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의 ESG칼럼]ESG, 방아쇠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下)

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1.05.03 13:53 ㅣ 수정 : 2021.05.03 13:53

엔론 사태가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자각 이끌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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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문성후 ESG연구소 소장]엔론 사태가 터졌다.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불법행위로 얼룩진 경영 참사였다. 기업 윤리 교과서는 구석으로 던져놓고, 주주에게 고배당만 하면 모든 과오가 용서되던 주주 만능 시대의 혹독한 대가였다. 정부가 개입하였다. 사베인스-옥슬리법으로 알려진 ‘상장기업 회계 개혁 및 투자자보호법’이 제정되었다. 민간 회계감독위원회를 설립하였고, 회계 분식 등이 있으면 경영진이 처벌받도록 하는 법이었다. 한 기업의 불법행위로 법까지 제정되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그만큼 엔론 사태는 중차대한 사태였다. 

 

그런데 기업들이 법만 지키면 ‘베네핏 기업(benefit corporation; 수익 창출과 사회적 책임을 모두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기업)’이 될까?  필자는 미국 뉴욕주 변호사로서 대기업의 법무실장, 준법지원인을 역임하였다. 준법 경영은 기본이다. 기업을 운전(運轉)하려면 최소한의 지켜야 할 규칙이 바로 준법 경영이다.마치 자동차들이 차선과 신호등을 지키는 것과 같다. 기본적인 규칙만 지킨다고 해서 무사고(無事故)가 보장되지 않듯이, 타율적인 준법 경영만 해서는 기업의 탐욕을 자율적인 선의(善意)로 전환할 수 없다. 법을 넘어선 기업인들의 절실한 자각이 필요하다. 그런 면에서 엔론 사태는 충격요법이 되었다. 

 

기업인은 엔론 사태를 보며 위기의식을 느꼈다. 기업 스스로 자정(自淨)하지 않으면 정부도 기꺼이 개입하는 것을 보았다. 잘 나가던 회사도 한 방에 훅 가는 것을 보았다. 기업은 창업의 순간부터 대전제가 있다. 기업은 창업자보다 장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엔론사태를 계기로 기업인들은 어떻게 기업이 장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자문(自問)을 하기 시작하였다. 기업들은 오래가는 모범생이 되어 주변의 지지와 응원을 받고 계속 도약하고 전진하고 싶었다. 기업들은 사라지지 않는 기업, 지속 가능 기업이 되고 싶었다.

 

오래가는 모범생이 되는 정답은 간단했다. ‘모두에게 잘하라’였다. 여기서 모두는 누구일까?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 이다. 영어로 stake는 말뚝이다. 미국 서부 시대 초기에 자기 땅을 표시하기 위하여 말뚝을 경계선에 박아놓던 데서 유래한 단어가 stake이다. 기업에 이 말뚝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stakeholder 즉 이해관계자들이다. 기업에 말뚝과도 같은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모든 사람이 바로 기업들이 잘 대해야 할 사람들이다. 

 

이해관계자 그룹을 분류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필자가 원용하는 이해관계자 모델은 SPICE 모델이다. SPICE란 각 영어단어의 첫글자이다. S는 사회를 뜻하는 Society, P는 협력업체를 뜻하는 Partner, I는 투자자를 뜻하는 Investor, C는 고객을 뜻하는 Customer, E는 직원을 뜻하는 Employee이다. 이 모델에 따르면 기업의 이해관계자는 사회, 협력업체, 주주 등 투자자, 고객, 임직원 등을 포괄한다. (여기서 사회라는 이해관계자를 더 세분화하여 환경, NGO, 언론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이해관계자를 대하는 10여 년 전 기업의 모습은 어땠을까? 2012년 미국의 BRT(비지니스라운드테이블)가 발표한 대표적인 문장은 이렇다. ‘경영진은 이사회의 감독 아래 주주에게 장기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도록 효과적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기업을 경영해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다. (중략) 기업은 장기 주주들의 전반적 이해와 관련된 이슈와 관심사에 대해 장기 주주들과 의미 있는 방식으로 소통해야 한다.’ 여전히 경영진은 ‘주주를 위한 가치 창출’이라는 엄격한 숙제만 잘 해내면 되었다.

 

이 당시만 해도 이해관계자에 관한 조항은 딱 하나, 근로자, 고객, 협력업체 등을 공정하고 공평하게 대하라는 내용뿐이었다. 엔론이 망한 지 10년이 지났지만, 관성이 붙어 아직도 기업들은 주주 위주의 경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후 속도가 빨라졌다.

 

불과 7년이 지난 2019년, BRT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 혹은 이해관계자 제일주의(stakeholder primacy)를 채택하였다. 주요 내용은 첫째, 고객(customer)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둘째, 직원(employee)에게 투자하고, 셋째, 협력업체(partner)들과 공정하고 윤리적으로 거래하며, 넷째 지역사회(society)를 지원하고, 다섯째, 주주(investor)에게 장기적 가치를 제고한다는 것이다. 딱 다섯 개의 이해관계자 그룹에 맞추어 누구 하나 치우침이 없이 골고루 잘 대하겠다는 약속이다. 

 

2019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방아쇠가 되어 본격적으로 ESG를 촉발시켰다. 기업은 20여 년 전부터 반성이 있었고, 위기감을 느꼈다. 그리고 생존 방법을 찾은 것이다. 사회에, 협력업체에, 투자자에, 고객에, 직원에게 잘하기 위해서는 환경을 지키고 개선하고 사회적 책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지배구조를 건실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목표는 ‘지속 가능’이다. 

 

ESG에는 약간의 오해가 있다. ESG로 수익조직인 기업이 갑자기 자선기관으로 변한 것도 아니고, CEO들이 사회활동가로 변한 것도 아니다. ESG는 한쪽으로 치우쳐졌던 기업의 역할이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먼저 선택한 경영 가치일 뿐이다. 먼저 모범생이 된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에도 ESG 경영이라는 ‘지속 가능의 노하우를 공유했고, 이제 그 방법대로 모든 기업이 전진하고 있다. 아주 오래가는 모범생이 되기 위해서 말이다.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ESG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부를 부르는 평판(한국경제신문 간)'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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