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의 ESG 칼럼] ESG, 비등점을 넘겨야 산다

문성후 소장 입력 : 2021.05.17 10:11 ㅣ 수정 : 2021.05.17 10:11

재생에너지 사용하라는 애플의 '선량한 갑질', ESG시대에 넘어야 할 비등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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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문성후 ESG중심연구소 소장] 기업은 법이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법인(法人)이라고 한다. 기업도 사람이니 인격도 있다. 선함과 악함도 있겠다. 사람처럼 생각해보자. 기업은 원래 선할까? 악할까? 기업에는 성선설이 맞을까? 성악설이 맞을까? 정답은 기업의 목적을 무엇으로 보는가에 달렸다.

 

기업의 목적을 이윤 창출과 사업 확대로 보면 지금까지의 기업들은 성선설에 가깝다. 자신을 위해 돈을 맡기고 믿어준 주주로 보면 기업들은 투자자들을 위해 열심히-방법은 무엇이든 간에-돈을 벌었으니 당연히 착한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기업의 목적을 수익 창출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 실현으로 함께 보면 기업은 악했다. 성악설이다. 사람으로 치면 돈밖에 모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착한 기업’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어느새 착하다는 의미도 바뀌었다. 예전에 착한 기업은 주주를 위해 돈을 많이 벌어주는 기업이었다. 그때 사회적 가치나 ESG 운운했다면 틀림없이 배임이나 무능하다는 얘기를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우리 회사가 돈을 많이 버는 기업이라고 말하면 그건 기본이고 어떻게 돈을 버는가 즉 요즘 의미로 얼마나 ‘착하게’ 버느냐고 질문받을 것이다. 아직도 착한 기업이 어떤 기업인가에 대해서는 100% 모두 동의하고 있지 않다. 다농의 전 CEO였던 엠마누엘 파버는 ESG 전도사라고 할 만큼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실천했다. 그러나 행동주의 펀드에 의해서 그는 결국 축출되었다. 수익이 시원찮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흐름은 정반(正反合)의 과정을 거쳐 기업은 이제 목적 두 가지를 모두 실천하는 ‘착한’ 기업이어야 한다. 돈 버는 것은 기본, 거기에 ESG까지 실천해야 한다. 학교에 다닐 때 보면 우등상과 선행상을 한꺼번에 타기란 쉽지 않았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선행을 하는 친구들이 꼭 공부까지 잘했던 것은 아니었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이 꼭 옳은 일에 앞장서는 친구들도 아니었다. 공부도 잘하고 선행도 잘하면 선생님은 그들을 모범생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할 바를 워낙 잘하니 남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라고 해서 주변에서 그 학생을 닮아야 한다며 모범생이라고 불렀다. 

 

이제 우등생이면 다 모범생이던 시대는 지났다. 공부도 잘하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선행도 베풀고, 예의도 바르며 옳은 일에 앞장서야 진정한 모범생이다. 기업도 그렇다. 수익과 매출은 당연히 좋아야 하고, 그러면서 선행도 베풀고 심지어 그 선행도 다시 매출과 수익으로 돌아와야 한다. 

 

모범생에게는 늘 상이 주어졌다. 주변의 칭찬이 쏟아졌다. 진학이든 취직이든 추천서 받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주변의 평판도 덩달아 올라갔다. 모범생이 누리는 혜택은 직접 돼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러면 모범 기업에게는 무엇이 상(賞)일까? 역시 지지와 높은 평판,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매출과 수익이다. 모범 기업에게 선행을 하라고 투자자들은 모범생의 규준으로 ESG를 제시하였고 잘하면 잘할수록 투자라는 대가를 상으로 주고 있다. 사회는 ESG를 잘하는 기업에게 정부 같으면 각종 세제나 지원 혜택을 주고 있고, NGO들은 그들을 문제 삼지 않는다.

 

고객들은 ‘기왕이면 다홍치마’라며 모범 기업들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한다. 고객들 개인 개인도 ESG를 실천한다는 자긍심을 가지고 말이다. 종업원들은 자신이 속한 기업이 ‘긍정적(positive)’한 기업이라며 높은 충성도와 몰입도를 가지고 회사의 성과에 기여한다. 모범 기업에는 ESG를 지키면 따라오는 베네핏이 한둘이 아니다. 모범 기업이 안 돼보면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ESG는 기업에는 비등점(沸騰點)이다. ESG 모범 기업이 되려면 물이 끓을 때까지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한다. 이 시간을 넘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말 생존이 위협받을까? 주로 투자자의 입장에서 ESG는 논의되었지만 협력사나 파트너는 더 즉각적이다. 그들은 선량한 갑질(?)로 기업에 ESG 비등점을 넘기도록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 예로 애플은 ‘클린 에너지 프로그램(Clean Energy Program)’의 하나로 비즈니스 파트너들에게 ‘100%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생산한 부품만 납품하라’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그 기준을 충족 못 하면 거래를 끊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협력사는 애플의 선량한 갑질(?)을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미래의 투자를 못 받는 것도 문제지만, 지금 당장 거래가 끊어지는 것은 더 큰 문제다. 

 

ESG의 세계는 필자가 연구할수록 참 냉정하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면 몰아주고, 못하면 남김없이 회수해 간다. ESG를 못하면 정부와 NGO는 득달같이 나서서 규제나 비판으로 기업의 안정과 평판을 회수해 간다. 파트너는 수십 년간의 거래에도 불구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로 거래를 회수해간다. 투자자는 돈을 더 태우지도 않고, 이제까지 태운 돈도 회수해 간다. 고객은 충성고객에서 불매고객으로 냉정하게 돌아서며 호의를 회수해 간다. 종업원들은 점차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회수한다. 

 

ESG가 중심에 선 지금, 기업은 우등생을 넘어 모범생이 되어야 한다. 편법 없이 공부 잘하는 우등생이 되어야 하고, 타인의 모범이 되는 선행을 베풀어야 한다. 공부도 잘하고 선행도 잘하려면 비등점을 넘겨야 한다. 비등점을 넘겨 물이 끓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선순환이 시작된다. 지금은 다른 생각 말고 물을 끓일 때다. 힘들어도 비등점을 넘기자.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ESG중심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부를 부르는 평판(한국경제신문 간)'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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