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5.19 13:29 ㅣ 수정 : 2025.05.19 13:29
차기 작전참모는 합참에서 근무한 장교를 받는 것이 사단 업무에 유리하다며 인사참모에게 압박을 가해와... 정보사령부 정형진 장군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은 ‘적 장비 및 물자 전시’로 충북통합방위지방회의 대성공 꼿꼿한 김선필 사단장, 작전참모는 사단에서 대대장, 참모로 근무한 장교로 선발한다는 원칙준수
사단 인사참모 김기영(삼사15기) 중령과 필자의 설명을 듣는 이종훈(육사28기) 작전부사단장, 최광일(학군13기) 참모장, 헌병대장 모습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대대장을 끝내고 정보참모로 보직으로 검토되고 있을 때, 인사참모는 필자에게 연락하여 다른 부대로 가는 것이 어떠냐고 타진하며 스스로 사단 참모 보직을 거절하고 다른 곳으로 떠나길 종용했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속에서 진급을 위한 살벌한 보직 쟁탈전의 서막이었다.
대대장 근무중인 필자에게 사단장이 수시로 “사단 참모로 들어오라”고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인사참모의 제시안이 사단장 뜻이냐며 필자가 사단장에게 직접 확인하겠다며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하여, 인사참모의 흑색 종용(?)을 뿌리치고 정보참모 보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정보참모 보직을 마치고 다음 목표는 현 작전참모의 뒤를 이어 차기 작전참모 보직까지 꿰차야 했다. 왜냐면 작전직능(530)의 장교들은 기본적으로 필수보직인 사단작전참모와 합참 등의 정책부서의 근무경력이 있어야 대령 진급심사에서 최소한의 경쟁이라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이제는 태도가 180도로 바뀐 인사참모가 필자에게 연말에 새롭게 부임한 작전부사단장이 차기 작전참모는 합참에서 근무한 장교를 받는 것이 사단 업무에 유리하다며 본인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이는 부사단장이 연대장 시절 예하 대대장이었던 육사 36기 장교가 정책부서인 합참에서 근무하지만 아직 작전참모를 못해 그를 위해 필자를 배제하려는 것이라며, 사단에서 대대장을 마친 자원이 사단참모를 하는 것이 우선인데, 그것을 깨버리고 타부대 근무 자원을 먼저 보직시키려하는 의도에 철저히 대비하라고 은밀하게 조언했다.
더불어 곧 계획된 국지도발훈련시에 정보참모로써 능력을 100% 발휘하여 기선을 제압하라는 고마운 충고도 곁들였다. 그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은 것처럼 이번에도 작전참모 보직 쟁탈전에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생겼지만, 변화된 인사참모의 지원사격을 받으면서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편으로는 육사 선배와 보이지 않는 경쟁을 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이번에 필수보직인 작전참모를 양보하면 나중에 그 선배처럼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었다
정형진 장군의 연대장 시절 모습과 그가 보낸 서신 [사진=김희철]
■ 정형진 장군, 20세기 마무리와 21세기를 맞이하여 사단뿐만 아니라 육군 전체의 작전을 책임질 준비
그런데 인사참모의 고마운 충고와 다르게 당시에 필자가 우선 전력투구할 업무는 3월에 계획된 상급부대 통제의 국지도발훈련보다 앞선 2월12일에 치루어야할 충북도청에서 개최하는 통합방위지방회의 준비였다.
정보사령부 정형진 참모장과 협조하여 통합방위지방회의에서 최근 확보한 적장비 및 물자로 효과있는 전시를 할 수 있다고 사단장에게 보고했지만 더 확실하게 매듭을 짓기 위해서 필자가 직접 정보사령부로 날아갔다.
필자가 근무했던 승리부대의 중대장 전임자였었고, 무적태풍부대의 작전보좌관 근무시도 각별하게 맺은 인연을 가진 정보사령부 정형진 참모장은 필자를 보자마자 반가워하며 몸은 완전히 회복됐냐는 질문을 가장 먼저 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80~183)] ‘유달리 인연이 많았던 정형진 장군의 통합메트릭스 신화’ 참조)
정 장군이 무적태풍부대의 연대장과 사단 참모장으로 근무할 때에 필자는 사단 작전보좌관과 예하부대 부대대장 보직이었다. 또한 필자가 진해의 육군대학에서 대대장반 교육을 받으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 입원치료와 퇴원후 재활치료를 받은 상황을 너무도 잘알고 있었고, 만나자 필자의 건강상태를 제일 우선으로 염려해주어 감사했다.
그는 정보사령부 적장비 전시 담당자를 직접 불러 가장 최근에 확보한 최신예 적장비 및 물자를 제공하라고 지시하면서 정보참모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라는 당부를 했다.
더불어 20세기를 마무리하는 작전참모로 21세기를 맞이하여 사단 작전참모직책뿐만 아니라 육군 전체의 작전을 책임질 준비를 하라며, 아끼는 마음이 듬뿍 담긴 격려도 아끼지 않았다.
연합사에서 개최한 적 육상침투 장비 및 물자 전시회 모습 [사진=연합뉴스]
■ 상급부대의 압력과 작전부사단장 강권에도 불구, 작전참모는 사단에서 대대장, 참모로 근무한 장교로 선발한다는 원칙준수
유비무환(有備無患)라는 말처럼 국군 정보분야의 최고 전문수준인 정보사령부에서 제공한 ‘적 장비 및 물자의 전시’는 통합방위지방회의가 개최된 충북도청에 참석한 도지사, 시장, 군수 등 기관장들과 각부대 지휘관들의 호평을 받았고, 김선필 사단장 취임후에 민관군 전체가 모이는 첫 행사였던 통합방위지방회의는 대성공이었다.
물론, 이후 3월에 시행된 국지도발훈련도 당시 작전참모였던 구인회 중령(삼사14기)과 궁합이 맞는 장군멍군의 협업이 잘 이루어지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통합방위지방회의와 국지도발훈련은 참모들의 노력도 한몫을 하며 극찬속에 마무리했지만, 사실은 김선필 사단장이 충청도 출신이라고 표명하며 지역 기관장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호응을 이끌어냈고, 훈련시에는 작전 전문가다운 명쾌한 작전 지침을 통해 일사분란하게 용병술을 발휘한 사단장의 리더쉽이 가장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사단장 취임후 연초의 중요 이슈 행사 및 훈련을 성공적으로 끝내면서 사단 인사참모는 6개월 뒤인 연말에 보직을 이동할 것을 대비한 앞으로의 사단 참모 보직구상을 사단장에게 보고하고 구두로 결심을 받았다.
왜냐면 현 작전참모가 9월 계획인사로 참모를 마치고 타부대로 전출을 간다는 보직이동 사항이 확실해지자, 이를 인지한 작전부사단장 강권하는 36기 선배를 비롯해 상급 및 인접 타부대에서 근무하는 필자 동기들을 포함한 작전 직능 장교들이 물밀 듯이 보직 쟁탈전에 가세하며 더욱 혼란스런 난리에 봉착하게 될 것을 대비한 사전조치였다.
김선필 사단장은 꼿꼿했다. 상급부대의 압력과 작전부사단장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작전참모는 사단에서 대대장 또는 참모의 경력을 가진 장교로 선발한다는 원칙적인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고, 5월에 사전 보직 결정문서에 결재하여 내외부에서 예상되는 불필요한 논쟁을 차단했다.
또한 합참에서 사단으로 보직예정인 그 선배는 교훈참모로 먼저 근무한 뒤에 작전참모로 활용하기로 결정됐다. 이로서 작전참모 보직 쟁탈전도 어렵게 통과했지만 ‘이런 갈등을 겪은 후에 작전참모로 보직되어 어떻게 보직 쟁탈전으로 빚은 갈등을 융합시켜 사단을 발전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는 또다른 필자의 과제로 남았다.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