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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피플 릴레이 인터뷰] 최한빛,“여자들은 모를 거예요 여자라서 행복하다는 것을”

강소슬 기자 | 2014-08-07 09:01 등록 (08-11 14:29 수정) 5,708 views

(뉴스투데이=강소슬 기자) “남자와 여자가 나눠진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몸이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았다. 7살 즈음 착하게 살 테니 다른 친구들처럼 자고 일어나면 여자가 되게 해달라고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며 기도한 적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신기하다. 이제는 가족과 지인들이 나를 여자로 봐주기 때문에 트렌스젠더라는 것을 무의식중에 잊고 지내는데, 가끔 방송과 언론 때문에 ‘내가 트렌스젠더였지’ 하는 생각이 든다”

2009년 제 18회 슈퍼모델 선발대회로 데뷔한 최한빛은 모델일과 함께 방송, 뮤지컬, 무용수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팔방미인이다. 지금부터 그녀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그녀의 어린 시절, 유독 ‘눈에 띄던’ 아이
 
- 어린 시절 어떤 아이였나.
 
“강원도 촌에서 자랐는데 친구들 중에서 가장 하얀 편이었다. 그래서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튀었던 것 같다. 그리고 유독 핑크색을 좋아해서 가방과 학용품 모두 핑크색만 사용했어요. 어릴 때 핑크색상의 학용품을 사기 위해 숙제와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어요”
 
- 어릴 때부터 자신이 여자라는 걸 알았나.
 
“남자와 여자가 나눠진다는 걸 알았을 때 내 몸이 뭔가 잘못 됐다는 걸 알았다. 7살 즈음 착하게 살 테니 다른 친구들처럼 자고 일어나면 여자가 되게 해달라고 십자가 앞에서 무릎 꿇고 울며 기도한 적도 있었다"
 
- 당시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하셨나.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께서 참 예쁘고 곱게 키워주신 것 같다. 성격 자체가 어릴 때부터 여성스러웠기 때문에 엄마는 알게 모르게 머릿속으로는 여자아이 같다고 생각 하시면서 입으로는 아닐 거야 하셨다고 한다”
 
- 어릴 때 외모 때문에 생겼던 에피소드는?
 
“남자 중학교를 다녔는데, 당시 얼굴도 하얗고 깻잎머리에 실삔을 꼽고 다녔다. 그리고 그때도 핑크색 가방을 매고 다녔다 유독 눈에 띄었다. 그래서 그런지 선배들한테 귀엽고 예쁘다며 많이 불려 다녔다. 남자 중학교에 홍일점 같은 아이였다”
 
- 고등학교 생활을 할 때는 어땠나.
 
“어릴 때부터 한국 무용을 해서 예고로 진학을 했다. 일반적으로 남자들 사이에 있는 것 보다 여자들 사이에서 생활하는 것이 편할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여자가 아닌 여자'인 나에게 고등학교에서의 생활은 너무 힘들었다”
 
“중학교 때는 무거운 것을 들 때 항상 제외였는데, 예고에서 무용을 전공하니 무거운 것도 직접 들어야 했고, 남자 무용수의 역할을 하는 것이 너무 싫었다. 나보다 몸무게가 더 나가는 여자 친구들을 들어야 하기도 했고, ‘왜 나는 저 친구들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없을까,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하는 생각에 정말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두 놀러 갔을 때 혼자 연습실에서 치마를 입고 거울 앞에서 몰래 춤을 추기도 했다. 당시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웠다. 당시에는 혼자 춤을 추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군 입대 앞두고 완벽한 여자가 되기로 결심하다
 
- 20년을 남자로 살다 완벽한 여성이 되겠다 결심한 계기는?
 
“성인이 되고 현실에 나오니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말 좋아하던 춤을 춰야 하는데, 갑자기 윗옷을 벗어야 할 때도 있었고, 여자 무용수를 번쩍 들어 올리며 남성다운 동작을 시키니 잘 못했다. 그래서 공연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고, 그 당시 충격이 컸다. ‘난 어디서 행복을 찾아야 할까’하는 생각들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군대를 가긴 해야 하는데, 군 입대를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여성스러운 몸매와 외모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군대에서 사건 사고에 휘말릴 것 같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으로 살다 정말 한번만이라도 내 안에 있는 진정한 내 모습을 꺼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처음으로 단발머리에 화장을 하고, 원피스를 입고 거울 앞에 섰는데, 내 자신이 너무 예쁘게 보였다. ‘나는 왜 나에게 솔직하지 못했지? 내가 정말 바보 같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내 자신을 숨기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완벽한 여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완벽한 여자가 된 뒤 달라진 생각은?
 
“그동안 남 탓만 하면서 내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했다. 여자들은 자기가 여자라서 행복한 것을 모를 것이다. 난 매일 자고 일어났을 때, 거울을 봤을 때 매일 매순간 여자라는 것에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지금은 나를 사랑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 같다.”
 
“나는 어디가 아픈데 몸을 고친 것뿐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이제 몸을 고쳐서 평범한 사람이 됐다”
 
-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고민 상담을 해 올 것 같다.
 
“실제로 고민에 대해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있다. 웬만하면 모두 답을 해주려 하는 편인데, 수술을 하라는 말은 절대 하지 않는다. 수술을 한다고 모두 행복해 지는 것도 아니고, 겪어야 할 무게가 어마어마하다. 꼭 수술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이다. 수술 후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문제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 성 정체성으로 인해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자기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다”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당하게 모델이 되다
 
모델 최한빛은 2009년 트렌스젠더 모델 최초로 슈퍼모델에 도전하며 주목을 받으며 11위라는 성적을 거뒀다.
 
- 2009년 슈퍼모델에 도전하게 된 이야기
 
“어릴 때부터 계속 상상해오던 꿈이 바로 모델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 모델을 한다고 했을 때 집안의 반응은?
 
“아빠도 내심 좋아하셨는데, 엄마는 정말 좋아해 주셨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미스코리아 나갔으면 좋겠다. 슈퍼모델 나갔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무심코 던지셨는데, 그 말이 이뤄졌다며 정말 좋아하셨다. 부모님이 든든하게 응원해 주시고 지원해 주셔서 당시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 슈퍼모델 도전 에피소드
 
“처음 런웨이에 설 수 있었던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슈퍼모델 선발대회에서 디자이너 선생님들의 옷을 입고 워킹할 때 사람들이 모두 나를 집중해 주는 것에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했다. 무용을 하면서 무대를 많이 올랐지만 의상 콘셉트에 맞춰 워킹을 하는 것이 색다르게 느껴졌다”
 
- 런웨이에 처음 올랐을 때 어떤 생각을 했나
 
“모델 워킹 수업때 ‘내가 가장 멋있어’라는 생각을 갖고 런웨이를 걸어야 한다고 들었다. 정말 그런 자신감을 갖고 무대에 올랐다. 지금도 무대에 오르면 그런 마음으로 오르는데 지금도 무대에 오를 때마다 설레는 마음은 여전하다”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로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지다
 
슈퍼모델 선발대회 도전 후 최한빛은 다양한 모델 활동과 함께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2년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3 (이하 도수코)’에 다시 한 번 도전장을 던졌다.
 
- ‘도수코’ 도전 당시 분위기가 어땠나.
 
“아무래도 여자들끼리 모여 있다 보니 신경전, 질투가 장난 아니었다.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더 예쁜 옷과 드레스를 입기 위해 쟁탈전도 치열했다. 카메라가 없을 때 실제로 애들이 싸우는 걸 본 적도 있다. 난 싸움을 굉장히 싫어하는 스타일이라 누군가 싫으면 피하는 스타일이다. 싸우는 모습을 보고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웃음)”
 
- 심사의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얼굴에 대한 지적을 많이 받았다. 이젠 도수코의 얼굴 스타일이라는 이름이 생길 정도로 쌍커플이 없고 강한 매력의 모델 얼굴을 선호한다. 도수코에서 난 너무 얼굴이 연기자 같다는 이야기와 패션을 표현하기에 얼굴이 너무 화려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속상했다”
 
- 당시 합숙생활하며 힘들었던 점은?
 
“당시 힘들었던 점은 굉장히 많았다. 합숙 생활을 하며 나중에는 맏언니가 되었는데, 평소 언니들에게 지켜야 되는 선이 정확한 편이지만, 동생들은 나를 편하게 대해주길 바라는 스타일이다. 6살 이상 차이 나는 어린 동생들이 말을 심하게 해올 때 남모를 스트레스를 많이 겪었다”
 
“아무래도 경쟁을 하는 사이다 보니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에 다들 날카로워진다. 최소한의 예의만이라도 지켜줬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합숙 생활을 했지만 그렇게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힘들기도 했다”
 
- 합숙생활 하며 즐거웠던 점은?
 
“진경, 소원, 소영과 한 방을 썼는데, 지금까지도 이 친구들과는 잘 만나고 있다. 합숙생활을 하면서 동생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지냈던 시간이 즐거웠다. 다행히도 한 방을 썼던 동생들이 모두 모델 활동을 잘 해나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고, 뿌듯하다”
 
- 다시 ‘도수코’에 도전할 수 있다면?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도전할 것이다. 당시 탈락을 했을 때도, 다른 친구들처럼 모델로서 다양한 경험을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아쉬웠다”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카메라 앞에서 더욱 빛나는 모델 최한빛
 
- 최한빛은 어떤 모델인가.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모델이다”
 
- 가장 기억에 남는 쇼는?
 
“첫 컬렉션 무대인 2009년 황재복 디자이너 선생님의 웨딩쇼였다. 당시 태어나서 처음 웨딩드레스를 입어봤는데, 정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남들은 일생에 한번 입어본다는 그 웨딩드레스를 여러 벌 입고, 또 사람들 앞에 그런 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 모델일을 하며 힘들었던 점은?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화려한 모습만 보고 있지만, 사실 캐스팅에 10곳을 가면 그 중에서 3곳 정도만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얼굴이 화려한 편이라 패션보다는 뷰티 쪽이나 드레스 쪽에서 많이 찾아주는 편이다. 이런 점들이 한때는 힘들게 느껴졌다”
 
“약간 악바리 근성이 있어서 어려운 일이나 시련이 생길수록, 더욱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계속 다양한 공부와 도전을 하는 것 같다”
 
- 롤모델은?
 
“사실 지금 정해놓은 롤모델은 없다. 나와 비슷한 길을 밟은 모델이 없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다른 누군가의 롤모델이 되고 싶다”
 
- 어떤 모델로 남고 싶은가.
 
“‘어느 누구도 최한빛의 열정을 따라갈 수 없을 것이고, 그녀는 포기를 모르는 모델이었다’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고 싶다”
 
- 가장 서고 싶은 꿈의 무대는?
 
“두리춤터 안무가 페스티벌 영혼 컬렉션에서 지난 6월 공연을 해서 입상을 받기도 했다. 언젠가는 기존 패션쇼에 연기나 춤이 어울려지게 연출하고 그 위에 내가 모델로 서고 싶다. 그게 가장 서고 싶은 꿈의 무대다”
 
▲ 모델 최한빛 [사진=양문숙 기자]

■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꿈
 
- 앞으로의 계획
 
“8월에 춤으로 국제 콩쿨을 준비하고 있다. 더 스타즈 컨텐츠 모델 교육기관에서 강의를 하며 후배 모델을 육성하려고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Syoni by Mireya’라는 브랜드를 디자이너 분들과 함께 협력해서 론칭할 계획이다”
 
- 최종 목표 (꿈)은.
 
“최종 목표는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직업적으로는 멋진 무대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한 사람으로서의 꿈은 좋은 남자를 만나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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