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6.12 15:50 ㅣ 수정 : 2025.06.12 21:11
기무사 주관 중앙보안감사 일주일 전인 1999년 6월15일 연평도 부근에서 북의 도발로 제1연평해전 발생 전군 비상발령으로 휴일에도 정상근무, 저조자 대상으로 재시험 등 가장 효과적인 보안규정 평가 준비 가능 철저한 군사보안태세를 견지하겠다는 각오의 자필 편지를 받아본 감사관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 정보참모부 요원들은 자신의 임무완수를 위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던 진정한 영웅들
1999년 6월15일 제 1연평해전 모습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기무사가 주관한 중앙보안감사 일주일 전인 1999년 6월15일 서해 연평도 부근에서 북한의 도발로 인한 제1연평해전이 있었다. 북한 해군 경비정이 연평도 서쪽 북방한계선(NLL)을 2km 침범하는 무력도발에 대응한 교전에서 우리 해군의 완승으로 북한은 경비정 1척 침몰, 5척 파손, 사상자 50(전사 20, 부상 30)여명이 발생했다.
필자의 대대장 임기가 시작되던 해인 1996년 9월16일에는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이 있었다. 이후 임기 끝나는 해였던 1998년 2월25일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하여 우리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불리는 대북화해협력정책 추진에 따라 같은 해 11월18일에는 남한의 동해항을 출발한 관광선이 북한 장전항에 도착하여 금강산 관광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금강산 관광에 관련된 협상이 진행 중이며 강릉무장공비 침투사건 2년 뒤인 1998년 6월에는 동해 북방한계선 남쪽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북한의 잠수정이 어선의 그물에 걸려 발각되었다.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하여 '잠수정은 잠수정, 햇볕은 햇볕이다'라며 햇볕정책과 잠수정 침투를 분리하여 대응하려 하였다. 인양된 잠수정 내부에서는 다수의 개인화기와 함께 사살된 9명의 승조원이 발견되었고, 잠수정에는 어뢰발사기가 2문 장착되어 있었다. 승조원의 시신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다.
한달 뒤인 7월에는 동해시 부근에서 북한 무장간첩의 시신이 침투용 장비와 함께 발견되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 북한에 대한 항의를 표시하였고, 북한은 이를 남한의 날조라고 주장하면서 남측에 잠수정 사고에 대한 사죄를 요구하였다.
또한 금강산 관광이 진행 중이던 11월에는 간첩선이 강화도 해안에 접근을 시도하다가 귀환했다. 12월에는 여수 앞바다에 침투하던 반잠수정이 대한민국 군대에 격침되었다. 이와같이 해안이 없는 충북에서 필자가 대대장 재직시에 북한은 강릉잠수정 좌초와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유난히도 해상으로의 군사도발이 매우 극심했다.
필자가 정보참모로 보직한 이듬해인 1999년 6월 초에도 북한 경비정들이 연평도 부근의 북방한계선(NLL) 남쪽으로 연일 내려와 남북한 전력이 서로 대치하였다. 남북 양측은 남북한 장성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하였고, 회담은 제1연평해전이 있던 6월15일에도 진행되고 있었기에 북한의 화전양면(和戰兩面) 전술의 진면목이 들어났다.
같은 해 7월3일,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6월15일 이 해전을 일단 공식적으로 '연평해전'이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2002년 6월29일, 북한은 또다시 연평도 부근 NLL을 넘어 무력충돌을 일으켜 약 30분간 교전을 했는데, 지난 해전과는 달리 더 길고 직접적인 공격으로 인하여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가 결국 침몰하였으며, 윤영하 소령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병사 6명이 전사하고, 18명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났다.
반면에 죽음을 각오한 우리 해군의 치열한 대응 사격으로 북측에서도 약 30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으며 1급 초계정이었던 등산곶 684호가 거의 반파 된 상태로 도주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2002년에 발생한 무력충돌을 제2연평해전이라는 이름으로 명함에 따라 3년 전인 1999년 연평도에서 발발해 우리가 일방적으로 승리한 해상전투를 제1연평해전으로 구분하였다.
국군기무사령부 기념코인과 필자가 철저한 군사보안태세를 견지하겠다는 내용으로 자필 작성해 각 감사관들의 방에 비치시킨 편지 [사진=김희철]
■ 황승배 기무부대장, 감사관들에게 준비과정을 설명하며 필자의 자필편지에 대한 성과를 극대화 시켜
필자가 직접 중앙보안감사 수감부대인 8사단의 감사현장 견학과 자료 수집한 결과로 보안규정 평가 성적의 차이가 우열을 가리는 가장 결정적이라는 결론을 얻어 사단 참모부 전간부를 대상으로 매주 보안시험 치루었고, 그 개별 성적을 간부식당에 게시하여 강하게 독려했다
마침 중앙보안감사 일주일 전에 발생한 제1연평해전으로 전군에 비상이 발령되고 휴일도 반납한 채 전 간부가 정상근무를 하여 저조자들을 대상으로 저녁 늦게까지 강요된 공부를 시키고 재시험을 치루는 등 가장 효율적인 보안규정 평가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이렇게 준비했지만 6월21일부터 시작하는 중앙보안감사를 대비한 준비에 무언가 2%가 부족한 느낌이 있었다. 타부대 수감시에 그 어디에서도 없었던 새로운 감동을 주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제1연평해전으로 전군에 발령된 비상이 해제된 일요일 저녁에 중앙보안감사관들이 사단 복지회관에 도착했을 때에 강하게 첫인상에 남을 수 있는 이벤트를 착안했다.
그래서 위의 사진과 같이 필자가 직접 자필로 작성한 편지를 복지회관에 도착한 홍영설 문서보안 감사관을 비롯한 모든 감사관들의 개인 숙소안 책상위에 비치시켰다.
수검부대 주무관인 정보참모가 열심히 준비했지만 부족한 점이 많고 이번 감사 기간중에 감사관들의 지도와 평가를 가슴 깊히 새겨 앞으로는 보다 더 철저한 군사보안태세를 견지하겠다는 각오의 자필 편지를 받아본 감사관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편 보안규정 평가 성적을 올리기 위해 사전 시험 성적을 식당에 공개하여 일부 간부들이 창피를 당하자, 반발이 엄청 심했고 필자에게 두고보자며 험담까지 한 참모도 있었다.
하지만 공격기세 유지(Tempo)가 중요한 성패를 좌우하게 된다. 심지어 작전참모 보직문제로 필자를 곤경에 몰아넣었던 부사단장에게도 도움을 청해 성적이 저조한 간부들을 상황회의 시간에 부사단장이 직접 힐책하도록 만들기도 했었다.
성공적인 중앙보안감사 수감을 위해 필자가 욕을 먹는 것은 두렵지 않았다. 하지만 부대의 인화(人和)가 깨지는 것은 걱정이 됐다. 그때 참모들의 불만을 잠재우며 성공적 수감을 위해 이해시키고 달래주며 독려한 사단 기무부대장 황승배 중령의 역할이 빛났고 너무도 감사했다.
특히 그는 감사관들에게 사단 참모 및 실무자들의 준비과정을 설명하며 필자의 자필편지에 대한 성과를 극대화 시켰다.
■ 가속도를 올리리 위해 악세레이터를 밟는 반면에 클러치를 밟으며 희희낙락하던 일부도 존재했지만 성공적으로 수감
정보참모로 부임해서부터 사단장 지휘서신 1호를 군사보안태세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예하부대에 하달하면서 이번 중앙보안감사 준비를 시작해서 약 8개월동안 시간이 흘렀다.
8사단 정보참모의 협조를 얻어 수감 현장을 직접 방문해 자료도 수집하며 감사관들중에 일부를 마주쳐 사전 인사도 나누었다. 또 수감 전날인 일요일 저녁에 중앙보안감사관들이 사단 복지회관에 도착했을 때 각 감사관들에게 필자가 자필 작성한 편지를 각방에 비치시켜 감동을 준 상태에서 전개된 감사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와중에 필자는 가속도를 올리리 위해 열심히 악세레이터를 밟았지만, 브레이크나 클러치를 밟으며 희희낙락하던 일부도 있었고, 이를 제지하기 위해 사단 전입 8개월만에 인접 참모와 심하게 말다툼도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말다툼과 험담까지 들으며 애쓴 결과는 보안규정 평가 결과로 나타났다. 감사관들은 강평에서 대단히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고 평가했다. 이제 모든 부대 감사결과를 종합한 뒤에 연말 최우수부대로 선정되는 것만이 남았다.
또한 황승배 사단기무부대장이 마치 자신이 수감을 받는 것처럼 인접 참모들을 독려하면서 감사관들에게 일일이 설명하고 도와준 것은 결정적으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절대적으로 기여했다.
돌이켜 보면 성공적인 중앙보안감사 수감을 만든 것은 필자만의 노력이 아니였다. 그동안 모든 준비에 전념을 다한 정보참모부 보좌관 신용섭 소령, 천병완 대위, 장시석 상사와 보안병의 보이지 않은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한 정보참모부 요원들이 브레이크와 클러치를 밟고 시샘했던 일부를 포옹하며 같이 갔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어낼 수 있었다. 그들은 김선필 사단장이 강조했던 자신의 임무완수를 위해 정직하고 성실하게 최선을 다했던 진정한 영웅들이었다.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