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지난 14일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관측된 낮 최고기온은 19도. 당일 최고기록이었던 1923년의 17.8도를 92년만에 갈아치웠다. 지난 13일에는 미국 워싱턴DC에서 낮 최고기온이 22도까지 올라 1889년이후 126년만에 가장 따뜻한 12월 날씨를 기록했다.
일본도 지난 11일 도쿄 낮 최고기온이 24도까지 올라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더운 12월로 기록됐고, 유럽 역시 유례없이 따뜻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이상고온 영향으로 워싱턴DC에서는 4월에나 볼 수 있는 벚꽃이 피어나고 샌들과 반바지 차림의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게 됐다.
이 모든 것이 엘니뇨현상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유엔산하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엘니뇨로 인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더운 겨울이 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 슈퍼엘니뇨, 그리고 ‘더운 겨울’이 불러올 경제적 재앙
엘니뇨 현상은 적도 부근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바닷물 수온이 상승해 이상 기후를 유발, 평년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가 6개월 지속될 경우를 말한다. 엘니뇨 현상이 무서운 이유는 가뭄이나 태풍같은 거대한 자연재앙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히 1997년 이후 18년만에 최악의 ‘슈퍼 엘니뇨’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호주 기상청은 지난 7월 2010년 이후 5년만에 엘니뇨 현상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호주의 엘니뇨는 1997년 이후 18년만에 가장 강력한 슈퍼 엘니뇨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 가운데 발생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20세기 최악의 자연재앙으로 기록된 1997~1998년 슈퍼 엘니뇨 때는 전세계적으로 약 2만 2000명이 사망했고, 38조원의 피해를 입혔다.
가장 큰 걱정거리는 농산물 공급의 불안이다. 이미 지난 여름 지구촌 곳곳의 가뭄으로 곡물시장이 한바탕 큰 홍역을 치렀다. 농산물수입국인 한국도 그 영향권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기상이변이 지속되면서 농산물가격 변동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국립호주은행(NAB)은 최근 세계 밀 생산량의 14%를 차지하는 호주가 엘니뇨 영향권에 들면서 호주의 밀 생산이 반토막이 났다고 밝혔다. 국제 밀가격은 지난 6월에만 28% 급등했고 옥수수는 17% 올랐다.
문제는 기상이변이 단순히 농산물가격에만 영향을 주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소가 먹을 목초 공급이 줄면 유제품과 육류 생산도 타격을 입는다. 세계 최대 니켈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의 가뭄은 니켈가격 폭등의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기상이변이 전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얘기다.
슈퍼 엘니뇨현상으로 인한 ‘더운 여름’이 초래할 부작용은 원자재 시장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석유나 천연가스의 경우 난방수요가 급격히 줄기 때문에 가격폭락을 유발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실제로 국제석유시장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를 제외한 주요 유가는 내림세를 이어갔다. 지난 14일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배럴당 1.56달러(4.31%) 떨어진 34.64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2005년 1월 6일(34.55달러) 이후 최저치다. 2016년 1월 인도분 브렌트유는 전 거래일보다 0.01달러(0.03%) 내린 배럴당 37.92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천연가스 역시 14일 기준 MMBtu(100만파운드의 물을 화씨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당 7.2센트(3.8%) 급락한 1.822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1999년 3월24일 이후 최저 가격으로 약 16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 슈퍼 엘니뇨→기상이변→원자재가격 하락→세계경제 침체 도미노현상
슈퍼 엘니뇨 현상과 그로인한 원자재가격 하락은 세계경제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울 것으로 우려된다. 석유나 천연가스 뿐 아니라 다른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많은 국가들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이미 원자재 수출의존도가 높은 남미의 많은 국가들은 경제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역시 전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위험을 높일 수 있는 요인으로 중국 경제의 둔화와 각국 금융시장들의 불안과 함께 원자재 가격의 하락을 꼽았다. IMF는 지난 9월 작성한 ‘세계경제에 대한 위협 보고서’에서 중국의 경제 둔화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충격을 다른 나라들에 가져왔다며 중국의 수요 감소로 원유나 구리와 같은 원자재 가격이 급락하면서 브라질과 러시아, 기타 원자재 수출 국가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산업금속 수요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0~50%에 달한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원유를 비롯해 구리, 니켈 등 19개 원자재 선물 가격을 기반으로 하는 CRB 지수는 지난주 183.7까지 떨어져 2002년 11월 이후 13년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CRB지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7월 기록한 고점(472.3)에 비해서는 38.8% 수준으로 추락했다.

원유 가격과 철광석 가격은 끝없이 추락해 각각 2008년 7월과 2011년 2월 기록한 고점 대비 3분의 1 토막이 났다.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가격(3개월 선물)은 1t당 4580달러로, 2009년 5월 셋째 주 이후 6년6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2011년 고점(1만50달러)에 비해서는 45.5% 수준으로 주저앉은 것이다.
니켈가격도 1t당 8730달러로 2003년 7월 이후 12년4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이 가격은 2007년 5월 4일 기록했던 고점(5만1600달러)에 비해서 16.9% 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알루미늄 역시 1t당 1447달러로 떨어져 2009년 5월 이후 6년6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원자재가격 폭락은 신흥국 성장둔화를 불러왔고, 신흥국시장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 11월 수출액은 작년 같은 달보다 4.8% 감소한 444억달러를 기록했다. 한국의 수출액은 올들어 11월까지 평균 7.6% 줄어들면서 11개월 연속 감소했다. 특히 석유제품(-44.9%), 석유화학(-31.6%), 철강제품(-29.6%) 등의 감소폭이 컸다. 모두 원자재 관련 품목이다.
■ ‘더운 겨울’ 뒤에 닥칠 또 다른 극(極)가뭄 현상 벌써부터 걱정
전문가들은 ‘더운 겨울’에 이어 내년부터 또다른 극심한 가뭄이 몰아닥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한반도는 올해 극심한 가뭄을 겪었다. 실제 우리나라 기온을 보면 해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가장 더웠던 지난 8월의 자료를 보면, 1993년 서울의 8월중 평균기온은 23.2도로 나타났다. 20년이 지난 2013년 8월에는 평균기온이 27.9도였다. 20년새 평균기온이 4.7도나 오른 것이다. 10년 전인 2003년 8월 평균기온인 24.3도와 비교해도 3.6도 올랐다. 1993년과 2013년의 경우 날짜별로 평균기온이 최고 9.3도 차이 나기도 했다.
열대야(밤 최저기운이 25도 이상)의 경우 1973년부터 1993년까지 20년간 평균 6.6일이었던 것이 1994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평균 13.4일로 2배이상 증가했다. 폭염(일 최고기온이 33도 이상) 일수 역시 같은 기간 평균 7.9일에서 11.5일로 46%(3.6일) 증가했다.
특히 올해의 경우 봄부터 시작된 극심한 가뭄으로 댐과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내기도 했다. 소양강댐 수위는 역대 최저치까지 떨어졌다.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변희룡교수는 “우리나라 역사상 제일 큰 가뭄 주기가 124년인데 이를 극대 가뭄기라고 하고, 그 다음 주기가 대 가뭄기인데 38년 주기가 있다”면서 “올해는 38년 주기에 딱 들어가 있고 124년마다 오는 극대 가뭄이 시작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했다. 극대 가뭄이 시작되면 그 기간은 20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미국 지질연구소(USGS)는 역사적인 가뭄 기록과 최신 기후예측 모형을 이용해 기후변화가 지속될 경우 21세기에 미국 남서부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메가(mega) 가뭄이 일어날 수 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미국, 중남미와 동남 아시아, 호주, 인도, 아프리카, 남부 유럽까지 광범위하게 위험 지역에 포함시켰다. 가뭄은 태풍이나 해일등 다른 어떤 자연재해보다 그 피해가 더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심각하다.
미국 국립가뭄경감센터(NDMC)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재해 유형별 피해액 중 가뭄피해가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손실이 홍수에 비해 2~3배 정도 크다는 분석이다.
■ 연평균 200조원으로 불어난 자연재해 피해액, 한국의 대책은
세계은행(WB)에 따르면 각종 자연재해로 인한 연간 경제적 손실은 지난 30년간 4배로 증가했다. 2년전 세계은행이 세계 최대 재해 보험사인 독일의 '뮌헨재보험'(Munich Re)의 자료를 인용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980년대 연평균 500억달러였던 자연재해 피해 규모는 2003년이후 평균 2000억달러로 4배로 불었다.
이를 토대로 1980년부터 2014년까지 총 피해액을 계산해보면 4조달러(4700조원)를 넘어섰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2005년 8월 미국 남동부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경우 피해규모는 14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저소득층의 피해가 집중되어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이들 계층의 자살률이 크게 증가하기도 했다.
한국 역시 해마다 자연재해로 적게는 수 천억원 많게는 수 조원의 피해를 기록하고 있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는 5조원이 넘는 재산 피해를 남겼고, 2003년 태풍 ‘'매미’는 전국에서 130여 명의 인명 피해와 4조 7800억 원의 재산 피해를 안겼다. 그해 국내총생산(GDP)의 1%에 해당하는 손실이다. 기상이변에 따른 자연재해가 더이상 우리에게 먼 나라, 먼 미래의 얘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이진설>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