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인하에도 대출금리 '역주행'…한은, 부채 버블 경고

[뉴스투데이=이금용 기자]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을 앞두고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이 급증하자, 은행들이 엇갈린 대응에 나섰다. 한국은행은 과잉부채에 ‘버블 경고’를 내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은 최근 주담대 금리를 인상하거나 모집 채널을 차단하며 대출 수요를 조절하는 움직임에 나섰다. KB국민은행은 지난 3일 비대면 혼합형(고정금리) 주담대 금리를 최대 0.17%포인트 인상했고, 우리은행도 변동금리형 주담대 최고 금리를 0.06%포인트 올렸다. NH농협은행은 이달부터 수도권 유주택자의 신규 주담대 취급을 일시 제한하고, 대출모집인을 통한 대출 접수를 6월 실행분에 한해 중단하기로 했다.
반면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만기 연장과 한도 확대를 통해 대출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주담대 만기를 30년에서 40년으로 늘렸고, 하나은행은 비대면 주담대 한도를 기존 5억원에서 10억원으로 두 배 확대했다. 이는 상환 부담을 분산하거나 여신 여력을 넓히는 방식으로, 금리 인하 없이 수요를 흡수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처럼 ‘금리 역주행’이 벌어진 배경에는 주담대를 중심으로 한 가계대출 급증이 자리하고 있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5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한 달 새 4조9946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주담대는 4조2316억원 늘며 전체 증가분의 85%에 달했다. 이는 ‘영끌’ 수요가 정점을 찍었던 2023년 9월 이후 가장 큰 폭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기준금리 인하 전부터 대출금리에는 이미 인하 효과가 상당 부분 반영돼 있었다”며 “최근 대출 수요가 급증하면서, 금리를 다시 인상하는 쪽으로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주담대 수요가 몰리는 배경엔 스트레스 DSR 3단계 시행 전 미리 자금을 확보하려는 이른바 ‘막차 대출’ 심리가 깔려 있다. 여기에 대선 이후 집값 반등 기대까지 겹치며, 수도권을 중심으로 주택 거래가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4000건을 넘어섰다. 한국부동산원 집계에서도 6월 첫째 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08% 오르며 5주 연속 상승했다. 특히 강남구(0.18%)·송파구(0.14%) 등 고가 아파트 밀집 지역의 상승폭이 두드러졌다. 월간 기준으로도 올해 1~3월 동안 서울 아파트 매매지수는 3.04%, 수도권은 1.64%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자산시장으로 자금이 쏠리는 과잉부채 구조가 금융 시스템 전반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은행이 이달 발간한 이슈노트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볼 교훈’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은 207.4%로, 일본 버블 정점기인 1994년의 214.2%에 근접했다. 특히 부동산업 대출집중도는 3.65로, 일본 거품 붕괴 직후(1992년)의 1.23보다 세 배 가까이 높은 수준이다.
또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24년 4분기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1.7%로, 조사 대상 38개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한국은행의 2025년 1분기 가계신용(잠정) 통계에서 3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28조7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는데 이 가운데 주담대는 9조7000억원 늘며 증가세를 주도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하반기에는 스트레스 DSR 등 규제 효과에 따라 주담대 증가세가 점차 둔화될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자산시장으로 쏠리는 과잉부채가 실물경제와 괴리되면 자원배분 왜곡과 금융 불안을 초래할 수 있다”며 “정밀한 거시건전성 정책과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부채 리스크를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