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이야기]⑫ 현대건설 정주영의 ‘씨름’과 요즘 회장님들의 ‘산행 사랑’

김성권 입력 : 2017.12.09 11:10 ㅣ 수정 : 2017.12.09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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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의 '단체 산행'이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오너와 직원간 소통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무관함) ⓒ뉴스투데이


모든 직업에는 은밀한 애환이 있다. 그 내용은 다양하지만 업무의 특성에서 오는 불가피함에서 비롯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때문에 그 애환을 안다면, 그 직업을 이해할 수 있다. ‘JOB뉴스로 특화된 경제라이프’ 매체인 뉴스투데이가 그 직업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편집자주>




(뉴스투데이=김성권 기자)

기업 '단체 산행', 오너와 신입사원 간 소통방식으로 여전히 활용

모 지방 건설사 신입사원 "산에 오르다 사표 쓰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고백

고 정주영회장, 젊은 현대건설 직원들과 씨름해서 이기고 미소


사내 워크숍이나 신입사원 연수, 시무식 등 기업의 '단합 문화'는 사무실을 벗어난 회사밖 직장생활의 연장으로 인식된지 오래다. 기업들은 임직원들의 단합이라는 미명 아래 오너의 성향이나 전통을 반영한 방식의 행사를 만들고 변화시켜왔다. 연말연시 때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단합 행사, 이 가운데 기업이 가장 많이 활용하는 직원간 소통의 대명사는 다름아닌 '단체 산행'이다.

산행을 통해 회장과 말단 사원 간의 대화가 오갈 수 있고, 오르는 과정에서는 성취감이란 걸 맛보게 된다. 특히 바늘구멍을 뚫고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의 경우 대개는 회사의 오너 또는 임원과의 험난한 '등산 신고식'을 거쳐야 할 정도로 '신입사원=등반'이 공식화됐다.

최근엔 등산이 입사 전형 과정에 포함된 기업도 등장했다. 국내 침구전문업체인 이브자리는 총 세 차례의 면접 과정 중 2차 면접에서 '산행 면접'을 진행한다. 올해로 무려 20년째 산에 오른다고 한다. 회사는 산을 오를 때 체력이 저하된 상태에서 드러나는 지원자의 품성과 태도를 보기 위함이라고 설명한다.

기업의 '산행 소통' 방식은 오너의 성향에 따라 결정되기도 한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매년 상·하반기 두 차례씩 신입사원들과 산에 오른다. 최고경영자가 신입사원들과 함께 산행을 하며 그룹의 일원이 된 걸 축하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박 회장은 70대 중반의 고령임에도 새해가 시작되는 1월 한 달간 매 주말마다 계열사 임직원들과 산에 오를 정도로 등산 스킨십을 즐긴다.

은행권도 산과 가까운 직장이다. 하나금융그룹은 매년 1월 1일마다 일출 산행을 꾸준히 실시하고 있다. 올해는 전국 11곳의 산에 임직원들이 올라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공을 기원하는 행사를 가질만큼 등산에서 기원과 성취의 의미를 찾는다. 이외에도 둘레길 걷기, 무박 2일 눈길 산행 등 금융사들의 산행은 기업의 도전과 성취, 또는 위기를 극복하는 이벤트로 삼는 게 일반적이다.

신입사원에게 고령 오너의 체력을 과시(?)하는 산행도 있다. 지방의 모 건설사 회장은 신입사원과의 등산에 일부러 험한 코스를 택한다고 한다. 그는 젊은 신입사원과 힘겨운 코스를 등산하면서도 매번 선봉에 서서 산을 오를 정도로 건강하다고 전해졌다. 얼마전 한 신입사원은 "등산 코스가 너무 험하다보니 산에 오르다 사표를 쓰고 싶을 지경"이었다고 고백했다.

기업 오너들이 젊은 신입사원들과 갖는 단합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떠올리게 한다. 정 명예회장은 매년 여름이면 강원도 강릉 호텔현대경포대(現 강릉씨마크 호텔의 전신) 앞 모래사장에서 현대건설 직원들과 씨름을 하곤 했는데 젊은 직원들과의 대결에서 이기면 아주 기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기업인에게 등산은 단합과 도전, 성취감을 나타내는 의지로 표현되지만 이에 동참하는 직원들의 인식과는 좀 거리가 있다. 이유는 산행 일정의 대부분이 주말로 잡히거나, 강제성을 띄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무리한 산행이 사고로 이어진 경우도 있다. 대보그룹은 지난해 회장의 강제 성탄절 등산 지시로 산행에 나섰다가 직원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기업의 강제 단합식 산행 문화가 사회적인 논란으로 번졌다.

이 때문에 최근엔 산행을 실무와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이벤트성 활동으로 여겨 등산 대신 콘서트나 뮤지컬, 가벼운 둘레길 걷기 등으로 소통 방식을 바꾸는 기업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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