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빼빼로데이’ ‘블렉데이’…xxDay’의 경제학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세상에는 기념일이 많다. 국가에서 법령으로 제정해 기념하는 날도 있고,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지키는 기념일이 있다. 하도 기념일이 많아져서 어떤 기념일이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특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기념일을 만들고 선물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결혼기념일, 생일 정도는 반드시 챙겨야하는 남편들 입장에선 기념일이 자꾸 생기는게 달갑지 않을 듯 하다.
선물을 준비하느라 주머니 사정이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하면 기념일 덕분에 먹고사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 3.65일마다 하루꼴로 기념일 챙겨야하는 미국인들
2015년도 미국 칼렌다를 보면 00데이라고 해서 표시되어 있는 날이 정확히 100일이다. 월별로 보면 5월에 15일로 가장 많고, 9월(기념일수 13일), 4월(12일), 10월(11일), 2월(10일), 3월(9일), 12월(8일) 등의 순이다.
기념일이 가장 적은 달은 1월로 신년(Happy New Year), 마틴 루터 킹 목사 기념일, 에피파니데이(크리스마스 시즌의 끝)등 3일 밖에 없다. 1년 365일 중 100일이 기념일이다 보니 미국인들은 3.65일 꼴로 기념일을 챙기고 있다. 물론 별 의미없이 지나는 기념일도 많지만 기념선물을 준비하지 않으면 큰일 나는 기념일도 꽤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것이 크리스마스 다음으로 가장 큰 기념일로 꼽히는 발렌타인데이다. 그리스도교의 성인 발렌티누스(영어로 발렌타인)의 축일을 기리는 기념일인데, 꽤 오래전부터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장미, 사탕을 주는 날로 자리잡았다.
올초 발렌타인데이때 미국인들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주기위해 이날 하루동안 157억달러(18조500억원)를 소비했다.
발렌타인데이때 미국인들이 얼마나 많은 선물을 했는지는 각종 관련통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기념카드 전문업체인 홀마크에 따르면 이날 미국인들이 사간 기념카드는 1억4100만장에 달한다.
전미소매연맹(US National Retail Federation)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2명 중 1명(52.1%)은 발렌타인데이때 기념카드를 사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미도 1억9800만 송이가 팔렸고(미국인구조사국 조사), 하트 모양의 박스로 포장된 초콜릿선물은 3600만개가 판매됐다.

캔디는 무려 80억개가 팔렸다. 이를 일렬로 도열시키면 이탈리아 로마에서 애리조나주 발렌타인시까지 20번을 왕복하고도 남을 정도라고 한다. 초콜릿과 캔디제조업체들이 이날 하루에 벌어들인 순익은 10억달러(1조1500억원)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미국인들 중 900만명이 애완동물용 선물을 샀고 1인당 평균 5달러(5700원)를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장미등 꽃선물에 들어간 돈은 17억달러(1조9500억원)이고 꽃을 산 소비자를 성비로 보면 남성이 73%, 여성이 27%였다.
싱글녀의 비애를 반영하듯 여성 중 15%는 스스로를 위해 꽃을 주문한 것으로 조사됐다. 돈이 좀 있는 사람들은 이날 보석선물을 위해 35억달러(4조원)를 썼는데, 미국인의 17.3%는 보석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 미혼여성 중 53%는 발렌타인데이때 남자친구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할 경우 남친과 헤어지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는 점이다. 기념일을 챙기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이유다.
■ 사람들은 왜 기념일을 만들고 열광하는가
미국에서 할로윈데이(10월31일)는 기념일이라기 보다는 축제일에 가깝다. 발렌타인데이보다는 아직은 소비면에서 발렌타인데이의 절반도 안되는 69억달러(7조9300억원)에 불과(?) 하지만 축제를 즐기는 사람수는 발렌타인데이 못지않다. 1억5700만명이 어떤 형태로든 할로윈데이 축제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평년의 통계를 보면 할로윈데이때 미국인은 평균 74달러(8만5000원)를 소비한다. 특히 사탕만 놓고 보면 할로윈데이 기간의 지출액이 훨씬 많다. 발렌타인데이때 사탕매출은 16억달러(1조8400억원) 수준인데 비해 할로윈데이 때는 22억달러(2조5300억원)나 팔려나간다. 이는 미국 전체의 치과 치료비용(2010년 기준)과 비슷하다.
전미소매연맹 조사에 따르면 사탕 제조업체의 연간 매출액 중 할로윈데이와 발렌타인데이 매출이 전체의 40%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그만큼 산업 측면에서도 기념일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람들이 기념일을 즐기고, 의미를 겸허히 되새기는 뜻도 있지만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소비가 폭발적으로 늘고,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을 많이 걷는 날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미국의 많은 주들은 판매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부가세와 마찬가지로 대략 물건값의 10%를 세금으로 매긴다. 발렌타인데이때 157억달러가 팔려나갔다면 15억7000만달러(18조원)는 주정부의 몫이라는 얘기다. 할로윈데이 역시 69억달러 매출액중 10%인 6억9000만달러(7900억원)는 단순계산으로 주정부 금고로 들어간다는 계산이다.
물론 일부 주에서는 의상비에 별도의 판매세를 물리지 않는다. 코넥티컷, 미네소타, 뉴저지, 버몬트, 펜실바이나, 매사추세츠, 뉴욕, 로드아일랜드 등은 의류관련 판매세가 없다. 하지만 할로윈데이에 쓰이는 의상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의류로 보지 않기 때문에 거의 모든 주에서 세금을 매기고 있다.
평균적으로 미국인들은 할로윈데이때 25억달러 정도를 할로윈에 걸맞는 기괴한 복장을 사는데 쓴다. 올해의 경우 어른복장 소비에 19억달러, 아이들 복장 소비에 9억5000만달러, 애완동물 복장에 3억5000만달러를 소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호박, 촛불 등 할로윈 장식에 필요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미국인의 45%는 할로윈 장식을 하는데, 이 비용만 해도 20억달러(2조3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사람들은 축제를 통해 일상의 괴로움을 잠깐이라도 잊으려하고 제조업체와 상인들은 매출이 늘어 즐겁다. 물론 주정부 역시 세금을 많이 거둬 나쁠게 없다. 소비자와 생산자, 주정부 모두 즐거운 날을 보내는 셈이다.
■ 소비 진작이냐 등골 브레이커냐의 상반된 시각
한국에서는 최근 할로윈데이와 관련해 비판이 쏟아졌다. 일부 초등학생들을 중심으로 지나치게 비싼 할로윈 의상, 소품등을 구입하느라 부모들의 등골이 휠 정도라는 지적이었다.
실제로 일부 인터넷 쇼핑몰에 나와있는 할로윈 의상이나 용품은 몇 천원짜리는 거의 없고, 대개 5만~8만원 짜리가 대부분이다. 일부 의상은 10만원이 넘는 것들도 있다. 의상에 그치는게 아니라, 거기에 맞는 분장, 소품등을 합치면 20만~30만원이 훌쩍 넘는다. 할로윈축제의 원조격인 미국인들이 평균 74달러(8만5000원)를 소비하는 것에 비하면 과하다고 할 수 있다.
가뜩이나 학생들 사이에 유행하는 00데이가 많아서 부모들 부담이 적지 않은게 사실이다. 서양에는 없는 화이트데이(3월14일), 블랙데이(일명 짜장데이·4월14일), 빼빼로데이(11월11일) 등 이런저런 ‘데이’ 때마다 아이들은 부모를 졸라 친구들을 위한 선물을 사느라 바쁘다.
아이들 기죽을 까봐 안사줄 수도 없고, 부모들은 마지못해 지갑을 열고 있다. 그런 마당에 외국국적의 할로윈데이까지 챙기려니 등골이 휜다는 불평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한 낭비로 볼 것은 아니다. 미국처럼 기념일이나 축제일에 소비가 늘어 즐기는 사람도 좋고, 생산자나 판매업자들이 모처럼의 매출증대에 미소를 짓고, 정부 역시 세금을 더 거둔다면 1석3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1월11일 빼빼로 데이 대목을 앞둔 롯데제과의 경우 빼빼로의 1년 매출 가운데 절반정도가 11월에 나올 정도라고 한다.
한국의 경우 기념일은 대통령령인 ‘각종 기념일에 관한 규정’에 따른다. 국가기념일은 관련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정부가 지정하도록 돼있다. 국가기념일로 지정되면 주관부처가 정해지고, 이후 부처 자체적으로 예산을 확보해 기념식과 그에 부수되는 행사를 전국적인 범위로 행할 수 있고 주간이나 월간을 설정하여 부수 행사를 할 수 있다.
국가기념일에 관한 사항은 법령이 아닌 규정으로 돼있기 때문에 국무회의 의결 등을 거쳐 대통령이 선언만 하면 된다.
■ 기념일도 잘 만들고 건전하게 즐기면 정신건강, 소비진작에 큰 도움
현재 한국의 국가기념일(법정기념일)은 60일이다. 국가기념일과 상관없이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기념하는 날까지 합하면 대략 80여일쯤 된다. 미국의 100일보다는 20일 정도가 적은 편이다.
이 중에는 로즈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와인데이, 빼빼로데이, 짜장데이, 키스데이, 허그데이 같이 다분히 상업적인 냄새가 풀풀 풍기는 ‘데이’도 많다.
이런저런 ‘데이’를 모두 챙길 필요는 없다. 하지만 의미가 있고, 국민 대다수가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기념일이 생긴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이는 소비증대와 내수진작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올해 처음으로 코리아그랜드세일을 비롯해 한국판 ‘검은금요일’(블랙프라이데이)을 만들어 대대적인 소비진작에 나섰고 실제로 이 행사를 통해 소비증대가 뚜렷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것을 그대로 베꼈다는 해서 ‘짝퉁’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한국판 블랙프라이데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모처럼 지갑을 열고, 상인들도 함박웃음을 짓고, 정부는 정부대로 살아난 내수에 안도감을 느꼈다면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도둑질빼고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다”는 어느 경제부처 관리의 푸념처럼, 지금은 소비를 살리기 위해 없는 기념일, 없는 ‘데이’라도 만들어야할 시점이다. 물론 기념일이나 축제일은 참여하는 사람도 즐거워야 하기 때문에 얼마나 괜찮은 내용으로 포장하고 만들지는 정부와 민간업체 모두 고민해야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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