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지적에 분노한 트럼프, 철강관세 50% 카드 꺼내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또다시 ‘관세 폭탄’ 카드를 꺼내들었다. 외국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되던 기존의 25% 관세를 50%로 전격 인상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웨스트미플린의 US스틸 공장에서 열린 연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SNS인 트루스소셜을 통해 “6월 4일부터 새로운 관세율이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표면적으로는 미국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한 정책으로 보이지만, 정치적 맥락과 함께 해석할 필요가 있다. 최근 일본제철의 미국 철강업체 US스틸 인수 건을 둘러싼 논란,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관세 정책에 대한 조롱, 낮은 지지율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 바이든 행정부가 국가안보를 이유로 반대한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대해 사실상 승인을 내렸다. 이는 미국 철강노조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무마하기 위해 고율 관세를 카드로 꺼낸 것으로 보인다. 철강노조는 그동안 줄기차게 일본 기업에 인수될 경우 생산 축소와 일자리 이전 우려를 제기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일본제철이 미국에 140억 달러(약 19조4000억 원)를 투자할 것이며, 1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해고나 아웃소싱은 전혀 없고, US스틸 노동자에게 5000달러의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 통신은 “이번 고율 관세 인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 노동자들에게 한 약속을 지키려는 주요 수단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 철강 관세 인상이란 초강수 카드를 꺼낸 배경에는 트럼프 대통령을 향한 조롱섞인 공격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한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트럼프는 항상 꽁무니를 뺀다)라는 조롱성 신조어가 퍼지면서, 자존심을 구긴 그가 초강경 조치로 돌아선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중국과의 ‘관세 휴전’(90일간 고관세 상호 유예 합의)으로 체면을 구겼던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또 한 번 관세를 무기로 꺼낸 것이라는 해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 발표 몇 시간 전, 트루스소셜에서 “중국이 우리와의 합의를 완전히 위반했다”고 주장한 점에 주목했다. 이를 두고 “지지층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조롱과 정치적 위기 속 ‘관세 급발진’을 감행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번 관세 인상 조치가 단기적인 정치적 계산에 기반한 무리수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코넬대 경제학과 에스와르 프라사드 교수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적 장벽이나 경제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 보호를 이유로 관세를 계속해서 정책 도구로 사용할 의향이 분명하다”고 밝혔다.
브루킹스연구소의 국제무역 전문가 메건 그린 박사 역시 “철강 관세 인상이 국내 산업 보호에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철강을 사용하는 산업 전반에 걸쳐 가격 인상과 소비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트럼프 정부 1기 당시 고율 관세로 인해 자동차, 건설, 가전 업계가 연쇄적인 비용 상승 압박을 겪은 전례가 있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국제통화기금(IMF)도 이미 지난 3월 보고서에서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확대가 글로벌 공급망을 왜곡시킬 수 있으며, 세계 경제 성장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미중 갈등이 재점화될 경우, 세계적인 철강 가격 불안정과 수출입 경로 왜곡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철강관세 인상은 단순한 경제 정책을 넘어, 정치적 목표가 깔려 있는 다분한 노림수에 해당한다. 자신의 지지층인 노동계의 반발을 잠재우고, 중국 및 일본과의 외교적 긴장감을 부각시키면서도, 동시에 ‘강경한 미국 보호주의’라는 자신의 이미지 복원을 꾀하는 다목적 카드로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다. 하지만 그로 인한 글로벌 무역 갈등, 국내 물가 상승, 보복 관세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가운데, 이번 결정이 ‘정치적 배짱’인지, ‘정책적 오판’인지는 향후 몇 개월간의 경제 지표와 외교적 반응에서 가늠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