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다시 고개 드는 중국발 ‘황화론’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08.25 12:04
ㅣ 수정 : 2015.08.25 12:04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이쯤되면 ‘쇼크’란 말이 무색할 정도다. 단순한 쇼크가 아니라 패닉(공황)에 가깝다. 중국발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공황상태에 빠졌다. 신흥국에서 시작된 공황은 펀더멘털(기초체력)이 튼튼해 그나마 안전지대로 꼽혔던 미국과 일본, 유럽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 2000년이후 세게경제의 ‘심장’으로 자리매김한 중국이 흔들리자 신흥국, 선진국 가릴 것 없이 동시다발적으로 요동치고 있는 것이다. 20세기말 유럽을 휩쓸었던 ‘황화론(黃禍論·Yellow Peril)’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당시는 제국주의 일본이 황화론의 진원지였으나 지금은 중국이 ‘신 황화론’의 진앙지로 지목되고 있다.
■ 중국발 쇼크에 4년만에 가장 큰 낙폭 기록한 뉴욕증시
24일(현지시간) 뉴욕 증시에서 다우지수는 전날보다 588.47포인트(3.58%) 떨어진 1만5871.28로 장을 마쳤다. 588포인트가 빠진 것은 지난 2011년 8월 이후 가장 큰 폭락이다. 나스닥지수는 179.79포인트(3.82%) 떨어진 4526.25에 장을 마쳤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77.68포인트(3.94%) 하락한 1893.21, 나스닥지수는 179.79포인트(3.82%) 내린 4526.25를 기록했다.
이날 뉴욕 증시는 장이 열리자마자 다우지수가 1089포인트까지 폭락, 시장참가자들을 파랗게 질리게 했다. S&P500지수와 나스닥 지수도 폭락후 시간이 지나면서 낙폭을 줄였지만 급등락을 반복하며 불안한 양상을 나타냈다.
이같은 뉴욕증시 급락은 전날 중국 상하이 증시가 8.49% 폭락하며 '검은 월요일'(블랙 먼데이)을 기록한데 따른 후폭풍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뉴욕증시는 중국증시 급락에도 비교적 선전했으나 중국의 경기 둔화가 세계 경제 전체의 부진으로 이어지고 결국 미국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면서 순식간에 투자심리를 얼려버린 것이다.

▲ 뉴욕증시는 24일 3.58%가 떨어져 2011년이후 4년만에 최대낙폭을 기록했다. [사진출처=방송화면 캡처]
미국 증시에서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는 이날 장중 한때 53.29까지 치솟았다. 이 역시 지난 2009년 1월 이후 최고치다. 이후 다소 진정돼 45.34% 오른 40.74로 거래를 마쳤다. 지난 주말에도 VIX지수는 46% 급등해 한 주간 120% 가까이 올랐다. 주간 단위로 사상 최대 상승폭을 기록했다. 시장이 그만큼 중국발 경제쇼크를 심상치않게 바라보고 있다는 얘기다.
■ 일본과 유럽증시도 줄줄이 휘청, 세계증시서 6000조원 증발
중국발 쇼크로 상하이지수와 함께 전날 일본 닛케이지수와 홍콩 항셍지수도 4~5% 폭락했다. 유럽 증시도 장중 5~7% 떨어지는 등 폭락세를 연출했다.
일본 니케이255지수는 24일 4.61% 하락한 1만8540.68에 장을 닫았다. 이는 올해 2월25일(1만8585.20) 이후 최저치다. 니케이지수는 25일에도 시작과 함께 폭락해 오전 9시30분 한때 1만7896.88로 전일 대비 3.47% 떨어지기도 했다. 지난 주말 2만선이 무너진 닛케이지수는 중국발 쇼크로 1만9000선과 1만8000선이 잇딸아 무너진 것이다.
유럽도 예외는 아니다. 영국 런던 증시의 FTSE 100 지수는 4.67% 하락한 5898.87,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는 4.70% 떨어진 9648.43에 장을 마쳤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5.35% 내린 4383.46를 기록했다. 특히 프랑스 파리 증시는 장중 한때 7% 넘는 폭락세를 보이며 크게 출렁거리는 패닉 장세를 연출했다.

▲ 유럽증시 역시 중국발 패닉에 못이겨 4~5%대 하락을 기록했고, 파리증시는 장중 한때 7%나 폭락하기도 했다.
이날 영국 런던증시의 FTSE 100 지수는 전일 종가보다 4.67% 하락한 5,898.87로 마쳤다. 시가총액이 60억파운드(약 11조3000억원) 가량 증발됐다. 이로써 FTSE 100 지수는 10거래일 연속 하락세를 지속했다. FTSE 100 지수가 6천선 밑으로 떨어진 것은 2013년 초 이후 처음이다. 이날 지수는 지난 4월 기록한 연중 고점(7,122) 대비 17% 하락한 수준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증시의 DAX 30 지수도 4.70% 내린 9,648.43으로 마감되며 1만선을 내줬다. 이로써 지난 4월 연중 고점 대비 22% 빠졌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낙폭이 작았던 프랑스 파리 증시의 CAC 40 지수는 전일 종가대비 5.35% 하락한 4,383.46으로 장을 마쳤다. 연중 고점 대비 17% 떨어진 낙폭이다.
중국이 위안화 가치를 전격 인하한 이래 전 세계 증시에서 사라진 시가총액은 5조달러(6000조원)를 넘어섰다.
■ 국제유가 등 원자재 시장도 쑥대밭, 국제자금 신흥시장서 탈출 러시
국제원자재 시장도 쑥대밭이 됐다. 원자재 가격하락은 수출기업에게는 채산성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글로벌 경기둔화에 따른 수요 부진이 주원인이어서 결국은 극심한 경기침체에 빠질 것이란 목소리가 더 설득력이 있다.
24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지난주 마지막 거래일보다 2.21달러(5.5%)나 떨어진 배럴당 38.24달러에 마감했다. 이는 2009년 2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 국제유가가 연일 하락하면서 배럴당 40달러 선 아래로 내려갔다. 전문가들은 유가가 10~20달러까지 폭락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유가는 미국 셰일가스업계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간에 경쟁이 지속되면서 공급 과잉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중국발 경기침체까지 가세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하락하고 있는 것이다. 게리실링 투자전략가는 블룸버그 기고문에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20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지금보다 3분의 1토막이 날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다른 원자재도 마찬가지다. 원자재 19개의 선물 가격 평균을 나타내는 지표인 CRB(Commodity Research Bureau) 지수는 지난달 21일 기준 191.34포인트로 전기 말과 비교해 15.8%나 하락했다. 구리, 니켈, 소맥, 아연 등 다른 원자재 가격들도 전기 말 대비 10% 이상씩 하락했다.
국제투자자금의 신흥국 탈출은 한층 가속화하고 있다. 중국 인민은행이 위안화 가치를 평가절하했고 유가는 40달러 아래로 주저앉으면서 신흥국에 대한 외국인의 자금 이탈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24일 시장조사기관 이머징포트폴리오펀드리서치(EPFR)가 지난 13일부터 19일까지 1주일간 글로벌 주식형 펀드와 채권형 펀드의 유출입 내역을 분석한 결과, 신흥국의 주식형 펀드에서 총 58억76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이 가운데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에서 총 41억2400만달러가 빠져나가며 자금 유출 강도가 가장 셌고, 이머징 전반에 투자하는 GEM 펀드에서 13억300만달러가 유출됐다. 중남미 지역에선 3억2800만달러, EMEA(Europe, Middle East, Africa)에선 1억2100만달러가 빠져나갔다.
■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국경제, 남북협상 극적 타결에도 시장은 여전히 시계(視界) 제로
장장 무박3일에 걸친 마라톤 협상 끝에 남북한 고위급 회담이 전격 타결된 25일 국내 증시는 예상과 달리 널뛰기 장세를 연출했다. 이날 코스피는 오름세로 시작했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하락세로 돌아섰다. 최근의 국내 증시 폭락이 '북한 리스크'보다는 '중국발 패닉'의 영향을 더 크게 받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 남북 고위급 접촉이 25일 0시55분쯤 극적으로 타결 후 참석자들이 악수를 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시계반대방향)김관진 국가안보 실장, 홍용표 통일부 장관, 김양건 노동당 비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통일부 제공]
전문가들은 지금의 위기가 과거 전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2008년 금융위기때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코스피 지수는 2007년 10월 2085포인트에서 1년 동안 줄기차게 급락해 2008년 10월 892포인트로 저점을 기록했다. 그 뒤에도 한동안 지지부진하다가 2009년 3월에서야 의미 있는 반등을 시작했다. 급락 및 조정기가 2008년 금융위기 때는 거의 1년 6개월에 달했다. 만일 현 상황이 그 정도의 대형위기로 이어진다면 이제 겨우 하락장의 초입에 들어선 것으로 봐야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현재 한국의 외환보유액은 3700억 달러으로, 세계 6위 수준이다. 40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덕택에 달러는 계속 유입되고 있다. 올해 예상 흑자 규모만 940억 달러다. 외국인 투자 자금이 추가로 빠져나가더라도 ‘국가부도’ 사태 같은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많은 전문가들은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본격적으로 경기 침체에 빠지게 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역시 상당한 내상을 입을 수 밖에 없다. 더욱이 미국은 금리인상 카드를 여전히 만지작거리고 있다. 9월이냐, 12월이냐 시기의 문제일 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는 시각에는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
정부는 이른바 ‘9월 위기설’에 대해 정면 대응에 나섰다. 근거 없는 풍문이나 오해에 투자자들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상황을 알리고 해명하겠다는 것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25일 서울 광화문 금융위원회에서 개최한 금융시장동향 점검회의에서 거래소와 금융투자협회, 국제금융센터 등 관계기관장들에게 “해외 시장동향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파악해 적시에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우리 경제의 실상을 정확히 전달하고 우리 자본시장 구조개편과 경쟁력 강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9월 위기설 등 명확한 근거가 없는 풍문이나 오해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이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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