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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 인터뷰] 한노마 ‘한국에선 모델 문턱 못넘고 미국서 꽃피다’

강소슬 기자 | 2014-01-08 10:25 등록 (02-07 18:04 수정) 7,575 views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한국 남자 모델이 뉴욕에서 데뷔해서 활동을 하는 모델은 제가 처음이에요. 그러니까 처음이라는 것이 해외에서 활동을 시작한 사람이 없던 거지, 외국으로 진출을 해서 활동했던 남자 모델들은 있었어요. 뉴욕에 머물면서 뉴욕의 패션위크를 돈 사람은 한국인으로는 제가 최초였어요.”
 
“사실 전 모델치고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얼굴이 작거나 조각미남인 것도 아니잖아요. 한국에서는 외려 특이하게 생겼다는 소리를 들었고, 여자들이 좋아하는 타입도 아니었어요. 그런 제가 외국에 나가서 잘 활동하고 있는 건 많은 모델들에게 ‘너도 할 수 있어! 누구나 할 수 있어!’라는 생각을 심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해요”
 
2009년도 뉴욕 패션위크에 해성같이 등장해 이례적으로 한 시즌에 9개의 브랜드 런웨이를 걸어 주목을 받기 시작한 모델이 있었다. 한국 남자 모델 최초로 뉴욕에서부터 모델 활동을 하기 시작한 한국인 모델 ‘한노마’ 이번 주 패션피플 릴레이 인터뷰는 한국의 콜모어라 불리는 그의 이야기를 전하려 한다.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모델이 되고 싶었던 소년, 모델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나다
 
- 뉴욕 데뷔 전, 한국에서도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던데!
 
“전 어릴 때 우연히 TV에 나오는 모델을 보고 무작정 모델이 하고 싶어져서 2년 동안 모델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안되더라고요. 한국에 있는 모델 에이전시에서 다들 별로라고 하고, 디자이너 캐스팅도 다녔지만 절 찾는 사람이 없었어요. 결국 군대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군대 가기 전, 아르바이트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뉴욕으로 떠났는데 그 곳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모델 일을 하게 되었던 거예요.”
 
“모델이라는 직업은 꿈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정말로 우연히 누군가에게 한정적으로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 기회를 잡는 사람이 모델이 되는 것 같아요.”
 
- 한국에서 2년간 모델 준비를 하는 동안 부모님 반응은 어땠나요?
 
“아버지가 굉장히 고지식한 분이세요. 처음 모델 활동을 한다고 했을 때 ‘네가 뭔데, 그런 건 뭘 하려고 하냐!’ 말씀하셨어요. 2년간 한국에이전시를 다녔을 때 부모님께서 정말 싫어 하셨어요. 돈만 많이 쓰고 다녔으니까요. 부모님이 눈에는 이상한 바람이 든 사춘기의 어린 아들로 보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요즘 들어는 아버지께서 더 이해를 해 주시고 밀어주시고 계세요.”
 
- 그 당시 어떤 아이였나요?
 
“인천에 살면서 아이스스키라는 운동을 7년 하고, 공부로 전향하려고 준비하다 모델일이 하고 싶어진 그런 아이였죠.”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모델을 포기하고 간 미국에서는 어떻게 데뷔하게 됐나요?
 
“뉴욕에서 함께 지낸 룸메이트 형이 사진가였어요. 제 사진을 찍더니 혹시 뉴욕에서 모델을 해 볼 생각 없냐고 물어보더라고요. ‘하면 좋지!’ 이렇게 이야기하고, 뉴욕 에이전시에 사진을 보냈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렇게 운 좋게 시작하게 되었어요.”
 
- 외국에서 활동하는 모델들을 보면,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다가 해외로 진출을 하는데 노마한씨는 반대로 외국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다가 한국에 알려지셨다는 것이 신기하네요. 에이전시에 처음 갔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그건 저도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처음 한국에서 에이전시를 갔을 때도 인천에 살던 학생이라 ‘우와~ 에이전시가 이런 곳이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에이전시가 뭔가 거대하게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뉴욕 에이전시에 갔는데, 뉴욕에 있는 모델 에이전시가 정말 너무 거대해 보이더라고요. 정말 너무 떨려서 제 이름도 잘 말하지 못했어요. 다행히도 바로 제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기분 좋았어요. 그때부터 전 재미있는 삶을 살게 된 것 같아요.”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미국에서의 첫 반응은 어땠나요?
 
“‘Asian Funky boy!’ 처음 반응이 딱 이거였어요. 동양에서 온 펑키보이! 전 펑키하게 입고 다니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보였나 봐요.”
 
“애드 슬리먼이 디자인 하고 있던 ‘크리스찬 디올’이라는 브랜드에 빠져있었어요. 좋아만 하고 있다가 미국에 갔을 때 10만 원대에 디올 부츠를 세일하기에 그 부츠를 사서신고, 저렴한 검정 가죽 재킷에 블랙 진을 입고 첫 시즌 캐스팅을 돌았어요. 그런 제 모습이 외국인에 눈에는 ‘아시안의 펑키보이다’ 라는 느낌을 줬나 봐요.”
 
- ‘한웅’이라는 본명이 아닌 ‘노마 한’으로 활동하게 된 이유!
 
“처음에 뉴욕에서 모델 일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본명인 ‘한웅’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다들 발음을 못하더라고요. 제 친구 중에 부모님이 한국인이시지만,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와서 한국말을 굉장히 서툴게 하는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도 웅이라는 말음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쉽게 말할 수 있게 ‘놈아! 이놈아! 야 이놈아!’ 이렇게 장난처럼 부르다가, 그 친구가 어느날 너 이름을 노마로 해보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괜찮겠다 싶어 이름을 노마로 바로 바꿨어요. 정말 장난으로 부르던 노마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거라고 이야기 하니, 친구가 엄청 놀라더라고요. 전 이젠 노마라고 불러도, 웅이라고 불러도 편하게 느껴져요.”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해성같이 나타난 동양인 모델, 뉴욕 디자이너들에게 러브콜을 받다!
 
- 런웨이 첫 무대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많은 사람들이 뉴욕에서 열린 제너럴 아이디어 쇼가 제 첫 무대라고 알고 계시는데, 아니에요.(웃음) 제너럴 아이디어가 첫 시즌에 했던 쇼이기는 하지만, 정말 첫 무대는 뉴욕에서 굉장히 잘 나가는 영국인 디자이너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덕키 브라운’ 이라는 브랜드의 쇼예요. 재밌는 건, ‘덕키’라는 말이 영국에서 예전에 동성애자라는 뜻으로 불렸데요. 그런데 정말 그 디자이너 두 분이 동성애자에요.”
 
- 어떻게 ‘덕키 브라운’의 쇼를 서게 되었나요?
 
“회사에서 덕키 브라운에서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 피팅 한번 가보라고 하는 거예요. 갔는데 정말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특이하게 캐스팅도 안가고 바로 피팅 갔다가 쇼를 서게 된 거에요.”
 
“덕키 브라운의 쇼를 서기 전 범석이 형의 캐스팅을 먼저 갔었어요. 처음이라 제대로 된 포트폴리오도 없이 찾아가서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했더니 범석이 형이 ‘우와! 너 한국인이야?’ 하면서 워킹 한번 해보라고 했어요. 그때 범석이 형의 반응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캐스팅 디렉터가 제 워킹을 보더니 ‘Oh! Very nice! Strong! Walk one more time!’ 하면서 너무 좋아해 주는 거예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캐스팅 디렉터가 덕키 브라운의 캐스팅 디렉터를 같이 하고 있었데요. 그래서 덕키 브라운에는 캐스팅 없이 바로 서게 된 거죠!”
 
- 한국이 아닌 뉴욕 패션위크에서 모델로 첫 데뷔를 하게 되었는데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그리고 재미있던 일 있었으면 이야기 해 주세요.
 
“2009년 일이네요. 에이전시도 계약 되었고 이제 쇼 하나만 서면 좋겠다는 꿈을 꿨는데, 정말로 뉴욕의 무대에 서게 되니 정말 너무 떨렸어요. 당시 백 스테이지에서 제가 한참 즐겨 보던 ‘모델스 닷컴’에서 사진 기자가 백스테이지 컷을 찍어도 되겠냐고 하는 거예요. 정말 발음도 안 될 때 ‘우와! 모델즈 닷컴!’이라는 말을 하고는 사진을 찍었어요. ‘어느 나라에서 왔냐! 이름은 뭐냐’ 물어오는데 코리아라고 말하고 노마라고 제 이름을 말했는데, 너무 떨려서 제 이름 스펠이 잘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그 때는 정말 영어를 못 했거든요.(웃음)”
 
- 뉴욕에서 당시 이슈가 되었다고 들었어요.
 
“2009년 첫 시즌에 9개 무대에 서게 된 거예요. 뉴욕에서는 이슈가 되었죠. 동양인인데 첫 시즌에 유명한 브랜드를 9개나 섰다고 하니까요. 저도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정말 운이 좋았던 첫 시즌 이였던 것 같아요.”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미국을 넘어 세계로…
 
- 가장 기억나는 쇼가 있다면?
 
“제 첫 명품 브랜드 쇼인 랑방이요. 제가 캐스팅때 미키마우스 티를 입고 갔어요. 랑방의 디자이너 루카스가 미키마우스 티는 어디서 샀냐고 물어보면서 재킷을 입어 보라고 했는데,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캐스팅이 잘 되었구나 하고 돌아왔죠. 그리고 다음날 피팅을 갔는데 막상 옷을 입어보니 안 어울리더라고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캐스팅이 되었어도 옷과 잘 안 맞으면 캐스팅을 취소해 보리는 경우가 많거든요. 피팅까지 왔는데 안 돼 버리면 어떡하나 당황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앉아있었어요.”
 
“그 자리에서 결국 옷을 5벌까지 입었어요. 그런 큰 쇼에서는 옷을 많이 입혀보는 경우가 없거든요. 정말 저를 세우려고 했던 거죠. 정말 그 다음날 랑방쇼에 서게 된다는 전화를 받고는, 저녁 7시가 콜타임 이였는데,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나갔어요. 아침에 잘 못 일어나는 성격인데 말이에요. 랑방쇼는 런웨이도 가장 길었고, 무대에 비트만 흐르고 피아니스트가 실제로 피아노를 쳤는데 정말 리허설 할 때 소름이 돋더라고요. 랑방쇼를 가장 기억나는 쇼로 꼽고 싶네요!”
 
- 뉴욕, 파리, 밀라노, 서울 가장 잘 맞는 곳은 어딘가요?
 
“딱히 잘 맞는다고 꼽을만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안 맞는 곳은 밀라노예요. 제가 몸이 마른편이라 밀라노에 가서 피팅을 하면 옷이 다 흘러내리거든요. 어느 정도 테일러가 가능하지만, 전 너무 말라서 테일러가 불가능 한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밀라노 쇼를 갈 때면 힘들어요!”
 
- 해외 활동 중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전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보다도 민망했던 에피소드가 더 많아요. 뉴욕에서 버클러라는 브랜드의 쇼를 할 때 있던 일인데요. 매장 입구를 나와서 사람들을 지나 매장 입구로 다시 들어가는 거였어요. 워킹을 하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매장으로 다시 못 들어가 버렸어요. 쇼 관계자가 저에게 그냥 계속 돌라고 손으로 지시를 하는 것을 보고 출구를 지났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 자리에서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요! 사람들이 엄청 웃더라고요. 쇼중에 소리를 질러버리다니, 지금 생각해도 민망한 에피소드에요.”
 
- 외국에서 주목해야 할 동양 모델로 꼽히고 있는데, 소감이 어떤가요?
 
“얼떨떨하기도 하지만, 기분 너무 좋아요. ‘내가 여기까지 왔어?’이런 생각도 들고, 굉장히 유명한 모델 친구들이 많은데, 저를 뽑았다는 것이 신기해요. 어느 한 나라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이 모델 핫 한 모델이야!’라고 말해주는 거니까요.”
 
- 모델 일을 하면서 힘들었던 적이 있다면?
 
“예전에 파리에 갔을 때 캐스팅에 다 떨어졌어요. 이유는 ‘넌 동양인인데 너무 특이해!’ 전 이미 파리를 갈 때 ‘디올도 랑방도 큰 명품 브랜드의 쇼들을 설 거야!’ 하는 마음으로 기대를 하고 갔었거든요. 당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딜 가든 내가 뭘 해야겠다는 욕심이 앞서있었거든요. 그런 생각들이 지금은 들지 않아서 이젠 오히려 조금 더 편안하게 모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한국의 ‘콜모어’로 불리는 한노마!
 
- 한국의 콜모어로 불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요?
 
“한국의 콜 모어라고 말해주시는데, 어찌 보면 기분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의 멋과 제 멋이 달라요. 저와 콜은 정말 너무 달라요. 뉴욕의 쇼장에서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생각하는 것도 서로 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거든요.”
 
- 한노마와 콜모어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저는 신경 쓰는 것이 많아요. 내가 어떡해야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하는 생존본능을 갖고 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아무 것도 없어요. 정말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아요. 하지만 꿈은 있는 것 같아요. 콜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지금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재미있을 것 같다면서 자연스럽게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하거든요.”
 
- 콜모어에게 한국의 콜모어로 불린다는 이야기를 해봤나요?
 
“전혀! 한국의 콜모어로 내가 불리고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안 했어요. 그런 말을 제가 하는 것 자체도 굉장히 쑥스러운 일인 것 같아요. 콜을 만나면 함께 담배를 많이 펴요. 그러면서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누는 편이예요.”
 
“콜모어는 자신이 동양권에서 굉장히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왜냐면 그 친구가 한국에도 여러 번 방문했었고, 일본에도 방문했기 때문에 자기가 유명하다는 것을 알거든요. 그렇다고 그런걸 으스대거나 하는 성격은 아니에요.(웃음)”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한노마하면 떠오르는 것 ‘코리안 톱모델’, ‘타투’
 
- 말할 때마다 보이는 ‘콧수염 타투’가 인상 깊어요!
 
“재미로 한 거예요. 예전부터 이 타투는 하고 싶었거든요. 다른 손가락에는 노마라는 제 영문이름을 새겼어요. 타투는 지금 18개 정도 몸에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모두 디자인했기 때문에 다 애착이 가고, 후회를 하는 타투도 없어요.”
 
- 타투가 굉장히 많은데, 타투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제가 뉴욕을 갔을 때, 제 친구의 아는 누나가 타투를 하러 간다고 하더라고요. 전 타투라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타투 받는 곳에 궁금해서 따라갔는데 타투를 하는 것이 심오하게 다가오더라고요. 타투를 하는 것을 처음 보고는 타투에 매료되어 저도 다음날 타투를 받았어요.”
 
- 제일 처음 받은 타투는?
 
“가슴에 해골을 그렸어요. 영국 모델 친구의 가슴에 스케치를 한 해골 타투가 있는데, 그 타투 도안을 비슷하게 그려서 했어요. 처음에는 유행 따라 타투를 시작한 거죠.(웃음)”
 
- 타투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제가 타투를 배우고 있는데,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엄마는 ‘지금 너 몸에 있는 것도 충분한데, 다른 사람 몸에 뭘 하겠다고 그래!’라는 반응이셨고요. 외려 아버지께서는 네가 하고 싶다면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며 힘을 주셨어요. 요즘 아버지께 타투 디자인을 보여드리곤 하는데, 이제는 아버지께서 요즘 어떤 타투를 해야 멋진 거냐고 물어 오시기도 합니다.(웃음)”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한노마,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꿈!
 
- 연기 계획이 있는지!
 
“전혀 없어요! 전 정말 연기 쪽과는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웃긴 역할 같은 건 한번 해보고 싶은데, 분위기 잡고 무게감 있는 역할은 정말 제가 못 견딜 것 같아요. 미국에서 단편 영화를 한번 찍었었는데 멋진 척 대사하는 제 모습이 웃긴 기억으로 남았어요. 전 지금은 연기 쪽으로는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 한국에서도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계실 텐데!
 
“활동을 안 한다기보다, 한국에 있는 기간이 너무 짧다 보니까 제가 한국에 왔다는 것도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한국에 오면 SNS를 통해 한국에 왔다고 알리는 편인데, 어찌되었든 한국에 자주 못 나와서 한국에서 일을 안 한다고 생각 하지 말아주시고, 이런 일을 하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 앞으로의 계획
 
“타투를 열심히 배워서, 나중에 제 이름으로 미국에서 타투 스튜디오를 내고 싶어요. 미국에서 하려는 이유는 타투가 합법이기 때문이에요. 타투리스트도 직업 중에 하나인데 숨어서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일이 아니거든요!”
 
- 미래의 꿈
 
“전 항상 엄청 미래의 일은 내다보지 않고 있어요. 사람의 꿈이라는 것이 안 바뀔 수도 있겠지만, 전 어릴 때부터 ‘내 꿈은 이거다!’ 하는 것이 없었거든요. 지금도 그렇지만 어떤 일이 좋아지면 제 꿈으로 만들어져 가는 것 같아요. ‘전 탑 모델이 되는 거예요’ 하는 것은 좀 막연하게 이야기 하는 것처럼 느껴져요.”
 
▲ 모델 한노마 [사진=양문숙 기자]

■ 인터뷰 비하인드 에서는!
 
모델 한노마씨와 나눈 인터뷰 중 못다 전한 이야기를 전하는 비하인드 스토리에서는, 4년간 만나고 있는 미국인 여자 친구에 대한 러브 스토리 공개와 함께 한노마의 스타일 등을 전하려 합니다. 패션피플 릴레이 인터뷰 뒤에 나가는 비하인드 스토리 한노마편도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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