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국제 금융가에 유행하는 말 가운데 ‘와타나베 부인’(Ms. Watanabe)이란 용어가 있다. 2000년초 금리가 낮은 엔화를 빌려 해외의 고금리 자산에 투자하는 일본의 가정주부들을 가리켰던 말이다. 요즘에는 일본의 외환 투자가들을 통칭하는 말로도 쓰이고 있다. 미국 투자가들을 가리키는 스미스 부인(Ms. Smith), 유럽 투자가들을 지칭하는 소피아 부인(Ms. Sophia)과 비슷하다. 한국으로 따지면 ‘김여사’에 해당한다고 할까.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성씨 중에서 와타나베 부인이라는 이름을 붙였는지는 그 유래가 확실치 않다. 일본에서 가장 흔한 성은 사토다. 2000년초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와타나베는 스즈키, 타카하시, 타나카 다음으로 5위에 위치한 성이다. 중요한 것은 2000년초 값싼 엔화를 무기로 한국을 건너온 와타나베 부인의 아류들이 이제는 한국 소비자금융 시장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 첨병에는 일본계 대부업체들이 자리하고 있다. 더욱이 이들은 이름에서 왜색 이미지를 빼고,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 등을 통해 무서우리만치 집요하게 한국 금융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 성형수술 통해 한국시장 파고드는 일본계 대부업체들의 ‘렛미인’(Let美人)
지난주 나온 대부업관련 소식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앞으로 금융당국이 공식 문서에서 '일본계'라는 단어를 쓰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뉴스다. 대부업체 러시앤캐시를 보유한 아프로서비스그룹이 지난 7월 회사를 방문한 금융위원회 현장점검반에 '일본계'라는 표현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했는데, 최근 금융당국으로부터 이를 수용하겠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재일교포3세인 최윤회장이 설립한 금융회사다. 산하에 아프로파이낸셜대부(러시앤캐시)를 비롯해 미즈사랑, 원캐싱 등의 대부업체와 OK저축은행, 아프로캐피탈 등 국내 12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재일교포3세가 만든 회사라고 해서 일본계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아프로파이낸셜대부의 지분구조가 일본 국적의 페이퍼컴퍼니인 J&K캐피탈이 지분 99.97%를 보유하고 있고, 최 회장은 J&K캐피탈의 소유주이다.
일본계임에도 굳이 일본계라는 꼬리표를 떼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주홍글씨’처럼 낙인찍혀온 부정적인 회사이미지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러시앤캐시를 비롯해 뿌리가 일본계인 대부업체는 21개에 달한다. 이들의 자산은 4조 9700억원 규모로 전체 대부업 시장의 56.2%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러시앤캐시, 산와머니 등 일본계 4개 대부업체는 국내토종업체 74개 모두를 합친 규모보다 크다.
일본계 금융회사들은 각종 이미지광고와 인수합병을 통해 한국시장을 공략해왔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프로배구단을 앞세워 스포츠마케팅으로 한국 현지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최근에는 산하 OK저축은행에 대한 태권브이 이미지 광고를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저축은행임을 강조하고 있다. OK저축은행의 영문이름도 ‘오리지널 코리언’이라고 할 정도다.
배우 고소영씨의 광고모델 기용을 둘러싸고 논란이 됐던 J트러스트 역시 일본계다. 이 회사는 일본,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 아시아지역에 기반을 둔 글로벌 금융그룹으로 현재 대부업과 관련된 사업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 J트러스트는 은행, 저축은행, 카드사, 캐피탈, 엔터테인먼트, IT시스템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JT친애저축은행과, JT저축은행, JT캐피탈을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일본에서 사업을 시작했고, 대부업에 뿌리를 둔 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다니고 있다.
일본계라는 꼬리표는 사업확장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J트러스트는 고소영씨에 대한 광고모델 계약을 성사시켰지만 여론의 뭇매를 맞고 광고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은 최근 증권사와 지방저축은행 인수, 인터넷전문은행으로 진출하려던 계획이 물거품이 될 위기에 처해있다. 금융업계에서는 아프로서비스그룹에 붙은 일본계 또는 대부업 자본이라는 꼬리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아프로서비스그룹이 일본 J&K캐피탈이 소유한 러시앤캐시, 미즈사랑, 원캐싱 등 3개 대부업체의 지분과 사업권을 신설 한국 법인으로 넘기기로 한 것도 이참에 확실하게 뿌리논쟁을 종식시키겠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러시앤캐시 소유권 이전은 올해 안으로 마무리될 예정이며, 미즈사랑과 원캐싱 지분은 오는 2016년 자회사 아프로파이낸셜로 넘어간다고 회사측은 밝혔다. 이번 지배구조 개편 작업에 드는 비용은 세금을 포함해 약 600억 원이 소요될 예정이다.
■ 대부업 평정한 일본계 자금, 저축은행 공략도 광폭 움직임
일본계 자금은 이제 대부업을 넘어 2금융권인 저축은행 영역에서도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현재 일본계 자금이 인수한 저축은행은 SBI저축은행, OSB저축은행, JT저축은행, OK저축은행, JT친애저축은행 등 5개에 달한다. 지난 3월말 기준 국내 저축은행 79개의 총자산은 39조6000억원이며, 이 가운데 일본계 자금이 인수한 저축은행의 자산 규모는 8조3299억원으로 전체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자산규모가 14.5%였던 2013년(5조6395억원)에 비해 7%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국내 저축은행 인수에 가장 활발하게 나서는 일본 금융사는 SBI홀딩스다. SBI홀딩스는 일본 최대의 인터넷 전문은행·증권사를 운영하는 금융그룹으로 2013년 영업정지 직전에 놓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한후 SBI저축은행으로 이름을 바꿔 한국에 진출했다. 지난 3월 말 기준 SBI저축은행의 총자산 규모는 3조8539억원으로 저축은행 전체 자산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J트러스트는 친애저축은행 인수 후 SC저축은행, SC캐피탈을 잇달아 인수하며 규모를 키우고 있으며, 오릭스그룹은 푸른2저축은행과 스마일저축은행을 인수해 자산규모 1조원이 넘는 OSB저축은행을 출범시켰다. 오릭스그룹은 저축은행 진출로는 성에 차지 않는 듯 최근 현대증권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현재 최종인수를 위한 막바지 협상을 벌이고 있다.
러시앤캐시의 아프로서비스그룹도 대부업과 저축은행, 캐피털 등을 종합적으로 영위하는 서민종합금융그룹으로의 도약을 위해 씨티캐피탈, 리딩투자증권, 공평저축은행 등에 대한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 광고와 금리등 각종 규제움직임 강화로 영업환경은 산넘어 산
하지만 일본계 자본이 계속 승승장구할지는 좀더 두고볼 일이다. 그동안 영업의존율이 높았던 무차별 광고에 제동이 걸린데다, 국회에서 대부업의 대출금리 상한을 인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일 허위·과장 광고에 대한 감독 강화 방안을 내놨다. 금감원은 근거 없이 ‘최고’ ‘최상’ ‘최저’ ‘우리나라 처음’ ‘당해 금융회사만’ 같은 표현을 앞으로 쓰지 못하도록 했다. 또 ‘보장’ ‘즉시’ ‘확정’ 같은 표현도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TV광고에 대한 규제강화도 주목할 부분이다. 국회와 정부는 이미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광고를 아무 때나 방영하지 못하도록 시간대별 규제를 가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아예 TV광고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국회 정무위 이학영(새정치민주연합)의원은 대부업의 TV광고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다. 이의원은 한걸음 더 나아가 “지하철과 버스 등에서도 대부업 광고를 못하도록 해야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저축은행과 대부업계를 긴장시키는 것은 대출금리 상한을 낮추려는 대부업법 개정안이 국회 정무위에 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대출 이자율 상한을 낮추기 위한 '대부업 등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김기식(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대표발의한 법안(연 25%)과 신동우(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연 29.9%) 법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신 의원이 낸 법률안은 대부업체를 포함한 모든 여신금융기관이 이자율 연 29.9%를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고 김 의원은 대부업체의 경우 연 25%, 그 외의 여신금융기관은 연 20%를 초과할 수 없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누구의 법률안이 받아들여질지는 미지수이지만, 대출금리 상한이 지금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현재 법정 최고금리는 연34.9%다. 대부업체의 대출금리 상한은 처음에는 별도의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2002년 연 66%로 처음 상한이 정해진이후 연 49%(2007년), 연 44%(2010년), 연39%(2011년), 연34.9%(2014년) 등으로 줄곧 인하돼 왔다.
정부는 법정 최고금리가 낮아지면 연 30%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받고 있는 약 270만명의 대출자가 혜택을 입을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의 이자 경감 규모는 대부업 3700억원, 저축은행 900억원, 캐피탈사 15억원 등 총 46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 정부추산이다.
일본계 대부업계와 저축은행들은 그동안 중요한 밥줄이었던 TV광고 규제에 이어 이자 상한선이 낮아질 경우 좋은 시절을 계속 구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이들이 각종 이미지 포장을 통해 왜색을 벗어던지고 한국시장에 더 깊숙이 침투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성형수술을 통해 기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보려는 와타나베 부인의 ‘렛미인’ 전략이 성공할지 귀추가 궁금하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