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제2 우유파동의 미스테리’…소비증가에도 업계는 죽겠다고 ‘아우성’

정승원 기자 입력 : 2015.11.12 10:39 ㅣ 수정 : 2015.11.12 10:39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 우유가 남아돈다. 소비가 늘고 있는데도 우유가 넘친다. 소비증가가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경직된 가격 때문에 제2의 우유파동이 일어날 지경이라고 업계는 하소연한다. [자료출처=스타티스타닷컴]


(뉴스투데이=이진설 경제전문기자) 최근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기사중 하나가 우유값 논란이다. 소비는 줄어드는데, 우유값이 꿈쩍도 하지 않아 소비감소를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 골자다. 이같은 가격경직성 뒤에는 원유가격 연동제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우유업계는 여론을 몰아가고 있다.

하지만 낙농가는 생산비 인상요인이 있었음에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2년째 원유가격 동결을 결정했다고 반박한다. 특히 올해 가격동결로 낙농가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이 330억원 줄어드는 반면, 소비자들의 편익은 660억원이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우유소비 해마다 늘어나는데도 업계는 죽겠다고 아우성

최근의 우유파동은 사실 소비감소가 주원인이 아니다. 우유소비는 오히려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우유소비량은 2012년을 제외하고 거의 매년 늘어났다. 2000년 59.2kg을 기록한 이후 ▲2010년 64.9kg ▲2011년 70.7kg ▲2012년 67.2kg ▲2013년 71.6kg ▲2014년 72.4kg등으로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1970년 1.6kg에 비하면 지난 44년간 우유소비량이 45.3배나 폭발했다.

같은 기간 1인당 전체 축산물 소비량은 10.2㎏에서 지난해 130.7㎏으로 12.8배 증가했다. 쇠고기(1.2㎏→10.8㎏)와 닭고기(1.4㎏→12.6㎏)가 9배, 돼지고기(2.6㎏→22.2㎏)가 8.5배 각각 증가했다. 계란은 3.8㎏에서 12.7㎏로 3.3배 증가했다. 전체 축산물 중 우유가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인 것이다.


외국과 비교하면 어떨까. 세계1위 핀란드는 1인당 우유소비량이 361kg으로 한국보다 4.9배 더 많이 우유를 마신다. 미국 역시 253kg으로 한국보다 3.4배 더 많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970년과 지난해를 비교하면 1인당 우유소비량이 무려 78%나 줄었다.

1970년 1인당 하루평균 1.1컵을 마셨던 미국인들이 지난해에는 0.24컵으로 소비량을 줄였다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이 기간 45배 이상 우유소비량을 늘려 대조를 이뤘다.

소비가 늘면 업계는 좋아져야 하는데, 사정은 정반대다. 업계1위 서울우유는 직원들 월급 일부를 유제품으로 줬다고 해서 논란이 됐다. 서울우유는 올 상반기 184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반기 기준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영업이익도 전년동기대비 84.5% 급감한 52억원에 그쳤다.

다른 업체도 서울우유만큼은 아니지만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유업은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76억원으로 흑자를 냈지만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50% 가량 급감했다. 남양유업은 판관비와 마케팅비용을 대폭 줄여 올 상반기에 겨우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휘발유보다 66%, 에비앙 생수보다 49% 더 비싼 우유

소비는 분명 늘고 있는데도, 업계가 불황에 빠진 것은 소비가 생산량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현재 우유 재고량은 26만7000톤. 2년새 4배 가량 늘었다. 하루 원유생산량은 6000여톤으로 필요량보다 300여톤이 더 많다. 전국 낙농 조합에서는 원유 생산량을 줄이기 위해 올해 3800 마리의 젖소를 도태시키기로 했지만 여전히 생산량이 필요량을 초과하고 있다.

단순히 수급논리만 보면 우유값이 떨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우유값은 L당 소매가격이 2510원이다. 2년전 가격과 변동이 없다. 11월 현재 전국 휘발유값 평균이 L당 1505원임을 고려하면 66% 더 높은 수준이다. 에비앙 생수(G마켓 기준 L당 1683원)와 비교해도 49% 높다.

▲ 미국에서는 우유값이 L당 1달러를 약간 웃돈다. L당 2510원 하는 한국의 절반수준이다. [사진출처=씨엔비시닷컴]


미국의 경우 우유값은 갤런(3.78L)당 3.82달러선이다. L당 1달러를 약간 웃돈다.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 역시 우유값은 L당 1달러 선이다. 뉴질랜드의 최대 유업체인 폰테라도 올해 하반기부터 원유 가격을 26.7% 내리기로 했다. 한국소비자들은 다른 나라 소비자보다 대략 2배정도 더 비싼 우유를 마시고 있다는 얘기다.

수급과 상관없이 우유값이 움직이기 힘든 것은 다 알려진 데로 원유가격 연동제의 영향이 크다.


낙농가, 우유업체, 소비자 모두 불만인 원유가격 연동제

원유가격연동제는 원유의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생산자와 유업체가 2011년 11월 합의하고 2013년 8월부터 시행한 제도다. 정부가 해마다 반복되던 낙농가와 우유업체간 원유가격 인상 마찰을 예방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다. 방식은 기본가격과 등급가격을 합해 유대(농가수취 원유값)를 결정한다. 기본가격은 다시 통계청 생산비를 반영한 기준원가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반영한 변동원가를 더해 정한다.

하지만 생산비와 물가는 매년 오를 공산이 더 커 원유가격 인하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우유업계의 지적이다. 올해 역시 우유 소비가 줄고 재고가 쌓여도 유업계의 원유 구매가격은 L당 940원으로 동결됐다. 이는 2년째 같은 가격으로, 해당 가격은 오는 8월1일부터 내년 7월31일까지 적용된다.

우유가 안 팔려도 원유를 쿼터대로 사줘야 하는 우유업계로선 수급 불균형으로 인한 손실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구조라고 불평한다. 낙농가도 할말이 많다. 낙농가들은 “우리도 고통을 분담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실제로 낙농가들은 소비자물가 인상으로 L당 지난해 25원, 올해 15원의 인상요인이 있었으나 다같이 어려운 점을 고려해 가격동결을 결정했다. 한편으론 젖소 도태를 통해 생산감축에 나서는 노력을 했다는 게 낙농가의 항변이다.

농식품부 추산에 따르면 올해 원유 가격 동결로 인해 낙농가 수익이 총 330억원 줄고, 소비자 편익은 660억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원유가격 연동제로 낙농가가 배만 불린다는 지적이 옳은 애기는 아니다는 것이다.


가격탄력성 키우고 우유소비 촉진이 살길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제기하는 우유관련 불만은 높은 가격이다. L당 2510원은 사먹기에 부담스런 가격이란 얘기다. 우유업계는 지금과 같은 원유가격 연동제가 있는 한 가격을 내리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렇다고 5000여 낙농가들의 생존이 걸려있는 원유가격 연동제를 도입 2년만에 폐지한다는 것은 더더욱 현실적이지 않다. 결국 지금같은 가격구조 방식이 지속된다면 소비자, 생산자, 업계 모두가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격의 탄력성을 높이는게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생산량을 감축하거나 소비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와 우유업체는 계속되는 재고누적에 원유 생산 감축 정책을 추진해 왔다. 올 2분기에는 지난해 2분기보다 1.6% 줄이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더 줄여야 하지만 생산농가 등의 반발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 [사진출처=소피아위비닷컴]


결국 소비를 늘리는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는 1994년 우유가공협회가 앞장서 대대적인 우유소비 캠페인을 벌였다. 당시 24~44세 여성을 타깃으로 이들과 관련된 58개의 잡지에 캠페인 광고를 실었다. 특히 나오미 캠벨을 비롯한 모델들을 앞세워 언론의 폭발적 반응을 끌어냈다.

축구스타 베컴 등 유명인들이 이른바 ‘우유콧수염’을 통해 소비자들의 웃음을 자아낸 것도 이때였다. 이 캠페인 덕분에 여성의 36%가 우유를 더 마시게 됐다고 응답했고, 우유가공협회가 운영하는 우유클럽에 어린이회원 4만명이 몰려들기도 했다. 이 캠페인은 1994년부터 2013년까지 무려 10년간 지속됐다. 캠페인을 해도 얼마 못가 막을 내리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진설>
경제전문기자=wateroh05@naver.com>

BEST 뉴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
 

주요기업 채용정보