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삼각파고(三角波高)에 위협받는 한국 경제의 오늘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비가 오면 한꺼번에 쏟아진다는 속담이 있다. 요즘 한국경제가 딱 그짝이다. 원래 경제에 관해선 기분 좋은 얘기를 찾기가 쉽지 않지만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숙제들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그리스 위기, 중국증시폭락,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으로 인한 소비심리위축, 미국금리인상 가능성 등등. 뭐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정부가 꺼져가는 내수 불씨를 살리기 위해 총 22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안을 내놓았지만, 인위적인 경기부양책만으로 이 위기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하반기 우리 경제에 관한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 시나리오를 그려본다.
■ 위기탈출 넘버원으로 작용할 22조 원 추경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추경안은 크게 ▲메르스 대응과 피해업종 지원 ▲가뭄 피해 극복 ▲서민 생활 안정 등으로 구분된다. 먼저 정부는 메르스로 얼어붙은 경제로 피해를 본 업종을 지원하고 각종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2조 5000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메르스 직격탄을 맞은 관광업계와 수출기업 등에 지원하는 규모만 1조 6000억 원에 달한다. 또 생필품 가격 등과 밀접한 가뭄 및 장마 대책에 8000억 원을 쏟아붓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서민생활 안정에 1조 2000억 원을 배정했다. 여기에는 6만 6000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과 저소득 노인을 위한 일자리 3만 3000개의 창출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정부는 추경 외에 각종 정부 내 기금에서 3조 1000억 원을 가져와 주택구입, 전세자금 확대, 공공임대 지원 등에 투입하기로 했다. 요약하면 당겨쓸 수 있는 돈은 모두 동원해서라도 내수 불씨를 살려보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가 담겨있는 셈이다.
물론 이런 정부의 계산이 맞아떨어지기 위해서는 주변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리스 사태와 중국의 심상치 않은 주가폭락, 메르스 사태 등 우리 경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3대 변수가 큰 충격 없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야 가능한 시나리오란 얘기다. 가장 우려되는 변수로 꼽히는 그리스 사태는 국민투표 결과 반대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세계 경제에 제한적인 충격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이를 뒷받침한다. 교보증권은 그리스가 설령 채무불이행(디폴트) 선언을 한다고 해도 실제 유로존 탈퇴확률은 높지 않고 오히려 금융지원에 관한 재협상 가능성이 커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최근 블랙프라이데이(검은 금요일)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금요일만 되면 폭락하는 중국증시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조만간 반등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나오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전망에 힘을 실어준다. 중국 정부는 최근 기업공개(IPO) 속도 조절과 증시 긴급자금 수혈을 골자로 하는 부양책을 내놨다. 지난달 전격적인 금리 인하와 신용거래 규제 완화에 이은 두 번째 시장 안정화 대책이다. 특히 중국증권사들이 주가급락에 맞서 총 21조 원 이상의 증시 안정화 펀드를 직접 조성하겠다고 나선 점이 고무적이다. 시장이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주가폭락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고 시장이 서서히 반등세로 돌아설 것으로 중국정부와 증권사들은 기대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확산속도가 현저히 떨어진 메르스가 조만간 공식 종결될 수 있을 것이란 예상도 낙관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방역 당국은 삼성서울병원의 의료진이 추가확진자로 확인되었지만, 메르스로 인한 사망자가 수일째 나오지 않은 점을 들어 늦어도 8월 말에는 메르스가 공식 종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 경제를 둘러싼 이러한 3대 악재가 큰 충격 없이 넘어갈 경우 정부의 22조 원 규모의 추경안은 얼어붙은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어 예상외의 소비 진작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정부가 이번에 추경안을 발표하면서 경제성장률 3%대 고수방침을 자신 있게 밝힌 것도 이런 낙관론에 근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그리스사태, 중국증시폭락, 메르스 사태 삼각파도에 휩쓸려갈 한국 경제
이와는 반대로 주변 악재들이 더 악화해 한국 경제가 사면초가에 놓일 것이란 비관론도 비등하다. 지금의 악재들이 더 나빠지면 나빠졌지 쉽게 호전되기 어려운 구조라는 분석에서 비롯된 시각이다. 먼저 그리스사태는 이번 국민투표결과 반대가 우세한 것으로 나타나 사실상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아졌고, 그 후폭풍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뛰어넘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유럽 쪽 전문가들은 그리스 정부가 수차례 태도를 바꿔 혼란을 일으켰고 국민도 이에 맞장구를 치면서 채무협상을 어렵게 해온 점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무엇보다 그리스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할 유럽연합(EU)의 긴축재정안에 불만을 터뜨리고 정부 역시 국민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는 정책을 밀어붙이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지난 5년간 채무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정권이 3번이나 바뀐 것이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긴축재정에 가장 세게 반발해온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가 반대표가 많이 나온 데 힘입어 향후 채권단과의 협상에서 강경한 태도를 선택할 경우 그리스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을 공산이 높다. 최상의 방안은 긴축재정안에 찬성해온 시리자(급진좌파연합)가 그리스 3대 야당인 중도우파 신민당, 중도좌파 파속, 친유럽연합 성향의 중도좌파 포타미와 손잡고 연정을 꾸려 속전속결로 협상을 타결하는 것이었는데 이번 국민투표로 이 시나리오는 물 건너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유럽연합과 치프라스가 돌아올 수 없는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보도했다.
이 경우 그리스는 2400억 유로, 우리 돈 300조 원에 달하는 총 채무에 대한 국가부도(디폴트)를 선언하고 과거의 자국화폐를 다시 찍어내는 수밖에 없다. 이는 곧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그렉시트)를 의미한다. 그렉시트까지 이어지게 되면 새로운 유럽발 금융위기가 시작됨을 뜻하는데, 이는 한국 경제에도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 당장 선박 신규 발주가 끊겨 조선업계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국내 선박의 신규발주물량은 그리스가 20%, 프랑스를 비롯한 노르웨이와 덴마크 등이 6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빚을 갚지 않고 버티는 그리스가 선례가 될 경우 세계 경제는 유사한 사례들이 잇달아 가히 아마겟돈 같은 충격에 빠질 것이란 극단적인 비관론도 나오고 있다.
끝 모를 하락을 거듭하고 있는 중국경제도 한국경제에는 심각한 근심거리다. 중국경제에 대한 경보음은 증시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중국 상하이 종합지수는 지난주 4000선 아래로 주저앉았다. 지난 4월 9일 이후 3개월 만이다. 상하이종합지수는 이미 고점 대비 20% 이상 폭락했다. 문제는 중국 정부의 잇단 개입에도 시장의 불안심리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최근 주가하락이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적극적인 개입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지급준비율과 기준금리를 세 차례 인하했고 다음 달 1일부터는 거래세마저 30% 인하하기로 했다. 덧붙여 신용규제도 완화하기로 했다. 주가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할 수 있는 조치는 다 하겠다는 강력한 시그널을 시장에 던진 셈이다. 그런데도 주가하락에 대한 우려가 멈추지 않은 것은 과도한 신용거래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다.
집 담보대출을 비롯해 빚을 내서 주식투자에 나선 개미투자자들이 너무 많아, 계속되는 주가하락은 중산층과 서민층의 몰락을 가져오고 부동산시장까지 마비시킬 수 있다는 경고가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다. 최악의 경우 올해 안에 중국판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 사태가 발발할 것이란 극단적인 비관론까지 나올 정도다. 중국증시폭락은 아직 한국경제에 제한적인 영향에 그치고 있지만, 사태전개에 따라서는 태풍급 악재로 발전할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
진정 기미를 보이는 메르스 사태 역시 아직은 안심할 단계로 볼 수 없다. 추가 사망자 수는 나흘째 0을 나타내고 있지만, 확진자가 멈추지 않아 종료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방역 당국의 입장이다. 특히 추가확진자가 간헐적으로나마 이어질 경우 자칫하면 메르스 사태가 장기전으로 흐를 공산이 높다. 이는 메르스의 공식 종료선언을 학수고대해온 정부와 산업계를 패닉에 빠뜨리고 소비심리 불안이 계속됨을 의미한다. 메르스사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22조 원의 추경도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규모 추경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그리스사태의 전개방향, 중국경제에 대한 추이, 그리고 메르스 사태까지 겹쳐 한국경제는 위기탈출이냐 더 깊은 수렁이냐의 갈림길에 서 있다. 그리고 그 변곡점은 그리스사태와 중국증시, 메르스 사태의 윤곽이 드러날 앞으로 한 달 이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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