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성사, 이재용의 삼성시대 개막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뉴스투데이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국내외 안팎의 관심을 모았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안이 삼성측의 승리로 끝났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17일(금) 각각 서울 서초구 양재동 aT센터와 중구 태평로 2가 삼성생명빌딩 1층 콘퍼런스홀에서 주주총회를 열고 두 회사 합병계약 승인 안건을 통과시켰다. 앞서 양 사는 지난 5월 26일 각각 이사회를 열어 합병 계약을 체결했으며, 이날 주총에서 승인 절차를 거쳐 합병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의 합병반대로 두 달여를 끌어온 삼성과 엘리엇의 표 대결은 삼성측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북새통된 삼성물산 주총장, 차분한 제일모직 주총장 대조
삼성물산 주주총회가 열린 서울 양재동 aT센터에는 이날 오전 7시부터 삼성물산 관계자와 주주, 취재진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주주총회가 열리는 5층 대회의실에는 40~50여명의 주주들이 이미 입장을 마쳤다. 4층에는 대량위임주주 대리인 접수처가 별도로 마련됐다.
이날 일부 주주들은 입장이 시작되는 오전 7시 이전부터 일찍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삼성물산은 600석 규모의 5층 주총장 외에도 4층 중회의실에도 약 400석 가량의 자리를 마련했다. 주총에 입장하지 못한 주주들은 4층에서 실시간중계 방송을 통해 주총장 진행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소액주주들이 대거 참석하면서 주총은 당초 예정됐던 오전 9시를 훌쩍 넘겨 9시 33분에야 시작됐다. 의결권을 직접 행사하려는 주주들이 장사진을 이루면서 주주 명부와 주주 위임장 확인에 시간이 많이 걸린 탓이다. 주총개최가 늦어지면서 현장에서는 “합병에 반대한다”는 고함과 “조용히 해”라는 맞고함이 오가는등 어수선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aT 센터 건물 앞에서는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편 이에앞서 열린 제일모직의 주총은 85.8%의 참석율을 기록했고, 만장일치로 합병안을 가결했다. 안건처리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제일모직의 경우 이재용 부회장 등 삼성 총수 일가가 대주주로 올라있고 합병 시 소액주주들이나 외국 주주들에게도 유리하다는 분석이 있어 이전부터 합병안 승인이 수월할 것으로 전망돼 왔기 때문이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이끄는 삼성시대 공식 개막
양사의 합병안이 통과되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9월 1일자로 합친다. 합병 후 회사는 삼성의 얼굴인 지주회사가 된다. 명칭은 삼성그룹의 창업 정신을 승계하는 차원에서 삼성물산을 쓸 예정이다. 무엇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지배권이 사실상 확실해졌다. 이 부회장은 합병 전 제일모직 23.2%에서 합병 후 삼성물산 16.5%를 보유하게 돼 합병 후 회사 1대 주주로 삼성전자 등 그룹에 대한 지배를 강화할 수 있게 됐다.
이 부회장은 합병을 통해 삼성물산이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 주식 지분 4.1%를 보유하게 된다. 기존 이건희·재용 부자가 가지고 있던 삼성전자 지분 4%를 더하면 이 부회장은 삼성물산 지분을 합한 8.1%의 삼성전자 지분을 가지게 되는 셈이다. 현재 삼성전자의 주식총액이 200조원에 달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추가되는 지분 4%는 8조원에 해당한다.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번 합병을 통해 주식시장에서 8조 원을 투자해서 주식을 4% 더 확보하는 것과 똑 같은 효과를 거두게 된다.
무엇보다 이번 합병 성사로 기존에 복잡하게 얽혀있던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한결 단순해졌다. 기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는 제일모직 → 삼성생명 → 삼성전자 → 삼성물산·삼성SDI → 제일모직 순으로 고리가 연결돼 있었다. 하지만 이번 합병으로 지배구조는 삼성물산(합병) → 삼성생명 → 삼성전자로 단순화된다. 2013년부터 진행돼 온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셈이다.
■ 기관투자가와 소액주주 파고든 삼성의 애국심 마케팅
이날 표 대결에서 승리하기까지 삼성은 말 그대로 총력전을 폈다. 특히 ‘삼성=한국경제의 상징’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엘리엇을 먹튀 헤지펀드로 몰아붙이는 등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워 소액주주들의 표를 공략하는데 힘을 모았다. 거의 모든 매체에 광고를 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힘을 몰아달라고 호소했다.
표 대결에 앞서 나온 판세분석에서도 이미 삼성측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었다. 삼성은 계열사 및 특수관계인 지분(13.82%)과 삼성물산의 ‘백기사’로 나선 KCC(5.96%), 국민연금(11.21%) 이외에도 국내 기관투자가(11.05%) 표심 대부분을 확보했다. 엘리엇(7.12%)을 제외한 외국인 투자자(26.41%)와 소액주주(24.43%) 중 상당수도 삼성에 위임장을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날 엘리엇이 삼성물산 등을 상대로 항고한 ‘주주총회 결의 금지’ 및 ‘KCC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이 1심과 같이 모두 기각돼 우호 여론에 더욱 힘이 실렸다. 폴 싱어 엘리엇 회장도 이에 맞서 15일(현지시간) 미국 CNBC 방송에 직접 출연해 삼성물산 합병비율이 부당하다고 재차 강조하며 반대표 결집에 나섰다. 그는 “기업을 적정 가치로 평가해야 한다는 의도로 반대에 나섰던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애국심을 전면에 내세운 삼성의 여론전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 1라운드 싸움은 삼성의 승리, 2라운드 향방은
삼성과 엘리엇의 표대결 싸움은 삼성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이번 싸움으로 양측의 갈등이 끝났다고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엘리엇은 주총에서의 표대결 결과와 상관없이 이번 이슈를 ISD(투자-국가간 소송)로 끌고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ISD에서 삼성이 이기더라도 삼성이 부담해야 하는 소송 비용이나 이미지 손상 등을 감안하면 결국 삼성이 굴복할 가능성이 높다는게 엘리엇측의 계산이다. 엘리엇이 계속 이 문제를 소송전으로 끌고갈 경우 삼성으로선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될 전망이다. 소송 과정에서 그룹내 문제점들이 하나 둘씩 공개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삼성이 이제 비로소 1차 관문을 넘어섰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엘리엇의 대응방향에 따라 제2, 제3의 라운드가 삼성을 기다리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재계에서는 삼성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런 난관들을 극복하고 이재용 부회장을 위한 그룹승계방안을 실현시킬 것으로 보고 있지만, 그 여정은 쉽지 않아 보이는게 현실이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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