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5.06.08 11:45 ㅣ 수정 : 2025.06.08 11:45
6.25남침전쟁 전에 설립된 특무부대는 방첩부대, 보안사, 기무사, 군사안보지원사를 거쳐 국군방첩사령부로 변천 기무사 중앙보안감사 준비 중에도 필자의 작전참모 보직내정에 대한 주변의 의도적인 회유와 견제는 지속돼 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인 학연·지연·혈연이 그 어느 무엇보다도 우선시되고 있다는 현실을 실감
1968년 창설된 육군보안사령부 기념코인과 2022년 개편된 국군방첩사령부 마크 [사진=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컬럼니스트] 2024년 발생한 12.3계엄사태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과 제21대 대통령선거를 치루며 초미의 관심사가 된 부대인 국군방첩사령부는 6.25남침전쟁을 전후해 설립된 특무부대를 시초로 하여 1960년 방첩부대, 1968년 육군보안사령부, 1977년 국군보안사령부를 거쳐 1991년 국군기무사령부로 개편되었다.
2018년, 국군기무사령부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탄핵 국면에서 계엄령을 빙자한 친위 쿠데타를 기획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결국 문재인 정부에 들어 국군기무사령부를 그해 9월1일 해편하며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격하시켰다. 또한 부대 인원을 기무사 시절 4,200여 명에서 2,900여 명으로 30% 이상 감축시키며 부대의 임무 범위를 엄격히 제한하였다.
이후 국가정보원·국방부 여론조작 사건,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유가족에 대한 불법 대민사찰 의혹에 대해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검사장 시절 대대적으로 수사했던 윤석열 후보가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군사안보지원사령부는 보안·방첩 강화 기조와 함께 부대 명칭의 '지원'이라는 표현 때문에 기관 성격과 임무에 오해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와 명칭 변경이 추진됐고, 그에 따른 인원 재배치 및 조직 개편이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2022년 11월1일 설립 취지인 방첩 역할에 적합한 국군방첩사령부라는 명칭으로 변경되어 특무부대로 시작된 국군기무사령부의 명맥을 잇고 있다. 방첩사는 대한민국 국군의 정보공동체 중 하나로 해외/특수정보 및 군사보안을 담당하는 국방정보본부와 함께 군 정보기관의 역할을 수행한다.
정확히는 정보기관 중에서도 미국의 국방방첩국(DCSA), 독일 제3제국의 아프베어, 구소련의 스메르쉬, 북한의 보위국 등에 해당되는 군 방첩기관이며, 군 내에서 방첩사는 국정원의 국내파트나 국방정보본부의 해외파트와 비슷한 업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현재의 국군방첩사령부는 사령관 등 일부가 이번의 21대 대선에서 이재명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계기가 된 12.3계엄사태에 깊숙이 관여되어 큰 위기를 맞고 있다.
중앙보안감사를 앞두고 군사보안태세확립 및 보안사고예방 결의대회에서 선서하는 필자모습 [사진=김희철]
■ 보안감사 받을 부대의 정보참모가 수감중인 타부대까지 견학을 왔다는 것에 감사관들이 감동
사실 정보참모 입장에서 6월21일부터 26일까지 예정되어있는 국군기무사령부가 주관하는 중앙보안감사준비는 바로 그 전해 12월부터 시작되었다.
11월4일 취임하신 김선필 사단장의 지휘서신 1호(전 충용부대원의 군사보안 요원화)를 다른 참모부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사전에 준비했는데, 마침 사단장이 군사보안은 해당 실무자만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전 부대원이 보안요원화되어야 한다는 훈시를 기초로 신속히 보완하여 준비했다.
이는 지휘관이 취임하자마자 군사보안태세를 강조하는 내용을 지휘서신 1호로 예하부대에 하달하여 이번 중앙보안감사시에 지휘관부터 군사보안태세를 제일 먼저, 가장 중요하게 강조했다는 장려사항으로 제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보참모부의 실무적인 수감 준비로는 충용 약호자재를 5년만에 처음으로 재생산하였고, 충북통합방위지방회의시에도 국군정보사령부와 직접협조하여 최고 수준의 적장비 및 물자 전시를 하여 성과를 극대화시켰다.
물론 군인가족 보안교육과 보안세미나, 표어포스터 경연대회도 개최했고, 불시 생활보안 진단 및 불온서적 수거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군사보안 활동 실적을 쌓았다.
그래도 무언가 2%가 부족했다. 마침 ‘최근의 중앙보안감사가 전방의 8사단에서 시행중이다’라는 첩보를 듣고 잘알고지내던 8사단 정보참모의 협조를 얻어 수감 현장을 직접 방문해 자료도 수집하고, 감사관들중에 일부는 마주쳐 사전 인사도 나누었다.
그 감사관들은 3개월 뒤에 수감받을 부대의 정보참모가 수감준비를 위해 멀리 떨어진 전방부대까지 견학을 왔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지만, 실제 감사 받기전부터 일부 감사관들을 감동시키는 효과도 있었다.
8사단의 현장 견학과 자료 수집은 대단한 성과가 있었다. 모든 부대가 철저히 준비하여 보안 위규 사항들을 적발하는 것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결론이 도출됐고, 보안규정 평가 성적의 차이가 우열을 가리는 가장 결정적인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따라서 그동안 보안감사를 받은 부대에서 예상 문제집을 모두 수거해 ‘보안규정 문제집’을 인쇄하여 배분했고, 매주 보안시험 치루고 성적을 간부식당에 게시하여 독려했다.
추풍령 방어 전술토의를 개최한 추풍령지역 전경과 비석 [사진=김희철]
■ 중앙보안감사 준비 중에도 필자의 작전참모 보직내정에 대한 주변의 의도적인 회유와 견제는 지속돼
필자가 중앙보안감사 준비에 몰두하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육군항공작전사령부와 제2항공여단(1999.4.20.)을 경기도 이천에 창설하여 육군작전능력이 배가되었고, 사단에서는 군단국지도발훈련, 예하연대 군단장 업무보고, 연대전투단훈련(RCT), 추풍령방호전술토의, 쌍용훈련 등이 시행되었다.
연이은 군단 통제의 훈련 및 업무보고에서 선영제 군단장의 칭찬과 격려가 계속되자 관련 참모들과 지휘관들의 사기가 고양되었다. 허나 그와중에도 필자에 대한 작전부사단장의 의도적인 회유와 견제는 지속되었고, 주변 참모 및 헌병대장은 조용히 필자에게 “부사단장을 모시고 식사하며 풀어드리라”는 조언도 했었다.
그들은 ‘필자가 약게 행동하며, 보직을 위해 지역유지들을 동원해서 수를 쓴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달했지만, 부사단장의 숨은 의중은 본질과 다르게 필자 대신에 자신이 연대장근무 시절에 대대장으로 근무한 합참 실무자를 우선 작전참모로 보직시키기 위한 시도였기 때문에 식사를 하더라도 효과는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한편, 군단장이 주관한 추풍령방호 전술토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사단으로 복귀했을 때 청남대 338경비대장인 강찬욱 동기의 전화를 받고 저녁을 먹었는데 그때 최광일 사단참모장(학군13기)이 자연스럽게 함께했다.
작전참모 보직을 차고 들어가야할 필자의 입장에서 참모장을 한번이라도 더 만나는 것이 유리할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인접부대의 동기생이 자리를 만들어 더욱 고마웠다. 다행이도 참모장과 동기생 강중령은 광주고 선후배 관계였기에 가능했고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 자리가 됐다.
참모장은 그동안의 수많은 고비를 넘기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경험담과 앞으로도 닥칠 모든 어려움을 멋있게 헤쳐나갈 자신감을 보여주며 후배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그리고 그 고마움 속에는 한국인의 고유한 특성인 학연·지연·혈연이 그 어느 무엇보다도 우선시되고 있다는 현실을 실감했다.
또한 사단장에게서도 연락을 받고 조용히 저녁식사 자리를 참석했는데, 대대장 시절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흥농종묘 이왕영 박사가 함께 했다. ([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245~247)] ‘따뜻한 세상 만드는 민관군 콜라보’ 참조) 어느 때부터인가 지역 유지로 많은 활동을 하는 이 박사가 사단장과 동향이라는 이유로 가까워져 있었고 이 또한 필자의 작전참모 보직으로 옮기는 것에 약간이나마 도움되었던 것도 부정할 수 없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프로필▶ 방위산업공제조합 부이사장(현),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2024년), 군인공제회 부이사장(~2017년), 청와대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 육군대학 교수부장(2009년 준장)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년),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년), 제복은 영원한 애국이다(오색필통, 2023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