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쉐프 전성시대’가 반갑지 않은 이유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7.27 09:35 ㅣ 수정 : 2015.07.27 09:38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바야흐로 쉐프들의 전성시대다. 일명 ‘백주부’로 불리는 더본 코리아 대표이자 요리연구가 백종원씨를 필두로 잘 나가는 요리전문가들과 쉐프들이 TV를 점령했다. 이들이 출연하는 요리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끌자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공중파와 케이블TV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과거 요리 프로그램들이 접하기 힘든 고급요리를 소재로 했다면 이들은 집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재료로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레시피를 갖고 가정식 요리를 만든다. 이들이 여성팬 뿐 아니라, 남성 심지어 40~50대 중년팬까지 확보하면서 휴일이면 집에서 간단한 요리로 한 끼를 떼우는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후문이다.

▲ 대표적인 요리프로그램인 JTBC의 냉장고를 부탁해(왼쪽)와 TVN의 집밥 백선생



일시적 쇼크가 아니라 구조적 침체기 접어든 한국경제

전적으로 이런 요리 프로그램 탓으로 돌릴 수는 없겠지만, 요식업체들을 비롯한 서비스업종은 요즘 죽을 맛이라고 한다. 지난해 세월호, 올해는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여파로 체감경기는 1990대말 IMF사태 때보다 더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장사가 안돼 문을 닫는 서비스업체들이 늘고 있는데,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더하면 더했지, 좋아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가 일시적 쇼크가 아니라, 구조적 침체기에 빠져들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2분기 경제성장률은 0.3%에 그쳐 지난해 4분기 수준으로 후퇴했다.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서둘러 편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올해 경제성장률이 3% 아래로 떨어질 것이 “확실시된다”는 전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생각지도 않았던 메르스 충격이 분명히 컸지만 그 이전부터 조짐을 보였던 내수부문의 침체는 심각한 단계에 이른지 오래다.

소비자들이 아예 지갑을 닫기 시작한 것인데, 수출부문의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우리경제를 압박하는 양대축으로 꼽히고 있다. 건설경기가 그나마 경제의 버팀목으로 지탱해왔는데, 최근 정부가 내놓은 대출규제 정책으로 향후 건설경기마저 꺾일 경우 한국경제가 일본식 ‘잃어버린 10년’ 같은 장기불황에 빠질 것이란 섬뜩한 경고까지 나오고 있다.

▲ 1991년부터 2000년까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던 일본. 우리경제가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질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잃어버린 10년’ 일본식 장기불황이 현실로 다가올까

1990년대 일본의 '잃어버린 10년'(lost decade)을 촉발한 것은 미국이었다. 1980년대 레이건 정부는 오일쇼크 등으로 치솟는 원자재값과 그로인한 물가상승을 잡기위해 17%에 달하는 살인적인 금리인상 정책을 폈다. 금리인상 정책으로 미국 제조업이 휘청거리자 일본기업들의 대미 무역흑자가 크게 불어났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레이건 정부는 1985년 유럽G5 국가들과 미국 플라자호텔에서 만나 인위적인 달러약세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플라자 합의’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갑작스런 달러약세(엔화강세)로 수출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에 당황한 일본정부는 긴급처방으로 금리를 낮춰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책을 내놨다.

금리가 내리고 돈이 시중에 풀리면 이 돈이 기업으로 흘러들어가 생산설비를 늘리고 일자리가 늘면서 다시 소비가 증가하는 선순환을 기대했던 일본정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풀린 돈은 기업으로 간 것이 아니라 부동산과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어가 버블(거품)경제를 형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부동산이 얼마나 올랐냐면 일본을 팔면 미국을 4번 살 수 있다는 계산까지 나올 정도였다. 도쿄 황궁의 가치가 캐나다 전체가치보다 더 비싸다는 우스개 소리까지 떠돌았다. 니케이지수도 무섭게 올라 4만시대를 코앞에 뒀다.

하지만 돈의 힘으로 끌어올린 경제는 모래성에 불과했다.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은 경제는 필연적으로 거품을 낳았고 그 거품이 꺼지면서 엄청난 후유증을 불러왔다. 부동산값 폭등에 놀란 일본정부는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대출을 규제해 시중자금을 죄기 시작했다. 2.5%였던 금리를 단기간에 6%까지 인상한 것이다. 금리를 인상하고 대출을 규제하자 부동산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거품이 붕괴되기 시작한 1991년이후 집값은 15년간 단 한번의 예외없이 떨어져서 최고가 대비 87%나 폭락했다. 니케이지수는 8000까지 후퇴했다. 이 기간 도산한 금융기관이 수백개에 달했다.


과열되는 부동산시장과 빚투자 주식시장

우리경제는 어떨까. 지금 우리상황을 일본의 잃어버린 10년과 직접 비교하기는 무리인 것이 사실이다. 일본은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의 말도 안되는 거품이 단기간에 꺼지면서 불황이 시작됐고 우리는 주택시장등 부동산경기를 제외하면 여전히 경제 여러 분야가 거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주식시장 역시 아직은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몇가지 점에서 걱정스런 대목이 눈에 띄는 것은 부인하기 힘들다.

먼저 일본경제의 거품이 인위적인 금리인하와 돈의 힘으로 경기를 끌어올리겠다는 정책에서 시작한 것이나 우리정부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내리고 시중에 돈을 푸는 것은 매우 흡사하다. 시중에 풀린 돈은 기업으로 흘러들어가지 않고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에 흘러들어가고 있는 것도 닮은꼴이다.

▲ 최근 부동산붐에 힘입어 연일 최고가를 경신하고 있는 강남 재건축시장의 상징 대치동 은마아파트 단지


이런 유사점들 보다 더 걱정이 되는 것은 우리경제 곳곳에서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강남 일대 부동산시장은 재건축아파트를 중심으로 수개월새 수 억원이 올랐다. 반포동 삼호가든4차 전용면적 96㎡는 최근 8억6500만원에 거래돼 2007년 호황기 때 최고가(8억4500만원)를 뛰어넘었다. 경남아파트, 신반포23차, 신반포3차 등도 재건축 기대 속에 최고가를 잇따라 갈아치우고 있다. 경기는 바닥인데, 부동산경기만 초호황을 누리고 있다는 얘기다.

주식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주식시장에서 돈을 빌려 주식투자에 나서는 이른바 ‘빚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지난 7월 24일 기준으로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의 신용융자 잔고 금액은 8조286억원에 달했다. 올해 초 5조원에서 7개월 만에 무려 3조원 이상이 늘어난 것이며 신용잔고가 8조원을 넘긴 것도 증시 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특히 개미들이 많이 투자하는 코스닥의 신용 잔고는 4조1406억원으로 코스피(3조8880억원)를 추월했다. 코스닥 시가총액이 코스피(1275조원)의 6분의 1밖에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단기간에 고수익을 노리고 투기에 나선 개미투자자들이 많다는 얘기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금리인상이 가져올 도미노 현상

증시속언 가운데 ‘폭탄돌리기’란 말이 있다. 퇴출예정기업 주식이 이유없이 오를 때 쓰는 말인데, 내가 투자하는 동안 수익만 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위험주식 투자에 나서는 무모한 행위를 뜻하는 것이다. 하지만 폭탄은 언제고 터지게 되어 있고, 거품 역시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시기는 미국의 금리인상 단행시점이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미국이 하반기에 금리를 올릴 것이란 예상은 이제 전망이 아니라,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구체적으로 금리를 얼마로 올린 것이라는 정확한 수치를 담은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밀자료가 얼마전 노출됐으니 사실로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유출된 자료에 따르면 미국 기준금리가 올해 4분기에는 평균 0.35%로 인상되고, 내년과 후년 4분기에는 각각 1.26%, 2.12%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했다. 미국의 금리가 인상되면 투자자들이 신흥국에 투자했던 자금을 미국시장으로 돌리기 때문에 가장 먼저 신흥국들이 타격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역시 이미 ‘셀(sell)코리아'가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투자자들은 이달 들어서만 국내 주식시장에서 1조7000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채권에 투자했던 자금들도 5400억원 이상 빠져나간 것으로 추정된다. 그 여파로 환율이 크게 올라 달러당 1160원선을 넘어섰다. 이는 연초 대비 6.3% 상승한 것이다.

▲ 금리인상을 추진중인 자넷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이사회 의장. 미국의 금리인상은 우리경제에 연쇄적인 도미노현상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것보다 더 걱정되는 것은 미국 금리인상이 가져올 연쇄적인 도미노효과다. 지난해 빚을 얻어 집을 사라고 부추겼던 정부는 무서운 속도로 불어나는 대출규모에 놀랐는지 최근 입장을 바꿔 대출규제 정책을 내놨다. 여기에 덧붙여 금리까지 인상하게 되면 시장은 순식간에 얼어붙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당장 부동산시장과 주식시장이 후폭풍의 직격탄을 맞게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결국 빚을 얻어 투자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게된다.

부자들은 원래 빚을 내서 투자하지 않는다. 설령 빚을 내더라도 감당할 수 있다. 서민들은 다르다. 가진 돈이 없으니까 무리해서 빚을 얻어 투자하는 것이고, 그 투자가 잘못되었을 때는 투자원금은커녕 새로운 빚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정부 말을 믿고 뒤늦게 빚을 얻어 집을 산 ‘하우스푸어’와 주식시장에서 한몫 잡겠다고 빚투자에 뛰어든 ‘개미’들이 미국 금리인상이 가져올 도미노현상의 맨 앞줄에 서 있는 셈이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
 

주요기업 채용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