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이메일 전송
공유하기

[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권한글 디자이너 “‘브랜드’ 넘어 ‘패션 토털 그룹’ 만들고 싶다”

강소슬 기자 | 2014-03-28 10:50 등록 (03-28 12:55 수정) 5,863 views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옷이 마냥 좋아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심하게 반대를 하셨고, 결국 고등학교 졸업 후 경영학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그러나 꼭 하고 싶었던 디자이너의 꿈을 포기할 수 없어 유학도중 도피성(?)으로 군대를 입대하게 되었다. 이후 계속해서 아버지를 설득했고 마침내 허락을 받게 되었고, 군 제대 후 패션 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다시 한 번 유학을 떠났다.”
 
권한글 디자이너는 이탈리아 '보그 매거진', 프랑스 ‘후즈 넥스트 프레타 포르테(Who's next pre-a-porter)’, 영국 ‘아트 쓰레드(Art Thread)’ 등에서 주목 받은 신인 디자이너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덴마크 등 유럽에서 한국 브랜드지만 ‘메이드 인 이탈리아’ 라벨을 달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아브라함 케이 한글’의 디자이너 권한글. 지금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말썽꾸러기 였던 어린 시절
  
- 디자이너에 대한 꿈은 어떻게 꾸게 되었나.
 
“중학생때 옷에 대한 관심이 커지며,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키우게 되었다. 이는 뷰티 쪽에서 사업을 하시던 어머니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작용 한 것 같다.”
 
- 자라온 환경이 궁금하다.
 
“아버지는 현대에서 비즈니스 하고 계신다. 처음 현대에서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다니셨고, 지금까지도 현대에서 일하고 계시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스타일의 '현대맨'이다. 어머니는 뷰티 쪽에서 사업을 하셨다. 한국 메이크업 아트의 초반주자라 보면 된다. 한국 메이크업 협회 회장, 부회장으로 오랫동안 계셨고, 지금은 후배양성을 위해 교수를 하고 계신다. 이렇게 바쁘게 사회활동을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다양한 경험을 하며 성장했다.”
 
- 어린 시절 어떤 소년 이였나.
 
“‘한글이 때문에 우리 아이가 학교에 가지 않으려 해요’ 라는 전화가 항상 걸려올 정도로 어린 시절 여자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장난꾸러기 였다.”
 
- 어릴 적 꿈.
 
“파일럿이 되고 싶었다. 아버지께서 해외 영업부 쪽에서 일을 하셔서, 어릴 적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파일럿이 되면 더 많은 나라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일럿을 꿈꿨다.”
 
- 공부는 잘 하는 편이였나.
 
“공부를 못하면 ‘부모님이 두 분 다 일을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냐’고 사람들이 판단할까봐 부모님께서는 더욱 공부를 열심히 시켜려 노력하셨다. 그래서 공부는 잘 하는 편이였다.”
 
- 공부 잘 하던 아들이 디자이너의 길을 걷겠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어머니께서는 굉장히 오픈적이셨다. 반면에 아버지께서는 ‘사내가 무슨 바느질을 하냐’ 하시며 심하게 반대 하셨다. 당시 남자의 직업은 따로 있다고 보셨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금은 가장 많은 응원을 보내 주신다.”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우여곡절로 두 번 영국 유학길에 오르다
 
- 영국 유학을 두 번이나 떠났다고 들었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아버지는 모르시게 어머니와 함께 디자인 공부를 위해 미대 입시 준비를 했다. 얼마 못가 이 사실을 아버지에게 들키게 되었고, 아버지의 압박을 이기지 못해 1999년 영국으로 경영학 공부를 위해 유학을 갔다.”
 
- 당시 유학생활은 어땠나?
 
“1999년 당시 한국은 IMF 막바지 시절이었다. 그 영향으로 영국에 유학중인 한국인이 거의 없어 영어는 빨리 늘었다. 하지만 디자이너에 대한 꿈을 버리지 못해 힘들었다. 아버지를 설득 할 시간을 벌기 위해, 결국 도피성 목적으로 군대에 입대했다.”
 
- 아버지를 어떻게 설득 시켰나.
 
“반대하시던 아버지께서 한발 양보하셔서 ‘디자인 공부를 시켜주겠다. 단 공부를 마치고, 패션 디자인이 아닌 현대에 들어와 자동차나 선박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가 돼라’ 고 하셨다. 그래도 뜻을 굽히지 않자, 군대 말년 휴가 때 결국은 허락을 해 주셨다. 2003년 말 군 제대 후 다시 한 번 패션공부를 위해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 두 번째 유학 생활이 궁금하다.
 
“첫 번째 영국 유학시절엔 경영학 공부에 흥미가 없어 많이 놀았다. 하지만 두 번째 떠난 유학길에서 너무 하고 싶던 패션 공부를 할 수 있어 열심히 공부만 했다. 때문에 당시에는 여자 친구를 만나도 패션공부에 미쳐있어 오래 만나지 못했다.”
 
- 유학생활을 하며 힘들었던 점은?
 
“첫 번째는 음식이다. 하루에 한 끼는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 지금도 외국에 나가면 이 부분이 가장 힘들다. 두 번째는 외로움이다. 가족들과 어린나이에 떨어져 생활하니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 영국에서 졸업한 뒤 뭘 했나?
 
“‘폴스미스 진’, ‘루엘라’ 그리고 ‘바디아말’이라는 브랜드에서 5년간 디자이너 생활을 했다.”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해외 유명 브랜드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시작하다
 
- 폴스미스 진에서 디자이너로 있던 시절, 이야기가 궁금하다.
 
“영국에서 패션디자인 학과를 졸업한 뒤, 운 좋게 폴스미스 진에 들어가 약 2년간 디자이너를 하게 되었다. 당시 한국과는 다르게 영국에서는 직장 내 상하관계가 없고, 갑과 을이라는 관계도 없어 이런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때 배운 건 제조업체와 브랜드 사이는 상하 관계가 아니라 협업관계라는 것이다.”
 
- 폴스미스 진에서 일하다 왜 드레스를 만드는 ‘바디아말’ 브랜드 디자이너가 되었나.
 
“바디아말은 럭셔리 이브닝 웨어만 디자인 하는 곳이다. 그 브랜드를 선택한 이유는 캐주얼웨어가 좋아 폴스미스 진에 들어갔지만, 너무 이쪽 분야의 디자인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다른 스타일의 디자인 공부도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바디아말을 택했다.”
 
- 캐이트 윈슬렛, 밀라요보비치 등 유명 할리우드 배우의 드레스를 디자인 했다고 들었다. 특별히 마음에 드는 드레스가 있다면?
 
“타이타닉의 여 주인공 케이트 윈슬렛이 입었던 드레스다. 그 드레스는 터키의 판타지 그림을 그리는 작가의 그림을 프린팅 해 넣은 드레스였는데, 그 프린팅을 넣기 위해 ‘당신의 그림으로 드레스를 만들고 싶다’고 작가에게 제의했다. 처음에는 금전적인 요구를 해왔지만, 나중에는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겠다며 그림을 사용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렇듯 다른 분야의 결과물로 새로운 옷을 만들어 냈을 때 희열을 느낀다. 그래서 그때 제작했던 드레스가 가장 마음에 든다.”
 
- 런던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그만두고 이탈리아로 떠난 이유가 궁금하다.
 
“5년 정도 영국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면서 회의감이 들기 시작했다. 창조적인 나만의 디자인을 하느 것이 아니라 회사에서 원하는 전형적인 디자인을 하다 보니, 나만의 색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때 데님이라는 소재를 재해석해 옷을 만들고 싶다는 아이디어가 머릿속에 들어왔다.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위해 조금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디자이너 브랜드 디자이너 생활을 접고 대학원을 가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 수석 졸업 후 유럽의 주목을 받다
 
이탈리아로 다시 한 번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 떠난 그는, 이탈리아 도무스 아카데미(Domus Academy) 석사과정을 수석으로 졸업하게 된다. 
 
졸업 후 3개월 동안, 2011년 이탈리아 보그 매거진이 선정하는 ‘보그 탤런트 디자이너’에 이름을 올리게 되고, 2012 프랑스 ‘후스 넥스트 프레타 포르테’에서 ‘올해의 신진디자이너’로 선정되었다. 또 유학생활과 첫 디자이너 생활을 했던, 영국의 ‘아트 쓰레드’에서도 ‘올해의 유망 디자이너’로 선정되어 단기간 유럽 각 국의 주목을 받았다.
  
- 유럽 각 국에서 주목받는 디자이너로 선정된 소감.
 
“브랜드 런칭 전 대학원 졸업 프로젝트를 마무치 한 뒤 졸업식만 기다리던 상태에서 처음 이탈리아에서 ‘보그 탤런트 디자이너’에 이름이 올랐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 프랑스와 영국에서 발표한 디자이너에도 이름이 오르게 되었고, 이러한 일들로 인해 이탈리아 대표로 크리에이티브 산업 프로젝트 대회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지금 ‘아브라함 케이 한글’이라는 브랜드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게 되었고,  파리의 프레타 포르테, 런던 패션위크 무대에 브랜드 이름을 걸고 오를 수 있었다. 이 모든 일들은 운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프리미엄 데님 기술력으로 ‘아브라함 케이 한글’ 선보이다.
 
- 아브라함 케이 한글은 어떤 브랜드 인가.
 
“간단하게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라고 말 할 수 있다. 데님이라는 소재는 현재 여러 브랜드에서 대부분 청바지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있다. 아브라함 케이는 데님을 타 소재와 믹스해 여러 종류의 모던한 의류를 만드는 브랜드다.”
 
- 아브라함 케이 한글의 뜻이 궁금하다.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외국에서 사용했던 아브라함은 내 세례명이다. 여기에 한국이름까지 더해 ‘아브라함 케이 한글’로 브랜드 이름을 정했다.”
 
-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 된 점은?
 
“청바지를 만들 수 있는 국가는 많지만, 진정한 프리미엄 진을 만들 수 있는 국가는 많지 않다. 1위인 이탈리아, 2위 일본을 정도를 꼽을 수 있고, 그 외에 리바이스와 같은 데님 전문 브랜드 등을 말할 수 있다. 아브라함 케이 한글에서는 프리미엄 데님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데님이란 소재로 옷을 만들기 때문에 다른 브랜드와는 다르다고 말 할 수 있다.”
 
- 브랜드가 추구하는 방향.
 
“각 나라마다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이처럼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내 브랜드의 옷을 입었을 때, 똑같은 옷을 입어도 각자 다른 느낌의 멋이 났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그런 방향으로 옷을 표현해 나갈 예정이다.”
 
-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라 말할 수 있는 것들이 궁금하다.
 
“먹물이 화선지에 떨어져 퍼질 때 나오는 색상인 화이트, 그레이, 블랙을 메인 컬러로 사용한다. 또 한 가지 라벨에 찍혀있는 점자를 들 수 있다. 브랜드 콘셉트 자체가 ‘자기 자신은 알지 못하지만, 내면에 다양한 모습들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장님이라는 생각을 하며 점자를 라벨에 사용했다.”
 
- 주 타겟층은?
 
“타켓층은 10대에서 40대로 잡고 있다. 20대가 아닌 10대로 타겟층을 잡은 이유는, 유럽 여성은 한국의 여성과 체형이 많이 달라 15세만 되어도 성인의 체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이번 컬렉션 소개
 
“이번 컬렉션은 ‘밀리터리 메멘토’라는 주제로 만들었다. 전쟁에서는 승리와 패배가 존재한다. 승리자 이지만 신체와 정신적인 고통으로 인해 힘들 수도 있고, 비록 패했지만 전쟁터에서 교훈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승리와 패배라는 상반된 관계 속에, 또 다른 상반된 모습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데님이라는 소재와 겨울에 맞는 소재를 믹스매치해 다양한 느낌을 표현하려 노력했다.”
 
- 이번 컬렉션의 영감은 어디서 받았나.
 
“고엽제 피해자들의 다큐멘터리와 십자군 전쟁에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영감을 받았다.”
 
- 한국에서 숍을 내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
 
“글로벌 마켓을 중점으로 브랜드를 시작했고, 브랜드가 처음 노출 된 곳이 파리였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 쪽에서 비즈니스를 시작하게 되었다. 또 해외에서 디자이너 생활을 하며 ‘유럽에서 패션쇼를 하면 전 세계에서 바이어들이 모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때문에 한국에서 당장 숍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도 아브라함 케이 한글의 옷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파리나 밀라노를 찾은 한국 바이어가 옷을 계약해 한국에서 파는 경우다.”
 
- 해외 바이어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천차만별이다. 브랜드 타겟층을 다양하게 잡아 스타일이 다양한 편이다. 이번 F/W 컬렉션을 보고 한 프랑스 남부의 바이어는 ‘이번 컬렉션은 파리지앵이 소화할 수 있는 옷이라 우리 지방의 사람들은 소화하지 못 할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고, 젊은 층의 고객의 소비가 많은 곳의 바이어는 이번 컬렉션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을 디자인 하고 싶다
 
- 권한글은 어떤 디자이너 인가.
 
“세상과 많이 타협하려 하는 디자이너다.”
 
- 그 말은 상업적인 디자이너라는 소리인가.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평소 입고 다닐 수 있는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를 상업적인 디자이너라고 본다면 맞는 말이다.”
 
- 디자인을 하며 힘든 점.
 
“이건 항상 힘들다고 생각하면서도 즐기는 부분이다. 소재를 정하고 옷을 만들었을 때 구성했던 것과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순간 힘들다고 느끼게 된다.
 
- 앞으로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가.
 
“꾸준히 데님 소재를 다양하게 패션에 접목시켜 새로운 디자인을 선보이며, 그런 쪽에서 독보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 존경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디자이너는 없다. 하지만 마크 제이콥스나 장폴 고티에처럼 실험적인 디자인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갖고 있다. 마크 제이콥스 같은 경우를 예로 들자면, 그는 자신만의 울타리에 갇혀서 디자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브랜드와 함께 협업 디자인을 즐기며 발전해 나간다. 그런 모습들은 훌륭하다 생각해 나역시 그런 협업 디자인을 함께 할 생각이다.”
 
-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항상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해 보라고 이야기 해 주고 싶다. 또한 공부를 하면서 어떤 디자인을 보고 비슷하게 디자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자기만의 색을 집어넣으며 디자인 하라고 조언 해 주고 싶다.”
 
▲ 권한글 디자이너 [사진=양문숙 기자]

■ ‘브랜드’ 넘어 ‘토털 패션 브랜드’ 그룹 만들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
 
“브랜드의 가치를 더 높인 뒤 세컨 브랜드들을 발표하고 싶다. 또한 앞으로도 한국 시장보다는 해외에 더 많은 확장을 해 나갈 계획이다.”
 
“이건 길게 잡고 있는 계획이지만, 후배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갖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브랜드를 내기위해는 10단계를 거쳐야 한다면, 그 친구들에게 5단계 정도만 거칠 수 있도록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질적인 정보들을 제공해 주고 싶다.”
 
- 디자이너로써 최종 목표.
 
“어느 정도 브랜드가 성장하면 큰 토털 패션 브랜드 그룹에 흡수되는 경우가 많다. 브랜드 디자이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토털 패션 브랜드 그룹을 직접 만드는 것이 꿈이다.”
 
 
Copyright ⓒ 뉴스투데이.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더보기 [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이호정 “연기보단 모델, 빅토리아 시크릿 호령하는 모델이 나의 꿈” [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고소현 “나만의 색깔을 가진, 작지만 강한 모델 되고파” [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이철우 “강동원처럼 모델·연기 다 잘하고 싶어요” [패션피플 릴레이인터뷰] 김상우, 동양인 최초 패션 메카 ‘버버리 프로섬’쇼에 서다
주요기업 채용정보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