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1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북한관련 연설을 하던 시간, 한국은행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 인상여부를 논의했다. 결론은 이달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1.50% 수준으로 동결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금리인하를 주장한 소수의견도 있었다. 지난해 7월부터 이어져온 금통위의 만장일치 동결 구도가 8개월 만에 깨진 것이다. 소수의견이지만 금리인하를 통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그만큼 한국경제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 신 냉전시대 접어든 남북관계, 경제에 미칠 파장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곧이어 자행된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가뜩이나 위축됐던 남북관계를 한 순간에 얼려버렸다.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가동중단과 이에 대한 북한의 개성공단 폐쇄조치로 남북경제관계는 순식간에 신 냉전시대로 접어들었다.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은 정부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보상을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피해규모는 직접적 피해 1조원과 간접피해 1조원 등 수 조원에 육박한다고 입주기업들은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관련기업들의 주가는 설 연휴직후 주식시장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대표적인 대북협력주인 현대상선, 개성공단 개발권자인 현대아산을 비롯해 인디에프, 좋은사람들, 로만손, 신원 등이 하락세를 보였다.
직간접적인 피해규모는 아직 정확한 규모가 집계되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4월~9월 160여 일 동안 개성공단 가동이 중단됐을 당시, 입주 기업들은 피해 규모가 1조 원이 넘는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지원방침을 밝혔지만, 입주기업들은 지원이 아닌, 정부 차원의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 양측간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개성공단 폐쇄는 한국의 국가신인도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세계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무디스는 지난 15일 개성공단 폐쇄가 한국의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디스는 이날자 보도자료에서 “남북 화해의 마지막 상징으로 남아 있던 개성공단의 폐쇄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험을 높이기 때문에 한국의 신용도에 부정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무디스가 곧장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Aa2 안정적)을 내리지는 않을 전망이다. 무디스는 “개성공단은 한국 국내총생산의 0.04%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현재 한국 정부의 자금 조달 비용(국채 이자율)도 이번 사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남북관계 단절은 가뜩이나 위축돼 있던 한국경제에 대한 불안심리를 더 악화시킬 공산이 높다. 북한변수를 제외하더라도 한국경제는 내우외환에 휩싸여 있다. 설 연휴 직후 벌어진 일련의 일들은 한국경제를 덮친 파고가 얼마나 혹독한 것인지를 말해준다. 미국과 일본증시 폭락, 수출급감, 중국발 경제위기 경고 등으로 투자심리가 꽁꽁 얼어붙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 악화라는 변수까지 가세하면서 올해 우리경제는 정부가 내건 경제성장률 목표치(3.1%)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해외투자은행(IB)들은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2.7% 선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 북한변수 계기로 노동개혁, 경제활성화법 급물살 탈 듯
한가지 주목할 점은 정부가 북한변수를 계기로 노동개혁 등 경제활성화법을 강력 추진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연설에서 “경제활성화와 민생법안을 지체 없이 통과시켜 주실 것을 거듭 부탁드린다”고 호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도 박 대통령의 국회 연설과 관련해서 국민 단합과 함께 경제활성화법의 조속통과를 촉구했다. 전경련 엄치성 국제본부장은 이날 “개성공단 중단은 북한의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로 유발된 안보위기에 대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재게는 투자와 고용 등 기업본연의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이며, 국회도 경제활성화법과 민생법안이 지체 없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경총도 논평을 통해 "경영계는 어려운 국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법 등 관련 법안의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경총은 "모쪼록 국회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는 한편 최우선 국정과제인 노동개혁이 성공적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현재 국회에는 노동개혁 4법과 경제활성화법 등이 계류돼 있다. 노동개혁 4법은 파견근로자법과 근로기준법, 고용보험법, 산재보험법 등 노동 관련 4개 법안을 말한다. 노동계는 노동개혁 4법이 결과적으로 해고를 쉽게 하는 악법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경제활성화법은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 등을 포함하는데, 정부와 재계에선 관련법이 통과되면 고용창출로 이어질 수 있고, 기업들의 사업재편이 쉬워지기 때문에 경제활성화 법안으로 부르고 있다. 이들 법안 역시 야당은 재벌에 너무 많은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법안처리에 쉽게 동의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악화를 계기로 정부와 재계가 정치권과 노동계를 상대로 강력한 압박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 이상 늦출 경우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크고 이들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경제위기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논리다.
이에 앞서 경제6단체는 지난 12일 세종대로 상의회관에서 대내외 리스크 극복과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경제활성화법안 입법촉구 공동성명서를 발표하기도 했다. 경제단체들은 "국민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지난 2월 4일 기업활력제고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낙후된 서비스산업을 체계적으로 육성하고 좋은 청년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서비스산업발전법과 노동개혁법의 조속 입법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긴급 성명 발표에는 박성택 중기중앙회 회장, 박병원 경총 회장,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김정관 무협 부회장, 반원익 중견련 부회장 등이 참석했다. 경제단체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서명에도 적극 참여, 정치권을 압박하고 있다.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가 진행하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서명인원은 112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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