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07)] 전적지 답사에서 만난 전쟁영웅들 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5.25 20:49 ㅣ 수정 : 2021.05.25 20:49

맥아더 원수는 왜관 및 다부동 융단 폭격, 국군 15연대는 여세를 몰아 328고지 탈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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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왜관 일대에서 시행된 융단폭격과 우측 다부동지구전투 기념관 앞에 전시된 당시 운용된 전차 및 화포 모습  [사진=전사편찬연구소]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다부동으로 몰려오는 북한군의 집중공세가 심상치 않음을 판단한 유엔군 총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왜관 및 다부동에 융단 폭격을 명령했다. 16일 오키나와 기지에서 출격한 B-29폭격기 98대는 960톤의 폭탄을 목표에 투하하였으나 인민군의 포격이 다소 줄어든 것 이외에는 별 성과가 없었다.

 

다만 백선엽 장군의 설명에 따르면 당시 포로를 심문한 결과, 이날의 융단폭격을 기점으로 적들의 기세가 결정적으로 꺾였다. 어쨌든 19일 실시 예정이었던 2차 폭격은 취소되었다.

 

한편 백선엽 1사단장은 중과부적으로 현 진지의 방어가 힘들 것으로 판단하여 사단 고문관 메이 중위를 미 8군 사령부에 보내 증원을 건의하게 하였다. 

 

8군사령관 워커 중장은 백선엽 장군의 요청에 경산에 있던 미군 27연대, 37포병대대, 8포병대대를 진목정으로, 23연대를 두모동으로 투입하여 종심을 강화하였다.

 

17일 국군 11, 12연대는 유학산을 공격하여 적 1,500명을 사살했으나 11연대 11중대가 지키고 있던 673고지가 기습을 받아 뚫리는 바람에 유학산 탈환에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15연대는 융단폭격의 영향으로 인민군이 침묵하고 있는 사이 공격을 재개하여 적을 낙동강 서안으로 몰아내고 328고지를 탈환하였다. 

 

백선엽, 적 특공대의 사단 사령부 기습 등 위기에 다시 직접 권총을 빼들고 선두 지휘…

 

그러나 사단 우측에 벌어진 간격으로 북한군이 침투하여 가산성을 점령했고 이로 인해 동쪽이 노출된 틈을 타서 18일 적의 특공대가 사단 사령부를 기습했으나 다행히 백선엽 및 사단 주요인물들을 사살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후 전선이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면서 2군단장 유재흥 장군은 19일 'Y'선을 견고하게 하기 휘해 국군8사단 10연대를 1사단에 배속시켰다. 반면에 다행스럽게도 국군 1사단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북한군은 유학산을 방어하고 있던 15사단을 20일 영천으로 돌렸다.

 

21일 백선엽은 증원병력을 받자 'Y'선 완전 회복을 결심하고 12연대와 10연대로 하여금 수암산 및 유학산을 공격하게 하는 한편 11연대로 신주막을 공격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번 공격도 수약산과 유학산을 점령하는데 그치고 11연대는 공격 초반부터 북한군의 반격에 부딪혀 점차 후퇴하고 있었다.

 

이에 격분한 백선엽은 다시 직접 권총을 들고 선두지휘하여 힘겹게 원위치를 확보하였다. 또한 이 날 북한군 포병대대장 정봉욱 중좌(훗날 논산훈련소장 역임, 소장 예편)가 휘하 병력을 이끌고 국군에 투항하여 적 포병대 배치를 알려주어 반격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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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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