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트럼프의 압박에도 푸틴이 전쟁을 멈추기 어려운 이유

정승원 기자 입력 : 2025.05.29 01:14 ㅣ 수정 : 2025.05.29 14:30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거듭된 종전 압박에도 불구하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으로 인한 전쟁 특수를 쉽게 포기하기 힘든 구조적 딜레마에 빠져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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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미국 트럼프, 러시아 푸틴.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정승원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가리켜 “완전히 미쳤다”고 비판하며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미국의 거듭된 종전 요구에도 불구하고 푸틴이 대규모 국방 지출과 무기 생산 증강, 병력 확대를 통해 종전은커녕 장기전에 대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는 줄곧 전시 경제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군수공장을 증설하고, 무기 생산 라인을 24시간 가동하는가 하면, 병사들에게 파격적으로 1년치 연봉을 미리 지급하며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전장으로 보내고 있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이른바 전쟁 특수를 누리고 있다. 막대한 군비 지출은 국방산업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활력소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군수산업 확대로 러시아 내 빈곤 지역의 소득 향상까지 이끌어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사경제 전문가 마이클 오핸런은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전시 산업을 통해 경제의 일부 부문을 되살리는 데 성공했다”면서 “이 같은 호황은 전쟁이라는 특수 조건에 기반해 있어 종전 등의 이유로 갑작스럽게 예산을 축소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구조적으로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베를린 사무소 소속 요하네스 마이어 역시 군사전문매체 디펜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방위산업은 이미 전시체제에 깊숙이 들어가 있으며,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어 단기간에 군사비를 줄이긴 어렵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과거 사례를 봐도, 전쟁은 종종 경제의 방향성을 바꾸고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의 경우나, 패망한 일본이 한국전쟁 특수를 게기로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한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대규모 전시 산업을 통해 대공황에서 벗어났고, 이후 세계 경제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시로 자동차 공장은 전차를, 냉장고 공장은 폭격기를 만드는 전시 체제로 전환됐다.

 

압도적인 생산력에 힘입어 1944년 기준 미국은 세계 총 GDP의 약 절반을 차지하게 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이를 민간 경제로 전환해 대규모 소비 시장을 형성했고, '아메리칸 드림'의 시대를 열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은 이를 두고 “정부 지출이 경제를 부양할 수 있다는 케인스 이론의 대표적 실험”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미국은 종전 후 ‘마셜 플랜’과 같은 대외 정책을 통해 군수 산업을 민간 중심 산업으로 성공적으로 전환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일본 역시 한국전쟁의 비극을 활용하여 ‘기적의 경제 성장’을 이룩한 케이스다. 패전국 일본은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을 통해 기회를 잡았다. 미군은 일본을 병참기지로 활용하면서 막대한 물자 수요를 발생시켰고, 이는 일본 경제에 '특수'로 작용했다. 그 자금을 기반으로 일본은 중공업과 자동차, 전자산업에 집중 투자했고, 1960~70년대 ‘고도 성장기’를 맞게 된다.

 

경제사학자 존 도우어는 이를 “패배를 성장으로 전환한 전쟁경제의 전형”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일본 역시 방위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민수경제로의 성공적인 재편에 주력했다는 점이 오늘날 러시아와의 차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시 경제의 성장은 구조적으로 ‘종전’이 아니라 ‘지속’을 필요로 한다는 역설을 안고 있다. 모스크바 전략기술분석센터의 루슬란 푸코프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실존적 위기가 없다면 지금처럼 방위 산업에 계속 돈을 쏟아붓는 것은 정당화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시 경제가 성장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은 역사가 증명하지만, 그 지속은 또 다른 함정을 낳을 수밖에 없다. 종전 이후 경제 구조의 재편이 늦어질수록 불만은 커지고, 사회 불안정이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미국 혹은 전쟁 전 나치 독일과 유사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분석했다. 방대한 병력과 무기 생산 인프라, 그리고 여기에 의존하게 된 지역 경제는 종전 이후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베를린 자유대학교의 볼로디미르 이슈첸코 교수는 “전쟁 후 병사들의 임금이 급격히 삭감되면 무장한 실업자들이 사회 불안의 불씨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푸틴이 미국의 거듭된 종전 압박에도 쉽사리 전쟁 지속의 유혹을 떨쳐내기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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