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22)] 유니폼 중독에 빠지는 수방사 군인들?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9.14 15:15 ㅣ 수정 : 2021.09.14 15:15

카키색 및 고동색 복장으로 드러나는 근위부대라는 자긍심이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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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현재의 얼룩무늬 복장으로 바뀌기 전인 민밋한 국방색의 전투복 차림으로 사무실에 첫 출근을 하자 필자는 외톨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당시 수방사는 아래의 사진과 같이 하계에는 카키색의 복장을, 동계에는 어두운 갈색인 고동색의 복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육군 전부대원들이 착용하고 있던 민밋한 국방색의 전투복장에 수방사 마크를 달고 있는 필자가 새로 전입온 장교임을 기존에 근무하고 있는 수방사 장교·부사관들은 한눈에 알아보고 지나칠 때마다 환영한다는 말들을 해주었다.

 

일부 병사들이 휴가를 출발할 때 사회 친구들을 만나면 과시하고 싶은 마음으로 부대에서 나오면 군장점에 들려 공수마크, 특수전 마크 등을 민밋한 국방색의 전투복장에 추가로 붙이고 고향으로 향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물론 복장 규정을 위반했던 그들이 휴가 복귀시에는 추가로 붙인 마크들을 모두 떼어내고 부대로 돌아왔지만 군인들은 유니폼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특히 수방사에서 복무했던 장병들은 카키색 및 고동색 복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심지어 인터넷의 각종 동호회 사이트를 검색하면 수방사에 복무했던 전역병들이 특별한 수방사 복장을 얼마나 사랑하고 자긍심을 갖고 있었는지 금방 알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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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방사에 복무했던 전역병들이 특별한 수방사 복장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을 갖고 있었는지 금방 알수 있게 해주는 인터넷의 각종 동호회 사이트에서 검색된 사진들 (사진=김희철)

 

“아주 좋은 부대로 발령받으셨네요”하며 출세길이 열린다고 한 수방사 근무가 시작돼

 

육군대학 교육을 마치고 부임한 수방사에서 첫 근무를 시작할 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낯설었지만 필자가 근무할 작전과에는 육군사관학교 시절 같은 중대에서 생활했던 선배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다행이었다.

 

필자가 육군사관학교 1학년 시절에 선임부분대장 생도로 근무했던 이윤배 소령(육사35기, 예비역 소장)은 작전과의 최선임 장교로, 분대 2학년이었던 김영주 소령(육사36기)도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여 안심되며 든든했다.

 

또한 고향 후배인 최병로 대위(육사38기, 예비역 중장)는 이미 소령으로 진급하여 육군대학 입교를 앞두고 잠시동안 함께 근무하게 되어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이었다.

 

88서울올림픽이 끝나고 그 열기가 아직도 식지 않았던 1989년 7월, 육군대학에서 서울 필동을 거쳐 육사에 있는 아파트 모델하우스까지 애환의 이사할 때(‘[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21)] 잦은 부대이동에 따른 웃픈 애환’ 참조) 운전기사가 “아주 좋은 부대로 발령받으셨네요..”하며 출세길이 열린다고 덕담을 한 수방사에서의 근무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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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동에 위치한 수방사 영내에 있던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는 비석과 1976년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 경호실장(오른쪽 끝), 수방사 복장의 전두환 작전차장보(오른쪽 두 번째)와 경호실 복장의 경호팀과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김희철/동아일보)

 

 개의 목줄같은 역할을 하며 필자를 꼼짝도 못하게 만든 경찰 무전기

 

육군대학에서 차후 근무지인 수방사 명령을 받을 때 주변 동료들의 부러워하는 눈초리를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바라본 잔디는 푹신한 침대같이 편해 보이지만 실제 잔디에 앉아 있으면 벌레와 오물이 득실거리는 불편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처럼 수방사 작전과의 근무는 특이한 카키색 복장으로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같이 멋있어 보였지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대통령을 경호하고 수도서울을 방호하는 임무는 대단히 중요하고 자긍심이 넘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중견 간부인 소령이라는 계급은 단지 생도생활 시절의 1학년 생도처럼 최하급자로서 선배들의 매서운 군기와 질타 속에 근무하는 위치로 하향 보직된 기분이었다.

 

지난 8년간의 GOP 전방부대 생활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고 보람차게 근무하여 자신감이 넘쳤었다. 하지만 기존에 근무하는 많은 장교들이 위관 시절 그곳에서의 근무 경험이 있어 그들만의 기득권을 뛰어넘는 것은 힘들어 보였다.

 

필자의 성공적인 야전부대 작전분야 경력이 고려되어 수방사령부로 보직을 받았는데, 이곳의 임무는 북쪽의 적에 대응하며 전투준비를 하는 것에 추가하여 소요진압 및 시가지 전투준비 등 야전부대 근무와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대침투작전 및 소요진압 관련 임무를 수행하는 필자에게는 다른 장교들과 달리 추가로 휴대하는 장비가 있었다. 서울 시내의 시위 및 소요발생시 경찰력이 부족할 때 소요진압부대로 출동할 것에 대비하여 경찰의 출동 사항을 항상 감지하는 경찰 무전기였다. 

 

아마도 지금은 이러한 시스템이 군부대에 적용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 정권 당시에는 “충성은 금석을 뚫는다”는 수방사 영내에 있는 비석의 문구처럼 5공 시절의 잔재가 지속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 경찰 무전기는 24시간 동안 개의 목줄같은 역할을 하며 필자를 꼼짝도 못하게 만들었다. 결국 새벽에 출근해서 아침 상황회의 준비로 하루를 시작해 자정이 넘어가는 시각에 퇴근할 때까지 시내의 시위 상황과 경찰 출동 현황을 확인하고 대응하는 것이 추가로 부여된 임무였다.

 

그래도 개인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고 24시간 대기하며 바쁘게 달리는 직책이었지만 대통령의 근위부대로 자긍심을 심어주는 특이한 카키색 및 고동색 유니폼을 점점 사랑하게 되었다.

 

◀김희철 프로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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