으니 그런 환경은 내재된 것 같아요.”

-그 당시 꿈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미대에 진학해 공예를 전공했어요. 그러다 3학년 1학기 때 군대에 갔는데, 그 곳에서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계속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무얼 하면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계속 생각해보니까 미술이 아니라 옷이었어요. 사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남자가 패션 디자인을 한다는 것이 정상적이지만은 않은 시대였어요. 패션 디자인 학과에 남학생도 없었고요. ‘남자가 하기엔 어려운 직업인가?’ 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렸을 때부터 관심은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의상 공부를 다시 시작했죠.”

-학업은 끝마치고 다시 시작한건가요?

“아니요. 3학년 1학기까지만 다니고 에스모드 서울에 입학해 의상을 새롭게 시작했죠.”

-부모님 반응은요??

“별 반대는 없으셨어요. 원래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반대를 하지 않는 분들이시거든요. 단지 학업을 중간에 과정을 바꾸는 것에 대한 우려는 있으셨겠죠. 그래도 저를  믿어주셨어요. 감사드리죠.”

-에스모드 서울에서는 어떤 학생이었나요?

“뛰어나다기 보다 정말 열심히하는 학생이었어요. 일주일에 2~3일만 잠을 잤던 것 같아요. 대게 학생들이 밤을 새는 경우는 많지만 저는 그 친구들보다 하루 밤을 더 샌다던가 그랬죠. 덕분에 항상 1등이었어요(웃음).”

-원래 소질이 있으셨나요?

“미술적인 재능을 갖고 있었고,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기에 정말 열심히한 덕분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 같아요. 제가 새로운 길을 다시 시작한 것이기에 ‘이게 아니면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정말 열심히했어요. 재능보다 노력이 더 컸던 것 같아요.”


■ ‘엄격한’ 디자이너

▲ 정욱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정욱준 디자이너의 컬렉션으로 데뷔한 모델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렇죠. 대표적으로는 이수혁, 김영광 등이 있어요. 신기하게도 제 쇼에 서고 난 뒤로 더 유명해진 친구들이 많아요. 강동원, 김민준 등은 제 컬렉션 이후에 더 각광을 받은 것 같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패션쇼가 이슈가 되면 쇼에 선 모델들도 덩달아 이슈가 되잖아요. 그래서 여러 매체에 노출이 되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정 디자이너의 쇼로 데뷔한 모델들이 왕성한 활동을 하는 걸 보시면 뿌듯하시겠어요.

“그럼요. 좋죠. 그럴 땐 제가 모델을 보는 안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신인을 처음 봤을 때 ‘가능성’이 눈에 보여요. ‘이 친구는 성공할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이요.”

-모델을 기용할 때 주안점을 두는 부분이 있으세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아요. 첫 번째는 타고난 것이요. 기본적인 외모나 신체 등을 보죠. 그리고 두 번째는 애티튜드에요. 적극적인 면과 옷을 좋아하는 게 눈에 보여야 돼요. 저는 모델이 옷을 좋아해야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어떤 모델들은 외모는 훌륭하지만 옷에 별 관심이 없고 입혀주는 대로만 입어요. ‘인형’이죠. 그런 친구들은 외모는 훌륭하지만 워킹을 하거나 화보를 찍으면 멋있지가 않아요. 스스로 표현할 줄을 잘 모르거든요. 그런데 수혁이나 (박)성진이, (김)원중이 등은 표현을 정말 잘해요.”

-그래도 브랜드 스타일이나 콘셉트와 잘 어울려야하지 않나요?

“예를 들어 수혁이나 원중이를 보면 마초적이지도 않으면서 소년 같기도 해요. 소년에서 청년이 되기 중간 과정의 느낌인거죠. 저는 이런 느낌의 모델들을 주로 선호해요.”

-신인을 많이 쓰는 것은 일종의 모험아닌가요?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너무 익숙한 모델 보다는 참신한 모델을 좋아하거든요. 제가 발굴한 모델일지라도 아주 익숙해진 이후에는 ‘뮤즈’일 수는 있지만 작업을 함께 많이 하지는 않아요. 발굴했을 때의 그 에너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모델들에게 정 디자이너는 어떤 ‘선생님’ 인가요?

“어떻게 보면 저는 무서운 디자이너에요. 서울 컬렉션을 하는 동안 오디션을 볼 때도 저는 굉장히 까다롭게 봐요. 정말 미안하게도 심한 경우에는 쇼 당일, 리허설 후 모델을 무대에 못 서게 한 경우도 있어요. 16명의 모델이 한 무대에 서는데 한 명이라도 흔들리는 모델이 있으면 그 쇼 전체가 가라앉거든요.”

“모델들이 봤을 때는 저를 좋게만은 보지 않겠죠.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요. 10분간의 쇼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엄격해질 수밖에 없죠. 모델들이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기면 쪼그려 앉거나 담배를 피기도 해요. 그런데 저는 팔 조차도 못 움직이게 해요. 셔츠의 경우, 정성스럽게 다려놨어도 움직이다보면 금방 구김이 가거든요. 저는 그게 싫어요. 이런 면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패션쇼는 신상품을 보여주는 자리잖아요. 깨끗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구겨져있고, 다림질이 안 된 모습은 보여줄 수 없거든요.”

“화보 촬영에서도 마찬가지에요. 포토샵으로 주름을 지운다는 건 말도 안되요. 최대한 성의를 다 해서 사진을 찍어야죠. 물론, 현장에서는 굉장히 엄격하지만 일이 끝나면 무대에 못 세운 모델과는 함께 얘기를 하고, 조언을 해주기도 해요. 쇼가 끝나면 한 명 한 명에게 고맙다고 얘기하며 포옹을 하기도 하고요.”

-쇼 장에서 만큼은 엄격하신 거네요.

“그렇죠. 이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원중가 처음 제 오디션을 보러 왔을 때 너무 무서웠다고요. 미리 사전에 저에 대한 얘기를 듣고 왔기 때문에 그런가봐요.”

-요즘도 국내 모델들하고 많은 교류를 하시나요?

“요즘은 화보 작업이나 프로젝트 작업을 할 때 함께 작업을 하죠. 최근에는 모 매거진과 일을 하면서 원중이와 화보 작업을 하고, 인터뷰도 함께 했어요.”


■ ‘파리’가 사랑한 디자이너

▲ 정욱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2007년에 파리에 입성했는데, 왜 하필 파리였나요?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가 4대 컬렉션이 열리는 도시인데, 저는 파리가 가장 크리에이티브한 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파리를 택했어요. 대신 뉴욕과 밀라노는 굉장히 커머셜한 도시고요. 런던은 맨즈 웨어가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재밌고요. 그런데 저는 파리가 4개 도시 중에서도 중심 도시고, 트렌드의 중심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여기서 인정을 받지 않으면 안되겠구나’라는 마음에 파리로 가게 됐죠.”

-파리에 가기 위해 특별히 준비하신 것이 있나요?

“파리는 국적과 나이를 떠나 그 디자이너가 디자이너 고유의 것과 크리에이티브한 것을 갖고 있으면 인정을 해줘요. 그래서 욕심일 수도 있지만 파리에서 꼭 일을 해보고 싶었죠. 파리에 가겠다고 생각한 것은 정말 오래된 일이지만 파리에 가기 1년 반 정도 전부터는 ‘내 것’을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것 같아요. ‘나만의 것이 뭘까’라는 생각을 했었죠.”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요?

“르 피가로지에서 ‘클래식의 전환’이라는 표현을 해줬어요. 클래식한 아이템을 트위스트 하기 보다 저는 재해석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 번째 생각한 아이템이 트렌치코트였던 거죠. 유럽은 날씨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트렌치코트를 갖고 있어요. 그런데 저는 트렌치코트를 다르게 해석하는 디자이너는 못 봤어요. 기존에 없었던 것을 파리에서 보여주니까 현지의 관심을 더 끌게 된 거죠.”

-세계적인 패션 거장, 칼 라거펠트가 준지 의상을 입고 펜디 컬렉션 쇼에 올라 화제가 됐어요. 이에 얽힌 일화가 있나요?

“저의 두 번째 컬렉션이 끝나고 서울에 왔다가 다시 파리로 갔는데, 파리 에이전트에서 전화가 왔어요. 밀라노에서 라거펠트가 준지 의상을 입어봤나봐요. 라거펠트가 펜디 컬렉션 때 입으려고 준지 의상을 사갔다고 하더라고요. 함께 다니는 수행원들에게도 다 사주고요. 굉장히 기분이 좋았죠. 당시 저는 데뷔한지 얼마 안 된 디자이너였거든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한 디자이너, 남성복 최고의 디자이너로 꼽히시는데 비결이 있으시다면요?

“쑥스럽네요(웃음). 요즘은 디자이너들이 세계적으로 불경기이다 보니까 창작적인 것을 많이 안 내놓는다는 얘기를 해요. 그런데 저는 그간에 없었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고, 매 시즌마다 그걸 보여줘서 더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요즘은 브랜드들도 안정적인 세일즈 때문에 커머셜한 노선을 걷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디테일이던 소재든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해요. 그래서 인정을 해주지 않나 싶어요.”

-해외 진출 전 후, 스타일의 변화가 있나요?

“있죠. 국내에 있을 때는 국내 시장만 생각해서 좀 더 과감하지 못했죠. 아이템도 수트 위주의 컬렉션을 보여줬다면 파리에 가면서 좀 더 과감해졌죠. 아이템도, 실루엣도 과감하고요.”

-2014 S/S 컬렉션의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들었어요. 소감은요?

“굉장히 좋았죠. 컬렉션은 바로 다음날의 리뷰가 중요하기에 저는 쇼가 끝난 다음날 오전에 항상 신문을 챙겨봐요. 그런데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의 패션 저널리스트,수지 멘키스(Suzy Menkes)가 ‘이번 시즌 가장 중요한 것은 플라워와 파워인데 준지가 파워를 보여줬다’고 평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평소 그의 팬이었는데,  그렇게 말해줘서 기분이 좋았죠. ‘아 내가 못 하진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모든 쇼에 애착이 있지만 특히 이번 쇼가 프레스들에게 인상깊었나봐요. 예를 들어, 르몽드지도 쇼가 끝난 직후 바로 인터뷰를 했고요. 이번이 13번째 컬렉션인데, 매 컬렉션을 하면서 조금씩 이슈가 늘어나니까 좋죠.”

-이번 컬렉션이 파리의상조합 정회원이 된 이후 처음으로 하는 쇼라고 들었는데, 파리의상조합의 정회원이 됐다는 건 어떤 걸 의미하나요?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이 현재 정회원에 있는데, 지금 기존의 회원들이 찬성을 해야 정회원이 될 수 있어요. 즉, 파리에서 열리는 컬렉션 중에서도 핵심이 됐다는 것을 의미하죠. 좋은 일정을 잡을 수 있고, 파리 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수도 있어요.”

-해외에서 준지의 위상은요?

“제가 제 스스로 얘기를 하기 민망하네요. 굳이 표현을 하자면 ‘핫 리스트’, ‘쇼 티켓을 가장 구하기 어려운 컬렉션’ 정도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한참 모자르다고 생각을 해요. 더 많은 노력을 해야되고…. 그런데 그렇게 ‘핫 리스트’에 들어갔다는 것은 긍정적인 결과죠.”

“지금은 첫 컬렉션했을 때보다 컬렉션 장소도 더 큰 장소로 옮겼어요. 거의 두배 가까이 규모가 커졌죠. 그런데 우리나라 서울 컬렉션과 다른 점은 우리나라는 일반 관객이 더 많아요. 그렇지만 해외는 관객의 반이 프레스고, 반이 바이어이다보니 정말 행복한 일이죠. 쇼가 끝나고 무대에 나갔을 때 객석이 꽉 차 있으면 흐뭇해요. 그것이 바로 지명도일 수도 있고 세일즈와도 연관돼 있거든요.”

-이번 쇼에 많은 프레스들과 바이어들이 왔는데 그 뒤 성과는 어땠나요?

“성과는 좋은 것 같아요. 제가 꼭 들어가고 싶었던 매장에도 입점하게 됐고요. 목표를 이루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만족하면 안 될 것 같아요. 더 확장을 시켜야할 것 같아요.”

-국내와 해외 마켓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마켓의 환경은 많이 비슷해진 것 같은데, 세일즈 환경이 달라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백화점에 매장을 오픈한 뒤, 상품을 팔면서 백화점에 수수료를 주지만, 재고에 대한 부담도 함께 져요. 하지만 해외는 컬렉션이 끝난 뒤 세일즈를 하면 수주한 제품만 만들어서 주면 재고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요. 그 제품을 사간 사람들이 처리를 하거든요.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판매가 끝나면 그 돈으로 다음 시즌을 준비할 수 있고, 재고에 대한 부담이 없어서 좋죠. 이 점이 해외와 국내의 가장 큰 차이점 인 것 같아요.”

-국내외에서 디자이너와 모델의 관계도 다르다고 들었어요.

“저는 비슷한 것 같아요. 디자이너와 모델의 관계가 맞으면 계속 같은 작업을 하거든요. 그런 관계는 서울도, 파리도 다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국내에서처럼 해외에서도 제가 발굴한 모델들은 금방 스타가 돼요.”

-디자이너와 모델 관계가 해외에서는 보다 평등한 관계라던데요.

“평등을 떠나서 우리나라에서는 서로 존중하는 게 부족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부정적인 말을 하면 모델들이 상처를 받아서 돌려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아닌 걸 아니라고 말 하지 못하고 돌려말하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대신 해외는 굉장히 쿨해요. ‘잘가’라고 말하면 ‘안녕’이라고 말하는 문화거든요. 그게 더 서로를 존중하는 것 같아요. 저도 서울에서 컬렉션을 했었을 때보다 여기서의 방식이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문화가 달라서겠죠.”

-모델을 기용할 때 아무래도 팔이 안으로 굽게되지 않나요?

“한국 모델들을 좋아하죠. 한국 모델들도 훌륭해요. 그런데 저는 쇼의 콘셉트마다 모델을 획일화시킬 때 인종을 따지지않고, 하나의 마스크를 연상시키는 사람들을 뽑아요.”


■ 제일모직행…그리고 그 후

▲ 정욱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제일모직 행을 결심한 계기가 있으신가요?
“삼성패션디자인펀드 3년 수상도 마찬가지이지만, 그간 제일모직과 관계를 맺어오면서 ‘뭔가 맞는구나’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3년간 수상도 하고, 콜라보레이션도 했는데 콜라보를 하게 되면 깊은 얘기도 하게 되잖아요. ‘제일모직이면 내가 식구가 돼서 일을 함께 해봐도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마침 회사에서도 제의를 해왔죠. 그래서 제일모직행을 결정짓게 됐어요.“

-제일모직에 들어오기 전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개인적인 면, 일적인 면에서 각각 한가지 씩 달라진 것 같아요. 개인적인 면에서는 책임감이 더 커졌어요. 준지 팀도 더 많이 늘었고, 이전까지 제가 자유로운 영혼이었다면 지금은 조직의 일원이기에 책임감이 늘어났죠. 일적인 부분에서는 그 전에 혼자서 했을 때보다 ‘전문가’들이 더 늘어났죠. 마케팅, 세일즈, 머천다이징 전문 등의 전문가들이 제가 혼자 했던 일들을 다 나눠서 해주시니까 제가 디자인에 더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아요.”

-단점도 있으신가요?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점이요(웃음). 저희 출근시간이 8시인데, 저 역시도 그 시간을 지키거든요. 저도 조직의 일원으로서 그것은 똑같이 공유해야한다고 생각해요.”

-생산이나 스타일 면에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2년 동안 세일즈가 10배이상 늘어났으니 생산량도 많아졌고, 예전에는 소량밖에 생산하지 못했던 것들을 회사가 갖고 있는 생산 노하우와 생산처를 이용해 생산해내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많이 줄었어요.”

-만약 제일모직에 몸담고 있지 않다면 상황이 많이 다를까요?

“물론 꾸준히 일은 하고 있었겠지만 생산량이나 마케팅 적인 부분 등 개인이 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지금보다 성장세가 더뎠겠죠. 어떻게 보면 제일모직에 들어와서 상품의 경쟁력이 높아지다보니 성장속도가 빨라졌죠.”

-기본적으로 일하는 점은 변함이 없으시겠네요.

“없죠. 해외 나가서 쇼를 하고 국내에 들어오는 큰 틀은 똑같아요.”

-인생의 로드맵 중 50대의 목표가 ‘글로벌 디자이너’세요. 거의 이룬 것 아닌가요?

“아니요. 절반정도 이룬 것 같아요. 디자이너로서 인정받는 것과, 패션은 비즈니스이니 비즈니스로서 글로벌해지는 것 두가지가 있어요. 디자이너로서 인정받는 것은 어느정도 이뤘다고 보는데 비즈니스를 글로벌하게 키워야 해요.”

-어떤식으로 보완을 해야할까요?

“글로벌 세일즈 전문가를 영입하는 방안도 있겠죠. 그런데 저희 팀 내에서도 회의를 정말 많이 하고 있어요. 이런 측면에서 보면 개인 디자이너로 남아있는 것 보다 제일모직에 속해있는 것이 정말 큰 도움이 돼요.”

-한국에 들어오신지 얼마 안 되셨어요. 요즘 국내에선 어떤 일을 하시나요?

“요즘은 컬렉션이 끝나고 세일즈도 다 끝난 기간인데, 해외 두개의 샵에서 캡슐 컬렉션을 요청해와서 두가지 캡슐 컬렉션을 디자인하고 있어요. 일은 한국에서 하고 있지만 해외의 일을 하고 있는거죠.”

-국내 컬렉션 계획은 없으세요?

“‘왜 서울에서는 컬렉션 안하세요?’라고들 많이 말씀하시는데, 컬렉션이라는 것은 딱 한번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국 프레스나 바이어분들은 어차피 해외에 나가서 보시잖아요. 일반 학생들, 관객들을 위해서 쇼를 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패션쇼라는 것은 굉장히 커머셜한 일이어서 프레스와 바이어만 보면 되는거에요. 우리나라는 쇼 적인 측면이 커져서 대중한테 열려있죠. 그런데 쇼는 파리에서 하던, 런던에서 하던 한 시즌에 딱 한 번만 하면 될 것 같아요.”

-앞으로도 한국에서는 쇼를 보기 어려운 건가요?

“그건 모르죠. 만약 한국에서도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면 쇼를 하게 되겠죠. 물론 아직까지 계획은 없어요. 국내 팬들은 다소 아쉬워할 수 있겠죠. ”

-당분간은 한국에 계시는 건가요?

“제가 해외에서 컬렉션을 하다보니 지속적으로 왔다갔다할 것 같아요. 1년의 3분의 1은 유럽에서 보내거든요.”

-디자이너로서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요?

“이제는 비즈니스를 글로벌적으로 확장시키고 싶어요. 그래야만 50대의 ‘글로벌 디자이너’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매장은 전 세계 곳곳에 있어요. 제가 원하는 매장에도 준지가 입점돼있고요. 이미 글로벌하다고 볼 수 있겠지만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루이비통’, ‘샤넬’처럼 몇 백 년을 이어갈 수 있는 브랜드에요. 물론 제가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후대의 디자이너들도 하겠지만 한국 토종브랜드로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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