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남 기자 입력 : 2025.05.24 14:57 ㅣ 수정 : 2025.05.28 10:50
[부산/뉴스투데이=김영남 선임기자] "아따 마 정신 사나버라......"
이 구수한 부산 사투리를 표준말로 굳이 옮긴다면 "정신이 없다" 정도로 표현할 수 있겠다.
요즘 부산 출근길 풍경은 그야 말로 혼돈이다. 여야 각 캠프에서 대선후보들의 홍보음악과 캠프 관계자들의 연설로 시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으려고 하지만, 출근길 시민들의 눈과 귀는 선거운동 홍보로 이미 많이 피곤한 상태다.
출근길에서 기자와 마주한 한 시민은 "아침 출근 때마다 같은 자리에서 저렇게 시끄럽게 음악을 트니 정신이 없어서 미칠 지경이다. 빨리 대통령 선거가 끝났으면 좋겠다"며 "선거철에만 저렇게 읍소하고 뽑아달라고 하지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나몰라할 게 뻔한거 아닌가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애당초 정치인에 대한 기대가 없으니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품지 않는다. 요즘 부산 공약들 보면 예전에 나왔던 공약도 있다. 왜 같은 공약이 나오겠는가? 그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슨 공약 재탕도 아니고 매번 같은 공약으로 현혹하는 게 이제는 좀 피곤할 지경이다"고 하소연 했다.
혹자는 기자와 출근길 인터뷰를 한 사람이 정치에 관심이 없어서 그렇다고 판단할 수도 있겠지만, 그 시민의 정치인과 정치에 대한 불신을 갖기 전까지의 그 시민의 절망감이 기자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몇해 전 초등학교 딸의 반장선거가 기억난다. 반장선거에 출마하는 딸은 며칠전부터 학급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고민을 하면서 엄마와 의견교환을 했다.
당시 기자는 딸의 "아빠는 어떻게 생각해?"라는 기습 질문에 "친구들이 원하는 걸 다 들어준다고 해"라며 다소 무성의 하게 답해 딸의 화를 불러 일으켰던 적이 있다.
당시 딸의 화를 불러일으킨 원인의 핵심은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판단에도 원하는 걸 다들어주는 공약은 '거짓'이었다. 부산 민심을 공략하기 위해 대선후보들은 저마나 부산 맞춤형 공약을 내세우며 표심 확보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부산 민심 공략을 위해 부산을 해양수도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특히 '해양 수도 부산'이라는 청사진을 구체화 시키는 공약들이 바로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북극항로 개척을 통한 부산을 물류 중심지로 육성, 해사법원 신설, 해양 공공기관과 해운기업 HMM 본사 부산 이전, 해양 금융 활성화 등이다.
김문수 후보는 산업은행 부산이전, 부산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그린벨트 해제 권한 부산시장 이양, 부산지역 대학 지원 강화 등을 내세웠다.
이준석 후보는 '아시아 금융 허브 특별법' 제정으로 국내 증권사와 해외 금융사를 부산으로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후보들이 내세우는 공약들은 현재 부산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잘 담고 있다. 그런데 공약은 실행이 돼야 의미가 있는 것이고 실현 없는 공약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후보들이 거짓말 공약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인의 말에는 책임이 뒤따른다. 그래서 정치인의 입은 천금처럼 무거워야 하며 한 번 뱉은 말은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을 지지 못할 때 사람들은 정치인의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말한다.
최근 부산 대선판이 HMM 이전 공약 철회설 소동으로 잡음이 많다. 더불어민주당이 HMM 본사 부산 이전 공약을 철회했다는 일각의 제기가 있었고 민주당 선대위 측이 즉각 HMM 부산 이전은 공약대로 추진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갑론을박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공약 실천 여부는 구체적인 로드맵 제시와 진심이 필요하다. 그래야 유권자가 신뢰할 수 있고 표심으로 이어진다. 급하게 표를 얻기 위해 또는 구색을 맞추기 위한 맞춤형 공약은 오히려 해당 후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시 딸의 반장선거 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면, 딸은 결국 반장선거에서 당선됐다. 당시 공약은 딱 하나였다. 학급 친구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서 힘쓰겠다는 것. 그리고 자신에게 질문하면 최선을 다해 가르쳐 주겠다고 공약했다. 딸은 당선 후 그 약속을 지켰고 후회없는 반장시절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