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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조영기 디자이너 “‘천의무봉’ 목표로 완벽한 한복 만들고파”

강소슬 기자 | 2013-12-03 09:50 등록 (02-07 17:51 수정) 4,881 views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1997년 중요 무형 문화제 제 107호 누비장 전수 장학생이자, ‘천의무봉’이라는 자신의 브랜드를 가지고 한복을 디자인 하고 있는 한복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지난 10월 17일 제17회 한복의 날 패션쇼에서 기존의 틀을 깬 새로운 한복을 선보여 많은 주목을 받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최고를 목표로 완벽한 한복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천의무봉'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사진=양문숙 기자]

■ 그림을 좋아하던 소년 디자이너가 되다
 
-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나요?
 
“어린 시절 특별한건 없었어요. 공부를 못해서 별명이 ‘양가집아들’이였거든요. 성적이 ‘수·우·미·양·가’로 나뉘잖아요. 거기서 ‘양, 가’만 받는다고 별명이 양가집 아들이였어요. 성적은 안 좋았지만, 다행히 그림은 잘 그렸어요. 상도 받을 정도로. 그래서 어린 시절에는 그림 쪽으로 꿈을 키웠습니다.”
 
- 그림을 그리지 않고, 디자이너가 됐네요?
 
“커가면서 생각한 것 보다 성적이 안 나오는 거예요. 성적이 이상해 선생님을 찾아뵀더니, 선생님께서 ‘너의 그림은 모방을 해서 똑같이 따라 그리려 애쓴 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그러셨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그때 선생님의 말씀이 맞지만, 당시에는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 이후로 그림에서 손을 놓게 됐죠. 그렇게 지내다 대학을 의류학과에 진학하게 됐고, 그렇게 디자이너로의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
 
- 디자이너를 꿈꾸며 공부하신 대학 시절은 어땠나요?
 
“미술에 대한 꿈을 접고, 패션에 눈을 돌렸을 1990년대 패션은 부티크들도 많고, 근사해 보였어요. 4년간 패션 디자이너의 꿈을 안고 굉장히 열심히 공부를 했죠.”
 
- 대학시절 꿈꾸던 바와 달리, 한복을 디자인하네요.
 
“대학 4학년 때 취업을 나가야 하는데, 지방대를 나와서 취업 할 곳이 없었어요. 지방대 출신 디자이너로 할 수 있는 건 작은 부티크에 들어가는 거였죠. 그때 처음 패션을 공부하며 실망한 순간이었어요. 결국 작은 부티크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당시 한국복식 전공하시는 교수님이 인간문화재, 중요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김해자 선생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그때는 선생님이 인간문화재가 아니셨어요.”
 
▲ '천의무봉'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사진=양문숙 기자]

■ 중요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김해자 선생님의 전수 장학생이 되다
 
- 한복은 언제부터 좋아하게 됐나요?
 
“사실 전 한복을 굉장히 안 좋아했어요. 대학에서 패션을 공부 할 때만 해도요. 둥근 선들도 마음에 안 들었고, 한복이 어렵고 민속 복이라 안 예뻐 보였어요. 사실 비전도 없어 보이는 한복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그러다 김해자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생각이 바뀌어 한복이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 왜 김해자 선생님의 한복을 보고 생각이 바뀌게 됐나요?
 
“제가 그 당시 늘 봐오던 한복은 깨끼한복이라고 하는 똑같은 디자인에 원단만 바뀌는 디자인이 없다고 말하는 게 맞는 한복이 전부였어요. 그런 한복이 촌스럽게만 느껴졌는데, 선생님의 한복을 봤을 때, 한복이 굉장히 다양해 보였어요. 선생님께서 지으신 조선 초․중기 한복은 굉장히 오래전 한복인데, 외려 현대적인 느낌에 세련되보여 놀랐어요. ‘한복이 촌스러운 옷이 아니라 아름다운 옷이구나’ 라는 생각을 갖게 됐죠.”
 
- 김해자 선생님과 생활은 어땠나요.
 
“1996년도 에 경상남도 영산이라는 시골에서 김해자 선생님께 누비와 한복 만드는 걸 배우며 월급 없이 용돈정도만 받아가며 선생님의 첫 번째 제자로 문화생 생활을 시작했어요. 그 시골에 들어가기까지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죠. 하지만 주변 교수님들께서 꼭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 주셔서 시골로 떠났어요. 직장개념이 아니라 정말 배우기 위해 일을 하게 된 거죠.”
 
* 중요 무형문화재 107호 누비장 김해자
 
김해자 선생은 조선 말기 재봉틀이 들어온 이후 100년 가까이 완전히 맥이 끊겼던 손누비를 1992년 전승공예대전에 출품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고, 그해 국무총리 상을 수상했다.
 
박물관 유물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말하며 ,박물관에서 본 누비옷을 그냥 재현해 냈다. 그리고 수상 4년 후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로 인정받아, 인간문화재가 되었다. 그녀는 40대의 최연소 인간문화재이자, 최초의 누비장이다.
 
▲ '천의무봉'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사진=양문숙 기자]

-  김해자 선생님께 무엇을 배웠나요.

“한복을 만드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배웠어요. 선생님께서는 손누비 한복을 짓는 분이신데, 누비란 쉽게 이야기하면 퀼트 같은 거예요. 그 누비를 한복 전체에 넣어야 하기에 손누비 한복은 기술이 많이 필요하고, 굉장히 정성이 많이 들어간 우리 옷입니다. 그 곳에서 그런 옷을 만드는 기술을 배웠어요. 그때 배운 기술들이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제가 한복을 만드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죠. 옷을 잘 만들 수 있는 기본적인 것들을 알려 주셨어요.”
 
- 중요 무형문화제 제 107호 누비장 전수 장학생이 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96년도부터 97년까지 선생님과 생활을 했는데, 선생님께서 인간문화재가 되셨어요. 그러면서 전 다행이도 공을 인정받아 첫 번째 전수 장학생이 됐어요. 저는 상당히 운이 좋은 편이에요. 사실 전수자가 되기 위해서는 적게는 5년 정도 걸리거든요.”
 
▲ '천의무봉'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사진=양문숙 기자]

■ 조영기, 한복의 매력에 빠지다
 
- 한복이 갖고 있는 매력은 무엇입니까.
 
“한복은 특별한 실루엣을 가진 의복입니다. 마치 종이로 접어서 만든 옷 같아요. 두꺼운 종이, 얇은 종이, 비치는 종이 등으로 각양각색의 옷을 만드는 느낌이 들어요. 이것이 한복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닐까요?”
 
- 2002년부터 '천의무봉'이란 이름을 내걸고 한복을 만들었는데, 왜 이런 이런 이름을 지었나요?
 
“천의무봉은 하늘의 옷은 꿰맨 자국이 없다는 완벽함을 뜻하는 말이에요. 완벽한 작품을 접했을 때 ‘천의무봉 한 작품이다’라는 말을 쓰잖아요. 천의무봉 때문에 처음에는 욕을 많이 먹었어요. 제가 마치 천의무봉이라 말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사실 천의무봉은 제 호입니다. 이걸 줄여서 의봉 조영기라고 하는데, 이 호는 서예가이시면서 전각가 그리고 교수님이신 근원 김양동 선생님께 지어주셨어요.”

“어릴 때 겉 멋이 들어 호를 지어 달라 요청 드렸어요. 선생님께서 잠깐 고민하시더니 천의무봉을 지어 주셨죠. 완벽하지 않은 제가 사용해도 되는 호냐며 여쭈었더니 ‘야 이놈아! 네가 천의무봉이라는 뜻이 아니라 천의무봉을 목표로 살아가길 원한다는 소리다’라고 말씀하셨죠. 최고를 향한 꿈을 갖고, 완벽한 한복을 만들고 싶어 천의무봉을 택했습니다.”
 
- 천의무봉 한복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김해자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서, 굉장히 심플하고, 깔끔하면서도 완성도가 높은 한복을 추구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나 오래 두고 보아도 유행을 타지 않는 한복입니다.”
 
“한복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특별한 의복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요즘은 결혼할 때나 돌 잔치때 주로 한복을 하죠. 전 대를 물릴 수 있는 한복을 만들고 싶어요. 요즘엔 드물지만, 예전에는 한복을 물려받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입던 한복을 추억하며 입을 수 있도록, 그런 한복이 유행을 탄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복이라는 것 자체가 오랜 시간 내려오면서 개선되어 오랫동안 가다듬어진 스타일이기 때문에 쉽게 유행을 타지 않지만 과한 디자인을 하면 유행을 타게 되죠. 그래서 전 대를 물릴 수 있는 한복을 만들기 위해 마음을 담아 심플하게 디자인 하고 있어요.”
 
▲ 제17회 한복 패션쇼 '천의무봉' [사진=양문숙 기자]

■ 하이힐과 어울리는 한복
 
- 제17회 한복의 날 패션쇼에서 선보인 한복 이야기를 해주세요.
 
“한복의 기성화를 위해 선보인 한복이었는데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 했던 것은 한복의 특징을 잃지 않는 것과, 한복답다는 느낌이 드는 것 이였어요. 한복이 갖고 있는 특징적인 요소들이 빠지거나 변형되면 사람들은 한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그런 생각이 들게 되면 그 옷은 한복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너무 패셔너블하게 디자인해버리면 기성복인지 잘 구별하지 못하게 되죠. 그래서 이 두 가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민속복이지만, 현대복처럼 보일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디자인했어요.”
 
- 기존의 한복들과는 다르게 하이힐과도 매치가 가능한 한복이라 눈에 띄었어요.
 
“동양과 서양의 의복을 적절하게 조압해 한복으로도 현대의복의 가능성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된장 스파게티를 생각해 보세요. 만약 스파게티 면에 된장을 그대로 올리면 맛이 있을까요? 된장 스파게티를 만들기 위해선 된장을 가지고 새로운 소스를 개발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기술과 노하우가 필요하겠죠. 스파게티의 특성을 살리면서 된장을 사용해야 하니까요.”
 
“하이힐과 어울리는 한복을 만들기 위해 위에 된장 스파게티의 예를 든 것처럼, 한복의 형태를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으면서도, 한복하면 떠오르는 깃, 섶, 고름, 동정 같은 한복의 특징은 살렸습니다. 제 작품이 하이힐과 잘 어울린다고 봐주셨다면, 제가 고민하던 문제를 나름 잘 해결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 '천의무봉'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사진=양문숙 기자]

- 한복 패션쇼를 준비하며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어느 날 갑자기 한복패션쇼를 무대감독 서영희 선생님께 전화가 왔는데, 제 홈페이지에 대해 물어보시곤 끊으셨어요. 그 이후 연락이 없으셔서 한복 패션쇼에 참가할 6인에는 뽑히지 못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낙담했죠. 한복을 18년째 디자인 했지만, 이런 기회를 잡지 못하고 놓쳐버린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니 아쉬웠어요. 그런데 나중에 대회에 참여하자며 연락이 왔죠. 그동안 시도하지 못하고, 생각만 했던 한복을 선보일 수 있는 기회를 얻어 너무 기뻤어요. 그 때의 기억이 가장 크게 남네요.”
 
- 패션쇼에 선보일 한복을 디자인 하며 힘들었던 점
 
“준비간이 짧다는 점! 예전에 대학을 다니며 패션쇼를 준비 할 때는 기적적으로 단시간에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고 보지만, 한복 디자인을 기성복화 시킨 디자인은 짧은 시간에 나올 수가 없다고 봐요. 저도 그렇지만, 대부분 한복을 몇 십 년 디자인 하시면서 하고 싶었던 디자인을 이번에 선보인 것 같아요. 콘셉트잡고 디자인을 하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밤을 세며 준비 했던 점이 가장 힘들었어요.”
 
▲ '천의무봉' 디자이너 의봉 조영기 [사진=양문숙 기자]

■ 그가 보는 한복의 전망 그리고 그의 꿈
 
- 한복 디자이너를 어떻게 전망하고 계시나요?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잘 극복한다면 새로운 한복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복은 포화상태지만, 한복은 과도기거든요. 시대에 부합하지 못하는 한복은 지켜지거나 혹은 사라지겠죠. 그렇게 살아남는 한복은 아름다운 한복의 모습을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 새로운 장르의 한복의 시대도 열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이 모든 것은 새롭게 도전하는 디자이너의 몫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 한복의 기성화를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복의 기성복 화를 원하시는 분들이 점점 많아지고, 아름답고 입고 싶은 한복의 기성복들이 많아진다면, 한복을 기성복처럼 입는 것 역시 한복의 장르로 자리 잡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복의 기성복 화를 위해서 제대로 한복을 배우고, 서양복도 함께 배운 인제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인재들이 많이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도 듭니다.”
 
- 한복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성장을 하기 위해선 기본이 탄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기본이 없으면 배우는 속도도 느려져 실무를 잘 하기가 어렵거든요. 그리고 무턱대고 한복 숍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좋은 선생님을 만나야 해요. 그리고 한복 디자이너의 꿈은 그리 대단하거나 이루기 힘든 꿈은 아니에요. 누구나 될 수 있죠. 끝까지 한복 디자이너로 남으려면 자기 자신의 한계를 넘어 끝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말 해 주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돈을 벌기위해 또는 유명해지기 위해 한복 디자이너가 되려고 한다면 많이 지치고 힘들 거예요. 어떤 일을 해도 어려운 고비는 찾아옵니다. 열정을 갖고 한복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꿈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첫 번째도 살아 남는 거고, 두 번째도 살아남는 겁니다. 그래야 한복을 만드는 일도 계속 할 수 있겠죠. 앞으로의 계획은 무조건 살아남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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