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쩐의 전쟁’ 한중일 삼국지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6.29 10:11 ㅣ 수정 : 2015.06.29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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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중국이 또다시 금리인하에 나섰다. 이번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기준금리와 지급준비율(지준율)을 동시에 인하하는 이례적인 조치를 단행했다. 중국의 기준금리와 지준율 인하는 올들어 3번째이다. 돈을 풀어 경기부양에 나섰다는 것은 그만큼 중국경기가 나쁘다는 것을 역설한다. 문제는 일본에 이어 중국이 사실상 무제한적인 통화량 방출로 경제를 살리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는 점이다.

일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이후 일관되게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고 공언해왔고 이를 착실히 실천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정부마저 이번 조치를 통해 사실상 무제한 통화공급 전쟁에 뛰어들었음을 대내외에 선언했다. 한국도 최근 메르스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인하를 전격적으로 단행한데 이어 ‘15조원 ∝’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침체의 공포속에 한중일 3국이 이른바 ‘쩐(錢)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증시폭락, 경기침체 시그널에 다급해진 중국정부 126조원 풀어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28일부터 금융기관의 1년 정기예금과 대출의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씩 내리고 일부 금융기관에 대한 지준율도 0.5% 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11월 2년여 만에 기준금리를 내리기 시작한 이후 올들어 3차례를 추가해 모두 4번째나 인하했고 지준율 인하도 3번째나 된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의 경기침체와 주식시장 폭락 등으로 인한 중국정부의 위기감을 반영한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연간 기준 7.4%로 24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올들어 1분기에는 7.0%로 더 낮아졌으며 2분기에는 7%를 밑돌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성장률 7%는 정국정부가 인내심의 한계를 잡고 있는 마지노선에 해당한다.

더욱이 중국증시는 최근 대폭락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지난 26일 상하이종합지수는 4192.87로 7.40%나 폭락했다. 25일에도 3.46% 급락했고 지난주에는 13%나 수직 하락했었다. 특히 자산신탁제도를 이용한 개인(개미투자자)들의 미수투자(돈을 빌려서 투자하는 것)가 대종을 이룬 상황에서 개인들이 대거 손실을 떠안고 파산할 경우 중국경제 전반에까지 쇼크를 안겨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는 최근 불룸버그가 중국증시의 경우 3640억달러(약 406조원)에 이르는 대규모 신용폭탄 우려가 존재한다고 진단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게다가 중국 개미들은 집담보 대출을 받거나 다른 용처의 자금까지 모두 끌어다 주식에 올인 하다시피한 상황이어서 주가폭락이 계속될 경우 부동산폭락, 소비심리 위축으로 이어져 경기침체를 가속화할 것으로 중국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주가폭락과 경제성장률의 마지노선 마저 위협받게 되자 중국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이 금리인하와 지준율인하라는 경기부양카드를 꺼낸 것이다.

중국정부는 이번 조치로 시중에 꽉 막힌 ‘돈맥 경화’가 풀릴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기업과 서민대출이 늘어 생산과 소비 모두에서 긍정적 효과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이번 기준금리인하로 인해 시중에 유동성 7000억 위안(약 126조 원)이 풀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일본 아베노믹스가 촉발한 ‘쩐의 전쟁’

아베총리는 지난 2012년 12월 26일 취임이후 이른바 ‘아베노믹스’로 불리는 경제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아베노믹스는 △대담한 금융정책 △기동적인 재정정책 △새로운 성장전략으로 압축된다. 특히 대담한 금융정책과 기동적인 재정정책이 주목할 부분인데, 이는 정부가 직접 나서 시중에 돈을 무제한 풀겠다는 것이다. 아베총리 취임이후 정부가 시중에 푼 자금은 지금까지 20조엔(약 18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히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그럼에도 일본정부는 통화공급 정책을 멈추지 않고 있다. 목표 인플레이션인 연 2%를 달성할 때까지 그야말로 무제한 실탄(돈)을 공급하겠다는 전략이다.

아베노믹스의 설계자로 불리는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2013년 4월 취임직후 “지금까지 와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금융 완화를 하겠다”고 공언했는데, 실제로 자신의 공언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 아베노믹스 덕분에 일본은 20년간 이어져온 경기침체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넘치는 돈이 주식시장으로 밀려들면서 주가가 폭등했고, 그동안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동산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닛케이 평균주가는 아베총리 취임당시 1만230엔이었는데, 약 2년 6개월이 지난 지금은 2만800엔을 넘어서 2배 이상으로 올랐다. 환율하락에 힘입어 수출기업들의 실적이 호전되어 올해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은 3.9%로 선진국 중 가장 높았다. 기업실적이 좋아지면서 일자리가 늘었고, 이는 실업률 하락으로 이어졌다. 무제한 통화공급에 따른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지만 지금까지는 돈을 풀어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아베노믹스가 상당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쩐의 전쟁’에 뒤늦게 뛰어든 한국정부

수백조원을 시중에 풀어대는 일본과 중국의 대담한 통화정책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정부 역시 뒤늦게 통화공급 정책에 나섰다.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한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뜻하지 않은 복병에 카운터펀치를 맞은 게 직접적인 발단이었다. 메르스 확산에 따른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한국은행은 전격적인 금리인하를 단행했고, 정부는 추경카드를 꺼내들었다. 언제, 얼마나 푸느냐의 문제만 남았을 뿐, 추경이 집행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제는 우리도 일본과 중국에 맞서 무제한 양적 완화에 나설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일본의 무제한 통화공급에 따른 엔저로 인해 한국의 수출기업들은 세계시장 곳곳에서 일본기업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수출기업인 현대기아차는 미국시장에서 가격경쟁을 앞세운 일본차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단순히 엔저효과만 고려하면 일본차는 현대차에 비해 3년전 보다 가격이 30%가량 떨어진 셈이다.

전문가들은 한국은 일본과 처한 상황이 달라서 무제한 양적 완화가 어렵다고 한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아베노믹스의 금리 정책은 제로 금리 상황에서 추진된 것이라 국내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아직 우리나라는 금리 부분에서 조금 여력이 있기 때문에 대대적인 양적완화 정책까지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적완화의 핵심은 소비심리를 살려서 물가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것인데, 한국의 경우 물가를 인위적으로 인상시키면 가계의 실질소득을 축소시켜 소비 위축으로 이어지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메르스 사태 계기로 근혜노믹스 다시 재정비해야

이유야 어찌됐든 한국정부 역시 일본과 중국의 무제한적인 통화공급 정책을 손 놓고 바라볼 수만은 없게 되었다. 일본이 시작하고 중국이 가세한 ‘쩐의 전쟁’은 결국 환율과 직결되어 수출경쟁력에 직접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수출에 모든 것을 의존하다시피 하고 있는 한국경제에서 환율변동은 경제성장과 직결되어 통화정책을 통해 사실상 인위적인 환율정책을 운용하고 있는 일본과 중국에 맞서 한국정부도 적극적인 대응자세가 필요해진 셈이다.

무엇보다 유명무실해진 박근혜정부의 ‘근혜노믹스’를 다시 손봐야할 시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할 때 4대 국정기조의 하나로 ‘경제 부흥’을 내세우고 창조경제·경제민주화·민생경제의 3대 전략과 42개 세부과제를 제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천방안이 없어 많은 경제학자들로부터 “모호하다”라는 부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박근혜대통령은 최근 국회법을 놓고 정치권, 특히 여당과 날카로운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경제에 올인해도 ‘쩐의 전쟁’에서 살아남을까 말까 하는데 정작 경제정책을 챙겨야할 아까운 시간을 정쟁으로 소모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종화 고려대교수(경제학)는 최근 칼럼을 통해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이 다시 한번 창조경제라는 큰 틀과 개혁조치들을 중심으로 재정비되었으면 한다. 대통령이 직접 경제정책의 큰 줄기를 챙겨서 업적을 내야 한다. 그래야 3년 후에 뿌듯하게 저녁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아베총리로부터 촉발된 ‘쩐의 전쟁’은 이제 중국의 가세로 본격적인 서막이 올랐다. 상대는 무제한 실탄공급이라는 무지막지한 무기로 중무장하고 있다. 단위도 수백조원에 달한다. 턱없이 빈약한 실탄을 갖고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박근혜정부가 어떤 출기제승(出奇制勝·기묘한 계략을 써서 승리함)을 내놓을지 기대해본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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